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16년 07월 2016-06-29   1072

[특집] 여성혐오 사유하기

특집2_강남역 10번 출구

 

 

여성혐오 사유하기

 

 

글. 시우 문화연구자

 

 

 

혐오라는 표현을 이해하는 일은 쉽지 않다. 혐오에는 다양한 감정의 결이 담겨있고, 혐오를 의미화하는 데에는 복합적인 문화정치학이 작동하기 때문이다. 상대와의 연결성을 부인하고 접촉을 거부하는 역겨움, 상대를 적으로 상정하고 자신의 행복을 위해서 상대를 공격하는 적대감, 자신에게 불안과 위협을 일으키는 상대를 밀어내고 상대에 대한 분노를 드러내는 증오, 상대에게 폭력을 행사하지 않으면 자신의 삶의 기반이 무너질 수 있다고 믿는 불안, 문제가 있다고 여겨진 상대를 바로잡기 위해서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사랑 등이 혐오라는 표현에 녹아들어있다. 마찬가지로 여성혐오라는 언어 역시 단순하지 않다. 개인을 여성으로 호명하고 낙인찍으며 환원하는 메커니즘을 가리키는 표현이자, 여성에게 가해지는 차별, 폭력, 멸시, 비하를 아우르는 포괄적인 용어이며, 여성 집단과의 동시대적 공존을 거부하고 여성적이라고 불리는 영역의 가치를 평가절하하는 경향을 가리키는 말인 여성혐오는 여러 차원에 걸쳐서 다층적인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여성혐오 문제를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이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여성혐오라는 언어가 통용되기 전에도 여성혐오적 현상은 존재해왔다. 페미니스트들이 그간 가정폭력, 데이트폭력, 성폭력, 성차별, 성별 위계, 성 착취, 성적 대상화, 남성지배, 가부장제, 이성애규범, 이원 젠더 체계 등의 지적 도구로 설명해왔던 상황과 여성혐오가 가리키는 현상은 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물론 여성혐오라는 언어의 등장이 그간의 페미니스트 유산을 그대로 계승했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뜻은 아니며, 동시에 여성혐오라는 언어로 차별과 폭력의 문제를 제기한 세대가 기존의 페미니스트 논의와 무관하다는 뜻도 아니다. 여성혐오를 가지고 젠더 정치학을 전개하는 이들은 다른 페미니스트 활동가, 연구자, 단체와의 차별성을 강조하지만, 한국 페미니스트 지형과 역사는 훨씬 복잡하다. 현재 한국사회에서 여성혐오는 그 의미가 확장되는 과정에 놓인, 독특한 결을 가지고 있는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강남역 행진

지난 5월 21일 오후 강남역과 사건 현장을 오가는 ‘강남역 여성혐오 살인사건 추모행진’이 수백명의 시민들이 참여한 가운데 열렸다. ⓒ 오마이뉴스

 

설치고 떠들고 말하고 생각하는 사람들
여성혐오를 둘러싼 논쟁에는 혐오라는 표현이 주는 무게감과 직접성에 대한 불쾌감을 호소하는 이들도 참여하고 있다. ‘명시적인 폭언을 하거나 물리적인 폭력을 행사한 것이 아닌 경우에도, 여성혐오라고 주장하는 것은 과도하다’, ‘특별한 기준이나 구체적인 근거 없이 주관적 판단과 감각적 이해에 기초해서 특정 현상을 여성혐오라고 명명하는 것은 합리적이지 않다’, ‘문제의 책임을 남성 일반에 두는 듯한 접근은 문제를 해결하기보다 갈등을 양산할 우려가 있다’ 등 여성혐오라는 분석 도구의 정당성을 질문하는 이들도 있다. 여기에 대해서 여성혐오를 중요한 문제틀로 채택한 이들은 여성혐오는 가시화된 폭력뿐만 아니라 상징적 의미체계와 인지적 동의체제까지 포함하는 개념이고, 감정적 판단은 이성적 상황인식과 상호배타적인 것이 아니라 상호보완적이며, 여성혐오가 문제 삼는 것은 개별 남성 혹은 남성 일반이 아니라 위계적인 구조와 권력 관계라고 주장하면서 여성혐오를 둘러싼 논쟁을 풍성하게 하고 있다.

여성혐오는 여성에 대한 증오, 경멸, 편견 등을 가리키는 ‘misogyny’의 번역어로 소개되어 한국사회의 다양한 현상을 설명하는 프레임으로 활용되고 있다. 여성혐오 및 여성혐오가 일으킨 논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특정한 상황을 여성혐오라고 이름 붙여도 괜찮은지 아닌지가 아니라 여성혐오라는 명칭이 가리키는 고통, 상실, 폭력, 차별, 억압의 자리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초월적인 심판관의 위치에서 ‘얼마만큼 심각해야 여성혐오라고 불릴 수 있는지’ 물으며 명명의 자격을 심사하기보다, ‘왜 어떤 사람들은 여성혐오라는 표현을 통해서 자신의 삶과 동료의 경험, 사회적 현실과 세계의 구성을 설명하게 되었는지’ 그 맥락을 살펴보는 것이 더욱 생산적이다. 더불어 여성혐오 논의를 단순히 남성 가해자 논의로 번역하는 것은, 어떠한 입장에 근거해있든지 상관없이 지나치게 단순한 접근으로, 여성혐오 논의와 남성성 논의의 다층적인 관계를 포착하는 데 실패한다.

