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15년 04월 2015-04-02   1284

[여는글] 페미니즘이 싫으세요?

페미니즘이 싫으세요?

 

정현백 참여연대 공동대표

 

참여사회 2015년 4월호 (통권 221호)

 

페미니즘 역풍 불고 있다
얼마 전 19세 소년이 IS에 합류하기 위해 한국을 떠난 사건은 국민을 놀라게 하였다. 우리와는 무관한 사건으로 여겼던 IS문제가 현실 속으로 성큼 들어온 것이다. 거기에다가 이 소년은 자신의 SNS에 ‘페미니즘이 싫다’는 글을 올렸고, 언론은 유독 이 부분에 초점을 맞추어, 이 땅에서 페미니스트로 살아가는 이들을 아연실색하게 하였다. 나는 이 소년의 결정과 발언 속에서 우리 사회의 모습을 읽는다.

 

요즘 한국 사회에서는 페미니즘의 역풍이 불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페미니즘이 위축되고 있지만, 우리의 경우는 더 심하다. 지금 정부 부처 중에서 가장 많은 악성 댓글로 고초를 겪고 있는 곳이 여성가족부이다. 사실 심각한 양극화, 재벌기업의 횡포, 금융계의 부패와 부실화 등의 책임을 져야할, 그런 점에서 한국 사회에서 살아가는 서민의 고통과 가장 맞닿아 있는 기획재정부도 있는데 말이다. 지난 3월 8일 세계여성의 날에 즈음하여 영국의 이코노미스트가 발표한 조사에서 OECD 국가 중 여성에게 유리천장이 가장 높은 나라로 한국이 지목되었다. 소수의 잘 나가는 전문직 여성도 있지만, 절대 다수는 빈곤, 비정규직화, 그리고 일·가정의 양립문제로 고통 받고 있다. 그런데 왜 우리 사회 도처에서 이런 역 페미니즘anti-feminism이 기승을 부릴까?

 

부정적 통합이 문제다
한국은 1995년 북경에서 열린 UN 세계여성대회에서 의결되어 각국 정부에게 보내진 권고안인 ‘북경 행동강령’을 가장 잘 실행한 국가로 국제적인 칭송을 받았다. 여기에는 김대중정부와 노무현정부의 성 평등에 대한 높은 인식과 그에 대한 정책화가 큰 역할을 하였다. 그러나 서구에 비해 단시일 내에 빠른 속도로 진행된 성 평등운동과 정책 실현이 시민들의 의식변화와 일상적 실천으로 신속하게 전환되지 못한 까닭에 이런 역 페미니즘현상이 일어난다고 볼 수 있다. 혹은 요즘처럼 경제 불평등, 치솟는 전세값, 실업, 비정규직화, 정리해고 등으로 고통을 받거나 도처에서 일어나는 사고로 극도의 불안에 빠진 시민에게 역 페미니즘은 일종의 ‘속죄양’으로 작동한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이미 70여 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독일 나치즘이 많이 거론되는 이유는 히틀러가 무력이 아닌, 합법적인 수단으로 대중의 지지를 얻어 집권한 역사적 경험 때문이다. 이때 히틀러가 사용한 정치 기술은 부정적인 통합negative integration이다. 이는 바람직한 미래 비전이 아니라 가상의 적에 대한 공포를 이용하여 대중을 결집하는 것이다. 이때 사용된 것이 유태인과 외국인 혐오 그리고 공산주의자에 대한 과장된 분노였다. 우리 사회에서 이런 부정적인 통합의 모델은 종북 좌파, 페미니스트, 외국인 노동자가 아닐까?
 
성 평등은 모두를 위한 진보다
지난 3월 8일 광화문 광장에서 ‘성 평등은 모두를 위한 진보다’라는 (유엔이 선정한) 구호와 함께 제31회 세계여성대회가 열렸다. 한국여성단체연합이 주최한 이 대회에서 드라마 <미생>과 영화 <카트>가 여성운동의 디딤돌상을 받았다. <미생>은 직장 내 성차별 구조를 잘 그려냈고, <카트>는 대형마트 비정규직 여성노동자들이 부당 해고에 맞서는 내용을 잘 묘사하여 큰 호평을 받았기 때문이다. 또한 가사노동자에 대한 인식 개선을 위해 싸워온 당사자 운동체 ‘전국가정관리사협회’는 올해의 여성운동상을 받았다.  

 

한국 여성운동은 그간 ‘함께 그리고 따로’를 표방하며, 때로는 시민운동과 함께, 때로는 독자적으로 운동이슈를 제기하고 실천해왔다. 이는 한국 여성운동이 서구와 명확히 구별되는 특성이고, 여기에서 성공요인을 찾기도 한다. 여성운동은 남성이 누리는 기득권을 뺏는 것이 아니라, 남녀 모두에게 보다 나은 삶을 약속하는 것이어야 한다. 과거에 그랬던 것처럼 앞으로 참여연대 식구들은 당면한 역 페미니즘에 과감히 대처하고, 이 땅의 성 평등운동에 더욱 적극적으로 동참하기를 기대해 본다.

 

정현백
참여연대 공동대표. 한국여성단체연합 전 공동대표. 일·가정 양립이 불가피한 우리 현실 속에서, 시민들이 갈구하는 대안사회의 실현과 성 평등이 잘 만날 수 있기를 기대하며, 종종 걸음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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