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센터 칼럼(ef) 2014-04-22   1248

[기고] “경영자 생산성 높으니 천문학적 연봉도 당연하다?”

[경제 민주화 워치] 회장님의 연봉과 불평등에 대한 분노

이강국 일본 리츠메이칸대 교수

 

얼마 전 한국에서도 대기업 등기임원들의 연봉이 공개되어 국민들의 공분을 사고 있다. 11개월 동안 감옥에 있었던 SK의 최태원 회장이 301억 원을 받아 1위였고, 구속된 후 병원에 있었던 한화의 김승연 회장도 그나마 200억 원을 반납하여 131억 원을 기록했다. 

<한겨레>의 분석에 따르면 30대 그룹 173개 회사 임원의 최고액 연봉자들의 평균은 20억4725만 원으로 직원 평균의 32배에 달했다. 삼성전자 권오현 부회장의 연봉은 일반 직원의 약 66배였다. 물론 삼성전자 직원의 평균연봉은 1억 원을 넘고 대기업 직원 평균연봉 자체가 약 7300만 원으로 3000만 원도 되지 않는 월급쟁이 평균 연봉에 비해 훨씬 높기 때문에 일반적인 노동자들의 연봉에 비해서는 훨씬 더 높을 것이다. 많은 비정규직과 아르바이트들은  최저임금 수준의 낮은 임금을 받고 있는데, 시간당 5210원인 최저임금으로 계산하면 최태원 회장의 연봉은 이들 노동자 약 2300명분의 임금이다. 

문제는 과연 이들의 엄청난 연봉이 정당화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회사의 실적에 대한 최고경영자의 기여를 측정하기는 어렵겠지만 감옥이나 병원에서 그렇게 많은 돈을 받아가도 되는 것일까. 더욱이 엄청난 적자를 낸 회사들의 경영자들도 많은 연봉을 받았다. 삼성엔지니어링은 적자가 1조 원이 넘었는데 전 대표이사가 약 30억 원을 받았고 GS건설은 적자가 9000억 원이 넘었지만 총수가 17억 원을 넘게 받았다. 당장 한 해가 적자라도 경영자의 연봉은 이전의 실적을 반영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그런 근거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번 공개에서는 과연 어떤 기준으로 그 높은 연봉이 결정되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내역이 전혀 발표되지 않아서 논란이 되고 있다. 
연봉 공개에 대한 국민들의 반응은 당연히 분노와 허탈감이었다. 가뜩이나 얇은 월급봉투가 더욱 초라해 보이고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는 사람들이 많았다. 한국에서는 이제 막 시작되었지만 외국에서는 오랫동안 최고경영자들의 연봉이 공개되어 왔고 그에 대한 분노가 높아져 왔으며 그것을 둘러싼 논쟁도 활발히 나타나고 있다. 지난 12일 뉴욕타임스는 끝없이 치솟는 최고경영자(CEO)의 보수로 인해 악화된 소득불평등이 더욱 심해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기사에 따르면 2013년 오라클의 래리 엘리슨이 스톡옵션을 포함해 모두 7840만달러(약 812억원)를 받아 연봉 1위를 차지했다. 미국 100대 기업 최고경영자 보수의 중간값은 1390만 달러로 2012년에 비해 9% 증가했고 상위 100명이 가져간 보수 총액은 무려 15억 달러나 되었다.
미국에서 최고경영자들의 천문학적인 연봉 증가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80년대 이후 신자유주의와 함께 불평등이 심화되고 이와 함께 최고경영자의 연봉도 급속히 상승했던 것이다. 아래 그림이 보여주듯, 미국의 진보적 씽크탱크인 경제정책연구소에 따르면 미국 350대 기업의 최고경영자의 연봉이 동일산업의 평균적인 노동자의 연봉에 비해 1965년에는 약 20배 수준이었지만 90년대 이후 급속히 상승하여 2000년에는 무려 400배 가까이까지 높아졌고 이후에 하락했지만 2012년 273배를 기록했다. 또한 미국의 노조단체인 AFL-CIO에 따르면 2013년 S&P 500 기업의 최고경영자의 평균연봉은 미국 전체노동자의 평균연봉에 비해 331배나 높았다. 결국 소득불평등이 90 대 10을 넘어, 99 대 1, 99.9 대 0.01로 악화되고 있는 것이다. 
그래프. 일반노동자의 연봉에 대한 최고경영자 연봉의 비율(단위: %)
자료: Mishel, Lawrence, “ECONOMIC SNAPSHOT: Wages Incomes and Wealth The CEO-to-Worker Compensation Ratio in 2012 of 273 Was Far Above That of the Late 1990s and 14 Times the Ratio of 20.1 in 1965.” September 24, 2013. Economic Policy Institute http://www.epi.org/publication/the-ceo-to-worker-compensation-ratio-in-2012-of-273/

