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15년 07월 2015-07-02   761

[칼럼] 능력과 욕망의 불균형이 낳은 기형아들

 

 

능력과 욕망의 불균형이 낳은 기형아들

 

 

글. 이용마 MBC 해직기자
정치학 박사. 서울대 한국정치연구소 연구원. 관악산의 맑은 공기를 마시며 자연의 아름다움과 인간의 부지런함의 공존 불가를 절실히 깨닫고 있는 게으름뱅이.

 

신분 차별의 피맺힌 한
왕후장상 영유종호야王侯將相 寧有種乎也. 사마천의 『사기史記』에 처음 등장하는 말로, 신분의 귀천을 떠나 누구나 왕후장상이 될 수 있다는 뜻이다. 중국 진시황제의 사후에 진승이 난을 일으킬 때 농민들을 선동하면서 처음 사용했다. 우리나라에서도 고려 무신정권 시절에 최충헌의 노비였던 만적이 난을 일으키면서 이 말을 외쳤다. 허균의 ‘홍길동’ 역시 서자라는 신분에 가로막힌 울분을 율도국을 찾는 것으로 해소하고자 했다.

중국의 진이나 고려, 조선 모두 사람의 지위나 직업이 태어나면서부터 결정되던 신분제 사회였던 만큼, 이 외침의 의미는 너무나 분명하다. 신분제 사회에서 자신의 재능을 살릴 기회를 박탈당한 데서 오는 피맺힌 한이다.

 

참여사회 2015년 7월호 (통권 224호)

능력을 초월하는 욕망의 딜레마
다행히 우리는 민주주의 사회에 살고 있다. 더 이상 타고난 신분 때문에 차별을 받지는 않는다. 물론 차별은 아직도 존재한다. 전라도 출신이나 여자, 종북좌파 등에 대해 무시무시한 언어폭력을 휘두르는 일베와 이를 은근히 조장하고 키우는 세력이 엄연히 존재하는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대한민국 헌법에 따르면 신분에 따른 기회의 차별은 폐지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아직 불평등과 불만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왜 그럴까? 수많은 이유 중에서 능력과 욕망의 불균형을 꼽을 수 있다. 개인의 능력은 똑같지 않지만, 누구나 최고로 인정받기를 바란다. 그리고 이 능력과 욕망의 불균형은 예상치 못한 비극을 초래한다.

제갈량의 뛰어난 재능을 알아보고 하늘을 우러러 통곡하며 죽어간 주유의 이야기나 모차르트의 천재성을 알아보고 그를 질시한 살리에르를 그린 영화는 연민을 느끼기에 충분하다. 하지만 자신의 능력을 뛰어넘어 더 높은 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인간의 욕망은 때로 자신보다 뛰어난 누군가의 희생을 요구한다. 비열한 수단의 모략과 중상, 매수, 뇌물 혹은 윗사람에 대한 아첨과 아부 등이 동원되는 배경이다.

이렇게 해서 자리를 차지한 자는 잠시 우쭐할 수는 있겠지만, 그에 따르는 책임을 감당하기 벅차다. 능력에 넘치는 자리는 결정적인 순간 자기 자신뿐만 아니라 수많은 타인에게 형언할 수 없는 고통을 안긴다. 물론 그에 따른 책임이나 타인의 고통을 전혀 못 느낄 정도로 우둔할 수도 있다. 그러나 우둔하면 할수록 타인의 고통은 절망으로 돌변하고, 그에 대한 적대감은 무섭게 커져 간다. 어렵게 얻은 자리가 씻을 수 없는 업보가 되는 것이다.

우리는 이런 경우를 역사 속에서 숱하게 보아왔다. 원균은 이순신을 모함해 수많은 군사를 죽이고 나라를 위험에 빠트렸고, 이승만은 대통령이 되기 위해 김구와 같은 정적政敵을 제거하고 단독정부 수립에 앞장섰다.

 

절망에서 분노로
왕후장상 영유종호야. 여기에 이제는 이렇게 답하고 싶다. 적재적소適材適所! 단순히 누구나 왕후장상이 될 수 있다는 것이 아니다. 충분한 재능과 자격을 갖춘 사람이 그 역할을 맡고, 이들에 대한 차별을 두어서는 안 된다. 왕이 될 사람이 장군이나 상인이 되어서도 안 되지만, 장군이나 상인이 될 사람이 왕이 되어서는 더욱 안 된다. 이 경우 본인들에게도 고통이겠지만, 그들과 연관된 타인에게는 더 큰 고통이 될 수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권모술수의 화신이 되어 권력만 탐하는 자들이 설치는 현실을 여전히 목도하고 있다. 이들은 고인이 된 전직 대통령을 거듭 모욕하고, 국가기관을 동원한 불법선거운동과 그 은폐를 주도했으며, 반대파들을 종북좌파로 매도하는 대중선동을 서슴지 않는다. 하지만 세월호 참사와 메르스 대란과 같은 결정적인 순간에 직면하자, 국민에게 호들갑을 떨지 말고 일상으로 돌아갈 것을 강권한다. 수많은 사람의 죽음을 외면하고,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살기를 강요하는 것이다. 그 선두에는 대한민국의 대통령과 총리, 여당 대표가 있다.

이들의 능력은 오로지 권모술수뿐이고 그것만으로는 국민들을 이끌어갈 수 없음이 드러나면서 국민들의 절망감은 이들에 대한 적대감과 분노로 돌변하고 있다. 임기의 반도 넘기지 않은 상황에서 대통령 지지율이 20%대로 떨어진 사실이 이를 보여준다. 소수 권력자들의 무능과 우둔함이 낳을 또 다른 참사가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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