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15년 04월 2015-04-02   1192

[세월호 참사를 기억하려는 노력, 4·16인권선언운동

세월호 참사를
기억하려는 노력,
4·16인권선언운동

미류 인권활동가

 

그녀는 이제 막 고등학교를 졸업했고, 대학은 가지 않았다고 했다. 무엇을 하면서 살지 무덤덤하게 고민하고 있다고 했다. 얘기 중 그녀가 갑자기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나는 세월호 참사라는 말을 꺼냈을 뿐이었는데…. 잠시 후 눈물을 닦은 그녀는 이야기를 들려줬다. “저는 기독교 학교를 다녔거든요. 반별로 아침 예배를 준비했어요. 4월 16일 아침은 우리 반 차례였고, 정말 재미있게 친구들과 준비했어요. 그런데 예배가 끝나고 세월호 뉴스를 알게 됐어요. 그 아이들이 죽어갈 때 우리는 웃으며 기도했다는 게 그 후로도 너무 미안해서 세월호 집회도 차마 나가보지 못했어요. 생각하면 너무 아파서 더는 생각을 할 수가 없었어요.”

 

참여사회 2015년 4월호 (통권 221호)

 

기억하기 위해 우리가 해야 할 말들

어쩌면 긴 시간이 흘렀다. 이제 해가 바뀌어 4월 16일이 돌아오고 있다. 봄이 오지 않으면 좋겠다고, 꽃이 피지 않으면 좋겠다고, 보이는 꽃을 다 꺾는다는 한 엄마의 말이 가슴을 내리누른다. 희생자의 가족들만이 아니다. 그저 목격자였을지도 모르는 우리에게도 잔인한 4월이다. 그러나 봄을 잔인하게 만드는 것은 사건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기억하자고 외치지만 기억할 마땅한 말들을 갖지 못했기 때문은 아닐까. 떠올릴수록 아픔만 짙어지고 분노만 솟구친다면 기억할 힘은 자연스럽게 사라질 것이다. 4.16인권선언은 세월호 참사를 기억하기 위한 하나의 행동이다. 참사를 되돌아볼 때마다 슬픔에 갇히는 것이 아니라, 슬픔에서 벗어나 희망을 건져 올릴 말 하나씩은 얻어야 하지 않겠는가.

세계인권선언은 세계대전의 참혹한 경험이 낳은 각성이었다. 다시는 같은 일이 반복되어서는 안 된다는 다짐이었다. 야만이라고밖에 표현할 수 없었던 인류의 경험을 인권의 이름으로 해석하는 동시에 세계사회가 나아가야 할 길을 인권의 이름으로 밝힌 것이 세계인권선언이다. 세월호 참사가 ‘구조적 문제’라고 누구나 얘기했지만 ‘구조적 문제’가 무엇인지는 아직 충분히 드러나지 않았다. 기업의 탐욕과 정부의 규제완화 정책들, 인명 구조에 무능하고 무력한 체계와 인력들, 수백 명의 사람이 죽었는데 보험금이 얼마인지나 보도하는 언론, 공감과 애도의 본능이 전혀 보이지 않는 정치인들, 온오프라인을 넘나들며 고통을 희화화하고 피해자를 모욕하는 어떤 사람들…. 우리의 경험을 우리가 빼앗긴 권리들로 다시 말해보자는 것이, 세월호참사국민대책회의가 4.16인권선언을 제안하게 된 배경이다.

 

인권이라는 실마리

생명에 대한 권리, 굳이 권리라 이름 붙이지 않아도 누구나 소중하다고 말했던 그것은 어떤가. 생명이 위태로워진 침몰의 순간 과연 국가는 생명을 보호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는가. 구조를 요청할 권리는 물속에 잠겨버리지 않았는가. 참사로 가족을 잃은 사람들, 참사로부터 겨우 살아나온 사람들은 마땅한 대우를 받았는가.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회복과 지원에 대한 권리를 누렸는가. 오히려 쏟아지는 모욕과 유언비어로 제2의 참사를 겪지 않았는가. 가족이 죽은 이유를 알려달라는 절규에 보상 때문이라는 시선으로 응답하는 사회에, 과연 진실에 대한 권리는 있는가. 안전한 사회를 만들자고 했는데 사회는 도대체 무엇이 달라졌는가. 정부는 국민안전처기존의 안전행정부 안전관리본부, 소방방재청, 해양경찰청을 통합해 2014년 11월 국가 재난 컨트롤타워로 출범한 조직를 만들고 안전대책을 만든다고 호들갑을 떨었지만 과연 우리는 안전하다고 느끼는가. 위험을 알 권리도 위험을 멈출 권리도 없고, 안전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참여할 권리의 자리도 보이지 않는다.