최고경영자의 높은 연봉에 대한 불만이 오랫동안 쌓여 왔지만, 본격적으로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진 것은 바로 2007~9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였다. 2008년 파산하여 금융위기를 촉발했던 리먼브라더스의 CEO는 2007년 무려 2200만 달러를 챙기는 등, 금융시스템을 망가뜨리고도 엄청난 소득을 올린 월가의 금융기관들에 대한 분노가 터져 나왔다. 사람들은 월가점령시위를 통해 상위 1%에 대한 분노를 표출했고 소위 1%와 최고경영자의 연봉을 둘러싼 논쟁이 격화되고 있다. 대중적인 경제학저널 ‘Journal of Economic Perspectives’는 작년에 1%의 소득집중에 관한 찬반논쟁을 다룬 특집을 싣기도 했다.
 
보수적인 경제학자들은 여전히 최고경영자의 엄청난 연봉을 지지하며 상위 1%를 옹호한다. 그 대표적인 인물인 하버드대의 맨큐 교수는 영화 ‘아이언맨’의 주연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를 언급하며 수퍼스타들은 엄청나게 큰 돈을 벌어주었기 때문에 그만큼 엄청난 수입을 올리는 것이 당연하다고 지적한다. 그에 따르면 기업의 최고경영자들도 수퍼스타들처럼 생산성이 높으며 높은 연봉은 그 대가로서 시장의 수요와 공급에 의해 자연스레 결정된 것이므로 정당한 것이다. 실제로 몇몇 실증연구는 최고경영자의 연봉이 폭등한 산업이 주로 금융과 첨단기술 등 고도의 교육과 숙련이 필요하고 리스크가 높은 산업이었음을 보여준다. 보수파 학자들은 이러한 현실이 주로 기술변화로 인해 소득불평등이 확대되었다는 주류경제학의 주장과 일치한다고 강조한다.
하지만 최고경영자의 생산성이 아무리 높다 해도 90년대 이후 그렇게 폭등한 최고경영자의 연봉을 설명하기는 불가능할 것이다. 실제로 많은 학자들이 비판하듯 소득불평등 확대는 결코 기술변화로만 설명할 수는 없으며 제도와 노사관계 그리고 문화의 변화 등 여러 요인들을 고려해야 한다. 여러 연구들에 따르면 최고경영자의 연봉 급등은 생산적인 활동보다는 주로 비생산적인 지대추구행위와 관련이 컸고 최고경영자의 권력 강화와 특히 스톡옵션 등을 통해 주가를 연봉에 연동시킨 제도 등과 연관이 있었다. 무엇보다도 신자유주의 하에서 노동자 세력의 약화와 사업에서의 성공을 찬양하는 사회분위기의 변화와도 관련이 컸다고 할 수 있다. 이를 고려하면 보수적인 학자들의 주장과는 달리 최고경영자의 연봉과 심화되는 불평등이 결코 정당화될 수는 없을 것이다. 
이러한 비판과 함께, 이제 스티글리츠와 크루그먼 등을 포함한 많은 학자들은 심각해진 불평등이 금융위기의 중요한 배경이었고 경제를 망치고 있다는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바야흐로 ‘불평등’이 시대의 화두가 된 것이다. 오랫동안 경제학자들의 관심 밖이었던 소득분배 문제가 갑자기 인기 있는 연구주제가 되었고 최근에는 IMF를 포함하여 많은 거시경제학 연구자들이 불평등의 거시경제적 악영향에 대해 보고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특히 파리경제학교의 피케티 교수 등은 세금자료를 이용하여 상위 1%의 소득이 전체 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역사적으로 분석하여 주목을 받았다. 이들의 연구에 따르면 실제로 미국에서 자본이득을 포함한 상위 1%의 소득 비중이 대공황 직전 약 24%에 달했고 그 이후 하락했지만 80년대 이후 다시 높아져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직전 똑같이 약 24%까지 치솟았다.
