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15년 07월 2015-07-02   1400

[특집] 공포는 메르스 바이러스보다 빨리 전파된다

특집 복/불복

 

참여사회 2015년 7월호 (통권 224호)

 

초일류병원에서 확산된 메르스, 정부도 몰랐고 아직도 모르고 있는 주한미군의 탄저균 실험, 빅데이터에 남겨진 수많은 흔적들로부터 기업과 정부가 재구성해낸 내 모든 일상, 내가 모르는 이웃의 핵사고, 늘 오가는 작업장과 공공장소에서의 반복되는 재난들….

가장 큰 공포는 불복의 당사자가 내가 될 수 있다는 것 때문만이 아니라 ‘어떻게 그것이 내게 닥칠 수 있을지 알 수 없는 것’ 그 자체일 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위험과 공포로부터의 자유는 본질적으로 참여와 협력에 의해 주어질 것이다.

우리는 과연 현대사회에 내재된 위험을, 그리고 그것을 다루는 정부와 기업들을 민주적으로 통제할 수 있을 것인가, 아니면 사실상 정보를 독점하고도 위험을 방관하는 무책임한 정부와 기업들에 의해서 통제당할 것인가!

 

 

공포는 메르스 바이러스보다 빨리 전파된다

 

글. 정형준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정책국장, 의사

 

한국이 전 세계에서 중동급성호흡기증후군(이하 메르스) 전염 환자가 두 번째로 많은 국가가 되었다(6월 22일 기준 171명의 감염자가 발생했다). 이 질환의 발생지인 사우디아라비아를 제외하고, 주된 숙주로 거론되는 낙타가 분포한 중동지역 국가들보다 감염자가 많이 발생한 것이다. 그간 이 질환은 비말 감염으로 밀접 접촉자에 의해서만 감염된다고 알려졌으나, 한국의 빠른 감염에 대해 바이러스 변이나 공기감염 및 지역전파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국제보건기구WHO도 촉각을 곤두세웠다.

그러나 WHO의 역학조사나, 바이러스 대조검사 등에서 모두 기존의 메르스 코로나 바이러스와 한국에서 전염된 종류가 같고, 비말 감염이 전파경로임이 밝혀졌다. 때문에 한국에서의 메르스 사태는 방역체계의 붕괴, 정부의 무능, 잘못된 의료 구조 등 수많은 구조적 문제에 따른 것임이 확인되었다. 앞으로도 수많은 문제점이 부각되겠지만, 이런 문제들을 관통하는 지점이 몇 가지 있다.

 

19일 간의 병원정보 비공개
우선 메르스 전파의 원인은 정부의 ‘비밀주의’ 때문이다. 원래 감염병 확산시 우선원칙은 ‘신뢰, 빠른공표, 정보공유, 공식화’다. 이번 사태에서 초기대응부터 병원공개까지 어떻게 정부가 비밀주의를 고수했는지는 구체적으로 밝혀져 있지 않다. 정보차단이 정부의 원칙으로 고수된 이유에 대해서는 이후에 꼼꼼히 따져봐야 할 일이지만, 일단 5월 20일 첫 환자의 확진부터 무려 19일간 병원을 공개하지 않았다는 건 황당한 일이다. 처음부터 정보공개를 했다면, 대규모 환자유출과 삼성서울병원발 2차 확산은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적어도 의료진조차 1차 발병지역과 경유 입원병원을 몰라서 메르스에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일은 없었을 테니 말이다.

정부는 지역경제침체와 국민 공포감조장에 대한 우려를 핑계로 병원명과 지역조차 공개하지 않았다. 그러나 정부가 비밀주의를 고수해 온 사이에 국민들의 공포감은 커졌고, 국민들이 만든 ‘정보’들만이 넘쳐났다. 1차 발병병원이 자체 폐원을 하고, 학교들도 알아서 휴교를 한 6월초에도 정보는 공개되지 않았다. 끝까지 비밀주의를 고수한 이유를 경제문제와 국민 탓으로 돌리는 것은 현실과 맞지 않다. 도리어 19일간 병원명을 공개하지 않은 이유는 관련 대형병원의 채산성을 유지하려는 몸부림이었을 공산이 가장 크다.

첫 번째 환자를 진단한 병원이 다름 아닌 삼성서울병원이었고, 이를 메르스 종식 전에 공표한다면 삼성서울병원의 환자가 줄어들 것을 걱정한 조치였을 가능성이다. 여기에 평택성모병원을 역학조사하면서 이 병원을 격리하는 경제적 부담을 지지 않으려는 정부의 책임회피도 한몫 했을 수 있다. 하지만 ‘비밀주의’는 삼성서울병원 응급실에서 비롯된 2차 감염이 전국적으로 확산되는 6월초까지도 고수되었는데, 이는 명백한 삼성서울병원 봐주기였다.
삼성서울병원 의료진과 직원들까지 감염되고, 여론이 정보공개를 압박하자 6월 7일에야 병원 공개를 했는데, 공교롭게도 정부의 정보공개가 있자마자 삼성서울병원이 기자회견을 했다. 정부와 삼성서울병원의 사전교감을 예측케 하는 부분이다.

 

참여사회 2015년 7월호 (통권 224호)

‘일류’ 민간병원을 통해 확산된 재난
다음으로 비밀주의의 근간이 된 삼성서울병원 같은 기업병원 중심의 민간의료체계의 문제도 심각하다. 삼성서울병원 응급실을 통한 감염 환자가 전체의 반에 해당되는데, 이들은 전국 곳곳에서 온 사람들이다. 삼성서울병원 같은 기업병원은 2000병상급 입원실만 갖추고 있는 것이 아니라, 전국의 응급환자까지 모두 빨아들이는 응급실을 보유했던 것이다.

