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복지동향 2017 2017-03-01   5763

[기획주제1] 기본소득제 부상의 사회경제적 배경과 의미: 하나의 비판적 검토

기본소득제 부상의 사회경제적 배경과 의미: 하나의 비판적 검토

김영순 | 서울과학기술대학교 기초교육학부 교수

기본소득 열풍이 거세다. 2015년 12월 핀란드 정부는 2017년부터 전국적 차원의 기본소득 실험에 들어간다고 공식적으로 발표했다. 나미비아나 알래스카가 아닌 북유럽 복지선진국이, 특정 지역도 아닌 전국적 규모에서 기본소득 실험을 시작한다는 뉴스는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2016년 6월에는 스위스에서 월 2500프랑(약 300만 원)이라는 높은 수준의 기본소득제가 국민투표에 부쳐졌다. 2017년 1월에는 프랑스에서 전 국민에게 매달 750유로(약 95만 원)를 지급하는 ‘보편적 기본소득’ 도입을 핵심공약으로 내세운 브누아 아몽이 사회당 대통령 후보로 선출되었다.

한국에서는 2015~16년의 청년수당, 청년배당 논란과 2016년 7월 제16차 기본소득지구네트워크 대회의 서울 개최를 거치면서 기본소득에 대한 대중적 관심이 급격히 높아졌다. 올 초 시사주간지 <한겨레 21>(제1145호, 2017.1.10.)은 유력대선 후보들을 대상으로 한 자체조사 결과, 기본소득의 범위와 성격에 대해서는 차이들이 있지만 대선 주자 8명 중 7명이 ‘한국 사회에 기본소득제를 단계별로 도입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밝혔다고 보도했다. 불과 2-3년 전까지만 해도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기본소득이 낯선 개념이었음을 고려하면 금석지감을 금할 수 없다.

그렇다면 지금 왜 기본소득인가? 국내외에서 기본소득제 논의가 급속히 부상하게 된 원인으로는 기술 진보·산업구조 변화·세계화에 따른 고용의 변화, 가족구조 및 젠더체제의 변화, 그리고 노동의 양극화에 대응하는 정치적 양극화 등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이 글에서는 첫 번째 원인으로 꼽는 기본소득이 대중적 관심사가 된 사회경제적 배경을 정리해보고자 한다. 아울러, 그런 배경들이 곧바로 기본소득제의 도입을 불가피한 것으로 만들고 있는 것인지도 검토해 보도록 하겠다.

고용의 변화와 기존 사회보장 제도의 실패

기본소득제가 사회적, 정치적 쟁점으로 부상하게 된 가장 가까운 원인은 노동시장의 변화에 따른 기존 사회보장 제도의 실패와 그에 따른 빈곤과 불평등의 심화이다. 2차 대전 이후 서구복지국가에서 소득보장의 근간은 사회보험제도였다. 시민들은 노령, 질병, 실업, 산재, 장애 등 사회적 위험에 처하게 될 때 연금, 상병급여, 실업급여, 산재급여, 장애급여 등을 받아 인간다운 생활을 영위할 수 있었다. 재원은 대부분 가입자가 재직 중에 정기적으로 낸 보험료였고, 그렇기 때문에 기여에 비례한 높은 수준의 급여가 가능했다. 사회보험 급여를 받을 수 없었던 빈민들에게는 세금으로 조달되는 각종 공적부조성 급여가 주어졌다.

그러나 이런 사회보험 기반의 소득보장제도는 1970년대 이후 기술의 변화와 탈산업화, 그리고 세계화가 가져온 실업 증대와 불안정한 일자리의 확산에 따라 뿌리부터 흔들리게 된다.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지속적 기여에 기반한 사회보험 수급권을 가질 수 없게 되었고, 조세에 기반한 공공부조성 급여들의 수급자가 되었다. 공공부조 수급자들에 대한 신우파의 공격이 날카로워졌고 이들에 대한 중간층 납세자들의 반감도 높아졌다.

