사법감시센터 판결/결정 2014-02-10   2733

[판결비평] 정의보다 앞세운 기업의 부담

통상임금에 대한 논란이 뜨겁습니다. 지난 해 12월 18일 대법원은 정기상여금이 통상임금에 해당한다고 인정하면서도 기업에 중대한 경영상 어려움을 초래하는 경우에는 정기상여금을 포함한 통상임금에 기초한 추가임금 청구가 신의성실의 원칙에 위반될 수 있다고 판결했지요. 이를 토대로 최근 고용노동부는 현장에 적용할 지침을 발표해 논란을 가중시켰는데요. 오늘 [판결비평]은 통상임금의 여러 쟁점 중 ‘신의성실의 원칙’을 중심으로 살펴보았습니다. 

 

 

정의보다 앞세운 기업의 부담

 

 

대법원 2013. 12. 18. 선고 2012다89399 전원합의체 판결 (퇴직금)

대법원장 양승태(재판장) 대법관 양창수 신영철 민일영 이인복 이상훈 박병대 김용덕 박보영

고영한(주심) 김창석 김신 김소영

 

고려대 김제완 교수

 

 

 

 

 
  김 제 완/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교수ㆍ변호사

 

 

2013년에 선고된 대법원의 전원합의체판결 중 사회적 관심을 끈 것 중의 하나로 통상임금 관련 판결을 빼 놓을 수 없다. 지금까지 우리나라의 많은 기업들이 정상적으로 근로자의 급여를 인상하는 대신 실제로는 통상임금이면서도 다양한 형태의 상여금과 각종 수당 명목으로 인상분을 지급하는 방식을 택함으로써, 임금구조가 기형화되어 왔다. 그 중요한 이유는 임금총액이 증가하더라도 증가분이 외관상 통상임금이 아닌 것으로 보이게 하여, 통상임금을 기초로 하여 산정되는 퇴직금과 휴일/연장근로수당 등이 그만큼 증가하지 않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할 수 있다. 심지어 상당 수 기업으로서는 위와 같은 상여금이나 급여를 통상임금 산정 시 배제하기로 한다는 약정을 단체협약에 삽입하기도 하였다. 

 

그 결과 실제로 기업은 경제적인 이익을 얻었지만, 사회적인 부작용이 적지 않았다. 기업으로서는 새로운 인력을 채용하는 것보다 기존 근로자들에게 휴일/연장근로를 하도록 하는 것이 경제적으로 이익이었기 때문에 이를 선호하게 되었고, 그 결과 장시간노동으로 인한 근로자의 건강상의 문제는 물론이고, 일자리창출이나 일자리나누기 등 중요한 사회경제적 정책을 수행하는 데 큰 장애가 된 것이다. 이에 기형화된 임금구조를 단순화하는 것은 우리사회의 주요 과제 중의 하나가 된 것이다.

 

이 대법원 판결의 쟁점을 요약하자면, 결국 근로자들은 각종 상여금과 수당들 중에서 실질적으로 통상임금인 것들은 휴일/연장근로 등에 대한 임금과 퇴직금 산정 시 반영하여 달라는 것이고, 사용자측은 위와 같은 상여금과 수당 등이 통상임금이 아니라는 주장과 함께, 설사 통상임금이었다 하더라도 이를 통상임금 산정 시 배제한다는 노사합의가 있으므로, 이에 반하여 청구하는 것이 신의칙에 반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하여 대법원은, 몇몇 상여금과 수당에 대하여는 통상임금성을 부정하는 취지로(대법원 2013. 12. 18. 선고 2012다94643 임금), 통상임금성이 인정된 정기상여금 등에 관하여는 근로자들의 청구가 신의칙에 반할 수 있다는 취지로(대상판결), 근로자들의 청구를 인용한 원심들을 파기환송한 것이다.

 

 

통상임금성을 배제하는 약정과 신의칙

 

대상판결에 대한 노동법상의 쟁점은 다른 전문가들의 비평에 맡기기로 하고, 민법학자인 필자가 이 글에서 주로 검토하는 부분은 신의칙에 관한 것이다. 통상임금성이 인정된 정기상여금과 각종 수당 등에 관하여는 이를 퇴직금 산정 시 당연히 반영하여야 하는데, 이는 강행규정인 근로기준법으로부터 직접 효력이 발생하는 것이기 때문에 설사 이에 반하는 내용으로 노사합의를 하였다 하더라도 이를 이유로 근로기준법의 효력을 부정할 수 없다. 강행규정은 주로 사회질서와 약자보호를 위한 것이기 때문에, 만일 이에 반하는 약정의 효력을 인정하게 되면 법 제정의 취지가 몰각되기 때문이다. 

