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15년 10월 2015-10-02   2625

[통인] 뜨는 동네 쫓겨나는 사람들, 위기의 서촌을 가다 – 서촌주민 장민수·신창희

뜨는 동네 쫓겨나는 사람들,
위기의 서촌을 가다

 

참여사회 2015년 10월호 (통권 227호)

장민수 서촌주거공간연구회 공동 대표
신창희 서촌 플라워카페 운영자

 

글. 박유안 기웃기웃 번역가. 알트 출판사에서 일하는 그는 ‘까칠해도 친절하게’가 삶의 모토이며,
‘쟌 모리스를 번역한 작가’로 기억되길 바란다. 밤엔 주로 땅고 추며 논다. 맘 놓고 춤 출 좋은 세상을 염원한다.

사진. 박영록

 

 

서촌은 나지막하다. 건너편 광화문역 인근은 온통 오피스텔에 고층건물들이지만, 인왕산과 북악이 품어 안은 서촌은 청와대 근처라서 아직 나지막하고, 곳곳에 일제강점기 때 지어진 한옥들도 북촌만큼은 아니더라도 여전히 건재하다. 낡은 한옥은 낡은 자동차 값이 떨어지듯 그 값어치가 떨어지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 한옥이 서촌에 있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서촌에 수성동 계곡을 복원하는 등 공공투자가 이뤄지고, 예술가들과 흥미로운 가게들이 들어서고, 카메라를 든 뚜벅이들이 몰리기 시작하면서 낡은 한옥이 딛고 선 땅값이 오른다. 땅주인은 땅값이 오르는 데 하등 한 것이 없으나, 땅값 오르고 나면 그 땅의 소유권자가 온갖 갑질을 부릴 수 있게 되어 있으니….

 

그 와중에서 집과 일터 곳곳에서 우리의 도회살이가 위협받고 있다. 즐기며 살아가지 못하면 견디며 살아가는 거라도 해야 할 텐데, 그마저도 힘겨운 곳들로 얼룩진 우리의 도시. 색다른 도회살이를 즐기고자 한 서촌 주민 두 분을 만났다. 그들은 토지가치의 상승 바람 속에서 무지막지하게 변하는 서촌을 겨우겨우 견디고 살아왔는데, 이젠 그마저도 힘겹다.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이라는 낯선 말을 아는 당신이라면 이들의 이야기가 처절하다 못해 가슴 저밀 것이다. 그렇지 않은 분이라도, 이들이 서울의 아름다운 동네 중 하나인 서촌을 왜 저리도 포기하지 못해 애타하는지 깊이 공감할 것이다. 내 동네를 좀 더 멋진 곳으로, 향기 나는 곳으로 만들고자 했던 사람들이 그 멋과 향기 탓에 오히려 동네에서 내몰리고 있는 어처구니없는 현실은, 도대체 누구를 위한 것일까? 아니, 이렇게 묻자. 이 땅은, 이 도시의 땅은, 누구의 것인가? 땅 주인 따로, 그 땅에 멋과 향기를 불어넣는 사람 따로, 그 불일치에서 모든 불화는 비롯된다.

 

 

서촌이 “뜬다”는데, 그게 무슨 말인가? 예전에는 어땠는데, 지금은 어떻게 바뀌고 있다는 건가? 
신창희
서촌 산 지는 15년 정도? 여기서 플라워카페를 한 건 8년쯤 됐다. 맘만 먹으면 산에 오를 수 있고 오순도순 동네의 정취가 살아 있는 곳이었다. 여기 살면서 ‘목욕동아리’ 친구들도 생겼다. 15년 지기로 목욕탕에서 만나며 애 낳고 키우는 걸 본 사이들이다. 이해타산 필요 없이 동네 이웃으로 살아가는 느낌들을 갖는 게 서울에서도 가능한 곳이었다. 

 

그런 분위기가 달라지기 시작한 건 언제부터인가?
신창희, 장민수
4~5년 전부터 분위기가 바뀌기 시작했다. 2011년 무렵이다. 
신창희 단적으로 집주인이 월세 올려달라는 얘기를 직접 안 하고 내용증명을 보내기 시작한 게 그때부터다. 8년 전 주택가 한복판에 꽃문화를 알리는 사랑방 개념의 카페를 열었을 때 주변엔 아무것도 없었다. 3년 뒤쯤 옥인아파트 앞의 홍차집 티아트가 문을 열었고….
장민수 그 홍차집도 아파트 헐린 뒤 사람들이 몰리면서 임대료가 올라 결국 가게 문을 닫았다. 