이들은 1993년에서 2012년까지 전체 소득증가분의 약 68%를 상위 1%가 차지했고, 금융위기 이후 회복기인 2009년에서 2012년까지 소득증가분의 95%를 상위 1%가 가져갔다고 보고한다. 실로 엄청난 불평등이다. 한편 피케티 교수는 최근 각광을 받고 있는 ‘21세기 자본론’이라는 저작에서 넓은 의미에서 ‘자본’에 대한 수익률이 경제성장률보다 높기 때문에 자본 대 노동의 소득불평등이 앞으로 19세기 세습자본주의 시대의 수준까지 더욱 악화될 것이라 우울하게 전망한다. 이들 학자들은 자본주의 경제가 불평등으로 망가지지 않기 위해서라도 정부의 보다 적극적인 소득재분배와 임금 인상 등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이러한 논의들은 주로 미국을 대상으로 하지만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주지하다시피 한국의 소득불평등은 1997년 외환금융위기 이후 신자유주의의 본격화와 함께 급속히 악화되었다. 아래 그림이 보여주듯 상위 1%의 소득 비중도 같은 변화를 보여주는데 특히 2000년대 이후에는 프랑스나 일본보다 높아져서 미국과 영국을 쫓아가고 있다. 최고경영자의 연봉도 2000년대 이후 사회분위기의 급속한 변화와 함께 크게 높아졌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번 연봉 공개에서도 보이듯 한국에서도 상위 1%의 소득집중을 정당화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문제는 우리도 성장의 과실의 대부분이 기업과 부자들에게 돌아가고 있는 것과 동시에 불평등과 빈곤 문제는 더욱 악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최근 세 모녀의 자살사건에서도 보이듯 사회복지는 여전히 모자라고 빈곤층의 삶은 나아지지 않고 있다. 결국 외환위기 이후 한국사회는 기회와 교육의 불평등, 부채 증가와 경제적 불안정성 증대, 그리고 정치사회적 불안정의 심화 등 여러 연구들이 주장하는 불평등의 악영향이 그대로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현실로 인해, 지금은 흐지부지되었지만 지난 대선 시기 경제민주화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드높았던 것이다. 
그림. 상위 1% 소득집중도의 국제비교(단위 %)
인용: 한국의 소득분배. 김낙년. 2013. ‘한국형 시장경제체제의 모색’ 심포지엄.  주: 상위 1% 소득집중도는 자본이득을 포함하지 않은 데이터.
이제 한국사회에서도 임원연봉의 공개와 함께 사회 전체적으로 심화되고 있는 불평등에 대한 비판과 그것을 극복하는 노력이 더욱 활발해지기를 기대한다. 이미 스위스의 국민투표를 비롯하여 프랑스와 미국 등 각국에서 최고연봉을 규제하기 위한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또한 미국과 일본 등에서는 최저임금을 높이고 임금인상을 통해 경제를 살리기 위한 노력도 활발하며, 최근에는 IMF조차 소득재분배를 촉구하고 있다. 이러한 세계적인 흐름을 생각할 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규제완화가 아니라 부유층에 대한 세금인상과 사회복지의 확충 그리고 임금인상일 것이다. 많이 늦었지만 이제는 시장경제를 망칠 수 있는 불평등을 개선하고 경제민주화를 촉진하기 위한 정책적 노력들이 나타나야 할 때다. 이를 위해 학자들과 정책결정자들의 반성과 함께 무엇보다도 시민들 스스로의 노력이 요구되고 있다. 이런 노력이 없이는 우리도 불평등의 끔찍한 대가를 아주 비싸게 치러야 할 지도 모른다.

※ 본 기고글은 필자가 <프레시안>의 ‘경제민주화워치’ 칼럼에 게재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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