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연대 세월호참사 2015-04-20   406

[칼럼] 다시 돌아온 ‘불통의 차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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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희 |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 실행위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다시 돌아온 ‘불통의 차벽’

 

차벽이 돌아왔다. 이명박 정부 때 촛불집회의 현장을 경찰버스로 겹겹이 에워싸 시민들의 목소리를 억눌렀던 그 불통의 상징이 세월호 참사 1주기에 다시 등장해 세상의 슬픔과 정부의 오만함을 가르는 방벽이 돼버렸다.

 

차벽은 불법이다. 2011년 헌법재판소는 경찰이 집회현장을 차벽으로 둘러싸는 것은 시민들의 통행권을 침해하기 때문에 위헌이라고 판단한 바 있다. 더구나 경찰버스는 사람을 실어나르는 기동장비일 뿐 진압차나 가스차, 물포 등과 같이 사람의 신체에 위력을 가하기 위해 사용하는 특수용 차량이 아니다. 그런데도 이를 ‘일반적인 사용법과 달리’ 차벽으로 사용하는 것은 경찰관직무집행법 위반이다. 법령상으로도 경찰버스를 이용해 사람의 통행을 가로막거나 집회현장을 봉쇄하기 위해 사용할 수 있는 경찰장비가 아닌 것이다.

 

그뿐 아니다. 그것은 집회에 나선 사람뿐 아니라 일반시민에 대해서까지 엄청난 폭력을 행사한다. 지난 주말에 설치된 차벽이 지나가던 외국인까지도 항의할 정도로 사람들의 통행을 가로막았다고 해서 그런 것만은 아니다. 톈안먼 사태 때 시위대를 가로막고 나섰던 탱크처럼 정부는 그의 엄청난 위력을 노골적으로 드러냈기 때문이다. 그것은 버스라는 탈을 쓰고, 경찰이라는 위장을 하였을 뿐 정부가 시민들에게 행사하는 가차없는 폭력이다. 그리고 바로 이 점에서 그것은 집회현장을 떠나 일반 국민들에게까지 정부의 강력한 경고를 보낸다. 더 이상 나아갈 수 없는 성역을 설정하고 이에 대해 도전하는 경우에는 가차없는 보복이 뒤따를 것이라는 적나라한 위협이자 대국민 겁박이다. 실제 경찰이 시민들의 집회를 따라다니며 자행했던 불법과 폭력은 이 차벽의 연속선상에 존재한다. 수많은 경찰병력을 동원해 집회현장을 겹겹이 둘러싸 시민들을 완전히 고립시킴으로써 그들이 자신의 주장을 다른 사람에게 알릴 권리를 박탈하는 한편 이들에게 폐쇄공포의 심리폭력을 가하는, 전대미문의 불법행위는 그 대표사례이다.

 

또 적법한 절차도 없이 무차별적으로 불심검문에 나선다든지 시도 때도 없이 채증이라는 명분으로 들이대는 카메라로 모든 사람들을 범죄인 취급하며 인권을 유린해왔다. 자유 민주주의의 꽃이라고 해야 할 집회의 자유나 표현의 자유는 아랑곳없이, 시민의 안전이나 평화의 이념은 간 곳도 없이, 법치의 선봉에 서야 할 경찰이 법을 유린하며 우리의 사회를 야만의 상태로 몰고 가고 있는 것이다.

 

물론 경찰은 “질서유지”라는 말을 거의 조건반사적으로 내뱉는다. 그러면서 질서를 지키며 평화롭게 이루어지는 시민의 집회를 짓밟는다. 하지만 이는 시민들에 대한 기만에 불과하다. 민주국가의 최대의무는 대중의 목소리를 듣는 것이다. 교통이나 질서의 문제는 그 다음이다. 그 목소리가 많은 사람의 것이라면 그만큼 그 의무는 커진다. 질서유지 운운하며 대규모 대중집회를 봉쇄해버리는 것이 노골적인 국가폭력이 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원래 거리는 일상의 정치공간이다. 그곳은 대화와 공감의 장소이며 연대의 자리이다. 하루하루 삶의 고달픔에서 나라 살림 돌아가는 꼴까지 사람들은 길거리에서 혹은 광장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내어 놓는다. 특히 힘없고 돈 없어 서러운 장삼이사의 서민들이 가진 자들의 권력에 맞서 자신의 애환을 나누고 삶의 희망을 말하는 유일한 통로는 바로 이 공간이다. 그러기에 법을 지키는 경찰이라면 질서를 앞세우며 폭력으로 겁박할 일이 아니라 이들의 외침이 자유로울 수 있도록 보호하는 방안을 먼저 생각해야 한다. 혹은 제대로 된 정부라면 차벽의 뒤편에서 엄폐·은폐를 일삼으며 이리저리 잠적해 버릴 일이 아니라 그들 앞에 나서 그들의 아픔을 껴안을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우리는 세월호 참사의 슬픔까지도 차벽으로 가로막고 나서는 경찰에 환멸을 느끼게 된다. 여기에는 국가가 없기 때문이다. 국민과 함께하며 국민을 위해 존재하는 국민의 국가는 이제 이곳에 없다. 오로지 무한탐욕의 권력만 있을 뿐이며 그 권력의 뜻을 받들어 일신 영달을 꿈꾸는 과잉충성의 폭력만이 존재한다. 아니 우리 국가를 그들이 침탈하고 있을 뿐이다. 거리에 나서고 광장에 모인 우리가 바로 국가이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국민은 거리에서 이 주권을 행사한다. 그것이 집회와 시위의 자유이며 민주주의이며 정치적 윤리이다. 이치가 그렇다면, 차벽의 경찰은 그 공이 이미 높으니 이제 족함을 알고 그만 그치는 것이 어떠한가.

 

* 이글은 2015년 4월 20일자 <경향신문> 31면 오피니언 코너에 실린 글입니다. 기사원문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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