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15년 09월 2015-08-31   1230

[읽자] 인간으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감정, 혐오

 

인간으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감정, 혐오

 

글. 박태근 알라딘 인문 MD
온라인 책방 알라딘에서 인문, 사회, 역사, 과학 분야를 맡습니다. 편집자란 언제나 다른 가능성을 상상하는 사람이라 믿으며, 언젠가 ‘편집자를 위한 실험실’을 짓고 책과 출판을 연구하는 꿈을 품고 삽니다.

혐오는 살면서 종종 마주할 수밖에 없는 감정이다. 더럽거나 징그러운 것을 보았을 때 소름이 돋거나 소스라치게 놀라고,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뒷걸음질 치는 장면을 떠올리면 되겠다. 이런 혐오는 일시적이고 자기 안에서 자연스레 정리가 된다. 그런데 인종, 종교, 성별이나 성적 지향에 대한 혐오는 어떤가. 여기에서 혐오는 “일반적인 증오의 감정을 일컫는 말이 아니라 소수자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을 가리키는 말”로 쓰이고, 배제와 차별로 이어져 폭력에 다다른다. 일시적 감정이 아니라 구조적 감정이고, 개인에 그치는 게 아니라 사회에 영향을 미치는 ‘문제’인 것이다.

 

참여사회 2015년 9월호 (통권 226호)

● 증오하는 입_혐오발언이란 무엇인가
모로오카 야스코 지음 /오월의 봄

 

혐오발언은 차별과 폭력이다
이웃나라 일본에서는 최근 몇 년 동안 ‘혐오발언’이 사회 문제로 떠올랐다. 특히 재일조선인을 대상으로 벌어지는 차별 시위는 폭언에 가까운 외침으로 일본사회를 충격에 빠뜨렸다. 이런 활동을 주도한 ‘재일특권을 용서하지 않는 시민 모임(재특회)’은 조선학교 앞에서 혐오발언을 외치고 학교 시설을 파괴하는 등의 도를 넘어선 증오범죄로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이들은 자신들의 활동이 공익을 목적으로 하는 ‘표현의 자유’라 주장했으나, 법원은 “재일조선인의 기본적인 자유와 평등을 막으려는 목적이 분명하다”며 손해배상을 인정하는 판결을 내렸다.

앞선 이야기는 『증오하는 입』의 첫 장면이다. 이 책은 일본 내 재일조선인 차별 문제와 관련한 소송을 주로 맡은 변호사 모로오카 야스코의 저작으로, 재일조선인뿐 아니라 중국인, 브라질인, 이주노동자와 그 가족, 오키나와 선주민족 등 일본사회에 만연한 혐오발언과 증오범죄를 고발한다. 또 이런 상황이 왜 발생하고 지속되는지 역사적·구조적 원인을 밝힌 후, 여러 나라가 어떻게 혐오발언에 대처하고 인종차별 철폐 정책을 전개했는지 살핀다. 혐오발언의 본질은 소수자에 대한 차별과 폭력이며, 따라서 이를 드러내는 건 표현의 자유로 볼 수 없고, 이미 상식으로 자리 잡은 국제인권의 기준에 맞춰 법으로 제재해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한다.

 

참여사회 2015년 9월호 (통권 226호)

● 여성혐오가 어쨌다구?_벌거벗은 말들의 세계
윤보라·임옥희·정희진·시우·루인·나라 지음 /현실문화

 

혐오의 문법에서 벗어날 탈출구
일본 사례지만 멀게만 느껴지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비슷한 유형의 혐오가 한국에도 이미 넓게 퍼졌기 때문이다. 『여성 혐오가 어쨌다구?』는 여성학자, 인권운동가, 문화연구자 등 여섯 명의 필자가 한국사회의 여성 혐오를 입구로 삼아 왜 혐오가 여성을 표적으로 삼는지 분석해 혐오의 문법을 드러내고, 여기에서 벗어날 수 있는 탈출구를 상상하고 제안한다.

“여성 혐오는 공기와 같은 ‘자연스러운’ 현상이기 때문에 그것이 문제화되었을 때만, 우리는 공기에 이상이 생겼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러므로 어떤 의미에서는 문제는 여성 혐오 자체가 아니라 ‘지금, 여기’”라는 여성학자 정희진의 말에서 만연한 문제의 심각성을 확인하고, “혐오 발언 안에는 주목을 통해 자신이 행위 주체임을 인정받으려는 ‘주체화의 열정’이 들어 있다. 무기력하고 무의미한 삶에서 주목받을 수만 있다면 무슨 짓이든 할 수 있다는 의미에서 혐오는 격렬한 열정 중 하나”라는 임옥희의 분석에서 우리 안에 숨은 혐오의 욕망을 읽고,“혐오라는 괴물이 노리는 것은 단지 성소수자, 이주민, 여성, 또 다른 소수 집단에 그치지 않는다. 우리가 서로 미워하길 바라는 자들은 누구인가. 혐오가 파괴하는 누군가의 존엄은 나의 존엄과 어떻게 연결되는가. 이런 질문에 함께 답해야 할 때”라는 인권운동가 나라의 제언에서 혐오가 왜 나의, 그리고 모두의 문제인지 깨닫는다.

 

참여사회 2015년 9월호 (통권 226호)

● 혐오와 수치심_인간다움을 파괴하는 감정들
마사 너스바움 지음 / 민음사

 

혐오는 왜 법의 근거가 될 수 없는가
저명한 법학자이자 정치철학자인 마사 너스바움의 『혐오와 수치심』은 앞서 소개한 현실 문제를 이해하고 조정하는 데 도움이 될 이론적 배경을 제시한다. 그는 “우리는 인간이기 때문에, 즉 여러 가지 면에서 위해와 손상을 입기 쉬운 취약한 존재이기 때문에 법을 필요로 한다”고 전제하고, 이 때문에 법은 감정과 밀접한 연관을 맺을 수밖에 없다고 설명한다. 문제는 제목에서 강조하듯 혐오와 수치심이란 감정이 법의 제정과 집행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 또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의 문제다.

너스바움의 태도는 분명하다. 혐오가 역사에서 어떻게 이용되었는지 살펴본 후 그가 내린 결론은 이렇다. “지배 집단은 자신이 지닌 동물성과 유한성에 대한 두려움과 역겨움을 느끼게 하는 집단이나 사람에게 혐오를 드러냄으로써 이들을 배제하고 주변화해 왔던 것이다.” 따라서 “나는 혐오에 강하게 반대하는 입장을 취하면서 그것이 어떠한 행위를 범죄 행위로 규정하는 일차적 기반이 되어서는 안 되며, 현재 하고 있는 것처럼 형법에서 죄를 무겁게 하거나 경감시키는 역할을 해서도 안 된다고 주장한다.” 

인간은 유한하고 불완전하다. 나도 그렇고 상대도 그렇다. 그런데 혐오는 경계를 만들고 그들과 나를 분리시켜 그들을 악에, 나를 선의 자리에 억지로 가져다 놓는다. 이는 상호 의존과 상호 책임을 바탕으로 서로의 불완전함을 인정하고 이를 보듬는 사회를 구성하는 게 아니라 일방적이고 폭력적인 위계를 만들어 스스로 인간의 존엄을 포기하는 일이다. 혐오는 상대를 인간에서 멀어지게 하는 듯 보이지만, 실제로는 나를 인간으로부터 멀어지게 한다는 걸 명심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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