 

사람들이 많이 몰린 게 수성동계곡이 문을 연 탓이라고 보면 되는 건가? 
신창희
수성동계곡도 그렇고, 박노수 가옥을 60억에 매입한 것도 그렇고, 공공투자가 많이 이뤄졌고 홍보도 활발했다. 
장민수 또 하나, 박노수 가옥 매입 이전에 통인시장에 도시락카페가 생긴 것도 크게 기여했다. 사실 수성동계곡을 열 때는 기대도 많이 했다. 석축이 두 칸씩 더 높게 설계된 걸 환경운동연합과 함께 낮추라고 요구해 지금 모습이 된 거다. 인공미가 덜 하게 해달라고 말이다. 그런데 지금 와서 보니 그런 게 오히려 지역의 발목을 잡는 꼴이 되고 말았다. 

 

2015년 서울, 젠트리피케이션 논란이 한창인 이 거대도시에서 사실 이런 일은 비일비재하다. 재주는 곰이 넘고 돈은 왕서방이 챙긴다고 했던가. 지역의 가치를 끌어올리는 일은 사회적으로 이뤄진다. 서촌에서 보듯 공공투자 및 지역주민과 상인들의 문화자본 투자로 지역이 뜨는데, 그 덕분에 오른 땅값과 임대료는 땅주인의 뱃속만 채운다. 『상생도시』의 저자 조성찬 박사는 “개발이익 사유화는 사회의 것을 기업과 개인이 훔치는 ‘사회적인 도둑질’이며, 이를 방치하며 오히려 조장하는 국가는 과거 기업의 산파 혹은 보모 역할을 하던 친기업적 개발주의 국가의 면모를 채 벗어나지 못한 채 조세 형평성을 크게 왜곡하는 장본인”이라고 꼬집는다. 
동네가 뜨고, 임대료가 치솟고, 동네를 띄운 가게들이 문 닫고, 프랜차이즈 가게들만 들어서고, 동네는 특색을 잃고 번다해진 동네에서 주민들의 삶은 오히려 번거로워지고…. 이런 악순환을 방치한 국가는 대체 왜 뒷짐만 지고 있는 걸까? 혹시 우리 사회의 지배 엘리트들이 모두 땅주인이라서 그런 걸까, 라는 의구심을 떨칠 수가 없다. 

 

지역사회의 가치를 끌어올린 문화자본 역할을 하던 거점공간들이 임대료 압박 때문에 지역에서 쫓겨나는 통상적인 의미의 젠트리피케이션 말고, 우리가 모르는 다른 어떤 일도 있었나?
장민수
서촌주거공간연구회 내부의 젠트리피케이션도 있었다. 환경운동연합 앞에 종로기업이라는 술 도매 기업이 5~6층 건물을 짓는다고 할 때 사람들이 모여 반대운동을 한 게 모태였는데, 초창기 구성원들은 외국 박사 천지였다. 토박이 주민들로서는 너무 고마운 일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외지인들 다 떠나고 순수 주민들만 남았다. 다들 나름의 이해관계와 욕심을 갖고 참여했던 거다. 지금은 상업시설 잠식에 따른 주거기능의 축소 문제만 다루고 있다. 그게 주민들로서는 제일 절실한 문제다. 예전의 박사님들은 자기 전공의 시각에서 서촌을 봤다면, 지금 우리 연구회의 주민들은 절실한 삶의 시각에서 마을을 보고 문제를 찾고 고치려 한다. “서촌을 아이들에게 고향으로 물려줄 수 있게 유지하자”는 게 우리의 바람이다. 아이들이 자랄 수 있는 마을로 지키고 싶은 거다.

