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16년 10월 2016-09-30   1445

[특집] 게임의 룰을 바꾼  바르셀로나 시민정치

특집3_받아라, 시민정치

 

게임의 룰을 바꾼 
바르셀로나 시민정치①

 

글. 이선희 참여연대 미디어홍보팀 간사, 참여사회 기자

 

 

“선거는 최선이 아니라 차악을 뽑는 것이다.” 선거철이 되면 심심치 않게 들리는 말이다. 어차피 ‘좋은 정치인’은 없으므로 ‘덜 나쁜 정치인’이라도 뽑는 것이 낫다는 의미다. 그러나 ‘차악’을 뽑는 것이 최선으로 여겨지는 사이 우리가 도달한 곳은 ‘헬(지옥)’이다. 취업난, 노인빈곤, 육아전쟁 등 삶의 기본선을 위협하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것은 물론 세월호 참사, 가습기 살균제, 사드, 4대강, 핵발전소 등 생명마저 위협하는 문제들을 해결하라고 아무리 많은 사람들이 요구해도 정치권은 이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시민들의 삶과 정치권이 괴리된 상황에서 여러 나라의 시민들은 주어진 선택지를 거부하고, 스스로 새로운 선택지를 만들고 있다. 이 글에서 주목한 사례는 스페인이다. 2015년 5월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는 신생정당 바르셀로나 엔 코무가 기성정당을 물리치고 지방선거 득표율 1위를 기록했다. 뒤이어 치러진 간선②에서 바르셀로나 엔 코무 소속의 아다 콜라우는 다른 당 소속 시의회 의원들의 지지를 확보해 바르셀로나 시장으로 선출되었다. 그들은 말한다. “(우리의 목표는) 한 정당에서 다른 정당으로 집권당을 교체하는 것이 아니라, 정치를 하는 게임의 룰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것이다.” 

 

광장의 열기가 제도권 정치로
바르셀로나가 이런 변화를 선택하게 된 계기는 200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전 세계에 불어닥친 금융위기로 인해 바르셀로나에는 일자리를 잃거나 대출금을 갚지 못해 주택이 압류되어 쫓겨나는 사람들이 속출했다. 아다 콜라우 역시 대출금을 갚지 못해 거리로 나앉게 되었고, 그녀는 자신과 처지가 비슷한 사람들과 함께 2009년 ‘주택담보대출 피해자들을 위한 플랫폼PAH’을 창립했다. PAH는 5년 동안 800명이 넘는 시민들을 강제 퇴거로부터 지켜내며 스페인 전역으로 확산되었다. 전국에 200여 개 이상의 지부를 둔 강력한 대중조직으로 성장한 PAH는 2014년 6월, 15M운동③에 열성적으로 참여했던 시민들과 함께 새로운 정당인 ‘바르셀로나 엔 코무’를 설립했다. 

바르셀로나 엔 코무는 온라인 플랫폼을 기반으로 급성장한 포데모스를 비롯한 5개 신생·군소정당, 그리고 정당에 소속되지 않은 풀뿌리 지역네트워크와 활동가들, 양심적 학자와 전문가들이 고루 참여한 선거연합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들은 민의를 대변하지 않고 특권계급으로 변모한 주류 정당으로는 자신들의 문제를 풀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신생 정당을 만들었고, 다양한 그룹과 개인 간의 느슨한 연대와 역동성을 존중하면서 수평적으로 연대했다. 아다 콜라우 스스로도 자신은 외부에 가장 많이 노출된 ‘얼굴 마담’일 뿐, 자신이 당의 중심이나 상부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이들은 정치권과 연결된 유력한 인물, 막강한 자금력, 오랫동안 공들여 만든 조직이 있어야만 이길 수 있다는 공식을 깨고 완전히 다른 방식의 시민참여를 통해 선거에서 승리했다. 선거자금부터 크라우드펀딩 방식으로 모았으며, 선거공약도 온-오프라인의 모두 합해 5,000명 이상이 참여해 집단적 수정과 투표를 거쳐 만들었다. 

 

참여사회 2016년 10월호 (통권 239호)

모든 것은 시민이 정한다
다양한 정파 및 집단, 개인의 정치적 연대체를 의미하는 콘플루엔시아 형태의 바르셀로나 엔 코무는 정당을 운영하는 방식도 기존 정당과 다르다.

첫 번째 원칙은 ‘연대하되 흡수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5개 군소정당뿐만 아니라 15M 운동에 참여한 풀뿌리 조직들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각각의 정체성을 최대한 보장하면서 아래로부터 의제를 모아 조율하고 주제별 토론으로 정책 담론을 풍성하게 한다. 집행부는 일방적으로 지시하는 것이 아니라 연합회의를 제안하거나 주제별 분과 위원회의 요구를 ‘조정 및 협의’하는 데 중점을 둔다. 전략적 결정이나 내부조직 운영에 대한 중요 사항은 모든 구성원들에게 참여 기회가 열려 있는 총회에서 결정한다. 소수 당관료로 구성된 중앙위원회나 최고위원회가 중요한 의사결정을 하는 기존 정당과 다른 모습이다. 

