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15년 01월 2015-01-05   7972

[통인] 우리는 얼마나 뜨겁게 묻고 있는가? – 채현국 효암학원 이사장

인터뷰 이태호
정리   편집팀
사진   박영록

참여사회 2015년 1월호(통권 218호)

‘노인들이 저 모양이란 걸 잘 봐두어라.’ 2014년 1월 한겨레신문 채현국 이사장 인터뷰는 커다란 반향을 일으켰다. 선생은 흥국탄광을 비롯해 24개나 되는 기업을 경영했던 거부였고, 부친이 독립운동가들을 도왔듯이 양심세력과 민주화인사를 은밀하게 지원했다. 그러나 유신이 선포된 뒤인 1973년, 모든 재산을 함께 일했던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고 지금은 신용 불량자 처지다. 드라마 같은 삶의 이력도 그렇지만, 한국 근현대사를 온몸으로 살아온 과정에서 얻은 통찰은 많은 이들의 가슴을 뒤흔들었다. 

채현국 이사장은 환경재단의 ‘2014 세상을 밝게 만든 사람들’에 선정된 것을 비롯해 여러 매체에서 ‘올해의 인물’로 꼽혔다. 전국 곳곳으로 강연을 다니고 수없이 많은 이들을 만나며 이 팔순의 어른은 어떤 생각을 하셨을까? 세월호 참사를 비롯해 굵직한 사건들이 많았던 2014년을 어떻게 마무리하고, 어떤 삶의 자세를 가지고 새로운 한 해를 살아가야 할지 묻고 싶었다.

모든 ‘정답’에는 독약이 묻어 있다

어느 인터뷰에서 ‘정답이라는 것은 없다’고 말씀하셨는데, 왜 그런 생각을 하게 되셨어요? 

사람의 진정한 생각은 질문에 있지 답에 있는 게 아니오. 물을 줄 모르는 의식에서는 답하고 상관없는 날조의 답밖에 안 나와. 모든 답은 날조야. 왜? 지배·통치 목적을 떠난 답은 있질 않으니까. 모든 답에는 반드시 독약이 묻어 있어요. 반란을 일으키는 걸 누가 답이라고 하겠소? 

그 말씀은 우리 사회에 제대로 질문 던지는 사람이 없다는 뜻인가요?

전체 민중의 질문 의식이 얼마나 박약해 있는지…. 지금 전쟁 지난 지가 얼마나 됐고, 해방 된 지가 얼마나 됐다고…. 내가 질문의식이 형편없다고 오버를 해야 할 지경이오. 썩은 것 좀 얻어먹었다고 늑대가 개만도 못해진 시대라는 거, 요만큼 나눠 먹는 거 가지고도 이렇게까지 병들었다는 걸 확실하게 느껴야 돼.  

질문이 없는 이유가 조금이라도 나눠먹게 된 상황과 연관되어 있다는 건가요?

그걸 분명하게 지적 안 할 수가 없죠. 아주 야박하게 나눠주는데도 불구하고 요것도 나눠먹는 게 돼 가지고…. 개 밥그릇에 썩은 국물 같은 것도 달라고 쳐 먹고 있는 시대라고 악담을 해야 돼요. 지금 이 시대가 반란이나 났지 절대 혁명이 나기는 어려운 처지요. 정책이 썩은 정도도 심하지만 민중이 한심한 정도도 심해요.

왜 그렇게 됐을까요? 신자유주의적인 시스템이 사람들을 촘촘하게 얽어매고 있어서가 아닐까요?   

신자유주의 정체를 내가 잘 모르겠는데, 애매한 용어는 쓰지 않는 게 좋아요. ‘촘촘하다’는 건 지금 내 문제니까 그러는 거지. 옛날부터 그래요. 엄살이야. 지금이 뭐가 제일 심해? 이쪽 질문의식이 깜도 안 된다고 보는데요? 요만하게라도 형형하지 못하니까. 내버려둬도 지 스스로 썩을 판인데 무슨 걱정이야. 계속 그 길로만 걸어왔거든. 기회 왔을 때마다 또 썩는 길로. 김영삼이 이겼을 때는 그만큼 거기에 머물고, 김대중·노무현 때도 마찬가지고…. 이명박 같은 놈이 나오게 만든 잘못이 이명박 찍은 사람들한테만 있는 게 아니오. 이전에 한 짓들에 의해서 이명박이 나오고, 박근혜가 또 나오는 거요.

