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15년 07월 2015-07-02   1712

[특집] 살기 위해 죽는 노동자 산업재해

특집 복/불복

 

살기위해 죽는 노동자 산업재해

 

글. 최명선 민주노총 노동안전보건국장 

 

정부 통계로만 매년 2,400여 명의 노동자가 산업재해(이하 산재)로 사망하고, 9만 여명의 노동자가 다치고 병드는 OECD 산재사망 1위 국가가 한국사회의 현실이다. 2000년 이후에만도 정부 통계상으로 산재 노동자는 127만 명이고, 산재사망 노동자는 3만 3,902명이다. 그러나 이 수치는 빙산의 일각이다. 각종 연구조사에서 실질 산재는 통계의 13배에서 30배에 달한다고 보고되고 있다. 2007년 국가안전관리전략 수립연구에 따르면 총사고 1,300만 건 중 사업장 사고는 21.4%로 교통사고(17.1%)나 기타 사고(30.8%)를 제치고 1위다. 매년 화물운수 노동자 1,300여 명이 사망하지만 건설기계, 대리운전, 퀵 서비스, 택배기사 노동자 등은 특수고용노동자로 분류되어 산재가 아니라 교통사고로 집계되는 데도 그렇다.

보다 더 큰 문제는 직업병 문제다. 2012년 국립암센터 <한국의 직업성 암 부담 연구>에 따르면 2007년 한국의 암 사망자 6만 7,112명 가운데 8.5%인 5,691명이 직업적 원인에 의해 발병한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의 국립산업안전보건연구원은 암 사망자 중 4~8%를 직업성 암으로 보고 있으며, 이는 학계의 통설이다. 2012년 한국의 암 사망자는 7만 3,000여 명으로 이 중 최소 2,920명에서 최대 5,840명이 직업성 암이다. 그러나 2000년 이후에도 매년 직업성 암에 대한 산재신청은 200건을 못 넘고 있고, 산재승인은 30여 건에 불과하다. 이는 산재보험 가입인구 10만 명당 0.13~0.23명으로, 프랑스의 백분의 일 수준이고, 유럽 대부분의 나라보다 수십 배 낮은 수준이다. 직업성 암뿐만 아니라 세계 최고인 장시간 노동과 노동강도로 인해 발생하는 근골격계 질환과 뇌심혈관계 질환, 감정노동 강요 사회에서 정신질환 문제 등을 포함해도 매년 7,000여 명 만이 산재승인을 받고 통계에 잡힌다.

참여사회 2015년 7월호 (통권 224호)

 

일상에 만연한 산업재해
한국의 노동자들은 일하다 다치고 병들면 치료받아야 하는 당연한 권리를 박탈당하고 있다. 산재를 신청하면 잔업 특근에서 제외되거나 해고를 운운하면서 산재은폐를 강요받는다. 특수고용노동자인 한 골프장 경기 보조원은 산재신청을 했다가 회사가 본인도 모르게 서류조작으로 적용제외 신청을 한 것이 밝혀졌으나, 문제제기를 했다는 이유로 블랙리스트에 올라 실업자 신세로 전락했다. 

국가 인권위의 2014년 조사연구는 하청산재의 90% 이상이 은폐되고 있다고 밝혔다. 더욱이 재벌 대기업은 수백조의 사내유보금을 쌓아놓고도 하청업체와 계약관계를 이용하고, 지정병원과 유착관계를 형성해 하청 노동자의 산재은폐를 강요하고 있다. 이렇게 위험을 외주화하면서 재해율을 낮추고 있지만 매년 수백억의 산재 보험료를 감면받고 있다. 노동자들은 온갖 회유와 협박을 넘어서 산재신청을 하더라도, 병든 몸을 이끌고 스스로 산재임을 입증하는 수많은 심사승인의 문턱을 넘어야 한다. 지리한 소송까지 이어지는 수년의 과정에서 최종 승소 판결도 못 보고 유명을 달리하는 수많은 노동자와 가족의 분노와 고통이 이어지고 있다. 

산업재해는 비단 노동자만의 문제가 아니다. 구미에서 (주)휴브글로벌의 불산 누출 사고로 인해 5명의 노동자가 사망했을 뿐 아니라, 인근 지역 농작물이 말라죽고, 재난지역으로 선포되는 상황에 이르렀다. 여수, 울산 등 20~30년 된 노후 산업단지에서 살상가스로 유명한 포스겐 등 끊임없는 화학물질, 독성 가스 누출과 폭발사고는 지역주민들로 하여금 화약고를 안고 사는 불안에 시달리고 있다. 세월호 참사와 그 이후 연속 발생한 지하철 상왕십리역 사고, 고양터미널 화재 참사, 판교 붕괴사고 등은 사업장의 안전 시스템 붕괴와 규제 완화가 공장 인근지역 주민뿐 아니라 국민 전체의 생명권을 위협하는 현실을 드러냈다. 그러나 세월호 참사 이후 쏟아져 나온 안전대책에 산업재해 문제는 없었다. 산업재해의 심각성이나 구조적 문제, 시민안전과의 종합적 고찰이 없는 대책만 난무했을 뿐이다, 그나마도 사실상 휴지조각이 되고, 안전이 돈벌이 수단으로 전락한 것이 현실이다.