 

참여사회 2015년 10월호 (통권 227호)

 

이대로 놔두면 그런 마을이 망가지고 말 거라는 위기의식이 있다는 건데, 어떤 데서 그런 걸 느끼시나?
장민수
통인시장 도시락카페의 출범만 봐도 그렇다. 원래 그 시장은 배추 사서 김치 담그는 전통시장이었다. 그런데 도심 인근 주거지로 매력적인 입지 탓에 주민 구성이 바뀌면서 어느새 반찬을 사 가는 시장으로 바뀌었고, 그런 가게들을 이리저리 엮어 엽전을 이용하는 도시락카페까지 생겨난 거다. 전국 어디에나 전통시장은 있지만, 통인시장처럼 대박 난 곳은 없다. 거기엔 배후지로서의 주거지들이 든든한 배경이 된 거다. 이 주거지에서 문화도 나오고 마을의 힘도 나온 건데, 그걸 상업시설들의 등살에 밀려 쪼그라들게 내버려둬서는 안 된다. 그래서는 서촌에서 새로운 이야기가 나올 수 없다. 동네가 지속가능하게 발전하려면 주거지의 매력, 아이 키우기 좋은 동네로서의 매력이 꼭 필요하다.

 

상가임대차보호법은 2000년대 초반 참여연대가 주도해 시민입법으로 만들어져 임차인들의 권리를 지키고 있는 법이다. 이 법의 보호를 받고 있다고 느끼나?
신창희
법이나 제도의 보호를 받고 있다는 생각은 한 번도 못해봤고, 사실 내가 임대인의 횡포를 겪기 전엔 있는 줄도 몰랐다. 네 번의 내용증명을 받은 뒤 5년의 구두계약을 맺었는데, 갑자기 주인집 차를 우리 카페의 나뭇가지가 긁었으니 당장 나가라는 얘기까지 들었다. 
장민수 그래서 최근 맘편히장사하고픈상인모임(맘상모)에서 지역에 나와 설명도 하고 그랬다. 임대인의 횡포 문제는 참 안타깝다. 공동체의 활력을 유지시켜 거기에서 이익을 얻으려는 게 아니라, 오리 배 갈라 알 꺼내먹는 식으로 대응하는 건물주들이 많다. 요즘 주차 문제 불편해도 차 팔고 이 동네 골목의 한옥으로 이사 오는 젊은이들은 또 다르다. 같은 집주인들이라 해도 동네를 보는 시각차가 아주 크다. 
다른 뜨는 동네에서 잔뼈가 굵은 부동산 브로커들이 이 동네에도 여러 명 진출해 활개를 치고 있다. 나이 드신 가옥주들을 꼬드겨 임대료 올리는 법, 임차인 내쫓는 법을 일러주고 대신 그 물건을 자신이 중개하도록 차지하는 수법을 쓰는 사람들이다. 

 

맘상모처럼 공동체의 활력을 지키려는 외부세력이 있나 하면, 돈의 매력에 중독되어 농간질하는 외부세력도 있다니…. 
장민수
부동산계약 문제도 개선이 필요하다. 변호사 없이 진행되는 한국 방식은 허술할 수밖에 없다. 변호사의 공증 제도를 동반한 뉴질랜드 시스템 같은 걸 도입하는 게 필요하지 않을까? 참여연대 같은 단체에서 연구를 해야 할 문제다. 
신창희 임차인들이 임대인의 횡포 앞에서 속수무책 가게를 떠나야 하는 상황이 속출하고 있으니, 임대차보호법의 규정들도 좀 더 촘촘하게 손을 봐서 이런 횡포가 가능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신창희 님 어머님은 금천교시장에서 생선구이집을 하신다고 들었다. 거기도 가게들 물갈이가 많다고 하던데?
신창희
엄마도 가게 비우라는 통보를 받았다. 새벽시장 다니고 가게 일 하시고, 그 틈틈이 맘상모 운동까지 하신다. 한 번도 그런 적이 없었는데, 요즘 들어 엄마 얼굴 보면 너무 힘들어 하신다. 부동산 브로커들에게 당했다며 분해하시는데, 그래도 맘상모 활동 하시면서 큰 위안을 얻으신다. 

 

상가임대차보호법의 태생이 참 독특하다. 입법청원 운동을 통해 만들어진 것 아닌가. 느슨한 곳이 많다면 앞으로도 그런 운동을 통해 바로잡아야 하나?
신창희
당하는 입장이 되고 보니 필요한 게 한둘이 아니다. 구청에서 사업자 신고 받을 때 사업자 즉 임차인의 권리에 대한 교육도 있었으면 좋겠다. 어떤 걸 보호받을 수 있는지, 어떤 걸 주의해야 하는지, 알려줘야 하는 거 아닌가? 홍성한우 사장님은 공무원하다 오신 분이다. 그런 분도 전 재산과 연금을 한우 집 만드는 데 쏟았는데, 이제 가게 비워달라는 날벼락을 맞았다. 