참여사회 2015년 1월호(통권 218호)

그걸 뭐라고 표현할 수 있을까요? 자만? 탐욕?

러시아가 무너지고 동구가 무너지면서 전체 세계에 대한 안도, 게으름, 자만이 남한이 미국 식민지 쇼윈도라는 생각조차 잊어버리게 만든 거야. 우리가 얼마나 급변하는 사회(세계)에 있는데. 반토막인 채로, 쇼윈도인 채로…. 좀 더 정직하게 얘기하면 시민들 전부가 그것도 배부르답시고 배 두들기기에 바빴던 거예요. 

(국민 소득이) 삼만 불이고 월드컵도 하고, (선거)두 번 이겼다고 군사독재가 완전히 끝났다고 하고…. 탄핵에 걸리고도 겨우 끝낸 것 뿐 인데. 어떻게 탄핵 때 그들이 못 이겼는지가 이상한 거지. 겨우 됐다고 생각하지 않고 그것도 좋다고 기회를 전부 탕진한 거예요. 이건 자만이라고 말하기도 어처구니가 없는 거예요. 다시는 독재가 기어 나올 수 없다고 생각한 거지. 

2008년 세계경제위기 이후에 이기심이나 경쟁이 세상을 발전시킨다는 사고방식이 흔들리나 싶더니 요즘 실감하기에는 더 경쟁적이고 더 이해관계를 다투는 방향으로 가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과격하게 표현하면 사회의 범죄적 세력들이 하는 제일의 중요한 일은 뭐든지 혼란스럽고 흐릿하게 만드는 것이거든. 갈등도 흐릿하게 만들고, 모순도 흐릿하게 나타나게 만들고. 경쟁이나 무한 욕망같은 것들이 꼭 인간의 본성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흐릿하게 만들어서 마치 그것이 진정한 본성인 것처럼 보이게 하는 거지요. 생존경쟁만 있는 것이 아니라 군집군생도 있는데 생존경쟁만 근본이고 군집군생은 우연인 것처럼 느끼게 만들고…. 한번이라도 그런 생각해봤어요? 군집군생이 강하기 때문에 생존경쟁도 있는 거지, 생존경쟁 속에서 우연히 군집군생이 있는 게 아닌데. 

호도하지마! 어느 누구도 혼자서는 못해 

선생님이 어느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잖아요. “돈 버는 재미가 돈 쓰는 재미보다 많다.” 

더 많다 정도가 아니요. 돈 쓰는 재미는 재미 축에도 못 가. 돈 버는 재미가 얼마나 아편보다 강한지 확실히 알고 느끼고 해야 자본주의 본성을 깨닫는 데 조금 도움이 될까 말까. 인간이 가만히 있을 수가 없어요, 돈 버는 재미 앞에서. 권력을 아무도 놓지 못하는 것하고 똑같아요. 

선생님은 돈 버는 재미가 쓰는 재미보다 많다는 걸 아시면서도, 그걸 스스로 포기하셨잖아요? 아부를 하려는 게 아니라 포기하신건 대단한 결심인 것 같은데….

대단한 결심이라는 건 과장이에요. 무서웠어요. ‘내가 못 견디는구나!’ 위험을 확실하게 느꼈기 때문에 내가 살려고 한 거요. 정말 어렵죠. 아까워서 못하죠. 상의는 못 했어요. 친구들이 당장 난리가 날거 아니요. 마누라도 말리고 난리도 아니죠. 나는 그렇다 치고, 나와 한패인 사람들은 전부 뭐라고 할 텐데. 하지만 다행히 그 사람들이 함께 해준 거죠. 절대로 혼자 못해. 내가 인터뷰나 대담이나 글을 안 하는 이유도 그건 건데, 함께 했다는 사실이 죽어요, 아무리 내가 강조를 해도. 

인생 살면서 제일 어려웠다고 느낀 순간은 언제인가요?