 

산재 해결, 책임자 처벌이 관건
한국 산업재해의 첫째 특징은 재래형 사고의 반복이다. 10만 원 짜리 안전난간대가 없어 용광로에 빠진 청년 노동자의 죽음은 비단 영세 사업장만의 문제가 아니다. 최근에는 대기업인 현대제철 인천현장에서도 발생했다. 기술이나 공법 문제가 아니라 최소한의 안전조치가 없어 발생하는 사고가 반복되는 것이다. 사전에 예고되는 노동부 정기 감독 에서도 90%이상 사업장이 법을 위반하지만, 처벌은 그야말로 미미하다. 약 160만개 사업장의 2%에도 못 미치는 2만 3,000여 개 사업장만 감독대상이고, 법 위반 건당 3~4만 원 수준의 행정처벌에 그치는 상황에서 사업주가 스스로 법을 준수하기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감독과 처벌이 대폭 강화되어야 하고, 이를 위한 예산과 인력이 확보되어야 한다. 

둘째는 하청 비정규 노동자에게 산재사망이 집중되는 현실이다. 민주노총이 하청 산재문제를 제기하기 이전까지 정부의 산재분석은 ‘매년 80%의 산재가 중소영세기업에 집중’된다는 것이었다. 이는 결국 사업주 부담능력 문제로 연계되고, 사실상 정부 대책은 없었다. 그러나 당진 현대제철, 현대중공업을 비롯해 매년 600여 명이 사망하는 건설업 등 상당수의 산재는 수백 개의 소규모 하청업체로 나뉘어 있을 뿐 재벌 대기업에 의해 발생하는 것이다. 원청이 시설이나 장비를 소유하고 있고, 공정 관리도 하고 있으며, 원-하청의 수직적 관계에서 하청 사업주는 재해를 예방할 권한도 능력도 없다. 그러나 현행 산업안전법은 수만 명이 일하는 현장에서도 원청 정규직 고용인원에 기초한 안전관리자 2~3명만 선임될 뿐, 50인 미만이 대부분인 하청업체는 안전 관리자 선임도 제외된다. 

안전교육, 점검 등 기초적인 조치가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 원인이다. 6명이 사망한 여수 대림참사에서는 2만 명 이상이 조직된 건설노동조합이 있었으나 사고조사 참여도 거부당했다. 17명의 하청 비정규 노동자가 사망한 당진 현대제철도 마찬가지다. 위험의 외주화로 하청 비정규 노동자 산재사망이 줄을 잇지만, 사고조사, 사업장 점검, 산업안전보건위원회, 명예감독관에서 하청 비정규 노동자는 배제되고 있다. 민주노총은 동일 작업장의 경우에 원-하청의 상시근로자수를 기준으로 하는 안전보건관리체계를 수립하고, 원-하청 노동자들의 참여 보장을 주장하고 있다. 산재예방에 있어서 원청의 직접적인 책임을 강화하고, 원-하청 합산재해를 기초로 사업장을 감독하고, 안전보건관리 시스템을 이에 맞게 개편하는 것이 시급하다.

셋째는 산재사망에 대한 솜방망이 처벌 문제다. 산업재해는 기업의 구조적인 시스템 문제다. 그러나 현재까지 말단 관리자만 처벌되고, 벌금도 2~300 만 원 수준에 그쳤다. 2008년 이천 냉동창고에서 40명의 사망사고는 벌금 2,000만 원, 이마트 냉동설비 4명 사망 사고는 벌금 100만 원에 그쳤다. 1명 산재사망에 따른 벌금이 25~50만 원 수준이었던 것이다. 게다가 하청 산재사망에 대해 원청은 무혐의 처분을 받아왔다. 영국, 호주, 캐나다는 산재를 기업에 의한 살인행위로 보고 ‘기업 살인법’을 제정하여 최고 책임자를 처벌하고, 기업의 매출과 연동한 벌금을 부과하고 있다. 민주노총은 이미 2013년에 「산재사망 처벌강화 특별법」을 제출했고, 19대 국회에 3개의 법안이 발의되어 있다. 또한 세월호 참사 이후에 산재사망뿐 아니라, 일반재해까지 포괄하여 기업과 관련 정부 책임자를 처벌하는 「살인기업 처벌법」 제정 운동을 여러 시민사회단체와 본격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참여사회 2015년 7월호 (통권 224호) 참여사회 2015년 7월호 (통권 224호)

 

위험사회 탈피, 사업장 안전에서 시작해야 
매년 2,400여 명의 산재사망은 노동자의 과실이나 개인의 불운과는 연관이 없다. 중소영세 사업장으로 한정해 해결할 수 있는 문제도 아니다. 근본적으로는 위험의 외주화, 비정규직 고용 남발을 규제하고, 무차별적인 안전규제 완화를 중단해야 한다. 또한 단기적으로는 원-하청 고용구조에 맞는 산업안전보건법 체계를 정비하고, 법위반이나 산재사망에 대한 처벌을 대폭 강화해야 한다. 

철도공사는 KTX 여승무원을 외주화 간접고용으로 돌리면서, 불법 파견 시비를 없애기 위해 원래 있던 안전업무를 삭제하고 승객 대피 요령 같은 안전교육을 없앴다. 최근의 메르스 사태에서도 삼성병원을 비롯한 병원 사업장에서 외주화 비정규직 고용의 남발 문제가 어떤 대형 재난을 유발하는지가 여지없이 드러났다. 산업재해는 노동자만의 문제가 아니다. 위험사회로 치닫는 한국사회의 문제는 화약고의 발화점 같은 사업장 안전 문제에서 출발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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