그런데 정말 황당한 것은 2000병상이 모자랄 정도로 응급환자를 무리하게 받아 감염 환자를 무려 2박 3일 간이나 응급실에 대기시킨 사실이다. ‘슈퍼전파자’로 알려진 14번째 환자는 응급실에서 ‘폐렴’ 진단을 받고도 무려 2박 3일간 대기하다 결국 타병원 중환자실로 옮겨졌다. 그리고 그곳에 가서야 메르스 확진판정을 받았다. 응급실과 병상수용능력의 부조화는 결국 수익성 중심의 기업병원이 가진 자원배분의 몰상식을 반영한다.

환자를 우선 유치할 수 있는 응급실을 계속 확대하고, 병상회전율을 높이려다 보니 발생하는 황당한 의료구조인 셈이다. 이런 문제는 국민의료체계(의료전달체계)의 붕괴때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의료체계붕괴를 가속화시킨 장본인도 이런 기업병원들이다. 1990년 전후에 시작된 기업병원의 등장은 ‘전국구 병원’과 ‘메머드급 병원’으로 성장하기 위한 경쟁이 가속화되면서, 환자유치에 혈안이 된 것이다.

여기에 WHO 조사단 등이 문제로 삼은 가족간병 및 문병문화, 닥터 쇼핑 등 한국의 환자양태도 단순한 개인문화의 산물이 아니다. 사실 ‘닥터 쇼핑’은 주치의 제도의 부재가 가장 큰 원인이다. 이를 부추긴 것은 병원간의 무한 경쟁이다. 2000년대 중반부터 허용되어 지금 지하철, 버스에서 손쉽게 보는 병원 광고는 환자들의 닥터 쇼핑을 부추긴다. 여기에 TV 및 각종언론에 등장하는 ‘쇼닥터’ 그리고 기업병원의 교수 의사들도 한몫한다. 정부와 기업병원이 닥터쇼핑을 부추긴 것이다.

‘가족간병 문화’도 개인의 선택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다. 간병은 건강보험의 영역이 아니므로 병원에서 해야 할 역할이 아니라는 인식 때문에 잔존하는 것이다. 병상당 너무나 적은 의료인력때문에 간병서비스가 도입되지 못한 측면도 크다. 간병비에도 건강보험을 적용하는 것은 박근혜 대통령의 TV토론 공약이었지만, 아직 논의조차 되지 않고 있다. 단순히 돈 때문일까? 이는 문병 문화와도 맥락이 닿아 있다.

문병 문화를 개선하려면, 사실 문병 시간을 강제로 제한하면 될 일이다. 그러나 부대사업 확대정책 등으로 병원은 문병을 도리어 장려했다. 기업병원의 병원내 커피숍, 쇼핑몰, 식당, 매점 등은 문병객과 가족간병인들로 호황을 누렸다. 정부와 기업병원은 문병을 제한하기는커녕 이익을 위해 부대사업을 더욱 확대했다. 박근혜 정부는 부대사업을 더욱 확대시켜 아예 병원을 쇼핑몰로 만들 계획까지 가지고 있다.

따지고 보면 한국의 병원이용 문화도 모두 의료산업화의 산물이다. 의료로 돈을 벌려는 생각이 아니었다면, 남아있기 힘든 ‘문화’들이다. 의료영리화를 위한 노력의 일부만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에 썼다면, 아직까지 간병에 가족들이 동원되었을까? ‘환자 문화’ 탓하기 전에 의료산업화의 문제를 바로잡는 게 우선이다.

 

공공병원의 재발견
마지막으로 민간중심 의료공급으로 공공병원이 전무한 현실은 감염 확산의 근본 원인이다. 만약 평택에 지역거점 공공병원이 하나라도 있었으면 어땠을까? 아마 1차 환자 발병과 지역격리, 역학조사, 치료 등이 지역에서 이루어지고, 환자 확산이 제한되었을 것이다. 민간의료기관의 자원을 관리하려면 설득과 동의가 필요하다. 그리고 막대한 예산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병원 손실을 보전해주지 않고 민간의료기관을 움직이기 쉽지 않다. 이번에도 국립중앙의료원과 서울의료원 등의 공공의료기관이 우선적으로 메르스 환자 진료 및 격리치료에 동원되었다. 여기다 고위험성 감염질환에 필수적인 음압격리 병상은 대부분 공공병원에만 있었다. 국내 최고라는 삼성서울병원조차 수익성 때문에 음압격리 병상이 없어, 음압시설을 간이로 설치한 상황이다.

감염병 확산과 같은 재난상황에 공공병원이 최소한 전체 병상의 30%는 있어야 한다는 주장이 하루 이틀 나온 이야기가 아님에도, 진주의료원은 수익성을 이유로 폐원되었다. 결국 이번 메르스 사태는 처음부터 끝까지 민간의료체계의 폐해를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그리고 정부는 기업병원의 눈치를 보며 ‘비밀주의’를 고수했다. 국민들이 위험해 빠져있어도 병원의 영리를 우선시한 정부를 혼내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제 의료를 돈벌이로 보는 태도를 버려야 한다. 의료산업화의 방향이 변경되지 않는 이상, 제2, 제3의 메르스 사태는 계속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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