이에 따라 1980년대 이후 영미권은 물론이고 대부분의 유럽나라들에서도 신자유주의적 정책노선에 입각한 복지 및 노동시장 개혁이 추진되었다. 노동시장을 유연화하고, 실업부조나 무조건적인 공공부조성 급여를 폐지 혹은 삭감하는 대신 교육·훈련·취업을 조건으로 급여를 제공하는 근로연계복지 정책으로 선회하면서 ‘복지에서 노동으로’(welfare to work)의 복귀 정책을 추진한 것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장기실업이나 청년실업은 크게 줄지 않았다. 또 상당수의 실업자들이 질 낮은 일자리로 밀어 넣어지고 일을 하고 있음에도 가난한 근로빈민들이 양산되었다. 결국 빈곤과 불평등의 문제는 크게 개선되지 못했던 것이다.

기본소득은 이런 노동시장의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는 기존 사회보장제도의 한계에 대한 대안으로 새롭게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재미있는 것은 다 같이 기존 사회보장제도의 한계에 대한 대안으로 제시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정치적 입장에 따라 기본소득제의 내용과 목표가 판이하게 달랐다는 것이다. 좌파적 대안은 기본소득이 노동과 복지를 완전하게 분리하고 다양한 욕구를 시민권적 권리를 통해 충족시킴으로써, 실질적 자유의 평등한 분배라는 이념을 달성할 수 있다는 오래된 신념에 기반해 있었다. 좌파 기본소득론자들은 기존 사회보장제도가 관료적, 비효율적이고 낙인효과를 수반하면서도 빈곤과 불평등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고 비판하면서, 보편성, 무조건성, 개별성과 더불어 충분성을 갖는 기본소득이 도입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우파적 대안은 기본소득이 수요를 부양해 시장을 살리고 실업과 빈곤, 범죄를 예방할 수 있다는 점, 복지국가의 급여구조를 단순화시킴으로써 행정비용을 줄일 수 있다는 점, 공공부조성 급여들과 달리 취업과 무관하게 계속 지급됨으로써 근로유인을 자극할 수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최근 시작된 핀란드의 기본소득 실험은 이런 우파적 버전의 전형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실험의 명시적 목표는 모든 시민이 아니라 25-63세 근로연령대 실업자 중 무작위로 선정한 2천명에게 한시적으로 지급함으로써, 기본소득이 근로 인센티브를 자극하는 데 기존 사회보장제도들보다 더 유효한가를 확인하는 것이다(김인춘 2016). 즉 일부의 오해와 달리, 핀란드의 사례는 기본소득 실험이라기보다는 실업자들의 노동시장 참가를 촉진하기 위한 공공부조 개혁 실험인 것이다.

 기본소득

                                                  ⓒ 참여사회

한국의 경우에도 노동시장과 사회보험제도의 부정합은 오랫동안 소득보장제도의 핵심적 문제점으로 지적되어 왔다. 한국의 사회보험은 법적, 제도적으로는 형식적 보편주의를 성취했으나, 현실적으로는 여러 형태의 비정규직, 영세소기업 노동자, 자영자들을 포섭하지 못한 채 이들을 사각지대에 방치해 왔다. 한국은 2016년 3월 정부 통계 기준 32%, 노동계 기준 44.6%가 비정규직이고, 비정규직으로 잡히지 않는 특수고용 및 불법파견까지 합치면 전체 임금근로자의 약 절반가량이 불안정한 고용상태에 있다(김유선 2016). 또 정규직의 경우조차 평균근속 년수가 6.95년, 3년 직장유지율은 61%에 불과해서 OECD 최저수준의 고용안정성을 보이고 있다(정이환 2014). 게다가 영세자영업자의 비중도 매우 높다. 어느 모로 보아도 안정적 고용과 지속적 보험료 납부를 전제로 한 사회보험체계가 작동하기 어려운 구조적 조건인 것이다.

