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15년 01월 2015-01-05   776

[특집] 사법부에 정의를 기대할 수 있을까?

오동석 아주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2014년 12월 19일 헌법재판소는 통합진보당에 대해 강제해산 결정을 내렸다. 보수단체는 통합진보당 당원들을 모두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고소하며 열광했다. 8 대 1의 압도적인 찬성에 대한 경악과 민주주의와 헌법의 사망에 대한 분노도 있었다. 재판관 구성의 다양성을 보장해야 한다는 의견에서부터 폐지론까지 방책이 쏟아진다. 그런데 헌법은 살아있었을까? 사법부에 헌법이 있었나? 인권과 민주주의의 편에서 헌법과 법률을 해석할 수 있는 헌재 재판관 또는 대법관을 임명할 수 있을까? 법관 자격이 없는 사람에까지 문호를 개방하면, 사법부는 달라질 수 있을까?

헌재는 1990년 4월 2일 국가보안법의 찬양·고무죄를 합헌이라 옹호하면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칼날을 장착했다. 1960년 헌법의 민주적 기본질서와 독일 헌법의 ‘자유롭고 민주적인 기본질서’를 왜곡했다. 난데없이 ‘사유재산과 시장경제’를 끼워 넣었다. 그 연금술은 2004년 10월 21일 관습헌법을 동원하여 ‘서울이 대한민국의 수도’라는 헌법규정을 만들어내는 경지에 이르렀다.

대법원도 마찬가지다. 2004년 8월 30일 “국가의 안보에는 한 치의 허술함이나 안이한 판단을 허용할 수 없다”면서 국가보안법 폐지론에 찬물을 끼얹었다. 그 결과 사상·표현의 자유는 국가안보의 장막 앞에서는 눈곱만치의 틈조차 열리지 않았다. 국정원의 댓글을 문제 삼는 게 이상했을 터이다. 헌법연금술 또한 헌재 못지않았다. 2002년 2월 26일 재산권, 경제적 자유와 창의, 직업선택의 자유를 끌어들여 기업의 경영권을 헌법적 지위로 끌어올렸다. 노동조합의 파업권을 경영권의 부속물로 취급했다. 재산권 행사의 공공복리적합의무, 경제민주화 조항, 노동권과 노동3권은 그들의 안중에 없었다. 2014년 11월 13일 원심을 깨면서까지 정리해고를 정당화한 쌍용자동차 판결은 10여 년 전 헌법왜곡의 똬리를 틀고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이 선정한 최악의 판결에 올랐다.

정치의 사법화를 비판한다. 그러나 사법은 인권과 민주주의를 무시하는 ‘헌법의 밖’으로 뛰쳐나간 지 오래였다. ‘사법의 반反헌법화’를 알아채지 못하고 허망한 기대를 걸었던 것이 잘못은 아니었을까? 사법부의 존폐 또는 구성에 머무르는 처방은 또 다른 착각이 아닐까? 헌법을 고칠 힘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헌법을 고쳐 헌재 재판관과 대법관을 모두 국회에서 선출하면 우리의 삶은 좀 나아질까?

우리가 믿고 있는 헌법은 어디에 있을까? 1987년 민주화 이후 만들어진 헌법이든,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1948년 헌법으로 되돌아가든 헌법조문이 우리에게 힘을 줄 수 있을까? 내 생각에 헌법은 한편으로 사상·표현의 자유, 다른 한편으로 노동자의 권리를 사수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이 곧 주권자다. 그 양 날개를 단 ‘존엄한 사람들’이 ‘우리’다. 바로 ‘그 헌법’만이 법관이든 국회의원이든 대통령이든 방울을 달 권리와 힘이 있다.

특집 미리보는 2015

1. 헌법개정, 추진될 수 있나?
2. 사법부에 정의를 기대할 수 있을까?
3. 광복 70돌, 남북관계 진전 있을까?
4. 공무원연금 개혁, 어떻게 될까?
5. 보육대란, 현실화되나?
6. 원폭 70년, 비핵에 진전 있을까?
7. MB 국정조사, 가능할까?
8. 장기화되는 전월세 대란, 해결 전망은?
9. 우리의 일자리는 안녕할 수 있을까?
10. 세월호 진상규명, 제대로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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