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복지동향 2015 2015-03-10   1018

[기획주제1] 복지국가의 발전을 위한 재정정책

복지국가의 발전을 위한 재정정책

강병구 ㅣ 참여연대 조세재정개혁센터 소장

 

최근 우리 경제는 성장잠재력이 둔화되면서 소위 ‘고용 없는 성장’에 이어 ‘임금 없는 성장’으로 진입하고 있다. 1971~79년의 기간에 연평균 경제성장률은 10.3%를 기록했지만, 2008~13년의 기간에는 2.9%로 하락했고, 2030년대에는 잠재성장률이 2% 이하로 떨어질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부가가치 생산액 10억원 당 취업자수는 1970년 156명에서 2012년 22명으로 꾸준히 하락했다. 최근에는 실질임금 증가율이 생산성 증가율은 물론 물가상승률조차 따라가지 못하고 있으며, 국민소득에서 노동소득이 차지하는 비중도 지속적으로 낮아지고 있다. OECD 회원국 중 가장 높은 저임금노동자의 비중과 낮은 최저임금 수준도 노동소득분배율을 낮추는 요인이다.

 

더욱이 1990년대 중반을 기점으로 소득불평등이 심화되고 있다. 재벌 대기업으로의 경제력집중과 부의 불평등한 분배는 소득분배를 더욱 불평등하게 만들고, 계층 간 이동성을 제약하여 세대 간 불평등구조를 심화시키며, 자원의 효율적 배분마저 저해하고 있다. 노동소득분배율의 하락과 소득 및 부의 불평등한 분배는 가계소득과 소비를 위축시키는 반면, 증가된 기업소득은 생산적인 투자로 이어지지 못하여 내수부족과 저성장의 악순환을 초래하고 있다.

 

그야말로 시장에서 낙수효과를 전혀 기대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에 이 글에서는 우리나라 재정체계의 특징을 살펴본 후 분배와 성장의 선순환 체계를 구축할 수 있는 대안적 재정정책을 모색한다.

 

우리나라 재정체계의 특징

 

우리나라는 조세부담률과 재정지출이 모두 작아 전형적인 ‘저부담·저복지’ 상태를 보이고 있다. 2012년 국민부담률은 24.8%로 멕시코(19.5%)와 칠레(21.2%)에 이어 OECD 회원국 중 세 번째로 낮은 수준이고, 공공사회복지지출은 멕시코(7.9%)에 이어  두 번째로 낮다. 우리나라와 비슷한 소득 수준과 인구사회학적 특성을 갖는 국가들과 비교해도 우리의 재정규모는 평균 이하를 밑돌고 있으며, 재정의 재분배기능 또한 매우 취약하다. 2010년 조세 및 이전지출의 빈곤율 감소효과는 OECD 회원국 중 최하위이며, 소득불평등 완화효과는 칠레에 이어 두 번째로 낮은 수준이다. 더욱이 국가채무의 가파른 증가율과 공기업 채무를 고려할 경우 재정건전성이 양호하다고 할 수는 없다. 국가채무는 2007년 298.9조원에서 2013년 489.8조원으로 63.9% 증가했고, 같은 기간에 공공기관부채는 249.2조원에서 523.2조원으로 증가했다. 2013년 현재 국가채무와 공공기관부채의 합계는 1,013조원으로 GDP 대비 70.9%에 달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조세수입 구조를 보면 개인소득세, 소비세, 부동산보유세, 사회보장기여금의 비중이 낮은 반면 법인소득세와 금융자본거래세의 비중이 높다. 특히 OECD 회원국 평균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개인소득세와 고용주의 사회보장기여금은 복지재정을 취약하게 만드는 요인이기도 하다. 하지만 법인세수 비중이 높은 이유는 낮은 노동소득분배율, 재벌 대기업으로의 경제력 집중, 법인세율과 소득세율의 차이로 인한 법인의 선호 등으로 법인세 과세 대상이 크기 때문이지 개별 기업의 조세부담이 크기 때문은 아니다. OECD 회원국과 비교할 때 우리나라 기업이 부담하는 조세·사회보험료 부담은 매우 낮다.

 

더욱이 우리나라의 조세체계는 다양한 비과세감면제도와 지하경제로 인해 과세기반이 상당히 취약한 상태에 있다. 소득탈루율이 높은 자영업자와의 과세형평성을 고려하기 위해 근로소득공제를 도입하고, 저임금체제를 세제상 다양한 소득공제를 통해 지원하기 때문에 근로소득자의 과세자 비율이 낮다. 간이과세제도와 면세제도는 직접적으로 부가가치세의 과세 기반을 침식할 뿐만 아니라 거래 당사자의 매출액을 누락시켜 과세투명성을 약화시키고 있다. 투자와 고용을 유인하기 위해 법인세 공제·감면제도를 적용하고 있지만, 그 효과는 미미할 뿐 과세기반을 더욱 취약하게 만들고 있다. 그 결과 국세감면액은 지속적으로 증가하여 2013년 33.8조 원에 달하고 있다. 특히 세제 혜택이 고소득층과 고액자산가, 그리고 대기업에 집중되어 있기 때문에 과세공평성은 매우 취약한 상태에 있다.