늘 현재가 힘들어요. 유신헌법 나왔을 때는 힘들었죠. 말하길 좋아하는데, 그 말을 못해요. 그래서 (사업을 정리할) 결심을 한 거요. 이제 돈으로 할 수 있는 시기는 지나간다. 독재반대하려고 돈 벌기를 한다고 하면 보안법 위반이라는 것 모르시죠? 정당한 정권에 반대하기 위해서 돈을 번다, 이건 완전히 보안법 위반이에요. 

지금 자리도 나만큼 뼈져리게 못 느끼고 있는 거요. 노무현 정부도 그걸 못 느껴서 보안법을 안 고친 거예요. 탄핵 됐을 때 폐지도 심지어 가능했는데, (폐지는 못했을 지라도) 고칠 수 있는 것도 안했거든. 그래서 질문의식이 모자라다는 거예요. 우리 사회 전체가. 노무현 집권한 그 사람들조차도 얼마나 거저먹었으면 질문의식이 없나. 노력안하고 거저먹어서 그 꼴이야. 더 탄압이 심했으면 그랬을 리가 없죠. 솜방망이가 쇠방망이보다 무서운 걸 몰라요. 

시민운동인 척 하는 출세주의

다른 사람의 불행이 있어야 먹고사는 사람들, 가령 정치인들을 장의사적인 인생이라고 하셨어요. 그 얘기를 들었을 때, 참여연대도 (사회적) 갈등을 가지고 빌붙어서 먹고 살고 있는 건 아닌가 생각했거든요.

당연히 그런 생각 해야지. 많은 사람이 (다른 방법으로) 출세하기 힘드니까 여기 붙는 거지. 자기변명하고 합리화하고 사는 놈을 우리가 얼마나 많이 봤어요? 권력에 붙어먹은 놈들뿐만 아니라 얼마나 많은 출세주의가 반대로 시민운동인 척해서…. 안 그러면 노무현 정권이 갖는 그런 게으름이 어디서 나타나요? 내가 이길 당시 너희가 잘해서 이겼다고 착각하지 마라, 절망적이어서 그런 것 아니냐, 너희들이 이겼다고 생각하면 망한다고 그랬는데 말을 안 들어요. 

그러면 반대로 ‘산파적인’ 인간형은 어떤 걸까요?

우리가 장의사적인 인간은 알기 어려워요. 하도 위장도 잘하고 숨기기도 잘하니까. 하지만 산파적인 인간은 꽤 확실하잖아요. 지금 (프란치스코) 교황 같은 사람. 예전에 (아르헨티나에 있을 때) 무슨 거래를 했든 타협을 했든 그런 사람들은 산파적인 사람이죠. 그렇게 얼버무리고 추기경 하는 거 같아도 김수환 정도면 산파적으로 산거죠. 만델라, 호지명, 체 게바라도 산파적으로 산 사람이죠. 죽은 사람, 다친 사람, 고문당한 사람도 많겠지만 인류사적으로 봤을 때 산파적인거지. 권력이 반드시 장의사적인 게 아니에요. 인간인 체 하고 정치에 달려드는 파리 떼 같은 버러지들이 장의사적인 부류인거지. 그런 걸 나한테 물으면 안 돼. 스스로 생각해야지. 

프란치스코 교황 얘기를 하시니 세월호 얘기를 안 할 수가 없는데요….

‘이제는 정말 유야무야 살지 말자’, 우리가 어떻게 해서든지 죽은 생명들의 삶을 우리가 살아주자는 게 세월호 사태를 보면서 든 마음인데, 그걸 불행한 사람 이용해먹는 세력이라고 말해도 때려죽이는 사람도 없고, 무서워서 그 말 못하도록 하는 세력도 없고…. 얼마나 만만하게 보면 그래요? 

그런데, 세월호 가족들에게 잊지 말자 그러면 안 돼. 당신들은 잊으시오. 어떻게 사오, 그래가지고. 우리가 잊지 않겠소. 당신들은 당신들의 삶을 사시오. 이래야 말이 되는 거지. 산 사람은 살아야지. 산 사람이 죽은 사람하고 같이 못사오. 살 수가 없어요. 우리에게는 그들의 죽음이지만 당신들에게는 당신 자식의 죽음이야. 처지가 달라. 삭발하는 선량한 사람들, 행진하는 선량한 사람들, 밥 굶고 고생하는 사람들은 그 수밖에 없어. 딴 수가 없어서 그러고 있는 거야. 근데 그래가지고서는 질문의식만 흐려져. 정말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해서, 물을 걸 물어야지요. 

