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연대 세월호참사 2014-07-21   1394

[농성일지1] 세월호특별법 제정촉구 동조단식 3일째

농성장 일지_이태호 사무처장

 

 

2014. 7. 20. 일. 단식 3일째

 

단식 농성 3일째를 맞는 일요일 아침, 여기는 광화문 광장, 이순신 동상 앞입니다. 한여름 뙤악볕이 내리쬐는 신작로 한복판에서의 단식농성이라니…농성을 시작하기 전에는 상상만으로도 숨이 턱턱 막혔지만, 막상 닥치고 보니 그럭저럭 견딜만합니다.  

 

세월호 참사 가족들이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면서 단식을 시작한 지는 이미 7일째입니다. 저를 포함한 열세 명은 가족들의 단식에 함께 하는 ‘동조 단식’을 지난 18일부터 해오고 있는 것입니다.

 

마주보고 있는 천막에는 세월호 가족 대책위의 김병권 위원장과  유민이 아빠, 예지 아빠가 조용히 앉아 있거나 비스듬히 누워 있습니다. 애초 광화문에서는 다섯 명이 시작했지만 지금은 세 명만 남았습니다. 국회에서는 아직 열 분이 모두 단식을 지속하고 있다고 합니다. 가족들은 참사 발생 이래로 하룻밤도 편안히 잠들어 보지 못한 분들이어서, 이번 단식이 이들의 건강에 치명타를 미치지나 않을지 걱정입니다. 

 

“한창 일을 해야 할 사람이 단식을 하면 어떻게 해요?”

 

단식을 시작했다고 하니 주변의 지인들과 참여연대 식구들이 이렇게 묻곤 합니다. 제 건강을 염려하여 단식을 만류하는 분도 있지만 어떤 분들은 과연 그럴 필요까지 있는지 진지하게 의문을 표시하기도 합니다.

 

저도 자문해 보았습니다. 왜 꼭 단식을 해야만 했는지. 사실 단식 말고도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을 위해 할 수 있고 해야 할 일들이 많습니다. 대체로 시민단체들은 ‘단식’같은 극단적인 형태의 투쟁양식을 그다지 지지하지 않는 편이지요. 역대 참여연대 임원들은 이제까지 ‘단식’을 선택한 적이 없었습니다. 가끔 ‘한 끼 동조단식’ 권유에 동참하는 경우가 있긴 했습니다만. 그런데 왜 나는 단식을 하고 있는 걸까? 

 

거창한 생각은 없습니다. 그저 가족들의 고통에 조금이라도 가깝게 참여하고 싶어서였습니다. 사실 참사가 나자마자 팽목항으로 달려가고 싶었지만 이러저러한 일정  때문에, 사전에 예정되었던 계획들 때문에 내려가 보지 못했었습니다. 아마 많은 사람들이 그런 마음이었겠지요. 참사 한 달 후, 뒤늦게 쓸쓸한 진도체육관과 팽목항에 찾아가 보고 나서는, 더 일찍 가보지 못한 것이  너무나 미안하고 후회되었습니다. 

 

물론 단식에 합류하기 전까지 다른 일도 힘껏 해오긴 했습니다. 세월호 참사 국민대책회의 공동운영위원장으로서 촛불집회도 열심히 참여했고, 특별법 제정을 위한 서명운동에도 함께 했습니다.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 국민참여위원회>를 구성해서 유가족과 함께 현장조사를 다니고, 변협과 더불어 유가족-국민 특별법안을 성안하는 일에도 매달렸습니다. 

 

그러던 중 “참사 100일이 되기 전까지 진상규명 특별법을 제정하자”며 가족들이 단식을 시작했을 때, 이번 만큼은 가족들과 직접 단식을 함께 해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저 같이 평범한 사람들은 몸이 가는 곳에 마음이 가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여기 단식농성장에 배고픈 몸을 두고 가족들의 고통의 수만분의 일이라도 나누려고 했던 것입니다.

 

제가 단식에 합류하게 된 또 다른 이유는 세월호 승객들을 구조할 골든타임은 놓쳤지만, 세월호 참사의 재발을 방지할 특별법 제정의 골든타임만큼은 놓칠 수 없다는 가족들의 절박함에 공감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 법안을 국회에서 논의하고 있는 정치권, 특히 정부여당은 성역없는 진상규명이 가능한 특별법 제정에 관심이 없을 뿐만 아니라 사실상 특별법을 빈껍데기로 만들기 위해 전력을 다하고 있습니다. 가족들이 제안한 특별법안에서 성역없는 수사와 조사를 가능케 할 특별검사나 특별사법경찰관 관련 조항들을 모두 제거하고, 청문회를 열수 있는 권한도 제거하고, 특별위원회의 의결정족수도 전례 없이 2/3로 하자고 주장하면서 시간을 끌고 있습니다. 

 

이미 7월 16일까지 특볍법을 제정하겠다던 대통령과 여야 대표의 약속은 깨졌습니다. 오는 21일부터 임시국회를 열어 특별법을 제정하겠다고들 하는데 지금 정부 여당의 미온적인 태도로 볼 때 참사 100일이 되는 7월 24일까지 실제로 제정될 수 있을 지 회의적입니다. 설사 기한이 지켜지더라도 이빨 빠진 법안이 통과될 것이 분명합니다. 그럴 경우 특별법안 논의는 보궐선거 이후로, 또 정기국회로 계속 지연될 것이고, 특별법에 따른 진상조사위원회는 연내에 구성되기 힘들어지게 될 것입니다. 

 

7월 24일이면 가족들이 단식한 지 12일째 됩니다. 세월호 가족들의 단식이 24일을 지나 계속되게 할 수는 없고, 저도 그 이상 단식하고 싶지 않습니다. 

 

21일, 내일부터 임시국회가 시작됩니다. 그야말로 특별법 제정의 골든타임이 다시 시작되는 것이겠지요. 

 

내일은 농성장에만 있지 않고 국회로 들어가서 대국회 활동도 예전처럼 해야겠습니다. 밥 굶는다고 텐트에만 앉아 있을 수는 없죠. 

 

세월호 참사 가족과 우리들의 단식에 호응해서였을까요?

지난 19일에는 많은 분들이 가족들이 주최하는 서울광장 집회에 참여해 주셨습니다. 그보다 더 많은 분들이 마음으로 연대하고 지지해주셨겠지요. 확실히 단식을 한 삼일쯤하고 나니 시민들의 관심이 더 고맙게 느껴지고, 또 절실하게 느껴지네요.

 

주변에 서명을 권유해 주시거나, 국회 여야 대표와 협상담당 의원들에게 제대로 된 특별법을 어서 제정하라고 항의전화나 문자 한통 보내주시거나, 농성장을 지지방문해주시거나, 하루 지지 단식에 동참해 주시거나, 24일 저녁 서울광장에서 열릴 참사 100일 추모행사에 함께 해 주시거나…할 수 있는 모든 방법으로 가족들과 함께 해 주세요. 

 

이태호
참여연대 사무처장
세월호 참사 국민대책회의 공동 운영위원장

정부지원금 0%, 회원의 회비로 운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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