세월호 참사에서 우리가 목격해야 했던 무無권리의 상태가 달라지지 않는 한, 참사는 현재진행형일 것이다. 그리고 이제 분명해진다. 무권리의 상태는 권리의 목록을 헤아리는 것으로 달라지지 않는다. 그래서 4.16인권선언은 운동이고 운동이어야 한다. 인권을 선언하는 과정이 인권을 실현하는 과정이다. 우리가 스스로 권리를 인식하고 시나브로 빼앗기지 않기 위해서, 더 나은 사회를 상상하기 위해 인권선언을 함께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4.16인권선언을 제안하면서 가장 중요한 과정으로 논의했던 것이 각계 각지에서 펼치는 풀뿌리 토론이다. 그저 좋은 말들이 나열돼 있는 글을 보며 고개를 끄덕이는 시간에 그치지 않도록, 끝없는 질문이 쏟아지고 쟁점이 만들어지기를 기대한다. 이 과정을 함께 만들어갈 4.16인권선언 제정위원회(제안위원회)를 구성 중이다.

 

4.16인권선언운동으로

4.16인권선언운동은 다른 사회를 향한 힘을 모아가는 과정이다. 그것은 우리가 함께 배우고 토론하는 과정을 거쳐 서서히 열릴 것이다. 세월호 참사 이후 책임은 희미해지고 성찰은 시들어가고 있다. 참사 이후 저마다 부대꼈던 경험들을 나누고 문제를 다시 확인하며 과제를 밝혀나가야 한다. 세월호 참사 이후의 사회는 어떠해야 하는지 날카롭게 벼리는 시간이 되어야 한다. 우리가 빼앗겨온 권리, 우리가 누려야 할 권리들에 대한 토론은 우리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조금 더 투명하게 보여줄 것이다. 인권선언을 함께 만드는 모두가 저마다 숙제를 찾아 행동하는 주체로 나설 수 있는 지평이 열리기를 바란다. 수개월에 걸쳐 풀뿌리 토론을 진행하면서 인권선언문이 만들어지면 2016년 4월경 제정을 목표로 알리고 연명을 받는 등의 과정이 이어질 예정이다. 그때쯤이면 인권선언이 더욱 구속력 있는 규범이 되기 위한 법이나 조례 제정 과제도 보일 듯하다.

세월호 참사는 우리에게 진실과 안전, 치유와 회복이라는 숙제를 내어주었다. 이것들은 어딘가에 숨겨져 있어서 찾아내야 하는 보물들이 아니다. 우리가 움직이는 만큼 만들어지는 것이다. 어쩌면 ‘우리’를 만드는 시간들은 아닐까. 4.16인권선언운동은 작년부터 준비하고 추진해온 운동이기도 하지만 늘 새롭게 열리는 운동이기도 하다. 계획을 따라가는 사업이 아니라 계획을 비집고 나오는, 살아있는 운동이 될 것이다. 구조적 부정의에 대한 우리의 책임은 우리의 행동일 것이다. 더욱 많은 사람이 함께 할수록 더 많은 과제가 공유될 것이다. 4.16인권선언은 조용하지만 단단한 길잡이의 역할을 할 것이다. 그러나 길잡이는 길잡이일 뿐, 함께 길을 걸어갈 당신이야말로 인권의 선언이다.

 

미류
인권운동사랑방 활동가. 세월호 참사 이후 알 수 없는 힘에 이끌려 국민대책회의 공동상황실장을 맡게 됐고 존엄과안전위원회 활동을 함께 했다. 내일은 오늘 안에 있다는 것을 기억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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