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14년 07월 2014-07-01   1384

[특집] 권력남용의 끝은 어디인가? 민간인 불법 사찰과 국정원 대선 개입

특집 MB의 긴 그림자

권력남용의 끝은 어디인가?
민간인 불법 사찰과 국정원 대선 개입

 

남상욱 한국일보 기자

 

2012년 6월 13일. 국민들의 시선이 온통 서울중앙지방검찰청으로 쏠렸다. 이곳에서 국무총리실의 민간인 불법사찰 사건에 대한 재수사를 한 결과가 발표되는 순간, 여기저기에서 탄식이 터져 나왔다.

 

이날 발표한 검찰의 결론은 “이영호 전 청와대 고용노사비서관과 박영준 전 국무총리실 차장이 불법사찰을 주도했다”는 것이었다. 이들이 특별감찰 명목으로 정식 보고라인이 아닌 비선을 통해 별도 보고를 받는 등 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을 실질적으로 지휘하고 감독했다는 설명이 이어졌다.

 

검찰의 발표문에는 이용훈 전 대법원장,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박원순 서울시장 등 유력인사들을 무차별적으로 사찰한 정황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사찰 대상은 이들뿐 아니라 전ㆍ현직 국회의원, 고위공직자, 언론계 인사 등 500건에 달했다는 점에서 내용은 충격적이었다.

 

대통령은 몰랐다는 민간인 불법사찰

그러나 실망스럽게도 검찰은 드러난 500건의 사찰 가운데 3건만 죄가 된다고 봤다. 나머지는 적법한 감찰활동이거나 단순 동향파악이었다는 게 검찰의 판단이었다. 장진수 전 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 주무관의 청와대 개입설 폭로로 시작돼, 3개월 동안 대규모의 인력이 투입돼 진행됐던 재수사가 핵심적인 의혹은 건드리지 못했다는 비판이 당연하게도 쏟아졌다. ‘재수사가 의혹을 해소하기는커녕 오히려 더 키웠다’는 비아냥까지 들려왔다.

 

무엇보다 이날 검찰이 배포한 발표 자료에는 ‘이명박 대통령’이나 ‘MB’의 한 글자도 나오지 않았다. 수사 과정에서 드러난 사찰 내용 문건 등에는 비선 보고의 종착지가 이 대통령으로 지목하고 있었음에도 말이다. ‘윗선, 그것도 청와대는 이번 범죄와 무관하다’는 것을 검찰이 애써 강조한 셈이었다.

 

하지만 이 대통령이 불법사찰과 뒷수습 과정을 어떤 식으로든 알고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는 건 수사 초기부터 제기되던 의혹이었다. 청와대 개입설을 폭로한 장진수 주무관은 이를 입증할 만한 얘기들을 구체적으로 증언하기도 했고 공직윤리지원관실의 내부 문서에도 ‘VIP’ 등 누가 봐도 대통령을 지칭한다는 걸 알 수 있는 문구들이 다수 등장하고 있었다.

 

가장 실망스러웠던 부분은 2010년 1차 수사 당시 장진수 등에게 건너간 금품 전달에 청와대가 관여했다는 의혹에 대해 ‘확인되지 않았다’는 결론이었다. 띠지로 묶인 관봉 형태로 전달된 3,000만원은 의지만 있었다면 얼마든지 전달 과정을 밝혀낼 수 있었을 것이라는 게 법조계 안팎의 생각이었다. 검찰은 ‘청와대의 이미지가 손상’되지 않도록 자진해서 사비를 털어 청와대 비서관이 전달했지만 설득력은 떨어졌다.

 

참여사회 2014년 7월호

 

책임지지 않고, 사과하지 않은 대통령

 

이명박 대통령 역시 불법사찰과 관련해 성의 있는 사과를 한 번도 내놓지 않았다. 검찰이 면죄부를 줬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2012년 7월 발표한 대국민 사과에서 친인척 비리에 대해 고개를 숙였지만, 민간인 불법사찰 사건에 대한 내용은 쏙 빼놓았다. 2013년 퇴임 연설에서마저 민간인 사찰 등에 대해 “도덕적으로 흠결 없는 정부를 바랐지만 제 주변의 일로 국민들께 심려를 끼쳐드린 점에 대해 송구스럽다는 말씀을 드린다”고만 했다. 이를 사과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민간인 불법 사찰은 국가가 공권력을 동원해 국민을 감시하고 미행한 민주주의를 유린한 중대 범죄라는 데 이견이 있을 수는 없다. 이명박 대통령의 정권 유지 차원에서 국가 공권력이 동원됐다는 의혹은 거의 사실 수준으로 받아들여졌다.

