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복지위원회 칼럼(sw) 2014-12-31   1503

[우리아이들, 보육 안녕하십니까?④] 유아들 ‘인권’ 잊고 사는 대한민국

영어유치원 다니는 6세 준수의 고달픈 하루

[우리아이들, 보육 안녕하십니까?④] 유아들 ‘인권’ 잊고 사는 대한민국

 

최근 누리과정 예산 편성 관련 논란이 많았습니다. 결국 여야가 우회지원하기로 합의하면서 일단락됐지만, 여전히 보육재정에 대한 사회적 관심은 뜨겁습니다. ‘보육재정파탄공동대책위원회’는 현재 우리나라의 보육 현실을 진단해 보고 실효성 있는 보육시스템 대안을 살펴보기 위해 몇 차례에 걸쳐 ‘우리아이들, 보육은 안녕하십니까?’라는 타이틀로 글을 게재합니다.

 

[사례①] 영어유치원에 다니는 준수(가명)는 오전 8시에 잠에서 깼다. 눈을 비비고 일어나서는 20분간 영어문장을 외운다. 그 뒤 아침을 먹고 영어유치원으로 향한다. 준수는 9시부터 오후 3시 15분까지 유치원에서 생활한다(토요일에는 오전 10시부터 오후 1시까지 영재연구원에 가서 공부한다). 유치원을 마치고 나면 피아노학원에서 피아노를 배운다(수/금은 중국어 개인교습과 축구교실). 집에 와서 5시까지 유치원 숙제를 한 후, 6시까지 영어 스피킹 과외를 한다(목요일에는 수학학원, 금요일에는 축구교실). 오후 6시부터 7시까지 저녁을 먹고 나면, 8시 30분까지 엄마와 함께 영어 동화책을 읽는다. 그렇게 하고 나면 자기 전까지 자유 시간이다. 그리고 10시에 잠이 든다.

 

[사례②] 오전 8시, 어린이집에 등원한 지원이(가명)는 선생님 옆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다, 친구들이 도착하자 소꿉놀이를 시작했다. 10시, 둘러앉아 간식을 먹으며 어제나 아침의 일들을 이야기하다, 나들이를 동네뒷산으로 가기로 결정했다. 오전 10시 45분 어린이집을 출발하여 15분 정도 걸리는 산에 도착해 풀꽃이나 곤충을 찾기도 하고, 나무에 얽힌 이야기도 듣다, 진달래화전에 쓸 진달래꽃을 따고, 전에 친구들과 봐뒀던 통나무를 옮겨 놀이공간을 만들기도 했다. 낮 12시 어린이집으로 돌아와 점심을 먹는데, 배식담당이라 그릇을 옮기고 식사준비를 했다. 점심 후 자유놀이시간은 길지 않지만 집중력 있게 노는 시간이다. 1시부터 3시까지 동화책을 들으며 잠을 잤다. 낮잠 후 간식을 먹고는 다시 자유놀이. 지난주부터 스스로 기획한 공연을 위해 친구들과 춤을 연습한다. 선생님과 친구 동생들을 초청하려고 티켓도 직접 만들었다. 오후 6시 하루를 정리하고 친구들이 한둘 집으로 돌아갔고, 남은 친구들과 함께 지원이는 선생님과 만다라를 그렸다. 7시 엄마와 함께 집으로 돌아왔다.

 

만 4세(우리나이로 6세) 두 아이의 하루 생활은 매우 대조적이다. ‘사례1’은 ‘영어유치원에 다니는 아이의 생활’이라는 인터넷에서 떠도는 글을 재구성한 것이다(법적으로 영어유치원은 없으며 이는 영어학원이다). 사례2는 공동육아어린이집에 다니는 아이의 생활이다. 시간단위로 쪼개져 학습으로 채워진 생활과 자유로운 놀이와 생활교육으로 구성된 생활의 차이가 보인다. 대부분의 유치원과 어린이집은 이 둘의 중간 어디쯤에 위치하고 있다.

 

매일 반복되는 다른 생활이 만 2세부터 만 5세까지 계속 쌓여왔을 것이다. 이 두 아이의 삶이 어떠할지 궁금해진다. 이 두 아이는 지금 행복할까? 그리고 앞으로도 행복할까? 인권이 행복할 수 있기 위한 기초적인 조건을 의미한다면, 이 두 아이의 삶을 인권이란 관점에서 보면 어떨까?

