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16년 10월 2016-09-30   19791

[통인] 피디에서 감독으로, 국정원과 맞장 뜨는 탐사보도의 베테랑

피디에서 감독으로, 
국정원과 맞장 뜨는 탐사보도의 베테랑

최승호 뉴스타파 프로듀서

글. 박유안
기웃기웃 번역가. ‘알트’ 출판사에서 일하는 그는 “까칠해도 친절하게”가 삶의 모토이며, “쟌 모리스를 번역한 작가”로 기억되길 바란다. 밤엔 주로 땅고 추며 논다. 맘 놓고 춤 출 좋은 세상을 염원한다.
사진. 박영록

참여사회 2016년 10월호 (통권 239호)

피디 최승호’와 ‘감독 최승호’ 사이에는 대한민국의 현실이 어둡게 가로놓여 있다. ‘대한민국의 현실’까지 들먹이다니, 너무 거창하다고 생각하는가? 그럼, ‘대한민국 언론의 현실’은 어떤가? 그에 대해선 누구도 부인하기 어려우리라.

최승호가 누구인지 모른다 해도, 아마 <피디PD수첩>은 알 것이다. MBC의 간판 프로그램이던 <피디PD수첩>이 잘 나갈 때, 거기 한국 탐사보도의 거두, 피디PD저널리즘의 선봉장 최승호가 있었다. 그의 올곧은 탐사보도 정신 덕분에 우리는 ‘황우석 사건’의 전말과 ‘4대강의 비밀’을 알 수 있었다. 그는 지난 7월 뉴스타파에서 삼성 이건희 회장의 성매매 의혹을 보도하기도 했다. 살아 있는 권력에 맞서는 게 숙명인 피디저널리즘. 그러다 미운 털이 박힌 그는 얼토당토않은 이유로 해직자가 되더니, 해직무효 소송의 최종 승소를 앞두고 있다. 

10월 13일 개봉을 목표로 한창 시사회가 진행 중인 영화 <자백>은 최 피디가 감독으로 변신해 국정원의 간첩조작 사건을 다룬 작품이다. 물론 멀티플렉스 개봉관 구하기에 난항이 예상된다. 가진 무기라곤 오로지 “국민들이 진실을 알아야 제대로 된 미래를 선택할 수 있다”는 저널리즘 정신 하나뿐인 최 피디는 그 기개 하나로 국정원과 맞장 뜨는 이 영화를 만들었다. “공영방송이 제 기능을 다하고 있었다면, <자백>을 만들 이유가 없었다”고 얘기하는 최 피디를 만나 ‘감독 최승호’와 ‘피디 최승호’, 그리고 한국 언론의 앞날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개봉을 앞둔 영화 <자백>을 통해 이제 영화감독이 되었다. 아직도 ‘피디 최승호’가 더 익숙한데 다큐영화까지 만들다니?
예전엔 후배들이 다큐영화 한다고 하면 “그럴 시간에 탐사보도물을 제대로 만들어 세상을 바꿔야지, 예술 하냐?”며 핀잔주곤 했다. ‘황우석’이나 ‘검사와 스폰서’ 같은 보도물을 방송하면 다음날 난리가 나고 세상이 바뀌는 게 팍팍 느껴졌다. 그런데 이번에 간첩조작사건인 ‘유우성 씨 사건’의 실상을 취재해서 다 밝혔는데도, 세상이 안 바뀌더라. 국정원이 변한 것도 없고. 방송이 죽은 거다. 방송이 죽은 시대를 맞아 나는 비로소 영화에 주목했다. 영화라는 매체를 통해 강력한 여론을 형성할 수 있다. 요즘 보니, 검사를 다룬 영화는 다 성공하더라. (웃음) 

1시간 40분의 러닝타임이 지루하지 않게 흘러간다는 영화 <자백>은 ‘21세기 액션 블록버스터 저널리즘’이란 수식어를 내걸고 있다. 최 피디가 세상을 바꾸기 위해 선택한 제2의 매체, 영화. 국정원이라는 국가권력이 어떻게 탈북자의 거짓 자백으로 간첩사건을 조작했는지, 왜 국정원 합동심문센터에서 숨진 한종수 씨 사건은 미궁에 빠지고 말았는지 등을 보여줌으로써 최 피디는 관객들이 국정원 개혁의 필요성에 공감하기를 바란다. 

왜 하필 국정원의 간첩조작사건인가?
취재를 많이 했던 분야고, 아주 극적인 구조를 보여주는 사건이다. 또 중요한 문제 아닌가. 국정원을 바꾸는 건 한국사회에 아주 결정적인 일이다.