참여사회 2015년 1월호(통권 218호)
오늘 하루라도 참여연대가 해야 할 일이 뭐냐고 묻는다면, 우리가 얼마나 게으른지 사실을 똑바로 보자, 거기서부터 시작하자. 그렇다고 자학하지는 말고. 자학만하면 안 돼. 얼마나 소중한 사람들인데. 자기 합리화 하려는 의도가 있어서 자학부터 해버려요. 왜 자학하겠소? 게으를 권리를 쥐려고 자학하지.

자학도 게으름이다

세월호를 겪으면서, 시민운동이나 인권운동이 반정립에 너무 익숙한 거 아닌가 생각했습니다. 묻는 것보다 정답에 치중하고 있는 거 아닌가? 무엇이 정의로운가를 묻기보다 이참에 저들의 본질을 드러내고 공격해야 한다는 생각이 앞선다거나….

오늘 하루라도 참여연대가 해야 할 일이 뭐냐고 묻는다면, 우리가 얼마나 게으른지 사실을 똑바로 보자, 거기서부터 시작하자. 그렇다고 자학하지는 말고. 자학만하면 안 돼. 얼마나 소중한 사람들인데. 자기 합리화 하려는 의도가 있어서 자학부터 해버려요. 왜 자학하겠소? 게으를 권리를 쥐려고 자학하지. 

그러니까 나는 최고 악질하고도 잘 지내요. 제발 의견 다르다고 원수지지 말자. 특히 정치적 견해 다르다고 원수지지 말자. 나도 원수지고 싶은 마음이 생기지만, 그 사람은 이미 원수지고 있는데 내가 미쳤다고 알려줘? 그 사람에게 어긋지기 위해서라도, 나는 원수 안지겠다는 거지. 이건 아주 간특한 말이오. 선량한 말이 아니라.

싫은 사람이 싫은 건 인지상정이잖아요?

왜 그런 썩은 사람 앞에서 순진하게 나가요? 그것도 게으름이야. 속여야지, 왜 원수졌다고 알려줘요? 정말 원수졌다면 속여야지. 원수한테 경고를 해? 이적행위 아니오? 근데 꼭 우리는 이적행위를 하거든. 너무 각박하지도 말고, 그 각박함이 사실은 게으르기 위한 수단이에요. 자기한테 너무 엄격한 거. 결국은 자기 보호의 자동장치가 작동하게 만들어서 게으르게 뒤로 숨으려고. 

어떻게 보면 근본적이고 과격한 질문을 던지고 계신데, 만나시는 분들은 굉장히 다양한 것 같아요. 보수적인 분들과도 넓게 교류하시고…. 그 분들과 무언가 교류하거나 공유할 수 있는 게 있다고 믿으시는 거예요?

늘 인생 자체가 두루뭉술이에요. 그래서 질문만 있지 답이 없는 게 기본이라는 거죠. 우리가 아는 모든 앎, 지식들은 권력이나 돈이나 힘을 가진 인간들이 바라는 조건이나 바람이 우리에게 전달된 것이지, 그들이 원치 않는 것, 부정하는 것은 절대 우리에게 전달되지 않아요. 석가모니든 예수든 모하메트든 장자든 노자든 공자든…. 이 모든 위대한 사람들을 이용해먹은 현실 권력들, 현실의 부유함들이 원하는 것만이 우리에게 전달되는 것이지. 그게 아닌 걸 단 한 개라도 말해보세요. 우리가 아는 게 한 파편이라도 있는가. 그 다양한 권력, 그 다양한 위대함이 엉망으로 뒤엉켜 있는 것밖에. 

마르크스? 그 자도 (권력에 의해 각색된) ‘위대한 사람’의 대열에 있을 뿐이야. 내가 위대한 사람이 아닌데, 왜 그대로 살아야 돼요? 내가 예수가 아닌데 왜 예수의 가치(권력에 의해 각색된 가치)대로 살아야 돼? 이런 생각 한 번도 자유롭게 못해. 이게 사람이야. 이런 상태라는 걸 아무도 인정도 안 해. 인정이라도 하면 내가 이렇게 말도 안 해요. 한 사람도 나처럼 표현하는 걸 한 번도 못 봤어.

