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15년 01월 2015-01-05   1527

[만남] 지구별 여행자 – 전서윤 회원

호모아줌마데스
사진 Nina ahn

참여사회 2015년 1월호(통권 218호)

인터뷰라는 글은 혼자 쓸 수 없다. 일단 이야기를 나눌 대상이 필요하다. 인터뷰가 끝나고 원고를 쓸 때조차도 난 혼자가 아니다. 내가 쓰는 글이지만 정작 중요인물은 내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글을 쓰면서 나는 몇 번이고 인터뷰이의 입장이 되어 본다. ‘내가 그 사람이라면 어땠을까’, 묻고 또 묻는다.  

“제 인터뷰는 미화해서 써 주셔도 되는데(웃음). 사진은 포토샵 해주실 거죠? 안 해 주신다구요? 그럼 얼굴에 뭐라도 바르고 올 걸. 블랙헤드는 어쩔 거야.”

이번 인터뷰를 성공적으로 마치기 위해선 지금 내 앞에 앉아있는 이 앳된 얼굴의 소녀에게 빙의되어야 한다. 근데 말이다, 그게 감히, 가능한 일인가?

학교를 그만 두다

전서윤. 올해 나이 15세. 직업은 로드스쿨러Road-schooler. 

“초등학교는 졸업했어요. 그리고 중학교도 입학은 했었죠. 근데 다녀보니 너무 아닌 거예요. 예를 들면 0교시 수업 신청서를 받는데 말이 신청서지 사실은 모든 학생이 들어야 하는 거예요. 그것도 4만원씩 내고. 1시간이나 학교에 일찍 와서 강제로 해야 하는 건데, 신청서 형식으로 되어 있는 것도 이해가 안 갔어요. 그래서 담임선생님에게 신청서가 아니라 통지서를 나눠주어야 하는 거 아니냐고 따지니까 쌤이 당황하시면서 교사 생활하면서 너 같은 학생은 처음이라고 하시더군요.”

부모님과의 상의 끝에 학교를 그만 두기로 했다. 담임선생님과도 같은 문제로 상담을 했다. 상담시간은 5분. 그녀의 인생에서 ‘학교’를 정리하는 데 걸린 시간이다.

“아빠엄마도 홈스쿨링에 대해 관심이 많으셨어요. 주위에 딸을 홈스쿨링으로 가르친 분이 계셨는데 그분이 저희 부모님에게 홈스쿨링에 관해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많이 해주셨거든요. 그래서인지 평소에도 네가 원하지 않으면 학교 안 가도 된다고 말씀하셨고, 저 역시 학교를 다닐지 말지 고민이 많았죠.”

그래도 학교를 그만 둘 땐 나름의 계획이 있었을 텐데요?

“대안학교 중에 ‘로드스꼴라’라는 곳이 있어요. 여행과 다양한 프로젝트들을 연계하여 배우는 곳인데, 처음엔 그곳에 다닐 생각이었죠. 근데 나중에 알아보니까 비용이 너무 비싼 거예요. 그래서 못 갔어요. 올해 초엔 ‘공간민들레’라는 대안학교에 2달 정도 다녔어요. 나름 오래되고 전통이 있는 대안학교예요. 이건 제 생각인데, 그렇게 오래된 학교들은 자신만의 틀이 강한 것 같아요. 우리 학교에 오면 이것 이것은 꼭 배워야 한다는 식으로 말이죠. 또 마음에 들지 않았던 점은 그곳에 온 아이들이었어요. 대안학교에 오는 아이들 모두가 자신의 선택과 의지로 오는 게 아니에요. 제가 보기엔 대안학교나 대안교육에 별 관심도 없는 아이들, 아무 생각 없이 온 아이들이 너무 많았어요.”

아이의 대안이 아닌 부모의 대안이 된 대안교육에 대해 그녀는 하고픈 말이 많아 보였다.

“그런 아이들에겐 대안학교가 일반학교와 다르지 않아요. 교육의 내용이 무엇이든 자신이 고민하고 선택한 게 아니니까. 대안학교는 팀을 이루어서 하는 프로젝트들이 많은데 그런 아이들은 참여에 대한 열정도 별로 없고, 하라니까 어쩔 수 없이 하는 식이죠. 분위기가 그래서인지 제게도 대안학교가 예전 학교랑 다르게 느껴지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그만 뒀죠.”

어떤 ‘학교’라면 다니고 싶어질 것 같아요?

“학생들을 많이 존중해 주는 학교? 『우동 한 그릇』이란 책에서 우동 한 그릇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물었을 때 엉뚱하게 ‘칼로리’라고 대답하는 아이들도 있거든요. 그런 대답도 그 아이만의 창의성으로 보아줄 수 있는, 그런 아이들까지도 모두 보듬어 줄 수 있는 학교였으면 해요.”

