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복지동향 2015 2015-02-10   643

[기획주제3] 불평등 속의 청년의 삶, 변화는 가능한가? : 블랙기업은 어떻게 청년의 삶을 파괴하는가

불평등 속의 청년의 삶, 변화는 가능한가? : 블랙기업은 어떻게 청년의 삶을 파괴하는가

김민수 l 청년유니온 위원장

 

블랙기업의 탄생

지난 1월 초, 유력 소셜커머스 업체 위메프에서 수습직원 11명을 채용하여 정직원에 준하는 높은 강도의 업무를 시키다가 정당한 사유 없이 일괄로 해고하여, 소위 ‘갑질해고’ 논란의 장본인이 되었다. 여론이 악화되자 급한 사과를 남기며 해고를 취소하였지만, 위메프는 사회적 지탄의 늪에 빠져 심각한 타격을 입었다.

 

이 사건을 바라보며 나는 오늘날 우리 사회의 기업이 청년을 바라보는 보편적 태도와 입장을 읽는다. 청년을 착취하는 나쁜 사장 몇 사람이 있는 것이 아니라, 평범한 보통의 사람들에게 ‘나쁜 사람이 되어도 좋다’는 신호를 보내는 우리 사회의 구조를 본다.

 

2000년대 이후 전면적인 노동유연화 정책으로 인해 급격한 구조적 변화를 겪은 한국의 노동시장은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양극화됨. 비정규직의 확대와 ‘고용 없는 성장’의 지속으로 양질의 일자리가 줄어들면서 노동생애에 있어 최초취업 시기에 해당하는 청년노동의 양적 ․ 질적 수준이 심각하게 악화되기 시작한다.

 

기업들은 불확실성의 위험을 관리하고 비용을 절감하며 이윤을 창출하기 위해, 기존의 정규직 채용을 비정규직으로 대체한다. 비정규직은 날이 갈수록 진화하여, 청년들이 경험하게 되는 생애 첫 노동의 형태는 계약직, 인턴, 수습, 견습, 현장실습, 간접고용, 비전형고용, 시간제 등 더욱 불안정하고 열악한 방향으로 분화하고 있다.

 

2014년 1월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청년 5명 중 1명(21.2%)이 1년 이하 계약직으로 직장생활 시작하고 있다. 2013년 학교를 졸업하거나 중퇴한 뒤 첫 일자리가 1년 이하 계약직이었던 청년(만 15~29세)은 82만 9000명으로, 전년(80만 2000명) 대비 3.4%, 2008년(50만 5000명) 대비 무려 64.2% 증가함. 1년 이하 계약직으로 첫 직장 생활을 시작한 청년의 비율은 2008년 11.2%에서 2013년 21.2%로 두 배에 가까운 수치로 급증하였다.

 

청년들에게 ‘정규직 전환’이라는 희망고문에 불과한 기간제 고용의 경우, 보호 법안이어야 할「기간제 및 단시간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이 사실상 2년 이내의 계약직 사용을 합법화해줄 뿐 기간제 노동자의 사용사유를 제한하지 않음으로 인해서 심각한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작년에 문제가 되었던 중소기업중앙회의 사례와 같이, 기업들이 ‘임시직 활용 방안’이란 명목으로 기간제 고용을 조직적 ․ 의도적으로 악용하면서 이른바 ‘쪼개기 계약’과 같은 부당한 고용형태가 노동자들에게 강요되고 있다. 지난 9월 해고통보 후 스스로 삶을 마감한 20대 계약직 청년노동자의 사례가 보여주듯 신규채용 인원에 해당하는 청년들이 가장 큰 피해를 입고 있다.

 

ILO(국제노동기구)는 권고 제166호에 “기간제 근로계약은 합리적 사유가 있는 경우에 한정하고, 그러한 사유가 없을 경우에는 기간을 정하지 않는 것으로 간주”한다고 규정하고 있지만, 우리사회의 현실은 상시적 ․ 계속적 업무에도 사용자들이 아무런 제한 없이 계약직을 채용할 수 있다. 규제되지 않는 노동시장의 ‘편리한’ 환경이 기업들로 하여금 청년의 노동을 마음껏 ‘일회용’으로 전락시키고, 청년의 삶을 파괴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는 ‘비정규직 고용보호’를 목표로 기간제 노동자의 사용을 현행 2년에서 4년까지 연장하는 방안을 내놓았다. 비정규직 사용사유를 제한하지 않는 상태에서 기간만 늘리면 청년들이 겪는 희망고문의 고통의 기간만 더 늘어날 뿐이다.