국정원을 왜 바꿔야 하는가? 국정원의 어떤 문제를 시민들에게 알리고자 하는 건가?
국정원은 국민들의 통제 밖에 있는 권력이다. 국정원장이 국회에 나와 “국가기밀이다”라며 답변을 거부해도 된다. 답변을 해도 ‘여야합의’가 있어야만 언론에 공개할 수 있다. 가령 검찰이 국정원 직원을 수사하려면 국정원장 허가를 받아야 한다. 언론이 아무리 물어도 국정원의 대답은 “답변할 수 없다”가 대부분이다. 답변하지 않아도 되는 면허를 지닌 셈이다. 나아가 그건 조작해도 된다는 면허다. 간첩조작을 그렇게 많이 했는데도 질문에 답하지 않으니까, 그게 결국 조작 면허 아닌가. 정권이 바뀔 때마다 새 정권의 맘에 들게만 하면서 국정원 내부의 어두운 이야기들은 죄다 감춘 채 수십 년을 흘러온 게 바로 국정원 권력이다. 국민의 권력이 국정원을 제대로 통제할 필요가 있다. 

이 시대에 간첩조작이라니, 도대체 왜 국정원은 그런 일을 벌이는 건가?
<자백>의 마지막 부분에 김진태 새누리당 의원이 “한국엔 최소한 2만 명의 간첩이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하는 부분이 나온다. 그러자 황교안 법무부 장관도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며 맞장구친다. 그런 식으로 불안감을 조장하고, 그 증거로 간간이 조작된 간첩을 보여주는 거다. 그런 상황에서 자유로운 상상이나 의견은 억압된다. 

국정원에 의해 간첩으로 내몰리는 개인의 인생은 대체 어떻게 될지, 너무 끔찍해 상상하기도 싫다. 
그래도 최근에 조작의 대상이 된 분들은 변호하는 변호사나 보도해주는 뉴스타파 같은 언론이 있어서 억울함의 정도가 조금 덜하다. 유우성 씨, 홍강철 씨 등이 그런 경우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는 온 가족이 풍비박산 나고 말았다. 재심을 청구해 무죄판결을 받는 경우는 희귀하다. 가족도 없이 혼자 고립되어 살다 정신이상이 된 재일교포도 있다. 그러다보니 통계마저 없을 정도다. 국가기관이 저지른 일이니 국가가 나서서 체계적으로 조사하고 실상을 밝히는 게 마땅하지 않은가. 노무현 정부 때 진실화해위원회에서 많은 걸 했지만, 전체 경우를 두고 보자면 아직도 멀었다. 

참여사회 2016년 10월호 (통권 239호)
참여사회 2016년 10월호 (통권 239호)
10월 13일 개봉 예정인 영화 <자백> 포스터(좌)와 시민들로 가득찬 시사회장(우).

카카오에서 기록적인 스토리펀딩을 거두고 영화를 만들었고, 한창 시사회가 진행 중이라는데 반응들은 어떤가?
어제는 대구에서 펀딩 참가자들 및 단체관람 대상으로 시사회를 했다. 중년여성들은 “가슴이 찢어졌다”고 하고, 대학생들은 “도대체 믿어지지 않는다”는 반응이 쏟아졌다. 대구MBC 기자는 “아마 80년대 대학생들이 대학에 들어가 광주사태 비디오를 보며 받았던 충격을, 지금 대학생들이 <자백>을 보며 받는 거 같다”고 표현했다. 실제 벌어지고 있는 간첩조작의 증거들이 대법원 판결이란 형태로 명확하게 제시되고 있으니, 부정할 수는 없는 노릇이고, 그런 일이 막상 대한민국에서 벌어지고 있다는 게 너무 상상 밖이라 충격이 큰 것이다. 

개봉이 이제 코앞인데, 어려움은 없는가?
개봉을 하려면 멀티플렉스가 스크린을 열어줘야 하는데, 그런 부분에서 어려움이 크다. 스토리펀딩 참가자 4만 3,500명에 뉴스타파 회원까지 5만 명의 시사회가 진행 중이다. 5만 명의 관객이 확보되어 있고 돈을 준다는데도 롯데, CGV는 시사회용 스크린을 열어주지 않고 있다. 본 개봉 여부부터 결정이 되어야 한다는 대관규칙을 들먹이는데, 사실은 거부감이나 두려움 때문 아니겠나. 10월 13일이 개봉일인데 그때까지도 이런 태도를 보이면 타격이 클 수밖에 없다. <귀향>의 경우도 개봉 1주일 전까지 확답을 주지 않았다고 하니, 우리도 아마 개봉 직전에라야 여부를 알 수 있을 것 같다. <귀향>은 아주 옛날 일인데다 국민들 대다수가 공감하는 주제인데도 그랬다. <다이빙벨>처럼 민감한 주제에 대해선 끝까지 개봉을 거부했다. 

