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평 292] ‘2015년 한국’이 ‘1951년 미국’과 같다?: 내란 선동의 인정과 표현의 자유 ②

 

[시민정치시평 292]

 

‘2015년 한국’이 ‘1951년 미국’과 같다?

: 내란 선동의 인정과 표현의 자유 ②

 

박주민 변호사, 참여연대 공익법센터

 

대법원은 이석기 전 의원 등의 내란 선동 혐의에 대해 최종적으로 유죄를 확정하였다. 이번 판결로 표현의 자유가 심히 위축될 수도 있다는 우려를 하면서도 위와 같은 판단을 할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이번 대법원의 판단이 옳은지에 대해 재판 과정에서 제출된 증거에 대한 판단, 내란 선동의 법리에 대한 판단 등 여러 측면에서 문제 제기가 되고 있다. 

 

오늘 여기서는 표현의 자유의 보장이라는 측면에서 대법원의 판단이 과연 옳다고 할 수 있는가를 살피도록 하겠다. 이를 위해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기 위한 사법적 판단의 기준을 우리나라보다 훨씬 오랜 기간 동안 벼려왔던 미국의 사례와 비교를 해보려고 한다.(☞지난회 보기 : 이석기 내란 선동 유죄라는 대법원, 정말 맞을까)

 

반성과 함께 찾아온 표현의 자유에 대한 두터운 보호 

 

시간이 흘러 매카시즘에 대한 반성적 고려가 자리 잡아 갈 무렵 브란덴부르크(Brandenburg) 사건에서는 선동 기준(incitement test)에 명백하고 임박한 위험 원리를 결합하기에 이른다. 오하이오 주의 신디컬리즘 형법(Criminal Syndicalism Statue)은 산업 또는 정치 개혁을 이룩하기 위한 수단으로 폭력이나 불법적인 테러를 주장하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었다. 미 연방대법원은 이 법은 위헌이라고 선언했다. 구체적으로 “자유로운 언론과 출판에 대한 헌법 규정은 무력 사용이나 위법 행위에 대한 주창(advocacy)이 즉각적인(imminent) 불법행위를 선동(inciting)하거나 야기(producing)하려는데 초점이 맞춰져 있고(directed) 또 그런 행동을 선동 내지 조장할 가능성이 있는(is likely to) 경우 이외에는 국가가 금지하지 못하도록 보장하고 있다.”고 밝혔다. Brandenburg 사건에서 제시된 이 기준을 정리해보면 1)발언자가 한 말이 단순히 추상적인 이론에 대한 주창인지 아니면 구체적인 불법행위를 선동하는 것인지를 구별해서 전자에 속한다면 이를 보호하고(선동 기준(incitement test)]), 2)후자에 속하는 경우 선동으로 야기되는 해악이 임박해야 처벌한다는 것이다(명백하고 임박한 위험(clear and present danger)원리). 

 

Brandenburg 판결은 이후 1975년 헤스(Hess) 사건에서 다시 인용되면서 명백하고 임박한 위험 원리의 현재 모습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Hess 사건은 반전시위 도중에 발생한 사건이다. 100여명의 학생들이 인디애나 대학 인근 도로에서 반전시위 도중 경찰이 다가오자 인도 쪽으로 물러섰는데, Hess라는 학생이 “우리가 이 망할 놈의 거리를 언젠가 다시 차지할 것이다.”라고 외치자 경찰이 그를 소요관련법 위반으로 기소한 것이었다. 인디애나 주 대법원은 그의 발언이 주변에 있는 군중들에게 장래에 불법행위를 하도록 선동하려는 의도로 행해졌고, 또 그럴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로 유죄를 선고했다. 그러나 미 연방대법원은 “그의 발언은 좋게 보면(앞으로는 몰라도) 지금은 온건하게 행동하라는 조언이고, 나쁘게 보더라도 불확실한 장래의 불법 행동을 주창한 것에 불과하다.”고 판단했다. 

 

Brandenburg 판결에서 제시된 기준이 적용된 또 다른 사례는 바로 전미유색인지위향상협회(NAACP) 사건이다. 이 사건은 흑인 인권단체인 NAACP가 미시시피주의 클레이본 카운티에서 백인 상점 불매운동을 벌이면서 시작되었다. NAACP 지역 간부로 불매운동을 주도한 찰스 애버스(Charles Evers)는 수백 명의 군중 앞에서 불매운동에 동참하지 않으면 목을 분질러 놓겠다고 연설했다. 미 연방대법원은 찰스 애버스의 격한 연설도 Brandenburg 판결에서 제시된 기준에 의하면 보호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이때 연방대법원이 중시한 점이 실제로 폭력 행위가 일어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실제로 폭력이 발생했다면 그 발언의 문제를 따져보아야겠지만 실제 폭력이 발생하지 않았기에 아예 따져 볼 필요도 없다는 입장이었다. 