예. 저도 처음 봤어요. (웃음)

내년이 해방 70년이면서 분단 70년인데, 질문이 무뎌지거나 질문이 없는 것조차 잊어버리게 만드는 영역이 북한문제나 분단문제인 것 같아요. 예를 들어 북한에 대해서 사람들이 삼대 세습하는 나라, 망한 나라라고 생각하니까 남북관계에서 진지하게 고려해야 할 것조차 냉소적으로 되는 것 같아요. 

(김일성이)독립운동을 했건 말건 자기 혼자 한 게 아니야. 원조 받아서 좀 먹고 살게 됐다고 오만 떨고 박정희 같은 놈이랑 비밀 회담을 해서 당헌을 바꿔 먹고, (자식)새끼들 권력자나 만들고…. 그게 왕조나 할 짓이지 현대인이 할 짓이요? 그런데, 욕을 하려면 어떻게 살아야 돼? 쓰레기라고 욕할 수 있을 만큼 (잘) 살아야 돼요. 

지금 우리가 남 욕할 때인가? 

만약에 그렇게 안 살았으면 어떻게 되요?

그렇게 안 산 사람들? 자기가 먼저 (잘) 살고 봐야지요. 욕이 먼저야? 사는 건 안 살면서 욕만 하면 되나요? 각성된 사람들조차도 욕 할 만큼 (잘) 살지 않아. 살기를 그렇게 안 살고 욕만 하면 결국 군사독재 앞잡이로 욕하는 사람밖에 안 되지요. 꽤나 욕할 만큼 사는 백낙청이도 그래서 욕을 못해. 그런데 그걸 종북주의자라고 하고…. 지금 우리가 욕할 때가 아니야. 우리가 정말 욕할 수 있는 사람으로 살아야 할 때라는 거요.

그래서 정작 남한 중심으로 통일이 되더라도, (북을) 포용하기 어려울 것 같아요.

남한 중심으로 절대로 통일 안돼요. 그런 바람 자체가 모든 문제를 흐리는 개수작인데, 이렇게 말하면 종북, 좌빨, 오만소리가 나오는 거지(보안법이 시퍼렇게 살아 있는데)! 정전협정 서명할 때 우리는 거길 가지 않았어요. 권리가 없어. 당사자가 아니야. 미국만 당사자야. 이런 논리가 가능하거든. 정전의 당사자가 아니야. 

이런 허점들을 우리가 한두 가지  가지고 있는 거요? 김정은 봐요. 자기 경호실장, 고모부를 죽이는 딱한 놈이요. 독재 권력이 딱하게 되어 있는 게 뻔할 뻔자니까 다들 상대를 안 하는 거야. 지금은 시대가 묘해서 또 몰라. 별의 별 말이 안 되는 것도 힘을 쓰고, 죽은 송장도 의식 없이 살고 있는 시대니까 저런 엉터리 권력도 몇 년이 갈지 알 수 없죠. 4대로 물릴지도 모르는 판이야. 쉽게 추론하는 게 가능하지 않은 시대예요. 사회주의, 공산주의, 자유시장 경제 이론이 그대로 가고 있잖아, 말도 안 되는 (북한)경제가. 

죽은 송장 얘기는 삼성 말씀하신 거예요? 도대체 이건희 회장은 살아있나, 죽었나? (웃음)

탈세할거 다 해먹고 죽이면 되니까. 그러면 나눠줄 거 다 나눠주니까 그러지 않겠소? 

우리가 제대로 살아야 저들(북한)에게 세게 얘기할 수 있다고 하셨지만, 어쨌든 저들보다 우리가 상대적으로 낫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문제가 없을 때는 말이 돼요. 하지만 우리는 동족상잔을 한 나라요. 동족상잔 앞에서 그런 얘기는 용납이 안 되지. 저쪽이 아무리 글렀더라도 동족상잔을 이미 했어. 그쪽만 했어? 이쪽도 했죠. 양쪽이 다 동족상잔을 하고서는 겁이 나서 동족상잔이라고 말도 못하고 6.25라고 애매모호한 표현밖에 못해요. 문제는 또 동족상잔 할 수 있다는 거예요. 지금 이래가지고는 다시 얼마든지 동족상잔 할 수 있어요. 그런 일이 절대 있을 수 없다고 누구도 선언 안 해요.