 

같은 맥락에서 인턴이나 수습, 견습, 현장실습생과 같이 숙련과정을 시작하는 청년들을 대상으로 노동과 교육훈련의 경계에서 새로운 방식의 노동착취가 등장하고 있으나, 제도적으로 전혀 보호받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다. 최근 드러난 패션업계의 실상이 보여주듯, 관행적으로 도제식 권력관계가 이어져온 특정 직종별 노동시장들에서 청년들이 실질적으로 노무제공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교육을 받고 있다는 명분으로 노동관계법률의 적용을 피해가는 불법행위가 만연해 있다. 취업을 위해 작은 경력이라도 필요한 청년들의 절박함을 악용하는 것이다.

 

고용형태만으로는 포착되지 않는 청년노동의 구체적 현실은 더욱 열악하다. 기업들은 계획에도 없는 정규직 전환을 빌미로 계속적인 선별과 재선별의 과정, ‘취업 이후의 취업활동’을 청년들에게 강제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청년들은 취약한 지위로 인해 부당한 일을 당해도 문제제기할 수 없는 상황에 있다. 임시적 고용을 확대하는 노동유연화 전략의 다른 한편에서는 고용불안에 근거한 노동통제·강요·착취의 강화가 존재한다.  

 

뿐만 아니라 직장 내 성희롱 ․ 따돌림, 비인격적 대우와 모욕, 고용형태에 따른 차별, 휴가사용의 제한, ‘인간 자유이용권’에 다름없는 포괄임금산정제, 과도한 고객만족(CS)제도로 인한 극단의 감정노동 경험 등 청년노동의 구체적 현실은 절망스럽기만 하다.

 

극단적으로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들과 그것을 뒷받침하는 노동시장의 구조에 의해 청년들의 삶과 노동이 파괴당하고 있다. 모든 기업이 블랙기업은 아니겠지만, 모든 기업이 언제든 블랙기업이 될 수 있는 현실이다. 청년들이 겪고 있는 구체적인 노동경험에서부터 한국의 블랙기업을 규정하고 선정·고발하며, 이를 시작으로 노동시장에 대한 규제강화를 이끌어 내는 사회적 운동과 제도개선이 이루어져야 한다.

 

블랙기업은 더 나은 사회를 만들겠다는 의지의 표현

 

2000년대 이후 범람하고 있는 블랙기업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정책방향은 다양한 형태로 제시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좋은 정책방향이 수백, 수천 가지 나열되어도 이를 구현하기 위한 주체의 전략이 뒤따르지 않으면 공자님의 따뜻한 말씀에 지나지 않는다. 주체의 전략이라 함은 청년들이 겪고 있는 삶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현장의 치열한 고민과 문제를 겪고 있는 당사자들의 구체적 움직임에서 시작한다.

 

위의 정책방향의 구현과 관련하여, 청년유니온은 청년의 삶을 파괴하는 기업집단과의 싸움을 선포하며 <한국형 블랙기업 운동>을 전개 중이다. 블랙기업이라는 규정에 기초하여 노동시장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는 법·제도 개선 투쟁을 전개하는 한 편, 산별노동조합 등 조직노동과의 전략적 연계·협력 강화를 통해 블랙기업이 다수 서식하고 있는 산업에 대한 규제력을 확보한다는 구상이다.

 

블랙기업 운동의 핵심은 한국의 노동시장에서 피해를 입고 있는 청년 당사자가 자신의 삶을 짓누르고 있는 사회적 구조의 존재를 자각하고, 이에 스스로 맞설 수 있는 힘을 갖추는 것이다. 문제를 겪는 당사자가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 자신이 겪고 있는 고통을 ‘스스로의 무능력과 열심히 하지 않음’에 기인한다고 여긴다면 해결을 도모할 수 없기 때문이다.

 

관련하여 청년유니온은 블랙기업 운동을 추진하며 그 첫 번째 슬로건으로 “당신이 다니는 회사는 블랙기업입니까?”를 제시한다. 블랙기업이라는 키워드에 기초하여 자신이 겪고 있는 고통의 구조적 원인을 자각하는 것만으로도 문제의 당사자는 스스로의 삶을 지킬 수 있는 면역체계를 갖추게 된다. 또한 이 슬로건은 운동의 주체(청년유니온)가 특정 기업 몇 개를 블랙기업으로 규정하고 때리는 방식을 넘어, 노동시장에서 블랙기업의 문제를 보편적으로 경험하고 있는 청년 당사자들에게 질문을 던지고 이 의제를 효과적으로 확산시키기 위함이기도 하다.

 

블랙기업은 연구사업을 위한 개념 언어가 아니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운동의 언어이자, 의지의 표현이다. 일주일 중 단 하루라도 편하게 쉴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소박한 꿈을 가지며 치열하게 살아내는 청년에게 “당신의 잘못이 아니다. 당신은 최선을 다했다. 이제 그만 견뎌도 된다”는 희망의 메시지를 우리 사회가 발신하도록 만들어야 할 것이다.  하루하루 최선을 다한 이들에게는 더 나은 내일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는 우리 사회의 정의를 바로 세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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