왜 이 영화를 시민들이 봐야 하는지, 볼 수 있게 되어야 하는지, 시민들에게 호소한다면?
국정원을 바꾸는 건 우리 사회, 우리 자식 세대의 미래를 위해 꼭 필요한 일이다. 그리고 국정원 바꾸기는 정말 어렵다. 분단과 대치 상황에 따른 공포가 우리 맘속에 깊이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국정원을 건드리면 북한에 대한 대응력이 떨어진다고 하니까. 그렇지만 자식들이 행동도 자유롭고 생각도 보다 자유로운 세상에서 살려면 국정원을 바꿔야 한다. 남북관계를 꼬아버리는 의도된 기획이 우리 생존을 위협할 수 있다는 걸 명심해야 한다. 이라크전쟁은 대량살상무기가 있다는 거짓정보 때문에 일어났고, 엄청난 생명을 앗아갔다. 우리 같은 경우는 그보다 더 파괴적인 일이 더 쉽게 일어날 수 있다. 국정원을 믿지 못하는 상황에서 어떻게 국가지도자들이 위급한 순간 중요한 결정을 내릴 수 있겠나. 국정원도 국민 앞에 진실을 말하게 해야 한다. 문제가 있으면 샅샅이 조사하고 처벌해야 한다. 그게 가장 기본이다. 

국가정보원이 국가조작원인 상황에서는 국민 전체를 큰 위협에 빠뜨릴 수 있다는 얘기가 섬뜩하게 와 닿는다. 이제 ‘피디 최승호’ 이야기를 해보자. MBC에서 해직될 때 ‘파업 배후조종’ 혐의를 받았다던데?
(웃음) 그랬다. 전직 노조위원장이었으니까 솎아낸 거다. ‘직장질서 문란’을 내세우긴 했지만 말이다. 서울과 지방에서 2천 명의 조합원이 참여한 파업인데, 일개 조합원인 내가 거기 참여했다고 해고를 시키다니, 경영진이 엄청난 무리수를 둔 거다. 이미 노조위원장까지 해고 무효 판결을 받았고, 나도 곧 대법원에서 해고 무효 결정이 날 것으로 본다. 

해고 무효 판결이 나면, MBC로 복직하는 건가? 
 공영방송 개혁을 위해 내가 할 일이 있다면 당연히 거기에 몸담을 거다. 

이를테면 국정원의 진실을 공영방송에서 제대로 국민들에게 알릴 수 있는 실정이라면, 이번처럼 영화 <자백>을 만들 일도 없었을 거라고 했다.
물론이다. 공영방송이 제대로 서 있었다면 국정원이 이런 간첩 조작을 할 수도 없었을 거다. 우리 취재로는 노무현, 김대중 정부 때는 간첩조작이 없었다. 이명박 정권 들어서자마자 간첩조작이 재개됐다. ‘원정화 사건’도 본인은 부인하지만, 조작이라고 밖에는 볼 수 없는 여러 증거들이 있다. 그 사건이 일어났을 때 공영방송이 정상적인 상태여서 자유롭게 보도했다면 그때부터 조작에 대한 문제제기가 일어났을 테고, 그 후의 조작 시도도 어려웠을 거다. 결국 공영방송이 제 기능을 못해 유우성 씨 사건까지 일어나게 된 거다. 

안타까운 일이다. 공영방송이 제대로 된 역할을 하게 하려면, 무엇부터 바꿔야 하나?
김재철, 고대영, 길환영 등 나쁜 공영방송 사장들이 와서 해놓은 짓들을 원상회복시키는 일부터 필요하다. 장기적으로는 공영방송 지배구조를 바꿔 정파적 이해관계로부터 자유롭게, 중립지대에서 활동할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 사실을 사실대로 보도할 수 있도록 하는 공영방송으로 거듭난다면 지금과 같은 항구적인 갈등과 여론 분열을 극복할 수 있다. 