동족상잔을 반성하지 않는 나라

실제 천안함 사건 났을 때 중앙일보 칼럼에 ‘3일이면 충분하다’는 글이 실린 적이 있어요. 남북간 무장충돌이 일어나도 3일만 참으면 우리 주도로 통일할 수 있다는 논조였어요.

동족상잔에 대한 의식이 전혀 없는 거요. 그래서 내가 정말 질문다운 질문을 하고 있는지부터 문제 삼자는 거예요. 우리가 과연 동족상잔을 정말 할 수 없다고 어디까지 각성되어 있느냐? 얼버무릴 일이 아니에요. 동족상잔 절대 하지 말자는 게 남한에서도 합의 안 되고 있잖아.

갈수록 더 안 되는 것 같아요. 도리어 동족상잔을 감수하더라도 우리 중심으로 통일해야 한다는 논리가 점점 더 심해지는 것 같아요. 흡수통일론도 그렇고…. 국가 계획으로도 만들잖아요. 작전계획 5029 이런 게 유사시 남한군이 유사시 북한에 들어갈 수 있다는 거 아닙니까?

문제가 해결되는 방향으로 갈 거라는 기대를 어떻게 그렇게 쉽게 가지세요? 동족상잔조차 걱정하지 않는 이런 정신바탕에서는 우연이 아니고서는 생각할 꺼리가 성립을 안 해요. 

국제협약에서 남한군이 북한에 갈 수 없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호도하는 거예요. 정전회담 당사자가 아니기 때문에 저쪽의 혼란을 불법적으로 이용할 수 있을 뿐, 절대 불가능해. 중국에서 가만 안 있죠. 중국은 먼저 진주할 권리가 있어요. 정전협정 당사자니까. 미국도 간섭할 수 있고요. 남한은 간섭할 수 없다는 것조차도 언론이 호도하고 있어. 그런 뜻에서라도 정전사태는 빨리 평화회담이나 다른 걸로 바꿔야 해요. 법적 상호관계에서 우리가 배제되어 있는 걸 빨리 끝내야 돼. 

송구스러운 질문입니다만, 형님이 정전협정 직후 스스로 목숨을 끊으셨잖아요?  그 당시에 이쪽 편 저쪽 편 서게 됐지만 그 상황 자체가 괴로우셨던 분들이 많으셨던 것 같아요. 형님도 그런 분들 중 하나가 아닌가 싶고…. 

“이제는 영구 분단이다. 너는 나이가 적으니까 어머니 할머니 모시고 잘 살아야 돼” 그러더라고. 그런가보다 했지. 아무래도 죽으러 가는 거 아닌가 의심이 들긴 했었죠. 

최근에 교과서 논쟁에서 뉴라이트 교과서가 논란이 많이 됐었는데요….

뉴라이트가 저렇게 설치도록 놔둔 게 이쪽 인간들도 별로 다르지 않다는 증거예요. 그러니까 전시작전통제권 같은 게 저렇게 유야무야 연기 돼도 아무 반응이 없지. 

국사를 넘어서는 동아시아사, 한반도를 넘어서는 동아시아적 정체성 같은 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그것도 형형하게 다뤄져야 해요. 천안문 사태 이후에 중국이 국가주의적인 수법을 써먹는 걸로 바뀐 거 알고 계십니까? 당 강령으로 해먹다가 안 되니까 국가주의로 일사분란하게 바꿔서 해먹고 있죠. 국가주의라는 말만 안 쓰지.

그래서 미국을 대신할 리더십이라는 생각이 안 들어요. 그게 걱정스럽기도 하고.

중국은 월남전 끝나자마자 쳐들어간 국가인데. 미국만큼 신중하지 못하니까 저 정도로 국가주의 하죠. 미국이 너무 일본을 끌어안지 말고 놔두면 (중국이) 더 방만해져서 인도랑 소련이랑 (싸움이) 붙어서 빨리 망할텐데 말이오. 오바마가 어리석은 정도가, 중국이 먼저 깨질 줄 알았는데 미국이 먼저 깨질 모양이야. 