정부는 두루누리사업이라는 사회보험료 보조 사업을 통해 영세사업장의 사회보험 가입률을 끌어올리고자 했으나, 여전히 비정규직의 국민연금의 가입률은 32.4%에 불과하고, 건강보험(직장)은 40.4%, 고용보험은 39.7%에 불과하다(2016년 기준, 김유선 2016). 이렇게 사회보험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가운데 빈곤층의 최후의 의지처라 할 수 있는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 역시 부양의무자기준 등으로 인해 여전히 커다란 사각지대를 가지고 있다. 어떤 소득보장제도로부터도 보호받지 못한 채 교육에서 노동으로의 이행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청년층, 실업상태에 있거나 영세자영업에 뛰어든 조기퇴직 중고령층의 소득보장 문제 역시 심각한 상황이다.

기본소득의 주창자들은 기본소득이야말로 이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유력한(거의 유일한 )대안이라고 주장한다.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안정적 일자리를 가지고 있지 못하며, 일하면서도 가난하고, 일자리를 잃을 때 적절히 최소소득을 보장 받을 수 없는 현실에서, 그리고 이런 상황이 개선될 조짐이 잘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기본소득이야말로 이 모든 문제를 해결할 단초가 될 것이라는 주장이다.

4차산업 혁명과 일자리 감소 및 불안정화

기본소득제가 대중적 관심으로 떠오르게 된 두 번째 원인은 좀 더 장기적인 노동시장의 변화, 즉 기술 변화에 따른 일자리의 급격한 감소 전망이다. 이는 첫 번째 원인과 밀접한 관련을 가지나 이미 드러난 문제점에 대한 처방이라기보다는 예상되는 문제점들에 대한 선제적 대응으로 제기되고 있다는 점에서 그 의미는 상당히 다르다.

인공지능과 로봇이 인간의 일자리를 대체하리라는 예측은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정도로 쏟아져 나오고 있다. 이미 2013년 옥스퍼드 대학의 한 보고서는 향후 20여 년 안에 전 세계 일자리 50% 정도가 소멸할 것이라고 예측한 바 있다. 2016년 벽두부터 세계경제포럼(WEF)은 4차산업 혁명의 영향으로 2020년까지 총 710만개의 일자리가 사라질 것이라고 예측했다. 새로 생겨날 일자리는 200만개에 불과하다니 510만개 이상의 일자리가 사라지는 셈이다(WEF 2016). 두 달 뒤 이루어진 이세돌과 알파고의 대국은 ‘일자리 공황’ 대한 사람들의 두려움을 훨씬 생생한 것으로 만들었다. 다시 넉 달 뒤인 2016년 7월 국제노동기구(ILO)는 고용 없는 성장의 세계를 보다 자세하고 구체적으로 예측해 보여주었다. ILO는 수작업을 대신하는 로봇의 확산으로 향후 20년간 아시아 근로자 1억 3,700만 명이 일자리를 잃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는 태국, 캄보디아, 인도네시아, 필리핀, 베트남 등 5개국 임금근로자의 56%에 이르는 규모이다. 로봇이 일하는 무인공장이 확산되면 저임금을 바탕으로 성장해 온 저개발국의 발전방식은 더 이상 유지되기 어렵다(DW 2016). 실제로 아디다스는 저임금에 기반한 동남아 공장을 폐쇄하고 상주 인력 10명으로 움직이는 무인공장을 독일에 건설했다. 100% 로봇 자동화 공정을 갖춘 이 스피드팩토리는 그간 동남아에서 600명의 노동자들이 만들어냈던 연간 50만 켤레의 운동화를 만들어낼 수 있다고 한다(The Economist 2017. 01.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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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일자리가 사라질 뿐만 아니라 극도로 불안정해지라는 예언도 함께 함께 나온다. 우버택시의 운전사들, 아마존닷컴의 ‘클라우드 노동자들’(cloud worker), 그리고 한국의 배달앱 노동자들로 상징되는 것처럼, ‘긱 경제’(gig economy)라고 불리는 최근의 플랫폼 비정규직 노동경제는 수많은 불안정 프리랜서들을 만들어낼 것으로 예측된다(이광석 2016). 서비스 노동자들은 이제 고용되지 않은 상태에서 노동을 제공하게 되는 것이다. 당연히 자본주의 황금기 동안 표준적 고용관계에 기초해 이루어졌던 임금과 사회보장체계는 설 자리를 잃게 된다.