 

한편 우리나라의 재정지출구조는 상대적으로 높은 국방비와 경제사업, 낮은 사회보호 관련 지출로 인해 공공자원의 배분 효율성과 재분배 기능이 취약하다. 재정지출이 토건 및 경제 사업에 과도하게 집중되고 사회 분야의 투자가 부진해 전반적으로 공공자원의 배분 효율성이 크게 낮은 상태에 있다. 분단체제로 인한 국방비의 과도한 지출이 타 부문의 재정지출 여력을 잠식해 복지국가의 발전을 더디게 하고 있으며, 세계 4위에 달하는 막대한 규모의 R&D 지출 또한 그 효율성이 크지 않은 것으로 평가된다. 이러한 불균형 상태의 재정지출 구조로 인해 공공부조와 사회보험의 사각지대가 크고 가족 및 아동에 대한 정부 지원은 미흡한 수준이다. 대표적인 공공부조인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는 재원부족으로 빈곤층을 충분히 보호하지 못하고 있으며, 저임금계층과 비정규직에서의 높은 사회보험 사각지대는 내수기반을 위축시키고 지속 가능한 경제성장을 위협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대안적 성장전략

 

경제성장률과 노동소득분배율이 동반 하락하는 ‘소득주도 경제체제’에서는 노동친화적 분배정책이 성장과 분배의 선순환을 위해서 바람직하다. <표 1>에서 보듯이 노동소득분배율과 경제성장률이 플러스의 상관관계를 가질 경우 그 경제는 ‘소득주도 경제체제(wage-led economic regime)’로 분류되며, 마이너스의 상관관계를 가질 경우에는 ‘이윤주도 경제체제(profit-led economic regime)’로 분류된다. 만약 소득주도 경제체제에서 자본친화적 분배정책을 취할 경우 경제는 안정성을 유지하지 못하고 끊임없이 외부의 성장 동인에 의존하게 되며, 그 결과 경제구조는 부채주도 또는 수출주도로 고착화된다.

 

우리 경제는 이른바 ‘소득주도 경제체제’에 놓여있기 때문에 이윤주도 성장전략과 자본친화적 분배정책은 복지국가의 발전뿐만 아니라 지속가능한 경제성장을 위해서도 바람직하지 않다. 따라서 미래 복지국가의 발전을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노동소득분배율을 높이고 소득불평등을 개선해야 한다. 이러한 전제하에 재정정책은 경제의 성장잠재력을 확충하면서 성장의 결실이 사회구성원들에게 골고루 배분될 수 있도록 기능해야 한다. 최근 OECD에서 주목하고 있는 포용적 성장(inclusive growth) 또한 모든 계층에게 기회와 성장의 결실을 공정하게 분배하는 성장을 강조하고 있다.

 

성장과 분배의 관계에 대해서는 상반된 주장이 존재하지만, 불평등한 분배구조가 교육 기회를 제약해 인적 자본의 효율적 배분을 저해하고, 세대 간 계층 유동성을 제약하며, 사회적 갈등을 초래해 궁극적으로 경제성장에 부정적인 영향을 준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많은 논자들이 동의하고 있다. 특히 경제의 대외의존도가 높고 가계부채의 규모가 큰 우리나라에서 소득과 부의 공평한 분배는 내수기반의 확충과 자원의 효율적 배분을 통해 고용 증대는 물론 경제의 안정적 성장과 재정건전성의 유지를 위한 전제 조건이 된다.

 

재정체계의 개편과 정치개혁

 

신자유주의적 재정정책이 낙수효과에 의존하면서 감세정책과 ‘작은 정부’를 지향한다면, 대안적 재정정책은 공평과세 및 조세정의의 실현과 촘촘한 사회안전망의 구축을 통해 분배와 성장의 선순환을 모색한다. 이러한 대안적 재정정책은 기존의 이윤주도 성장전략을 소득주도 성장전략으로 바꾸는 성장 패러다임의 전환에 조응하는 것이다.