부처고, 예수고, 간디인 분들 

현재 그녀는 ‘학교’라 이름 붙은 어느 곳에도 다니지 않는다. 집에서 부모에게 직접 교육을 받으며 검정고시 같은 걸 준비하는 홈스쿨러도 아니다. 그녀의 직업은 로드스쿨러, 말  그대로 길 위에서 세상과 온몸으로 부딪히며 배우는 중이다.  

부모님은 지금 어떤 생각을 하고 계실까요?

“별 생각은 없으신 것 같아요. 지금은 저에 대해 거의 해탈한 수준이세요(웃음). 저희 엄마아빠는 제가 뭘 하는지 알고 계시고 이런저런 조언도 해주시고 늘 저를 응원해주시거든요. 그런 의미에서 포기가 아니라 해탈이라고 표현한 거예요.” 

부모님이 그릇이 크신 분들 같다고 하자 자기 때문에 커지게 된 것 같다며 개구지게 웃는다.

“그런 부모님도 제가 14살 때 혼자 여행을 가겠다고 했을 때 무척 반대하셨어요. 위험하다고 너무 심하게 반대를 하셔서 하루는 제가 이렇게 문자메시지를 보냈어요. ‘엄마아빠도 이제 저한테서 독립하세요.’ 그러고선 휴대폰도 두고 혼자 여행을 갔죠. 그 이후로 부모님들이 완전히 해탈을 하신 것 같아요.”

그녀 나이 이제 열다섯. 내 큰딸과 불과 2살 차이다. 인터뷰를 하면서 번번이 그녀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는 것이 힘들었던 이유는 여기에 있다. 아무리 노력을 해도 내 머리와 가슴은 그녀가 아니라 그녀의 부모에게 향했다. 애끓는 부모의 마음을 이 어린 소녀는 대체 어디까지 짐작하고 있는 걸까?

“이제 엄마아빤 제게 어떤 학교에 가라, 어떤 공부를 해라 이런 말씀은 전혀 하지 않으세요. 생각이 없으신 건 아닐 텐데, 참고 말씀을 안 하시는 거겠죠. 아마도 부처고 예수고 간디인가 봐요.(웃음)”

어떻게 보면 아무 계획이 없는 상황에 놓여 있는 건데 그렇게 사는 것도 쉽지는 않잖아요?

“제 좌우명이 먼저 저지르고 후에 수습하자예요. 일단은 순간순간 내 감정에 따라 사는 거죠. 학교 그만 두고 3개월 동안은 진짜 그냥 놀았어요. 밥 먹고, 자고, 일어나면 만화책 보고 그랬죠. 그러다 ‘트래블러스 맵’이라 곳에서 운영하는 걷기 프로그램에 참가했어요. 6박 7일 동안 홍천에서 양양까지 걸어가는 건데 그때의 경험이 제 인생의 전환점 중 하나라고 생각해요. 좋은 사람들도 너무 많이 만났고, 내 또래의 아이들과 나눈 이야기들도 기억에 많이 남아요. 그 이후에 ‘지구별여행자’라는 프로그램에도 참가했는데 주말에는 ‘하자센터’에 나가 이런저런 것들 배우고 한 달에 한번 국내여행 가고 마지막엔 해외여행을 갔어요.”

‘학교’라는 곳에 다니지 않으니 그녀에겐 시험이 없다. 시험이 없으니 문제도, 정답도 없다. 그러므로 어느 누구도 그녀의 인생에 점수를 매길 수 없다. 매겨진 점수가 없으니 당연히 등수도 없고 등수를 알 수 없기에 경쟁은 성립하지 않는다. 부모라면 누구나 한번쯤 자신의 아이에게 물려주고 싶은 삶이 눈앞에 펼쳐지고 있었다.

참여사회 2015년 1월호(통권 218호)
참여사회 2015년 1월호(통권 218호)

첫사랑에 실패하다

참여연대는 어떻게 알게 되었어요?

“‘엠네스티’에서 자원활동을 하다 알게 된 언니가 참여연대를 소개해줬어요. 이곳에선 주로 시민참여팀에서 활동하며 아카데미에서 강의 자원활동도 하고 세월호와 관련한 일들도 함께 하고,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하는 프로그램에도 참여하고 그랬죠.”

지금도 일주일에 4-5일은 참여연대에서 자원활동을 하며 지낸다. 나 또한 참여연대에 들를 때마다 그녀를 보고 대학생 인턴인줄로만 알았다. 실제로 그녀가 어울리는 사람들은 거의 어른들이다.

“또래들과 어울릴 기회가 별로 없어요. 하도 어른들하고만 어울리다 보니 애늙은이 다 됐죠. 그래서인지 간혹 제 또래하고 만나도 말이 잘 안 통해요. 친구들이 아이돌그룹 ‘엑소’의 누가 좋다고 얘기할 때 저는 손석희 너무 잘 생겼다고, 이런 얘기 하니까. 근데 제가 겪고 있는 이 모든 게 어쩔 수 없는 거라고 생각해요. 어느 철학자가 인생은 실패에 감겨진 실이 풀려져 나오는 것과 같다고 그랬대요. 그렇게 생각하면 지금 제 인생은 애늙은이처럼 살게 정해진 거고, 어른들이 흔히 말하는 팔자인 거죠. 이렇게 생각하면 마음이 좀 편해요.”

