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15년 07월 2015-07-02   1355

[여는글] 대흥사 북암 미륵불

 

 

대흥사 북암 미륵불

 

 

글. 김균
경제학자. 현재 고려대 교수이자 참여연대 공동대표. 노년이 지척인데 아직도, 고쳐야 할 것들이 수두룩한 미완의 삶에 끌려다니고 있음. 그러나 이제는 인생사에서 우연의 작용을 인정함. 산밑에 살고 있음.

 

참여사회 2015년 7월호 (통권 224호)

 

지난 사월 초파일 무렵에 참여연대 새 공동대표인 법인 스님이 계신 해남 일지암을 다녀왔다. 대흥사는 예전에 한 차례 둘러본 적이 있지만 일지암은 초의선사와 관련해서 말만 들었지 초행이었다. 대흥사에서 걸으면 삼사십 분 정도 걸리는 거리였다. 일지암 마당에 서니 두륜산 북서쪽 줄기들이 편안하게 쭉 펼쳐지고 그 끝 서쪽 너머로 서해 바다가 숨겨놓은 보석처럼 반짝이며 눈에 들어왔다. 두륜산이 일지암을 가볍게 품고 있는 형상이라 할까. 뭔가 자잘한 걱정들이 없어지고 마음이 한가로워지는 그런 자리에 일지암이 있었다.

 

현세의 고통스런 삶을 위로하는 미륵불
산사에서 하루 밤을 지낸 다음 날 우리 일행은 두륜산에 오를 예정이었다. 스님은 아침에 몸소 타락죽을 쑤어 주셨고 북암행을 권했다. 다소간의 우여곡절 끝에 우리는 북암으로 올랐고, 거기서 굉장한 마애 미륵불을 만났다. 커다란 화강암 덩어리에 양각(돋을새김)으로 미륵불을 볼륨감 있게 새겨놓았는데, 일행 사이에서 터져 나온 첫 일성이 ‘대단한 포스다!’였을 정도로 내품는 기운이 범상치 않았다. 절에서 만나는 부처님들은 대부분 온화하고 평화롭고 자비롭다.

 

그래서 그 은근한 기운에 기대고 의지하고 싶어진다. 그런데 북암 미륵보살은 좀 달랐다. 여전히 온화하고 자비로웠지만 힘이 바깥으로 넘쳐 나오는 듯했고 직설적이었다. 어설프게 비유하자면 뜨거운 여름날 한참 달궈진 암릉 곁을 지날 때 느끼는 강한 바위 기운 같았다. 아마도 완벽한 균형미를 갖추지 못했기 때문에 화강암이라는 재질의 기운이 바깥으로 발산된 것이 아닌가 싶기도 했다. (이 불균형의 미는 석공의 의도였을 수도 있겠다.) 그런데 이 북암 미륵의 강한 기운은 그 앞에 선 사람을 위압적으로 압도하는 것이 아니라 묘하게도 그 힘의 자장磁場 안에 들어서면 미륵이 우리 삶의 고뇌와 고통이 모두 차단하고 보호해 줄 거라는 어떤 확신 같은 것을 주는 듯했다.

두륜산이 그리 높고 험한 산은 아니지만 그래도 이런 산꼭대기에 저렇게 크고 강한 기운을 내뿜는 북암 미륵불을 세운 천 년 전 고려 사람들의 원願은 무엇이었을까. 존재의 구원에 더해서, 미륵의 강력한 힘에 의탁하여 현세의 고통스러운 삶 또한 위로받고 보호받고자 하는 마음이 아니었을까. 평민들에게는 어쩌면 후자의 마음이 더 큰 원이었을 것이다. 지금 북암에 절하러 오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안동 근처를 지날 때마다 거의 빼지 않고 들리는 제비원 미륵상은 큰 바위 덩어리 위에 미륵불 두상을 얹어서 붙여놓았는데 이는 지축을 박차고 현세로 우뚝 솟아오르는 미륵의 하생下生을 상징한다고 한다. 자연석 바위를 몸통으로 삼고 그 위에 두상을 올려놓은 대담한 발상도 대단하고 미륵상의 힘찬 기상도 대단하다. 미륵보살이 미래에 올 부처이고, 도솔천에서 하생하여 중생을 구제해서 서역나라로 데리고 갈 부처라는 걸 생각하면, 제비원 미륵에는 미륵의 하생을 기다리는, 타력 구원을 기원하는 중생의 절절한 마음이 담겨있을 것이다. 그에 비해, 내 생각에 북암 미륵은 그 강한 미륵의 힘을 의지처로 삼아 현세의 삶의 고통을 직접 위로받고 또 벗어나기를 비는 옛날 사람들의 간절한 마음이 세운 염원이 아닐까 싶다. 그런 점에서 북암 미륵은 힘없고 약한 자의 편에 서는 제대로 된 종교의 보편적 속성과 일치한다.

 

천국은 어디에 있을까
그래서인지 이런저런 생각에 북암을 내려오면서 김민기의 ‘금관의 예수’의 노랫말이 자꾸 귀에 맴돌았다.

 

얼어붙은 저 하늘
얼어붙은 저 벌판
태양도 빛을 잃어
아 캄캄한 저 가난의 거리

 

어디에서 왔나
얼굴 여윈 사람들
무얼찾아 헤매이나
저 눈 저 메마른 손길

 

아 거리여 외로운 거리여
거절당한 손길들의
아 캄캄한 저 곤욕의 거리

 

어디에 있을까 천국은 어디에 
죽음 저편 푸른 숲에 
아 거기 있을까

 

오 주여, 이제는 여기에 
우리와 함께 하소서

 

일지암으로 되돌아와 밤에 한지로 연등을 만들어 암자 곳곳에 매달았다. 색색갈의 연등이 절집의 어둠을 아름답게 물들였다. 평화였다. 그 때 연등 만들고 걸던 우리의 마음은 미륵보살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잠시나마 닮으려 했던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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