이것도 저것도 가능하다고 생각해야죠. 동남아? 당연히 깊이 있게 생각해야지. 우리는 중국의 주변 국가와 진실로 문화, 정치, 외교적으로 친밀하게 살지 않을 도리가 없어요. 북경에서 너무 지근거리야. 몽골보다 우리가 더 가까워요. 정신 똑똑히 차려도 겨우 살까 말까요. 

참여사회 2015년 1월호(통권 218호)
우리가 아는 역사적 지식과 경험을 포함해서, 나는 젊은이들이 잡스처럼 자신들의 방법을 찾아내길 기대하는 거지. 생명의 기적처럼, 낙천적인 생각을 하는 거지. 이 위기에서도 찾아낼 겁니다. 위기를 위기로 알거고. 해결은 안 돼도 해결되어야 한다는 의식을 가지고 질문을 던지고요.

선량한 마음이 있거든 악마처럼 지켜라

화제를 바꿔보죠. 평소에 학교에 내려가 계시잖아요. 요즘 아이들이나 젊은 친구들보면 어떤 생각이 드세요?

핵가족 속에서 크고 있기 때문에 부모관계가 조금이라도 튼튼하지 못하면 아이들이 망하거든. 자녀들이 얼마나 불행해지기 쉬운가가 다 드러났잖아. 그 인기 높은 스티브 잡스도 부모한테 버려진 거에 대한 증오가 있잖아요. 젊은이들의 위기라는 게 취약한 핵가족 부부관계에서 나온다고. 옆에 아기가 울면 다른 아이가 울어요. 인간의 공감능력이 (태어난 지) 두어 달 되면 이미 일어나요. 관계에서 공감이 학습되는 면이 있는 거예요. 지금의 젊은이들은 자본주의 세계에서 핵가족 제도로 인해 이전에는 경험하지 못한, 확실히 위험한 상황에 있어요. 

선생님 말씀을 듣다보니까, 저희가 희망을 찾기 힘들 것 같은데요? (웃음)

내 말 듣고 전혀 희망이 없다고 말하니까 아주 반가워요. 나는 아주 비관적이다가도 희망적이오. 너희들이 가진 희망, 전부 허구다. 희망 따위를 희망이라고 해야지. 허망한 걸 희망이라고 한다고. 우리가 말도 안 되는 걸 희망이라고 알고 있어. 하지만 적어도 태양 폭발은 그렇게 쉽게 오지 않고 혹성이 지구를 때리는 것도 오백년에 한번 정도의 확률이라지만, 공룡이 죽은 이후에 안 때렸잖아요. 그것도 위기조작하려는 것이고, 증거는 육천만 년에 한 번이야. 협박하지마. 위기 조작하지마. 위기조작은 언제든 있는 거요. 장의사적인 거니까. 

생명 자체가 기적이라는 말 밖에 못해요. 태어났으니 기적이고 생명 자체가 기적이지, 그 이상 기적 있어봤자 별로 신통할 것도 없어요. 자꾸 기적이라고 생각하게 만드니까 악습에 길들여져서 그렇지. 태어난 것만 해도 얼마나 기적인데…. 이만하면 희망적인 거 아니에요?

기분 나빠 하실 수도 있겠지만, 선생님 말씀 듣다보니까, 중국의 작가 노신(루쉰)이 생각나요. 역사와 시대에 사사건건 절망하면서도 줄곧 희망을 얘기하는 것도 그렇고. 존재 자체가 곧 희망이라고 말씀하시는 것도 그렇고….

노신만 해도 위대한 작가거든. 집에서 개하고 같이 살던 사슴은 왜 개한테 물려 죽는지도 모른다. 그가 얼마나 사실을 정확하게 봤는지. “이제 겨우 수렵시대가 큰 막을 내리려 한다”, 내렸다가 아니야. 꽤 정확한 표현이에요. 노신도 정확하게 말하는 사람이거든. 어느 틈엔가 내가 그런 사람들한테 영향 받고 자랐으니까요. 근데 그런 말이 늘 작동해야 되요. 