학교가 끝났는지 카페 창 너머로 교복을 입은 아이들이 무리를 지어 지나간다. 그 속에 섞여 있지 않기에 때론 불안할 때도 있다고 그녀가 고백한다. 그때마다 그녀는 스스로에게 다짐처럼 말했다. 나는 지금 내게 정해진 길을 가고 있다고.

“친구 몇몇이랑 모임을 만들기도 했어요. 처음엔 세월호와 관련된 설문들을 조사해보려고 만났고, 지금은 함께 책을 읽어볼까, 대한민국의 헌법에 대해 공부해볼까 이런 얘기들이 오가고 있어요. 조금씩 발전하고 있는 것 같아요.” 

요즘 가장 많이 고민하는 건 뭐예요?

“‘계속 바위에 계란을 던져야 할까?’ 이거요. 참여연대에서 활동하면서 세월호 문제에 많이 매달렸는데 그게 마치 첫사랑을 한 느낌이라고 할까요? 첫사랑이란 게 그렇잖아요. 이런저런 계산하지 않고 행동하는 것. 제가 세월호 문제에 대해서 그랬던 거죠. 근데 결과적으로 이렇게 끝나고 나니까 감당하기가 너무 힘들어요. 첫사랑에 실패한 느낌이죠. 정부나 국가에 대해서 이런저런 생각도 많이 들고, 그래도 계속 던져야겠죠. 뭐, 그냥 하는 거죠. 지금은 딱히 할 일도 없는 백수니까.”

태어난 지 6개월 만에 제주도로 이사를 가고 내내 그곳에서 자란 그녀는 서울에 올라와 깜짝 놀랐다고 했다. 사람들의 얼굴이 모두 회색이어서. 그럼 제주도 사람들은 유채꽃을 닮아 모두 노란색이냐고 농담을 던졌지만, 눈 내리는 컴컴한 도시에서 차 한 잔을 앞에 놓고 마주했던 그녀는 온몸으로 도시의 무채색을 거부하고 있는 듯했다.

“제가 나온 초등학교 앞에 ‘자구리’라는 바다가 있어요. 제가 진짜 좋아하는 바다인데 관광객도 없고 조용하고 아름다운 곳이죠. 초등학교 다닐 때, 학교가 끝나면 친구들과 그곳으로 달려가서 바다 속으로 뛰어들곤 했어요. 지금도 제주도에 가면 찾곤 해요.”

아이들이 달음박질친다. 바다가 보이자 등에 걸린 가방은 어느새 갯바위 위로 내동댕이쳐진다. 아이들이 뛰어든 수면 위로 하얀 거품이 일고, 친구들의 얼굴이 바다 속에 잠겼다가 다시 떠오른다. 그 여름날의 기억을 떠올리며 그녀는 행복해했다. 그녀에게 ‘학교’에 대한 좋은 추억이 하나쯤은 있어 다행이다 싶었다. 그러다 나는 또 다시, 모든 학교 앞에 바다가 있었다면 세상은 지금과 조금은 다른 모습이었을 거라는 부질없는 생각에 빠져들었다.

꿈꾸는 소녀

“미래요? 20대 땐 참여연대 같은 시민단체나 아빠가 하시는 카페에서 일해보고 싶고, 더 나이 들면 많은 수익이 보장되는 직업을 가지고 거기서 나온 돈으로 내가 해보고 싶은 거 다 해보고도 싶고, 늙으면 농사를 짓거나 돼지를 키우면서 맘 편히 살아보고도 싶고. 세 개 다 해보고 싶어요. 하하하, 저 참 대책 없는 아이죠?”

소녀가 꿈을 꾼다. 소녀의 검디검은 눈동자 안으로 먼데 하늘이 꿈꾸며 알알이 들어와 박힌다. 그 눈동자를 향해 읽어주고 싶은 구절이 있어 책을 펼친다. 

삶과 무관한 앎이 삶을 구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삶과 무관할 때 앎은 단순한 지식과 정보에 머무르고, 공부는 일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그때 나는 고대로부터 교육자에게 내려오는 하나의 가르침이 갖는 위력을 실감했다. ‘살아온 대로 말하고, 말한 대로 살아가라.’ – 고병권, 『살아가겠다』중에서

인터뷰가 끝나자 그녀가 말했다. “글이 어떻게 나올지 진짜 궁금해요.” 그녀가 걷는 이 길은 어디로 이어질 것인가. 갇히지 않은 배움이 만들어낼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 이 어린 지구별 여행자의 여정이 나도 못내 궁금하다. 

호모아줌마데스

두 딸을 키우고 있는 애 엄마. 2007년 참여연대 회원 가입과 동시에 자원활동 시작. 아카데미 느티나무에서 ‘백인보’라는 코너에 비정규적으로 인터뷰 글을 쓰고 있음. 특기사항 : 합기도 빨간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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