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평 300] 세월호 1년, 그래도 한국은 ‘재난자본주의’ 향한다

 

[시민정치시평 300]

 

세월호 1년, 그래도 한국은 ‘재난자본주의’ 향한다

: ‘무책임-희생 시스템’ 무엇이 변했나, 어떻게 해야 하나

 

이병천 강원대학교 교수, 참여사회연구소 이사

 

봄의 시간정신이란 죽어있던 생명이 돋아나고 꽃이 피어나는 것, 그러나 한쪽의 봄에는 꽃이 피지만 다른 쪽에서는 떨어진다. 그것도 차갑고 안개가 짙은 4월의 남녘 바다에서. 불행히도 이 땅에서 4월의 봄은 생(生)의 시간정신을 거역하고 있다. 우리는 “공기에 봄 냄새가 나는 것이 두렵다”는 말을 듣는다. 단원고 2학년 5반 오준영 학생의 어머니 임영예 씨가 그렇게 토로했다. 어느새 세월호 1주기를 맞게 되었지만, 대한민국의 시계는 불행히도 2014년 4.16의 시간에, ‘가만히 있으라’는 시간에 멈춰 있다. 아니 갇혀 있다.

 

그간 무엇이 변했나. 세월호 참사를 둘러싼 권력-재벌 동맹의 전략과 시민적 대응간의 이중 운동이 보여주는 현주소는 어떤가. 우리는 정녕 내일로 가고 있는가. 멀쩡한 평상시에 무고한 희생과 위험을 대량으로 토해 내면서도 나몰라라 하는 살인적인, 조직화된 무책임체제를 넘어서, 권한과 책임을 공정하게 공유하며 모두를 치유하는 살림의 사회경제는 어떻게 가능한가.  

 

세월호 참사는 줄푸세의 업보 

 

4.16 세월호 참사에 대한 진단은 여러 층위에서 짚어져야 한다. 장기 시간대로 보면 지난 시기 권위주의적 압축 근대화 방식, 즉 사람가치, 생명가치가 아니라 성장가치를 제일 앞에 내세우고 고성장과 함께 고부패와 고위험을 축적하며, 시민사회 억압과 노동탄압으로 이를 지극히 견제하기 어렵게 만든 박정희식 관민결탁 시스템이 파탄났다고 할 수 있다. 중기 시간대로 보면 프란치스코 교황이 새로운 독재라고 꾸짖은, 규제는 풀고 세금은 줄이고 복지와 안전을 비롯한 국가의 공적 책임을 사유화시키고, 노동은 유연화 아니 ‘쓰레기화’시킨, 자본세계화 시대의 압축 시장화 시스템, 또는 무책임-희생 시스템이 파탄났다고 할 수 있다. 단기 시간대로 보면, 경제민주화와 복지 국가, 안전사회 만들기로 ‘줄푸세’ 정책과 시스템을 고치겠다고 국민 앞에 약속해 집권해 놓고도 이를 재빨리 헌신짝처럼 내던진 박근혜 정부 시기 ‘재판(再版) 줄푸세’ 주의가 큰 일을 저질렀다고 해야 한다.  

 

여기서 단기란 경기(景氣)가 좋았다 나빴다 하는 의미의 짧은 순환적 시간대를 말하는 것이아니다. 오히려 세월호 참사가 빚어진 박근혜 정부시기의 단기에는 앞서 말한 장기 시간대의 ‘타락한 개발주의'(degenerate developmentalism), 그리고 중기시간대의 줄푸세 압축 시장주의가 물려준 ‘과거 적폐’들이 중첩, 집약되어 있다고 보아야 한다. 내가 볼 때, 세월호 참사는 박근혜 정부가 이들 과거 적폐의 엄중한 교훈을 저버리고, 그 청산 약속을 깨고 무책임하게 밀어부친 재판 줄푸세주의의 자기 업보, 그 부메랑 효과와 같은 것이다.  

 

나는 4.16 세월호 참사에 대해 ‘국가가 국민을 구조하지 않은 사건’이라고 한 어떤 소설가의 진술이 참이라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이 참사는 정부가 국정 기조를 국민에 약속한대로 성실히 이행하는 방향으로 잡았더라면 충분히 피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게 아니라 국민을 속이고 무분별한 규제완화와 민영화, 외주화 쪽에 온 정신이 팔려 있었기 때문에 그 결과 미증유의 대참사가 일어난 것이다. 따라서 참으로 두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 정부가 솔직하게 세월호의 진실을 인정한다는 것, 그리고 그 실체적 진실을 규명하는 작업을 순순히 용인한다는 것 말이다. 