많은 구성원들의 의견은 어떻게 수렴할 수 있을까? 투명하고 공개적인 의사결정 방식에 답이 있다. 가령 선거공약 결정 할 때, 바르셀로나 엔 코무는 주제별 분과위원회로부터 44개의 정책 제안을 받은 후 온라인 의사결정 플랫폼인 ‘데모크라시OS’를 통해 시민들이 수정안이나 새로운 제안을 건의할 수 있게 했다. 개별 제안들 중에서 가장 많은 지지를 받은 16개를 추리고, 수정·발전된 초기 제안 44개를 합쳐 총 60개를 정리한 후 ‘아고라 보팅’이라는 온라인 투표를 통해 우선순위 40개를 선정하는 방식이다. 

다양한 사람들은 자유롭게 의사를 개진할 수 있지만, 당에서 따라야 할 윤리규약도 엄격하다. 윤리규약을 준수하기로 서약한 후보들만 선거나 공직에 나갈 수 있으며, 약속을 지키지 않을 경우 당적을 박탈할 수 있다. 윤리규약 역시 1차 작성된 규약을 놓고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다양한 수정을 거쳐 확정되었다. 규약은 ▷ 후보 시절 선거 공약을 지킨다, ▷ 누구와 만나 무엇을 논의했는지 업무상 일정과 회의록을 공개한다, ▷ 재산 내역을 공개 한다, ▷ 공약을 정당한 이유 없이 제대로 실행하지 못한 경우에는 견책이나 파면을 받아들인다, ▷ 공직에 종사한 사람은 유관기관에 취업할 수 없다, ▷ 취약계층과 정기적으로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청취하고 응답한다 등이다. 

 

새로운 시대의 새로운 정치
바르셀로나 엔 코무의 행보도 앞으로 더 지켜봐야 하고, 그들의 내용을 우리나라에 그대로 적용할 수는 없다. 300석 중에 75%인 253석이 소선거구제 방식으로 선출되는 지역구 의원인 우리나라에서 새로운 인물, 새로운 정당이 제도권에 진입하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전국 5개 지역에서 500명의 서명을 받아야 가능한 정당 설립요건이나 국회의원 후보 1인당 1,500만 원에 달하는 기탁금 제도도 시민이나 신생정당의 정치참여를 가로막는 요소다. 유권자 운동에 대한 제약이 많아 시민들의 정치활동도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그렇지만 중요한 것은 ‘000 현상’처럼 특정한 누군가가 혼탁한 세상을 바꿀 것이라는 믿음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현대 민주주의가 선거와 대의민주주의 위에 있다는 점에서 좋은 후보자에게 투표하는 것은 여전히 의미가 있다. 그러나 어떤 정치적 관심이나 참여 없이 ‘차악’을 뽑는데 그치거나 그마저도 하지 않으면 현실을 바꿀 수 없다. 미국의 버니 샌더스, 영국의 제레미 코빈, 스페인의 아다 콜라우도 시민들의 적극적인 정치 참여를 통해 탄생했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렇게 뽑은 정치인이라고 하더라도 끊임없이 감시하고 견제해야 한다. 예외 없이 권력은 고이면 썩는다. 시민들의 지속적인 정치참여는 그래서 더 중요하다. “정치는 정치인에게 맡기라”는 말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시민들이 시 행정과 예산에 참여하는 마드리드의 웹사이트에는 쓰여 있는 말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직접 민주주의는 인권을 옹호하고, 소수자를 대변하는 데 효과적이다. 직접민주주의는 대의제 민주주의를 대체하거나 손상시키지 않는다. 오히려 대의제 민주주의가 풀지 못하는 문제들을 해결함으로써 그 한계를 보완한다.” 

 


①    이 글의 스페인 시민정치에 관한 내용은 <듣도 보도 못한 정치>(문학동네, 이진순 외)의 내용을 바탕으로 썼다.
②   스페인의 마드리드나 바르셀로나 같은 도시의 지방정부는 중앙정부처럼 내각제 방식을 채택해, 시의회에서 간선으로 시장을 선출한다. 
③   15M운동 혹은 ‘분노한 사람들’이라는 뜻의 인디그나도스(Indignados) 운동이라고도 한다. 정부의 긴축정책 반대, 기성정당의 정치적 특권 타파, 부패 척결 등을 내세우며 일어난 대중운동

 


 

특집. 받아라, 시민정치 2016-10월호 월간 참여사회

  1. 임계사회의 시민정치와 연대의 전망 _백영경
  2. ‘온라인 시민정치’의 빛과 그림자  _최병천
  3. 게임의 룰을 바꾼 바르셀로나 시민정치  _이선희
  4. 시민정치란 무엇인가?  _김만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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