기본소득은 이 (일자리)종말론적 상황에 대안으로 활발히 거론되고 있다. 성장과 고용의 고리가 끊어지면서 수많은 일자리가 사라지고, 새로 만들어지는 일자리는 극도로 불안정한 비정규고용이 될 가능성이 높은 상태에서, 인구 대다수에게 시장소득은 생계유지에 불충분할 수 있으며, 사회보험을 통한 소득보장 모델은 작동할 수 없을 것이기에, 기본소득은 이 모든 시민에게 인간다운 생활을 보장할 수 있는 유일한 소득보장 방안이 되리라는 것이다.

그러나 기본소득을 둘러싼 동상이몽의 조짐은 이런 미래사회에의 대응에서도 관찰된다. 진보적 이상주의자들은 인구의 대다수가 불안정 근로자인 상태에서 지급되는 기본소득은 모든 사람에게 조건 없이 최소한의 생활을 할 수 있는 토대를 제공할 것이고, 극심한 양극화로 사회가 붕괴되는 것을 막아줄 것이라고 본다. 나아가 사람들은 인공지능 경제 하에서 늘어난 여유시간으로 문화적 소비를 늘이고, 로봇이 할 수 없는 창조적 문화생산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예측한다(강남훈 2016). 물론 이를 위해서는 기본소득을 노동시간의 획기적 단축 및 높은 최저임금, 그리고 이를 떠받칠 조세체계와 결합해야 한다.

반면 우파들은 기본소득이 시장임금을 낮은 수준까지 내릴 수 있고, 인공지능 경제 하에서 기술로 인한 실업과 노동시장 유연화를 받아들일 만한 것으로 만드는 전략적 도구로 기능할 수 있다는데 주목한다(윤홍식 2016). 이는 실리콘밸리가 최근 그 어디보다도 더 열렬하게 기본소득 도입을 주장하고 있는 집단이라는 데에서도 징후적으로 드러난다. 실리콘밸리 기업가들은 기술-인간의 공존가능성을 도모하는 수단으로 기본소득에 관심을 가진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이들이 기본소득을 테크노 자본주의 혹은 실리콘밸리 이데올로기의 현대적 비전으로 활용할 우려가 커 보인다는 지적도 만만치 않다. 즉 실리콘밸리의 기본소득 제안은 인공지능 기술의 전면화로 인한 기술 실업을 노동자들의 큰 저항 없이 용인 받으려는, 그리고 이런 공포스러울 수 있는 현실을 ‘참을만한 것’으로 받아들이게 하려는 선제 제스처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이광석 2016). 실리콘밸 리가 주장하는 기본소득이 ‘일종의 노동의 종말 이후 생존배당 같은 느낌으로 다가온다’는 지적(이광석 2016)은 섬뜩하기까지 하다.