 

아이의 인권, 생존뿐 아니라 삶을 얘기할 때

포털 사이트에서 ‘아동인권’을 검색하면 한정된 주제의 뉴스만 찾을 수 있다. 주로 아동청소년 인권에 대한 것으로 학교폭력 문제들을 다룬다. 이외에 영유아 인권 관련기사는 베이비박스 즉, 태어나자마자 부모에게서 버림받는 아이들, 그 아이들의 해외 입양, 그리고 어린이집에서 일어나는 아이들에 대한 폭행 등을 언급한다.

 

그러나 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나오는 건 입양대책이나 어린이집 CCTV 설치 의무를 법으로 정하자는 것 정도이다. 그것만이 영유아 인권 사항이라면 한국 영유아들의 인권은 충분히 실현되고 있다고 할 수 있을까? 아니다.

 

한국에서 ‘인권’은 누군가로부터의 ‘폭력’을 막는 것에 집중되어 있었다. 눈에 보이는 학교폭력, 성폭력 정도이다. 최근 들어 생활 속에서 구조화되어 일어나는 제도적 폭력, 관습적 폭력, 일상 속의 폭력과 인권침해가 언급되기 시작했다. 인권문제가 일상적인 삶의 구조를 살펴보는 데까지 나아간 것이다.

 

56년 전인 1959년 유엔 제14차 총회에서 채택된 ‘아동인권선언’은 인권을 폭넓게 바라보고 있다. 아동인권선언은 아이들은 인종 종교 태생 또는 성별로 인한 차별을 받지 않아야 하며, 신체적·정신적·도덕적·영적·사회적으로 발달하기 위한 기회, 이름과 국적을 가질 권리, 적절한 영양, 주거, 의료 등의 혜택을 누릴 권리, 심신장애 어린이는 특별한 치료와 교육 및 보살핌을 받을 권리, 애정과 도덕적 물질적 보장이 있는 환경 아래서 양육될 권리, 의무교육을 받을 권리, 놀이와 여가를 가질 권리, 전쟁이나 재난으로부터 제일 먼저 보호받고 구조될 권리, 학대․방임․착취로부터 보호받을 권리, 인간 상호간 우정·평화·형제애 정신으로 양육될 권리가 있다고 강조한다.

 

이에 비추어본다면 한국 영유아들의 인권상황은 어떨까? 아직 사각지역에서 버려지는 아이들과 제도 속에 포함되지 못하는 아이들에 대한 특별한 조치는 제대로 이루어질 필요가 있다. 그렇지만 그것은 ‘생존’의 수준이다. 이제는 생존이 아닌 삶을 이야기할 때이다. 특히 일상적인 생활이 아이들이 몸과 정신과 마음을 자유롭게 성장시킬 수 있는가를 살펴보아야 한다.

 

만약 하루 종일 학습이란 이름으로 토막이 난 교과과정을 배우는 어린 아이들이 있다면, 그 아이들은 쉬고 놀 권리와 신체적 정신적 도덕적 영적 사회적으로 발달할 권리, 학대 방임되지 않을 권리, 우정과 평화와 형제애로 키워질 수 있는 권리를 심각하게 침해당하고 있는 것이다.

 

3~5세 아동 중 사교육비 지출 유아, 89.8%

이는 당연한 듯 벌어지고 있는 어린이집과 유치원의 특별활동, 사교육문제와 연결되어 있다. 육아정책연구소는 2012년에 이어 2013년 1824명의 3~5세 아동을 대상으로 유아사교육 실태를 조사했다. 그 결과 사교육비를 지출하는 유아는 89.8%로 우리나라 유아의 10명 중 9명에 해당했다. 사교육 중 유치원과 어린이집 방과 후 특성화프로그램이나 특별활동이 70.3%로 가장 높았으며, 그중 영어가 차지하는 비중이 압도적이었다.

 

이런 상황을 방관하거나 부추기는 것이 영유아보육법이다. 2013년 개정된 영유아보육법은 특별활동을 할 수 있는 대상을 36개월에서 24개월로 낮췄으며, 외국어를 허용하였다. 대다수 특별활동 시간은 낮 12시부터 오후 6시까지였는데, 지난 12월 4일에 진행된 ‘어린이집 특별활동 실태 및 대안 토론회’에 참여했던 교사들은 “1명의 교사가 20명의 특별활동을 위해서 준비하고 아이들을 챙기고 정리하느라 1시간 정도가 무의미하게 지나가 버린다”고 말했다. 교사들은 또 “아이들이 몰입하고 스스로 무언가를 할 수 없다”는 문제를 제기하였다.

