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16년 09월 2016-08-31   1287

[정치] 제왕적 대통령과  권력기관

 

제왕적 대통령과 
권력기관

 

 

글. 이용마 MBC 해직기자
정치학 박사. 서울대 한국정치연구소 연구원. 관악산의 맑은 공기를 마시며 자연의 아름다움과 인간의 부지런함의 공존 불가를 절실히 깨닫고 있는 게으름뱅이.

 

오용된 ‘제왕적 대통령’
김무성 전 새누리당 대표가 최근 ‘제왕적 대통령’를 거론하며 “이대로 가면 나라가 망한다”고 비판했다. 김 전 대표는 그 해결방안으로 “권력을 나누어야 한다”고 제시했다. 평소 김 전 대표가 주장해온 분권형 대통령제를 다분히 염두에 둔 발언이다.

우리나라에서 제왕적 대통령이라는 말이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언제쯤일까? 이승만부터 전두환까지 소위 ‘권위주의’ 시대를 오래 겪었으니 그 언젠가 이 용어가 등장했을 것으로 추측하기 쉽다. 대통령의 말 한마디에 합법이 불법이 되고, 불법이 합법이 되던 때였으니까. 하지만 이는 잘못된 착각이다. 

제왕적 대통령이란 말이 주로 사용된 것은 김영삼 정부와 김대중 정부 시절이다. 왜 군사독재 시절을 건너뛰어 ‘민주 정부’에 와서 이 용어가 사용된 것일까? 실제 대통령의 권한이 그렇게 막강한 것일까? 이 용어가 등장한 것은 민주 정부의 대통령이 보유한 강력한 권한 때문이라기보다 민주 정부가 시행한 민주적 개혁 조치 때문이다. 양 김 씨가 집권 뒤 개혁을 추진하자, 기득권 세력들이 ‘제왕’이란 말에 초점을 두어, 개혁이란 이름으로 대통령이 멋대로 전횡을 부리는 것처럼 비난을 하며 저항을 한 것이다.

그 뒤 제왕적 대통령이란 말은 현재의 5년 대통령 단임제를 비판하는 고유명사처럼 되었고, 현 정치제도의 모든 문제는 제왕적 대통령제에서 비롯되는 것인 양 확산되었다.

 

참여사회 2016년 9월호(통권 238호)

 

박근혜 정부와 제왕
그렇다면 대한민국 대통령은 ‘제왕적’ 특성이 전혀 없는 것일까? 박근혜 대통령이 ‘여왕’으로 불리는 현실을 보면 꼭 그렇다고 말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절대 안 된다고 외치던 정부가 대통령의 말 한마디에 전기세를 깎아주겠다고 한다든지, 사드배치지로 성주 내 제3의 지역을 검토한다든지, 태영호의 망명 사실을 즉각 공개하는 행태 등이 바로 그 증거들이다.

하지만 이런 식의 즉흥적인 행태 이외에 보다 고질적인 측면이 있다. 대통령이 검찰총장과 국정원장, 국세청장, 경찰청장 등 4대 권력기관과 KBS, MBC, YTN, 연합뉴스 등 공영언론의 인사권을 모두 장악하고 있는 점이 바로 그것이다. 대통령은 이들 권력기관을 이용해 언제든지 자신의 정적이나 밉보인 인사들을 쳐낼 수 있다. 반대로 자신에게 우호적인 인사들의 비리나 잘못은 언제든 눈감아 줄 수 있다.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과 관련한 일련의 상황이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정보기관이 이석수 특별감찰관과 관련한 자료를 빼내, 공영방송 MBC에 넘겨 보도하도록 하고, 청와대가 이를 국기문란 사건으로 규정하며 우병우의 방어막을 치는 시나리오다. 검찰은 과연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살아있는 권력’을 상대로 과연 소신을 펼 수 있을까?

지금까지 검찰은 ‘권력의 사냥개’ 혹은 ‘하이에나’ 속성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여야가 충돌하거나 청와대와 관련된 수사에서 항상 일방적으로 임명권자인 대통령의 편을 들었고, 이를 위해 가해자와 피해자를 뒤바꾸는 일도 서슴지 않았다. 노무현 대통령의 NLL북방한계선, Northern Limit Line 관련 남북대화록 공개, 국정원의 불법선거운동, 국정원 여직원 감금 논란, 정윤회 등과 관련한 청와대 문건 유출 사건, 채동욱 전 검찰총장의 혼외자 사건 등 일일이 거론하기도 힘들 정도다. 그 결과 검찰이 기소한 당사자 대부분이 무죄 판결을 받았지만, 해당 검사들은 오히려 승승장구했다. 하지만 이제 주인이 바뀌는 임기 말이 된 만큼 과거 주인을 물 때가 되지 않았을까?

 

권력기관장에 대한 민주적 통제
분권형 개헌을 한다면 제왕적 대통령의 이런 폐해는 사라질까? 만약 이 모든 권력기관장의 임명권을 또 다시 총리 한 사람이 독점한다면 그 때는 ‘제왕적 총리’라는 말이 나오지 않을까? 그럼 ‘제왕적 총리’를 해체하기 위해 또 개헌을 해야 하나? 개헌은 제왕적 대통령의 문제를 푸는 해법이 아니다. 유일한 해법은 권력기관에 대한 아래로부터의 민주적 통제를 확보하는 것이다. 대통령이 비록 선거로 뽑혔다고 해서 대통령 멋대로 권력기관을 움직인다면 그건 민주주의를 가장한 독재일 뿐이다. 특히 지금처럼 권력의 논리만 횡행하는 시대일수록 법과 상식이 통할 수 있도록 권력기관을 바로 세워야 한다. 그 방법이 선거든, 추첨이든, 권력기관장의 임명권을 대통령으로부터 국민에게 돌려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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