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15년 10월 2015-10-02   493

[듣자] 자유를 향한 절규

자유를 향한 절규

모차르트 교향곡 K.183

 

글. 이채훈 mbc 해직 PD
MBC에서 <이제는 말할 수 있다>와 클래식 음악 다큐멘터리를 연출했다. 2012년 해직된 뒤 ‘진실의 힘 음악 여행’ 등 음악 강연으로 이 시대 마음 아픈 사람들을 위로하고 있다. 저서『클래식, 마음을 어루만지다』, 『클래식 400년의 산책』등.

“모차르트, 용서해 주게! 자네를 죽인 건 바로 날세.”
영화 <아마데우스>의 첫 장면, 정신병원에 수용돼 있던 살리에리가 큰 소리로 울부짖는다. 문을 박차고 들어가 보니 살리에리가 면도칼로 자살을 기도하고 있다. 충격적인 이 순간에 울려 퍼지는 음악, 모차르트 교향곡 25번 G단조다.

영화 <아마데우스> 중 모차르트 교향곡 25번 G단조 K.183

이 음악을 듣고 싶다면?
http://youtu.be/hXBXlfqDjpA (1:55부터)

“모차르트, 용서해 주게! 자네를 죽인 건 바로 날세.”
영화 <아마데우스>의 첫 장면, 정신병원에 수용돼 있던 살리에리가 큰 소리로 울부짖는다. 문을 박차고 들어가 보니 살리에리가 면도칼로 자살을 기도하고 있다. 충격적인 이 순간에 울려 퍼지는 음악, 모차르트 교향곡 25번 G단조다.

 

 

영화 <아마데우스>를 통해 우리나라 음악 팬들에게 널리 알려진 G단조 교향곡, 그때까지 모차르트 작품에서 볼 수 없었던 비극적 감정이 폭발한다. 몸부림치듯 격동하는 당김음으로 시작하고, 4대의 호른이 육중한 무게를 더한다.

모차르트가 17살 때인 1773년 10월 작곡한 이 교향곡에서 그는 자유를 갈구한다고 외친다. 봉건 영주의 속박을 더 이상 받아들이지 않겠다고 선언한다. 모차르트는 그해 3월, 세 번째 이탈리아 여행을 마치고 돌아왔다. 바로 그때, 모차르트의 생애를 규정하는 중요한 변수가 하나 생긴다. 세상을 떠난 잘츠부르크 대주교 슈라텐바흐(1698~1771)의 후임으로 3월 12일 콜로레도(1732~1812)가 부임해 온 것.

 

참여사회 2015년 10월호 (통권 227호)

콜로레도 대주교. 그가 모차르트의 여행을 제한한 것은 당시에는 별로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자유 없이 살 수 없었던 모차르트는 대주교에게 격렬히 반발했다.

 

슈라텐바흐는 매우 보수적인 인물이었지만 모차르트 가족의 여행에 대해서 너그러웠다. 모차르트 가족이 오랜 기간 자리를 비우면 임금을 주지 않았을 뿐, 이렇다 할 간섭을 하지 않았다. 그는 ‘잘츠부르크의 기적’ 모차르트가 유럽 곳곳을 누비며 홍보 사절 노릇을 하고 있으니 그리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슈라텐바흐보다 훨씬 젊은 콜로레도는 좀 달랐다. 그는 계몽 군주로서 잘츠부르크의 교회, 학교, 법원, 의료, 행정을 개혁하려 했다. 하지만 그의 개혁은 봉건제도의 틀을 엄격히 지키는 테두리 안의 개혁이었다. 그는 당시 귀족의 하인에 불과했던 음악가에게 자유를 줄 생각이 전혀 없었다. 그는 모차르트를 궁정 부副악장에 임명하며 보수를 세 배 올려주었지만, 대신 여행의 자유를 엄격히 제한했다.

 

모차르트는 자기의 음악적 소명을 이미 자각하고 있었다. 잘츠부르크라는 작은 도시에 자신의 음악을 가두어 두는 것은 이 소명을 저버리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콜로레도가 지배하는 잘츠부르크에 평생 갇혀 있어야 한다는 것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 오페라 작곡가로 성공하겠다는 모차르트의 꿈은 확고했다. 그러나 오페라 극장이 없는 잘츠부르크에서는 불가능한 꿈이었다. 콜로레도 대주교는 대중 집회를 위한 극장을 새로 지었지만, 오페라 극장으로 활용되던 잘츠부르크 대학 강당을 폐쇄해 버렸다. 이래저래 모차르트는 잘츠부르크를 벗어나야만 했다.

 

모차르트가 G단조 교향곡을 작곡한 것은 바로 이 시점이었다. 합스부르크 제국의 수도였던 빈에는 ‘질풍노도Strum und Drang’의 바람이 격하게 불고 있었다. 이 새로운 흐름을 체험한 17살 모차르트는 외부 세계의 압력, 특히 정치권력의 족쇄가 인간의 자유를 질식시키는 현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음악학자들은 이 G단조 교향곡에 ‘질풍노도’ 운동의 흔적이 보인다고 지적한다. “그동안 모차르트 안에서 몇 번씩 불타올랐던 정열적이고 염세적인 기분이 가장 격하게 표현됐다.” (헤르만 아베르트) “기적과 같은 작품이다. 완전히 개인적인 고뇌의 체험에서 나온 감정으로, 모든 악장에서 이러한 특성이 분명히 나타난다.” (알프레드 아인슈타인)

 

콜로레도 대주교는 이 반항적인 교향곡에 어떻게 반응했을까? 여느 때처럼 즐겁고 편안한 음악을 기대하고 있었는데 뜻밖에 격렬한 음악이 나오자 당황했을 수 있다. 불쾌해 하며 모차르트에게 어떤 의도가 있을지 잠시 생각해 보았을지도 모른다. 분명한 것은 이 곡이 당시로서는 매우 충격적인 음악이었다는 점이다. 1악장의 템포 지시어는 ‘알레그로 콘 브리오allegro con brio, 빠르고 힘차게’, 모차르트가 이 지시어를 사용한 것은 이 곡 하나 뿐으로, 매우 이례적이었다. 훗날 베토벤이 <영웅>과 <운명> 첫 악장 등에서 즐겨 쓴 지시어로 된 이 1악장은 베토벤의 열정을 예감케 한다.

 

참여사회 2015년 10월호 (통권 227호)

G단조 교향곡 K.183은 당시 유럽을 휩쓴 ‘질풍노도’의 세례를 받은 작품이다. 이 작품에서 모차르트는 자기만의 고유한 목소리로 자유를 선언하고 있다.

 

모차르트는 자유 없이 살 수 없는 사람이었다. 그의 교향곡 중 번호가 붙어 있는 41개 중 단조로 된 곡은 25번 K.183과 40번 K.550 두 곡 뿐인데, 둘 다 비극적 조성인 G단조로 돼 있다. 25번을 ‘작은 G단조’, 40번을 ‘큰 G단조’라 부르기도 한다. 자유를 갈망했지만 아직 봉건제의 울타리를 벗어날 수 없던 시절에 만든 ‘작은 G단조’는 젊은 모차르트가 자기 목소리로 외친, 인간 선언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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