 

먼저 소득세와 법인세의 실효세율을 높이고 유가증권의 양도 차익에 대해서도 전면 과세해 조세체계의 공평성을 높여야 한다. 박근혜 정부는 소득세와 소비세 중심의 증세를 추진했다. 이제는 재벌 대기업에 대한 법인세를 높이고, 자본소득에 대한 과세를 강화해야 한다. 현행 소득세법상 유가증권의 양도차익에 대한 과세는 대주주와 유가증권시장에서의 거래에 의하지 않고 양도하는 경우에만 적용하고 있다. 더욱이 2012년 세법 개정으로 적용 기준금액이 2천만 원으로 낮아졌지만 금융소득에 대해서는 여전히 개인별로 14%의 낮은 세율을 적용하고, 2천만 원 이하의 임대소득에 대해서도 2017년부터 낮은 세율로 과세할 예정이다. 또한 부동산에 대한 보유세를 인상해 지방정부의 세원을 안정적으로 확보하고 불요불급한 조세감면제도를 정비해야 한다. 특히 고소득자, 고액자산가, 재벌 대기업에 제공되는 세제상의 혜택을 축소해 과세기반을 확충하고, 탈세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여 조세정의를 실현해야 한다.

 

다음으로 재정정책이 소득주도 성장전략에 부응하기 위해서는 재정지출의 균형을 회복하고 재정의 사회투자 기능과 소득재분배 기능을 강화해야 한다. 한국의 사회보호 관련 재정지출은 OECD 회원국 평균을 크게 밑돌고 있지만, 국방과 경제 및 주택 관련 재정지출은 평균의 2배를 넘어서고 있다. 이와 같이 특정 부문에 편중된 재정지출은 분단국가의 현실과 개발연대의 구조적 특징이기도 하다. 미래 복지국가의 발전을 위해서는 평화와 공존의 기치 아래 국방비와 SOC지출을 절감하고, 사회투자의 비중을 높여 나가야 한다. 특히 급속히 진행되는 한국 사회의 저출산·고령화 추이를 고려할 때 사회투자의 중요성은 더욱 증대된다. 예를 들면, 아동에 대한 투자는 그 자체로 가계 부문의 가처분소득과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를 증진시키고, 보육과 교육의 기회를 공평하게 제공해 미래세대의 생산성 향상에 기여할 수 있다. 미래세대에 대한 투자는 연금제도의 안정적 운용을 위해서도 필요하다. 또한 교육훈련의 확대뿐만 아니라 고용안전망을 강화하여 근로자의 고용과 소득 안정성을 높여야 한다. 중장기적으로는 부품 및 소재산업에 대한 재정지원을 통해 산업연관효과를 높이고, R&D지출의 효율성을 개선하여 성장잠재력의 확충을 유인해야 한다.

 

재정지출의 균형 회복과 함께 재정지출의 낭비를 막기 위한 노력도 필요하다. 참여예산제도를 활성화하고 국민소송제도를 도입해야 하는 이유이다. 주민참여예산제도는 2011년 3월 「지방재정법」 개정을 통해 도입되었지만, 그 성공 여부는 예산을 개방적으로 논의할 지방정부의 의지와 시민단체 및 지역주민들의 적극적인 참여에 달려 있다. 또한 2006년 1월 1일부터 자치단체를 대상으로 주민소송제도를 도입하고 있지만, 국가와 공공단체를 대상으로 하는 국민소송제도는 아직 도입하고 있지 않다. 최근 사자방(4대강사업, MB자원외교, 방위사업) 비리에서도 드러나듯이 예산지출에 대한 견제와 책임 추궁을 위한 장치가 작동하지 않을 경우 막대한 예산이 낭비될 수 있다. 국민소송제도를 조속히 도입하여 국가공무원에 의한 불법적인 예산낭비와 조달계약이나 도급계약에서의 과도한 예산지출을 방지할 필요가 있다.

 

한편 재정민주주의는 국민의 의사를 재정운영에 실질적으로 반영하는 과정으로 정치체제와 불가분의 관계를 갖고 있다. 다수대표제(majoritarian system)를 채택하고 있는 국가에서 부동표는 소득분포와 정치이데올로기의 중간지점에 위치하기 때문에 정당은 중산층과 무당파 유권자들의 표를 얻으려고 노력하지만, 빈곤계층은 직접적인 관심의 대상이 아니다. 반면에 비례대표제(proportional system) 하에서는 빈곤층의 표가 곧 의석수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그들 자신의 정당에 의해 대표되거나 중도 좌파 정당에 의해 지지를 받을 수 있다. 이러한 차이로 인해 비례대표제를 채택하고 있는 국가에서는 다수대표제 국가에 비해 사회지출의 규모가 크고 재분배정책이 활성화된다. 복지지출이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과 조세·이전지출의 소득불평등 완화 및 빈곤율 감소 효과는 다수득표제보다는 비례대표제 국가에서 크게 나타난다. 재정의 소득재분배 기능을 확대하여 성장과 분배의 선순환 구조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선거제도에서 대표성을 강화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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