 

하지만 이 상식을 넘어선 국기 문란 사건에 대해 대통령은 물론 어느 누구도 진정으로 고개를 숙인 사람은 없었다. 국가 공권력을 동원해 민주주의 시계를 거꾸로 돌린 사건을 철저한 진실 규명도, 책임자 처벌도, 진실한 반성도 없이 묻어 버린 것이다.

 

이 과정에서 국회도 책임이 있다. 2012년 8월 국회는 ‘민간인 불법사찰 특별위원회’를 출범시켰다. 청와대와 총리실 직원들의 광범위한 증거인멸로 감춰진 사건의 실체를 드러낼 기회였던 것이다. 관봉의 출처뿐 아니라 청와대 차원의 조직적 관여, 이명박 전 대통령의 개입 의혹 등도 조사 대상으로 거론됐다.

하지만 특위는 16개월 동안 아무런 활동도 하지 않고 세금만 축낸 채 활동을 종료했다. 여야가 조사 범위를 대한 의견을 좁히지 못한 사이 위원장 등은 매달 활동비만 꼬박꼬박 챙겨갔을 뿐 진실을 밝힐 기회를 스스로 걷어찬 것이다.

 

무차별 댓글로 대선에 개입한 국가정보원

 

그로부터 1년여의 시간이 흐른 2013년 6월 14일. 검찰은 국가정보원 댓글 사건에 대한 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국정원이 심리전단 직원들을 동원해 대선 직전에 정부와 여당을 지지하거나 야당과 야당 후보를 반대하는 게시 글을 인터넷에 무차별적으로 올려 선거에 개입했다는 게 검찰의 결론이었다. 그리고 그 정점에 있던 원세훈 당시 원장을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겼다.

 

명백한 국가기관을 동원한 권력 남용이었음에 검찰 수사로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심리전단 직원들이 올린 정치 관여 게시 글은 1,977회에 달했으며 찬반 클릭도 1,744회를 실행했고 이 중 1,281회는 대선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검찰의 이 같은 수사 성과에도 불구하고 미흡한 대목은 분명 있었다. 대선 직전에 이뤄진, 국정원이라는 국가 기관이 저지른 대규모의 활동이 당시 이명박 대통령의 보고와 승인 없이 이뤄질 수 있었을 지에 대한 의문에 아무런 답을 내놓지 못한 것이다.

 

이처럼 심각한 국기 문란의 행위를 했음에도 ‘주범’인 원 전 원장을 구속이 아닌 불구속으로 재판에 넘기게 된 배경에 어떤 ‘윗선’으로부터의 개입과 입김이 작용했는지도 남아 있는 의문이다.

 

진실한 반성이 없다면, 역사는 반복된다

 

두 사건은 공교롭게도 많은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국가공권력이 동원이 됐으며, 대통령 등 정치권력을 위해 불법을 저질렀다. 검찰 수사를 통해 범행 사실이 구체적으로 드러났으며 반면 수사에 대한 미흡함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게다가 두 사건에 대한 ‘진짜’ 책임자를 철저하게 처벌하지 못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으며, 당연히 책임을 져야 할 사람으로부터의 사과도 없었다는 비판의 목소리도 컸다. 물론 ‘진짜’ 책임자가 누구냐는 질문에는 대부분의 의혹의 시선은 청와대로 향했다.

 

이들 사건은 당연히 시간이 흐른다고 저절로 진실이 드러날 사건이 아니라는 공통점도 있다. 그만큼 누군가는 철저하게 진상을 규명하고, 한 점의 의심도 남기지 않도록 재조사에 나서야 한다는 말이기도 하다. 냉철하게 조사를 하고, 정점에 있는 책임자를 뼈저리게 반성시키고 참회하도록 해야 하는 것은 이 같은 비극의 궤적이 반복되지 않도록 하는 일이라는 점에서 보더라도 우리에게 남은 ‘반드시 해야 하는’ 숙제다. 그리고 그것은 특검 등 강제조사의 권한을 가지고 있는 국회와 수사기관의 몫이다. 

 

남상욱

‘한 점 부끄러움이 있을까 함부로 하늘도 못 쳐다보고, 혹여나 입새에 바람이라도 일까 괴로워하는’ 소심한 기자로 살고 있는 9년차 사회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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