세월호 관련 여론 분열은 정말 심각하다. 세월호 관련 탐사보도의 실종 탓에 지금의 국론 분열이 일어났고, 그에 바탕한 권력의 전횡이 가능했다는 지적이 생각난다. 
그렇다. 공영방송이 제대로 역할을 하고 있었다면 당시 사건이 벌어졌을 때 KBS가 헬기를 현장에 아주 빨리 보내 중계를 시작했을 거다. 그런데 방송이 정부에 억눌려 있다 보니, 정부의 눈치만 보면서 정부의 규제와 통제를 따르려고만 했다. 그래서 헬기가 늦게 갔고, 해경의 제지에 현장 접근을 그만두기도 했다. 현장의 상황이 어떤지를 빠른 시간에 영상으로 보도했다면, 아주 다른 대응이 나오지 않았을까 싶다. KBS와 MBC는 혼선 투성이 정부의 정보를 그날 오후 4시까지 되뇌기만 했다. 정부와 대통령도 잘못했지만, 정부가 그렇게 된 데는 언론의 책임도 굉장히 크다. 검증되지 않은 정부의 정보가 보도를 타고, 그걸 또 정부가 믿는 최악의 연쇄작용이 벌어졌다. 뉴스타파가 지적한 정부의 책임에 대한 탐사보도물이 공영방송에서도 다뤄졌다면, 정부의 대응에 대해 지금처럼 국민들의 의견이 분열되지는 않았을 거다. 사고 의혹에 대해 반드시 짚고 가야 확실한 재발방지가 가능하다는 데로 의견이 모였을 텐데, 그렇지 못하다 보니 정치적으로 악용되어 진상조사 요구가 마치 유족들의 한풀이처럼 보이도록 하는 여론마저 만들어지고 말았다. 

참여사회 2016년 10월호 (통권 239호)

공영방송의 보도 기능이 제 역할을 못하는 시대에, 뉴스타파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찾고 있으신데?
잘려서 뉴스타파에 합류한 저 같은 경우보다, (웃음) 탐사보도 하겠다면서 꿈의 직장을 박차고 나온 친구들이야말로 정말 대단하다. KBS 탐사보도팀을 설계하고 지휘했던 김용진 대표(심층 탐사보도의 꽃을 피운 그는 이명박 정권 때 울산KBS로 쫓겨났고, 박근혜 정권으로 이어지자 뉴스타파를 새로 만들었다), 불방 논란 끝에 ‘훈장’ 시리즈를 결국 뉴스타파에서 방영한 최문호 에디터 등 KBS에 사표 던지고 나온 사람들 말이다. KBS는 사실 MBC보다 사정이 그나마 낫다. 조용히 숨어 지내며 좋은 세월 오기를 기약하려면 그럴 수도 있는 조직이니까. 그런 대단한 열정과 각오, 능력을 지닌 인재들이 모여드는 곳이니까 뉴스타파가 앞으로도 한국 탐사보도의 메카 지위를 유지하리라 믿는다. 탐사보도에 뜻을 두는 기자나 피디는 유별나고 드문 존재들이다. 몇 십 년 동안 방송계에 몸담은 나도 많이 보지 못했다. 걸핏하면 소송 당하고 권력자들과 싸워야 하는 탐사보도란 게 달콤한 영역은 아니지 않은가. 쉽고 폼 나는 다른 분야로 많이 몰리지, 탐사보도 인력 기르기는 공영방송에서도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런 면에서 뉴스타파는 아주 중요한 진지다. 앞으로 좋은 정부가 들어선다 해도 뉴스타파는 다른 데가 넘볼 수 없는 자기만의 정체성을 지니고서 지속가능한 구조로 활동할 것이라고 본다. 

탐사보도 베테랑으로서 앞으로 꼭 해보고 싶은 탐사보도 영역이 있다면?
우선은 영화 <자백>을 성공시켜 국정원을 좀 바꾸고 싶다. 국방, 안보 분야가 워낙 불투명해 위험하다고 느낄 때가 많다. 탐사보도를 통해 그 위험을 통제할 수 있어야 한다고 본다. 

꾸준히 권력을 감시하고 경종을 울리는 일에 매진한다는 점에서 뉴스타파와 참여연대는 많은 부분 겹친다. 탐사보도라는 험로를 개척하고 있는 뉴스타파, 그곳의 베테랑 최승호 피디에게 거는 기대도 그래서 크다. 
우리는 국정원과 언론의 보도를 정말 믿고 싶은 시민들이다. 그 첫 단추는 어쩌면 <자백> 개봉부터 일지  모른다. 시민들의 힘을 모아 하나하나 바꾸어가는 일, 멀티플렉스 개봉관마다 <자백>이 걸리는 일로부터 시작해도 좋겠다. 실상을 알아야 어떤 변화든 일으킬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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