 

이런 흐름을 정리해보면 미 연방대법원은 1)Hess 사건에서 보듯이 당장 발생하는 불법을 선동하는 것이 아니면 보호된다고 보고, 2)NAACP 사건에서 보듯이 실제로 폭력 행위가 발생하지 않으면 보호된다고 보며, 3)만약 불법행위가 실제로 발생하면 해당 의사 표현이 그 불법행위를 야기했는지에 대한 인과관계를 따져서 판단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위와 같은 미 연방대법원의 최근의 판단기준은 표현 행위 그 자체에는 처벌할 필요성이 인정되는 해악이 있기 어렵다는 자유주의 철학에 부합한다. 또한 사상의 자유, 표현의 자유를 중시하여 될 수 있으면 보장하라는 미국의 헌법적 가치를 잘 실현하고 있다고도 보인다. 더 나아가 민주주의의 ‘국민의 자기 지배’라는 이상에도 적극적으로 봉사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정치적 비판과 표현이 자유로울수록 국민이 스스로 지배한다는 이상에 다가설 수 있기 때문이다. 

 

내란 선동 유죄를 인정한 대법원 판결의 문제점 

 

대법원 2015. 1. 22. 선고 2014도10978 판결(이하 “내란 선동 판결”)에서 특정한 표현 행위를 내란 선동으로 처벌하는 이유에 대해 그 해악의 중대성을 꼽고 있다. 그리고 ‘추상적인 원리에 대한 주장을 금지하려는 것이 아니고, 불법행위를 조장하려고 하는 주장만을 금지하려는 것’이라고 하면서도 피선동인들이 내란 선동에 의해 실제로 내란을 결의할 것도 필요 없고, 심지어 피선동자들이 내란의 실행행위로 나아갈 개연성도 필요 없다고 하였다. 

 

이러한 대법원의 태도는 예상되는 해악의 중대성을 강조하고, 실제 해악의 발생가능성의 크기나 실제 발생 여부를 크게 고려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홈즈 대법관의 초기 명백하고 임박한 위험 원리를 수정한 데니스(Dennis) 사건에서의 판단기준과 유사하다. 만약 표현 행위가 불확실한 장래의 불법 행동을 주창한 것에 불과할 경우 보호되어야 한다는 Hess 사건에서의 기준을 적용한다면 대법원도 인정했듯이 “전쟁이 발발할 경우 행동 요령이나 지침에 대한 주장과 논의가 발언 내용의 주”였던 이번 사건은 형사처벌 되기 어려울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 폭력 행위가 발생하지 않으면 표현 행위를 금지할 수 없다는 NAACP 사건에서의 기준을 적용해도 실제로 폭력 행위가 발생하지 않았다는 측면에서 이 사건의 표현 행위를 처벌할 수 없을 것이다.

 

미 연방대법원의 최근 기준과 달리 대법원이 이런 태도를 취하는 것은 대법원이 갖고 있는 현재 상황에 대한 인식에 기인한다. 대법원은 내란 선동 판결에서 “북한은 2013. 5. 7. 서해 5개 섬을 불바다로 만들 것이라고 위협하고, 2013. 5. 18.부터 같은 달 20.까지 동해안 일대에 단거리 발사체 5기를 발사하기도 하는 등 전쟁 위기가 해소되었다고는 볼 수 없는 상황”이라고 하는 등 우리나라가 전쟁 위기가 지속되는 매우 비상한 상황에 처해있다고 봤다. 사상의 자유시장이 작동할 수 없는 상황이라는 의미이다. 