 

유독한 남성성의 형성
여성혐오에 대한 여러 페미니스트 이론이 있지만, 최근 한국에 알려진 페미니스트 이론 중의 하나는 이브 세지윅의 남성 동성사회성 논의다. 오독의 우려를 무릅쓰고, 동성사회성 논의를 거칠게 요약해서 설명하자면, (규범적인) 남성이 되기 위해서는 다른 남성의 인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즉, ‘나’를 남성으로 받아들이는 다른 남성의 존재 없이 ‘나’는 남성이 될 수 없다. ‘나’와 상대 남성은 현존하는 권력 관계로 인해서 결코 그럴 수 없지만 동등하다고 여겨지며, 이 평등한 형제애의 공동체에서 규범적 남성성이 형성된다. 남성 동성사회성은 남성 사이의 평등한 관계를 깨뜨릴 수 있는 요소를 배제하고, 평등한 관계를 확인시키는 (더 정확히는 부여하는) 요소를 도입한다. 전자는 남성 동성 간 성적 친밀성을 금지하는 것이고, 후자는 여성을 거래하는 것이다. 조금 어렵게 표현하자면, 남성 사이의 사회적 유대와 성적 유대의 연속적 성격을 부인하면서 동성애혐오를, 여성과 남성의 상호주체성을 인정하지 않으면서 여성혐오를 요청한다고 할 수 있다.

흔히 남성성을 태어날 때 남성으로 지정받은 이들이 가지고 있는 본질적 속성이나 내재적 자질로 이해하는 것과 달리, 남성 동성사회성 논의는 남성성이 사회적으로 구성된다는 점을 알려준다. 규범적인 남성 주체가 되기 위해서 개인은 여러 조건을 충족시켜야 하는 것이다. 규범적 남성의 위치에 놓인 개인이라고 해서 안심할 수 없다. 다른 남성으로부터의 계속적인 인정은 개인의 존재 자체로 보장되지 않음으로, 성원권을 획득하기 위한 꾸준한 관리와 부단한 노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또한 계급, 국적, 나이, 섹슈얼리티, 인종, 장애 형태, 지역 등은 남성 사이의 차이를 반복적으로 환기하면서, 헤게모니를 지닌 남성과 그렇지 않은 남성 사이의 차이를 심화시킨다. 이에 남성 동성사회성 경제에 참여하는 모든 이들은 규범적 남성성을 체현하는 과정에서, 다른 말로 표현하면 ‘진짜 남성’이 되고자 애쓰는 과정에서, 다른 남성과의 끊임없는 경합을 포함한 다양한 차원의 부담과 불안을 겪는다.

물론 남성 동성사회성 경제에 복무하지 않고 창조적인 방식으로 자신을 구성해나가는 것을 통해서 부담과 불안에 대처할 수도 있다. 실제로 성찰적 대화를 이어가고 다양한 탐색을 시도하면서, 규범적 남성성에 도전하고 동성애혐오와 여성혐오에 저항하는 이들이 조금씩 늘어가고 있다. 하지만 다른 남성을 비롯한 주변 사람들의 인정을 단념하는 일, 직간접적으로 주어지는 가부장적 배당금을 포기하는 일, 자신 또한 연루되어 있는 폭력의 지점을 마주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특히 여성혐오에 대한 문제제기가 이루어지면서 기존의 젠더 상황이 재조직되는 변화가 ‘위기’로 독해되면서, 몸과 마음이 경직되고 오히려 동성애혐오와 여성혐오가 강화되는 효과가 나타나기도 한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우리가 목격하는 것은 유독한 남성성toxic masculinity으로, 여성으로 지목된 이들에게 잔인한 폭력을 가하면서도, 피해자를 비난하고 자신의 무고함을 주장하는 남성들, 그리고 남성 가해자의 폭력을 옹호하고 지배구조와 공모하는 남성들의 모습이다. 여성혐오를 비판하는 이들은 유독한 남성성이 개인뿐만 아니라 개인이 맺고 있는 관계와 개인이 속한 세계 또한 중독시킨다는 사실을 지적하면서, 이를 넘어서기 위해서 다채로운 개입과 구조적인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을 강조한다.

 

그래서 여성혐오가 어쨌다구?
여성혐오는 한국의 동시대적 젠더 상황을 이해하는 유용한 접근이자 세계를 정의롭게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이들에게 통찰을 주는 프레임이다. 여성혐오라는 분석도구는 감정을 정치화하고 경험을 의미화하는 새로운 방식을 제안하고, 한국 사회에 깊숙하게 자리 잡은 차별과 위계의 문제를 드러내는 데 기여할 수 있다. 물론, 여성혐오가 모든 현상에 가장 적합한 해석을 제공할 수 있는 것은 아니며, 다른 페미니스트 언어와 비교해서 가장 뛰어난 것 역시 아니다. 여성혐오라는 표현이 복합적인 맥락을 매끈하게 만들 때도 있고, 교차하는 위계를 인식하는 비판적인 사유를 막을 때도 있다. 그러나 여성혐오에 맞선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문제를 개인의 불행이나 어쩔 수 없는 일로 치부하는 무책임한 논리를 비판하고, 구조와 권력, 위계에 도전할 수 있는 동료를 만나고 ‘다른 세계가 가능하다’는 자신감을 얻는 일은 중요한 변화의 시작이 될 수 있다. 앞으로도 여성혐오를 둘러싼 논의가 폭넓게 이루어져서, 유독한 남성성이 중화되고 성평등이 실현되는 일에 더 가까워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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