 

다시 돌아가는 ‘무책임-희생 시스템’ 

 

그렇다면 이 정부가 세월호 참사 이후 종래의 ‘살인적’ 국정 기조를 결코 바꾸지 않았다는 것은 별로 놀랄 일이 아닐지도 모르겠다. 이는 재난/안전과 직결된 문제에서도 그렇고, 보다 넓게 사회경제정책기조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먼저, 정부는 안전사회로 가기 위해 절실히 요구되는 기업과 국가의 기본책임을 외면했다. 징벌적 손해배상제 및 기업살인법의 도입, 위험 업무의 외주화 금지와 같은, 기업의 엄청난 권한에 상응하는 엄정한 책임규율을 세운다는 생각은 찾아볼 길이 없다. 또한 국민안전에 대해 국가가 공적 책임을 담당하는 것이 아니라 안전을 ‘창조적 돈벌이'(창조경제?) 분야로 삼아 안전산업을 육성하는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이는 참사를 기회로 삼아 본격적으로 한국판 ‘재난자본주의’ 길로 가겠다는 이야기와 다를 바가 없다. 

 

그러나 한층 공격적인 권력의 전략은 규제 완화에 입각한 경제활성화를 통해 세월호 사태를 덮어 버리려는 것이었다. 그들의 기본전략이란 세월호 사태에 연연함은 곧 경제의 발목을 잡는 것이라고, 경제활성화를 가로막는 것이라고 대대적으로 선전하는 것이었다. 대통령이 앞장서서 ‘규제는 암덩어리’, ‘쳐부수어야 할 원수’, ‘단두대에 올려 처리해야 한다’고 하면서(진짜 암덩어리, 쳐부수어야 할 원수, 단두대에 올려야 할 것은 규제완화인데도) 밀어 붙였다. 이에 따라 참사이전 정부가 표방했던 경제혁신=규제완화 3개년 계획도 새롭게 힘을 받게 되었다. 그리고 ‘비용절감형 책임전가형 수출 독주경제- 불평등과 불안정 심화- 가계소득정체와 내수위축- 저성장- 가계부채 폭증’의 축적체제의 구조적 모순을 다시 ‘빚 권하기- 주택구입 유도- 경기부양’으로 땜질하려는 정책도 재생산되기에 이르렀다.  

 

이 정부, 권력-대재벌의 관민결탁 블록은 세월호 참사가 주는 생생한 교훈을 거역하고 자신들이 했던 약속도 몇 차례나 깼다. 마침내 그들의 책동은 세월호 1주기 즈음하여 특별조사위원회와 특별법을 껍데기로 만드는 시행령안을 내어 놓은 데서 정점에 달하고 있다.  

 

슬픈 일이다. 광복 50년, 산업화·민주화 50년을 맞는 오늘의 대한민국이, 이 땅에 피와 땀과 눈물을 쏟은 우리 국민 대중들이 이토록 눈멀고 파렴치한 국가와 무능, 무책임, 희생의 시스템의 늪에 빠져 허우적대야 하다니. 이 와중에 국정최고 책임자는 세월호 1주기에 맞춰 국민의 부름에는 돌아보지 않고, 때 아닌 외국나들이를 떠난다고 한다.  

 

가만히 있지 말고 함께 

 

고약한 것은 우리더러 다시 패배와 좌절의 쓴 맛을 보게 하는 것이 지배블록의 전략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그리고 국가에 대한 불신, 우리 서로에 대한 불신을 한껏 조장함으로써 참사없는 안전한 나라, 이윤보다 생명이 먼저인 나라, 함께 책임지는 살림의 사회경제로 가는 길을 지워버리려고 한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그들은 우리를 길들이고 있는 중이다. 이 프레임에 갇혀서는 희망이 없다. 진실을 규명함이 없이는 신뢰도, 정의도, 연대도 세울 수 없다. 304명의 무고한 희생자의 죽음을 헛되이 해서는 안 될 일이다. 다시 돌아올 수 없는 타자가 된 영령들의 요청에 대한 우리들의 응답이 대한민국의 내일을 판가름지울 것이다. 끝까지 진실을 규명하고 정의를 세우는 그날까지 잊지 말고, 가만히 있지 말고 함께 연대! 

 

참여사회연구소는 2011년 10월 13일부터 ‘시민정치시평’이란 제목으로 <프레시안> 에 칼럼을 연재하고 있습니다. 참여사회연구소는 1996년 “시민사회 현장이 우리의 연구실입니다”라는 기치를 내걸고 출범한 참여연대 부설 연구소입니다. 지난 19년 동안 참여민주사회의 비전과 모델, 전략을 진지하게 모색해 온 참여사회연구소는 한국 사회의 현안과 쟁점을 다룬 칼럼을 통해 보다 많은 시민들과 만나고자 합니다. 참여사회연구소의 시민정치는 우리가 속한 공동체에 주체적으로 참여하고, 책임지는 정치를 말합니다. 시민정치가 이루어지는 곳은 우리 삶의 결이 담긴 모든 곳이며, 공동체의 운명에 관한 진지한 숙의와 실천이 이루어지는 모든 곳입니다. ‘시민정치시평’은 그 모든 곳에서 울려 퍼지는 혹은 솟아 움트는 목소리를 담아 소통하고 공론을 하는 마당이 될 것입니다. 많은 독자들의 성원을 기대합니다.
같은 내용이 프레시안에도 게시됩니다. http://www.pressian.com/ ‘시민정치시평’ 검색  


* 본 내용은 참여연대의 공식 입장이 아닙니다.

정부지원금 0%, 회원의 회비로 운영됩니다

참여연대 후원/회원가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