 

이러한 대법원의 태도는 이전에도 수없이 반복된 것이자 헌법재판소 역시 견지하고 있는 태도이다. “남북 간에 일찍이 전쟁이 있었고 아직도 휴전상태에서 남북이 막강한 군사력으로 대치하며 긴장상태가 계속되고 있는”(헌법재판소 1990.4.2. 선고 89헌가113), “(남북합의서의 서명과 그 발효로서) 바로 북한이 대남적화혁명노선을 명백히 포기하였다고 볼 수도 없으며 지금도 이 노선에 따른 각종 도발이 여전히 계속되는”, “아직도 북한이 막강한 군사력으로 우리와 대치하면서 우리 사회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전복할 것을 포기하였다는 명백한 징후는 보이지 아니하고 있어 우리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위협이 되고 있음이 분명한 상황”이라는 것이다(대법원 2008.4.17. 선고 2003도758). 이러한 헌법재판소와 대법원의 태도는 북한의 존재 자체를 ‘임박한(현존하는) 위험’으로 간주하는 것이다. 현존하는 위험이 이미 있기에 ‘명백한’의 요건만 충족하면 바로 해당 표현 행위는 처벌 대상이 되는 것이다. 다시 말해, 표현 행위가 명백한 위험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으면 -정부에 대한 강한, 과격한 비판- 보호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대법원의 인식과 판단에는 여러 가지 문제가 있다. 우선 사상의 자유, 표현의 자유를 중시하는 우리 헌법의 자유주의적 기조와 충돌한다. ‘북한이라는 현존하는 위험’을 늘 상정하기에 사상의 자유시장이 제대로 작동한다는 것은 오히려 예외적 상황으로 판단되어 늘상 표현 행위에 대한 제한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국민의 자기 지배라는 민주주의의 기본원칙 역시 훼손시킬 수 있다. 정부에 대해 비판하는 언사의 수위가 매우 한정적일 수밖에 없게 되어 국민의 정부에 대한 비판은 매우 협소하게 이루어질 수밖에 없게 된다.

 

무엇보다 과연 우리나라의 현재 상황이 Dennis 사건에 대한 미 연방대법원의 판단이 있던 1951년 당시 미국보다 훨씬 더 위험하고 혼란스런 상황인지 당연히 의문스러울 수밖에 없다. 당시 미국은 반공주의 정서가 극에 달했었다. 소련은 핵실험을 하고, 중국은 공산당이 본토를 확실히 장악했으며, 우리나라에서는 전쟁이 진행 중이었다. 사상의 자유시장을 둘러싼 상황이 거의 최악으로 치닫고 있어서 위스콘신 주 출신의 상원의원 매카시는 이러한 상황을 이용해 반공산당 공작 정치를 대대적으로 벌이기도 하였다. 우리는 매카시즘에 대한 미국사회의 처절한 반성을 익히 알고 있다. 필자는 개인적으로 현재 우리나라 상황은 1950년대 미국과 다르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대법원의 내란 선동 판결에서의 태도는 현실과 괴리를 가지고 있다는 판단이 든다.

 

그리고 앞으로 우리나라가 지향해야 할 길인 평화통일을 생각하면 그 괴리는 매우 크다. 만약 우리의 현재 상황이 1950년대 매카시즘이 상상했던 아니 미국 국민들로 하여금 상상하도록 하려던 상황이 아니라면 당연히 현재 대법원이 가지고 있는 표현의 자유에 대한 제한기준은 달라져야 한다. 우리 헌법 가치체계상 용인될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 헌법이 내정하고 있는 자유주의 그리고 민주주의의 제대로 된 실현을 위해서, 더 나아가 평화통일이라는 우리 사회가 추구해야 하는 목표의 달성을 위해서 내란 선동 판결이 기존의 판단 기준을 고수하는 마지막 판결이기를 바란다. 

 

참여사회연구소는 2011년 10월 13일부터 ‘시민정치시평’이란 제목으로 <프레시안> 에 칼럼을 연재하고 있습니다. 참여사회연구소는 1996년 “시민사회 현장이 우리의 연구실입니다”라는 기치를 내걸고 출범한 참여연대 부설 연구소입니다. 지난 15년 동안 참여민주사회의 비전과 모델, 전략을 진지하게 모색해 온 참여사회연구소는 한국 사회의 현안과 쟁점을 다룬 칼럼을 통해 보다 많은 시민들과 만나고자 합니다. 참여사회연구소의 시민정치는 우리가 속한 공동체에 주체적으로 참여하고, 책임지는 정치를 말합니다. 시민정치가 이루어지는 곳은 우리 삶의 결이 담긴 모든 곳이며, 공동체의 운명에 관한 진지한 숙의와 실천이 이루어지는 모든 곳입니다. ‘시민정치시평’은 그 모든 곳에서 울려 퍼지는 혹은 솟아 움트는 목소리를 담아 소통하고 공론을 하는 마당이 될 것입니다. 많은 독자들의 성원을 기대합니다.
같은 내용이 프레시안에도 게시됩니다. http://www.pressian.com/ ‘시민정치시평’ 검색  


* 본 내용은 참여연대의 공식 입장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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