 

참여사회 2015년 10월호 (통권 227호)   참여사회 2015년 10월호 (통권 227호)

서촌가옥의 모습(좌)과 쫓겨날 위기에 놓인 상가(우)

 

노동조합이 처음 만들어지면 제일 먼저 하는 게 노동법 공부 모임이듯이, 임차인들에게도 자신이 모르던 권리가 있었다는 걸 교육하고 스스로 깨닫도록 해야 한다는 말씀이 인상적이다.
신창희
맘상모에서 홍성한우에 와서 하는 게 그런 모임이다. 법의 운용에 있어서도 질서 유지 측면만 강조하지 말고 사회정의의 실현 측면도 이제는 좀 고려해야 하는 시점이 아닌가 한다. 대한민국 자영업자들의 비율이 30퍼센트에 이른다고 한다. 불이익을 받는 이 많은 사람들을 국가는 언제까지 방치해 두기만 할 건가?

 

젠트리피케이션의 물결이 이처럼 거세다니, 또 그걸 이용해 지역에 들어와 농간질하며 자신의 잇속을 채우려는 무리들도 있다니 놀랍다. 하지만 또 거기엔 불가피한 측면도 있다. 그래서 더더욱 피해 받는 이들을 위한 운동의 필요성도 커지는 듯한데, 마지막으로 한 말씀씩 부탁드린다. 
장민수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동네를 바라보는 시각은 주민들 사이에서도 크게 다르다. 가장 큰 차이는 ‘속도’에 있다. 빨리빨리주의자들은 후다닥 뭔가를 만들어 개발이익을 차지하려 한다. 하지만 늦어져도 괜찮다는 분들은 굳이 빨라야 할 거 없다며, 늦어진 사이에 서로 교류하고 함께 생각하며, 차근차근 애정 어린 시각으로 동네를 바라보려 한다. 우리는 그런 사람이 한 명이라도 늘어나게 마을을 지켜갈 거다. 
신창희 돌아가시면 어쩌나 할 정도로 엄마가 힘들어 하시는 거 보면 정말 맘이 아프다. 그래도 쫓겨나는 거 어쩔 수 없다며 받아들이시는 거 같아 한편으론 맘이 좀 놓인다. 그래도 맘상모와 함께하며 “내가 할 수 있는 한 최대한 한다”며 다짐하고 있으시다. 정말 엄청나게 힘들고 어이없는 일 많다. (긴 한숨) 

 

 

가족의 생존권을 가게 하나에 걸고 있는 자영업자들의 비율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건만, 정작 법과 제도를 만드는 기득권층은 그들의 한숨과 눈물을 외면한다. 어쩌면 그 한숨과 눈물 덕에 호의호식하는 이들이, 믿고 싶지 않지만, 그들인 걸까? 
그렇지 않다면, 정말 권력자들도 영세자영업자들의 고통에 공감한다면, 이제라도 대표적인 불로소득인 임대료에 대한 효과적인 통제장치를 사회적으로 마련하는 데 발 벗고 나서야 한다. 도시공간의 멋과 향기는 누가 봐도 공동체의 자산이다. 하지만 그 과실은 ‘조물주보다 더 높은 건물주’가 독차지한다. 공동체의 것은 공동체에게로! 이 원칙 하나만 법과 제도에 담아내도, 지금 같은 “건물주 천국, 임차인 지옥”의 풍속도는 크게 개선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야만 우리 함께 사는 모습이 ‘상생도시’라는 이름값을 할 터이다. 

 


젠트리피케이션 gentrification이란?

구도심이 번성해 중산층 이상의 사람들이 몰리면서, 임대료가 오르고 원주민이 내몰리는 현상. 중세 말 근세 초 영국의 중간계급이었던 젠트리gentry에서 유래했다. 젠트리는 귀족작위를 지니지 않은 지방의 지주계급으로, 근세 초 중세 장원에서 소작농들을 몰아내고 토지를 사유화함으로써 부를 축적하는 엔클로저 운동enclosure movement을 주도했다. 엔클로저는 초기 자본주의 의 전형적인 자본축적 방법이었는데, 소작농의 실업과 이농을 통한 저임금 도시노동자화, 농가의 황폐화, 빈곤의 증가 등 가혹한 부작용을 낳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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