그런데, 노신이 자신은 어쩌면 젊은 친구들을 깨우침으로써 ‘취하醉蝦, 살아 있는 새우를 술에 넣어 먹는 요리’에 들어가는 생새우와 같은 고통만 주는 것인지도 모른다고 한탄한 적이 있습니다. 현실을 있는 그대로 얘기하려던 것이었지만, 결국엔 죽어갈 젊은이들에게 각성한 채로 고통스럽게 죽게 만들고 있다는…. 늘 질문을 던지고, 모르는 것조차 모르고 있다고 깨어 있으려고 하는 게 괴롭지 않으세요?

어떨 때는 괴로울 때가 분명히 있습니다. 술 먹는 거 봐도. 왜 술 먹겠어요? 깨어 있는 게 귀찮으니까 술 먹는 거 아니에요? 분명 괴로운 거 틀림없어요. 근데 그냥 괴롭다고 엄살 못 하겠는 게, 괴로운 것조차 생생히 살아있는 기력의 증거인데. 안 괴롭다가 아니고. 걱정할거 하나도 없어. 우리가 아는 역사적 지식과 경험을 포함해서, 나는 젊은이들이 잡스처럼 자신들의 방법을 찾아내길 기대하는 거지. 생명의 기적처럼, 낙천적인 생각을 하는 거지. 이 위기에서도 찾아낼 겁니다. 위기를 위기로 알거고. 해결은 안 돼도 해결되어야 한다는 의식을 가지고 질문을 던지고요.

효암 학원에서 학생들에게 권장하는 거 있으세요?

우리는 동아리가 굉장히 많아요. 그들 스스로 할 수 있게. 신문이나 잡지도 그들이 만들게 하고, 축제도 유치하든 엉망이든 그들이 나서서 하거든. 어떻게든지 스스로, 남들에게 보여주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그래서 우리 선생님들이 노동 강도가 심해요. 내가 미안해서 보약이라도 사주고 돈이라도 더 주면서 하면 좋은데 그러질 못하니까. 저런 헌신이 언제까지 가능할까? 학생이나 학부모는 헌신인 줄도 몰라. 그냥 좋은 선생들이다 정도지. 선생님들한테 훈화를 안 하는 것도 자발성이 없어 질까봐 안하는 겁니다. 선량한 마음이 있거든 악마처럼 지켜야 돼요.

참여연대도 좋고, 시민단체에  마지막으로 한 말씀 해주신다면?

당신들의 그 희생과 고통 앞에서 할 말은 없지만, 나는 너희와 친구하는 건 조심하겠다. 사이는 좋게 지내도 절대 친구는 되지 않겠다. 다만, 내가 얼마 전에 작고한 성유보를 보면서 느낀 건 있어요. 언제든 (여당에) 불려가서 또 해먹겠지 생각했는데, 웬만한 단체를 다 맡아주잖아요. 참 놀라운 것은 요청하는 사람의 뻔한 의도가 다 보여도 들어줘. 뻔하다고 지레짐작하거나 안 듣질 않아. 이 사람이 정말 지킬 걸 지키는 사람이구나! 언제든지 봐도 늘 그렇게 실천을 해요. 젊은이들이 그런 사람을 알아보고 따르는 걸 보면 우리 사회가 희망적이에요.  

김수영은 <어느 날 고궁을 나오면서>라는 시에서 ‘왜 나는 조그마한 일에만 분개하는가’ 라고 괴로워했다. 왕궁의 음탕 대신에 50원짜리 갈비가 기름덩어리만 나왔다고 분개하고, 20원을 받으러 세 번씩 네 번씩 찾아오는 야경꾼들만 증오하고 있는 자신의 옹졸함을 비판했다.

동족상잔을 한 나라에서, 독재 정권이 장기 집권 한 나라에서, 조금 먹고 살만 해 졌다고 우리는 얼마나 무감각해 졌는가. 그 사이 국가 기관이 선거에 개입해도, 정당이 강제 해산되어도 속수무책인 상황이 되었다. 

질문이 없는데 답이 있을 리 없다. 선생 말대로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답이 아니라, 그동안 묻지 않은 질문들을 쏟아내는 것인지 모른다. “뭔가를 생각할 때는 정말 내가 옳게 묻고 있는가, 물을 걸 물어야 할 만큼 묻고 있는가, 얼마나 뜨겁게 묻고 있는가” 따져봐야 한다는 이야기만이 이 날 얻은 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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