 

예컨대, 임차인보호를 위하여 임대기간이나 차임인상에 관하여 법에서 규제하고 있는데, 만일 이를 면탈하는 내용의 당사자 간 합의를 유효한 것으로 인정한다면, 임대차보호법제는 있으나마나한 제도가 된다. 이자제한법을 초과한 이자 약정의 경우도 마찬가지로서, 사채업자가 이자 대신 수수료라는 명목으로 돈을 받아 챙겼더라도 이는 법률상 이자로 간주되는데, 설사 수수료는 이자총액 계산 시 반영하지 않기로 약정을 하였다 하더라도 그 약정은 무효로 된다.

 

이 사건에서 정기상여금 등을 통상임금 산정 시 배제한다는 노사합의도 마찬가지인데, 이는 근로기준법에서 정한 퇴직금 및 수당 산정 기준을 사용자측에 유리하게 변경하는 내용이므로 법적 효력이 없다. 이에 사용자도 위 노사합의가 유효라는 주장보다는, 합의의 취지에 반하는 근로자들의 청구가 신의칙에 반한다는 점을 주로 주장한 것이다. 하지만, 신의칙 문제는 강행규정 위반과 동전의 앞뒷면과 같아서, 신의칙을 들어 근로자들의 청구를 배척하면 결과적으로 강행규정에 반하여 무효인 약정을 유효화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앞서 든 예로, 임차인이나 사채이용자가 법률상의 권리주장을 하는 데 대해 약정을 이유로 신의칙에 반한다고 판시해 버리면, 이는 강행규정 위반으로 무효인 약정의 효력을 인정하는 것과 마찬가지인 것과 같은 이치이다. 

 

대상판결원의 원심인 대전지방법원에서는 민법상의 원칙을 적용하여 위 약정의 효력을 부인하였을 뿐 아니라, 신의칙에 반한다는 사용자측의 주장도 배척하였다. 그러나 대법원의 다수의견은 근로기준법의 강행규정성에도 불구하고 수긍할만한 특별한 사정이 있으면 예외적으로 노사합의의 무효를 주장하는 것이 신의칙에 반할 수 있다는 취지로 파기환송하였는데, 여러 가지 이유를 들었지만 특별사정이란 결국 이와 같은 청구가 인용되게 되면 기업으로서는 노사합의 당시 예상치 못한 경제적인 부담을 지게 된다는 것이다(대법원장 양승태, 대법관 양창수, 신영철, 민일영, 박병대, 김용덕, 박보영, 고영한(주심), 김소영). 소수의견은 사용자의 경제적 부담이 근로자의 권리를 희생시킬 수 있는 근거가 될 수 없다는 요지인데, “근로기준법의 강행규정성을 인정하면서도 신의칙으로 그 강행규정성을 배척하는 다수의견의 논리는 너무 낯선 것이어서 당혹감마저 들며, 거듭 살펴보아도 그 논리에서 합리성을 찾을 수 없다”는 표현은 대상판결의 문제점을 강변하고 있다(대법관 이인복, 이상훈, 김신). 한편, 상여금과 1개월을 넘는 기간마다 지급되는 수당은 아예 통상임금에 해당하지 않는 것이 원칙이라는 취지의 다수의견에 대한 별개의견도 있었다(대법관 김창석).

 

필자는 다수의견의 문제점을 두 가지만 추가하고자 한다. 

 

첫째, 신의칙 적용에 있어서 위와 같은 임금구조의 기형화의 원인이 무엇이었는지, 비정상적인 노사합의가 왜 이루어졌는지를 고려하여야 한다는 점이다. 우리나라의 임금구조의 기형화는 통상임금을 줄일 목적으로 주로 사용자측의 필요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며, 통상임금성 배제 약정을 하였다는 것 자체가 사용자측의 인식과 의도를 잘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된다. 

 

둘째, 앞으로 있을 파기환송 후의 재판과 향후 다른 사건의 재판에서는 기업의 경제적 부담에 따라 신의칙 위반 여부가 가려지게 될 것인데, 정의에 반하는 결과를 낳게 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왜냐하면, 가능한 한 많은 수당에 대해 이러한 편법을 사용한 기업은 법대로 할 경우 경제적 부담이 큰 반면, 일부 소액의 수당에 대해서만 편법을 사용한 기업은 경제적 부담이 적게 되므로, 전자는 신의칙의 보호 하에 승소하게 되고, 후자는 신의칙의 보호를 받지 못하여 패소하게 된다. 이는 대법원 다수의견이 ‘형평과 정의’라는 포장으로 실제로는 기업의 경제적 부담을 정의보다 앞세움으로 인한 필연적 결과라고 생각한다. 앞으로 하급심 법원으로서는 신의칙 적용이 정의에 반하지 않도록 하여야 한다는, 너무나도 당연하면서도 대상판결로 인하여 결코 쉽지 않게 된, 새로운 짐을 하나 더 안게 되었다.   

 

 

[판결비평]은 주로 법률 전문가 층에만 국한되는 판결비평을 시민사회 공론의 장으로 끌어내어 다양한 의견을 나누고 이런 과정을 통해 법원의 판결이 더욱더 발전될 수 있다는 생각으로 마련한 자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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