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연대이야기 청년사업 2014-08-26   1688

[청년 불온대장정 제 4탄] 해운대의 찢어진 우비, 그 의미는 더 무섭다

해운대의 찢어진 우비, 그 의미는 더 무섭다

[청년 불온대장정 ④] 팔도 상처 둘러본 ‘불온 대장정’ 마무리…”상처와 계속 연대할 것”

 ‘불온대장정’이란 이름으로 참여연대 20대 회원 14명이 주축이 되어 지난 20일부터 24일까지 내일로 기차를 타고 전국을 순회했습니다. 사회적 아픔이나 연대를 필요로 하는 현장에 직접 찾아가 함께 행동한다는 큰 취지로 시작했습니다. 고리원전 후기는 윤정민 참가자가 작성해주셨습니다.

 

20140820~24_청년 불온대장정 (10)
▲ 직접행동 준비 모습. 불온대장정 친구들이 해운대 근처 커피숍에서 직접행동 준비를 하고 있다.  
 
 정들었던 청도 삼평리를 뒤로하고 ‘불온한 우리’는 다시 배낭을 짊어지고 부산으로 향했다. 불온대장정 4일 차, 우리는 많이 지쳐 있었다. 사람으로 가득 찬 부산행 기차는 지친 몸을 더욱 피곤하게 만들었다. 게다가 마지막 여정지인 부산은 고리원전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있는 곳이다. 여기에서 사람들에게 고리원전 위험성을 알리는 직접행동(캠페인)을 하기로 해 걱정과 부담이 컸다. 
 
 불온대장정을 떠나기 전 세 번의 사전 모임에서 각 여정지와 주제에 관해 공부하면서 대전과 부산에서 4대강과 고리 원전을 주제로 두 번의 직접행동을 하기로 했다. 일정이 꼬이는 바람에 아쉽게도 대전에서 직접행동을 하지 못했다. 부산에서 할 직접행동이 더 중요하게 느껴진 이유다. 
부산에 도착한 뒤 송정해수욕장 근처 숙소에서 밤을 보냈다. 다음 날 아침 겸 점심으로 부산의 명물 돼지국밥으로 배를 든든히 채운 우리는 고리 원전을 반대하는 직접행동을 위해 해운대로 걸음을 옮겼다. 
 
 
 해운대에서 진행한 퍼포먼스 

 
 우리는 찢어진 우비를 입고 마스크를 낀 채 메시지를 담은 피켓과 풍선을 들고 해운대 해변에서 침묵 행진을 하기로 했다. 찢어진 우비는 우비에 난 구멍처럼 고리원전 때문에 우리의 안전에도 구멍이 났다는 의미를 담았다. 풍선은 언제 터질지 모르는 고리원전의 위험성을 표현한 것이다. 
 
20140820~24_청년 불온대장정 (11)
▲ 해운대 침묵행진 모습. 고리원전을 빗댄 풍선, 안전에 구멍이 난 방사능복을 의미하는 찢겨진 우비, 피켓으로 무장한 모습  
 
20140820~24_청년 불온대장정 (12)
▲ 출발직전 모습. 언제 터질지 모르는 풍선의 모습이 마치 고리원전처럼 느껴진다.  
 
 ‘원전 대신 안전’ ‘수명 끝난 고리1호기 치아뿌라!’, ‘고마해라! 마이 돌렸다 아이가’ 등의 메시지를 담은 피켓도 만들었다. 해운대역 근처의 한 카페에서 모든 준비를 마치고 ‘메시지를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을까, 사람들이 우리에게 관심을 많이 가져줄까’라는 걱정과 ‘드디어 직접행동을 한다’는 설렘을 가득 안고 침묵 행진을 시작했다. 
 카페 문을 나서자마자 사람들의 이목이 우리에게 집중됐다. 한여름에 찢어진 흰 우비를 입고 마스크를 낀 십여 명의 사람들이 모여 있으니 그럴 만도 했다. 관심을 받아 다행이라는 안도감과 함께 한꺼번에 느껴지는 사람들의 시선에 약간은 어색했다.
 침묵 행진이 본격적으로 진행될 해운대 해변에 도착하자 점점 더 많은 사람이 우리에게 관심을 보였다. 신기한 듯 힐끔 쳐다보고 지나가는 사람도 있었지만 사진을 찍거나 진지하게 관심을 보이는 사람도 많았다. 가족 단위 관광객이 많았는데 어린 아이들이 부모님에게 “아빠 고리원전이 뭐야?”하고 묻는 모습도 종종 보였다. 
 우리 또래로 보이는 한 분은 “고리원전 수명 끝났는데 위험하게 계속 가동하고 있잖아”라며 옆 친구에게 설명을 해주기도 했다. 반면 “그럼 전기는 어떻게 쓰느냐?”고 물으며 부정적인 시선을 보내거나 “학교에서 담배 피워서 벌 받냐?”고 엉뚱한 질문을 던지는 사람도 있었다. 해변에 외국인들도 많았는데 메시지를 한글로만 써서 외국인들은 잘 이해하지 못하는 눈치였다.
 보이지 않는 희망… 그래도 계속 연대해 나갈 것

 우리의 침묵 행진은 해운대 해변을 한 바퀴 크게 돈 뒤, 수명 다한 고리원전을 폐쇄하라는 구호를 외치며 원전의 위험성을 의미하는 풍선을 터트리는 퍼포먼스를 하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조금 더 많은 메시지를 담지 못한 점, 외국인을 배려하지 못한 점 등이 뒤늦게 생각나 아쉬움이 남았지만 예상했던 것보다 많은 사람에게 고리원전의 위험성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기회를 만든 것 같아 뿌듯했다.
 스스로를 불온하다 부르는 14명의 청년이 ‘불온대장정’이라는 이름을 내걸고 4박5일간 떠난 여정은 해운대 해변의 침묵 행진과 함께 막을 내렸다. 솔직히 방문한 현장 모든 곳에선 또렷한 희망이 보이지 않았다. 몇 년 째 힘들게 투쟁하고도 초조하게 재판결과를 기다릴 수밖에 없는 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의 모습에서, 마구 파헤쳐진 4대강에서, 하루하루 송전탑이 세워지는 것을 공사장 밖에서 바라볼 수밖에 없는 삼평리 할매의 모습에서 오히려 깊은 절망을 맛보기도 했다.
 
20140820~24_청년 불온대장정 (13)
▲ 침묵행진 후 단체사진. 침묵행진을 마무리한 불온대장정 친구들  
 
 ‘불온대장정’을 떠나기 전, 현장에 계신 분들에게 도움을 드리고 싶다는 ‘건방진’ 생각은 여행 하루 만에 산산이 깨졌다. 투쟁의 현장에서 정작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 그래도 쌍용자동차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지지하는 사람들, 썩어가는 강을 다시 살리는 것을 포기하지 않는 사람들, 삼평리 송전탑 반대 농성장을 끊임없이 찾아오는 사람들을 보며 위로받았다. 
 우리는 그 속에서 희망을 봤다. 그분들을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많지 않지만 앞으로도 멀리서나마 관심을 가지고 계속 연대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부지원금 0%, 회원의 회비로 운영됩니다

참여연대 후원/회원가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