 

특히 반일제 학원에서 유아대상 영어학원이 차지하는 비중은 39.6%로 가장 높았다. 이는 유치원과 어린이집 등의 영어교습 확대에도 영향을 주는 실정이다. 이는 고스란히 부모의 교육비 부담으로 어이지게 된다. 악순환이다. 사교육이나 특별활동이 강화되면서 아이들에게 제대로 된 교육과 돌봄을 주자는 교보육과정은 뒷전으로 밀려났다. 부모들은 사교육을 시키지 않으면 아이들이 이 사회에서 제대로 살아가지 못하리란 두려움에 점령당했다.

 

이제 우리는 영유아의 보육과 교육에서 가장 먼저 지켜져야 할 것이 무엇인가를 질문해야 한다. 지켜져야 할 것이 지켜지지 않을 때 어떤 상황이 발생하는가? 아이들은 부모들의 경쟁 심리와 보육시설의 시장논리에 휘말려 자신들이 당연하게 누려야할 권리를 침해받는다.

 

그 결과는 어떻게 나타날까? 초·중·고등학교를 거쳐 대학을 간다고 상황은 좋아지지 않는다. 취업을 위해서 목숨 거는 사회,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경쟁에서 이겨야한다고만 생각하는 세상 속에서 아이들은 진정한 인간다움과 삶을 경험할 기회를 완전히 박탈당할 것이다.

 

OECD 국가 중 아이들의 행복지수가 가장 낮은 나라, 아동 청소년 자살률 1위의 나라, 공부하는 시간은 제일 긴데 학업능력은 떨어지는 학생들, 외우기는 것은 잘하지만 창조적인 발상은 잘 못하는 아이들, 사람들과 어울리고 서로를 살리는 놀이를 할 줄 모르는 어른들. 이런 생활과 사고방식이 영유아기 아이들 속에 깊게 침윤되어 있다.

 

내 아이가 진정으로 행복하길 원한다면…

이를 개선하기 위한 노력이 없는 것은 아니다. 유니세프(UNICEF)는 올 한해 아이들의 놀이에 방점을 두어 활동을 전개했다. 2013년에 이어 2014년에도 서울시는 어린이집 특별활동을 줄여가자는 정책을 취하고 있다. 최근 8개의 보육 시민단체들이 연대하여 어린이집 특별활동 실태를 살피고 대안을 찾는 토론회를 열고 서울시에 대책을 촉구하였다.

 

모국어로 자기표현도 잘 하지 못하는 아이들에게 하루 종일 영어를 하라고 하고, 어른도 감당하기 힘든 팍팍한 시간표 생활을 강요하며 아이의 생활리듬을 깨버리는 것, 자유롭게 놀며 탐색하는 시간을 주지 않는 것은 아이들이 인간으로서 살아가면 누려야할 권리를 침해하는 어른들의 폭력이다.

 

아이들의 행복을 화두로 올려놓자. 아이들의 활짝 웃는 모습을 떠올려보자. 영유아기 행복한 순간들을 경험하고 온몸으로 놀고 활짝 웃어본 아이들은 행복한 삶을 살아갈 유전자(DNA)를 갖게 된다. 어른들은 아이들이 웃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줄 책임과 의무가 있다. 아이들은 마음속으로 이렇게 외친다.

 

“마음껏 신나게 놀고 나면 행복해요. 놀 곳과 놀 시간을 주세요. 포근하게 안아주면 행복해요. 많이많이 안아주세요. 하늘을 보고 꽃을 보면 행복해요. 자연과 더불어 살게 해주세요. 맛있는 걸 먹을 때 행복해요. 좋은 먹을거리를 주세요. 책을 읽어줄 때 행복해요. 재미있는 책을 읽어주세요. 어른들이 기다려 줄 때 행복해요. 잘 못하고 느려도 기다려주세요. 제 말을 귀담아 들어줄 때 행복해요. 제 이야기를 들어주세요. 제 힘으로 무엇을 했을 때 행복해요. 저 혼자 할 수 있게 해주세요. 어른들이 행복해야 우리도 행복해요. 모두 함께 행복하게 해주세요.”(<어린이 행복선언>)

 

진정으로 내 아이가 행복하길 원한다면, 지금 아이들이 살아가는 일상의 생활을 인권의 눈으로 함께 볼 것을 권한다.

 

이경란 | 공동육아와공동체교육 사무총장

 

* 본 기고문은 2014. 12. 31 오마이뉴스에 게재된 글입니다 원문글보러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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