한국에서도 4차산업 혁명 논의가 급물살을 타면서 기본소득 논의도 함께 부상하고 있는 형국이다. 올 해 초 보도된 한국고용정보원의 ‘기술변화에 따른 일자리 영향 연구’ 보고서는 각 직종에 대한 인공지능과 로봇의 기술적인 대체 가능성을 조사했다. 이에 따르면 2025년 기계에 의한 대체로 고용을 위협을 받는 사람은 1,800만 명 가량일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현재 전체 취업자 2,560만 명의 70%가 넘는 수치이다. 직군별로 보면 고소득 직종이 몰린 관리자군의 경우 대체율이 49%에 불과한 반면, 단순노무직군의 경우 90%가 넘었다. 이 대체율은 전문가들이 예측한 순순히 기술적인 대체율이기 때문에 기술의 도입 비용, 사회적 인식, 노사간 협상력 등에 따라 실제 대체율은 달라질 수 있다. 그러나 취약계층이 더 큰 피해자가 되리라는 것은 이론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

이와 같은 예측은 한국에서도 기본소득 논의를 이어가는 중요한 불쏘시개 역할을 하고 있다. 그렇지 않아도 취약한 사회적 안전망으로 이런 노동의 종말 시대를 수습하기엔 역부족일 것이며, 로봇과 인공지능 시대에 대비한 보다 근본적인 대안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져가고 있는 것이다.

기본소득, 마법의 탄환인가?

이상에서 국내외적으로 기본소득제를 둘러싼 논란을 가열시킨 사회경제적 배경에 대해 살펴보았다. 현재의, 그리고 예측되는 미래의 사회경제적 상황은 분명히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기본소득을 심각한 대안으로 고려하게 만든다. 그러나 기본소득이 모든 문제를 한 번에 해결할 수 있는 마법의 탄환은 아니다. 이제 좀 더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입장에서 기술변화 및 노동시장 변화와 기본소득을 너무 쉽게 곧 바로 연결시키는 논리들의 위험성을 간략히 지적해보고자 한다.

첫째, 사회정책은 노동시장의 변화가 분명한 모습을 드러내기에 앞서 먼저 마련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서구에서 러다이트 운동을 불러온 1차 산업혁명으로부터 2차 대전 이후를 지배했던 황금기 복지국가의 기본틀이 갖춰지기 전까지는 100여년이 걸렸다. 산업구조와 노동시장의 윤곽이 분명해지고 사회적 위험의 형태가 선명해진 다음에야 필요한 복지제도가 분명해졌던 것이다. 게다가 이 복지제도는 주요 사회세력 간의 정치적 관계에 매개되면서 나라마다 다양한 형태로 귀결되었다.

물론 4차 산업혁명의 진행속도는 1, 2차 산업혁명의 그것과는 다를 것이다. 파괴적(disruptive) 혁신은 나날이 거듭되고 있다. 그러나 그렇다 할지라도, 20년 후 도래할 것이라는 세계는 아직은 징후만을 보여주고 있고, 그것이 구체적으로 어떤 모습을 띠게 될지는 확실하지 않다. 유럽 복지국가의 위기와 한계를 지적하는 논의가 많지만, 여전히 대부분의 유럽 복지국가는 70%가 넘는 높은 고용률을 유지하고 있다. 사회보장체계 역시 기본소득 도입하는 쪽으로 급속히 재편되기 보다는 부분 개혁을 통해 변화하는 노동시장에 적응해 나가고 있는 추세이다.

한국은 고용사정이나 사회보험 포괄범위가 유럽에 비해 훨씬 열악하다. 그러나 그것이 기본소득의 도입을 당장 ‘최우선’ 과제로 삼아야 할 충분한 이유라고 보기는 어렵다. 신상품을 좋아하는 정치가와 언론이 잘 눈길을 주지 않는 구상품들, 즉 실업급여와 확대와 실업부조 도입,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나 누리과정 예산 확보, 청년수당, 아동수당 등이 더 급한 과제일 수 있는 것이다. 기본소득 문제를 얘기하는데 재정문제를 거론하면 블랙홀에 빠지게 되니, 이 문제를 중심에 놓지 말자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특정 시점에서 재정확대 여력이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고, 그렇다면 기본소득은 다른 복지정책과 대체관계에 놓이며, 결국 우선순위가 문제가 된다.

둘째, 똑같은 사회경제적 배경을 염두에 두고 기본소득을 얘기한다 할지라도 기본소득의 형태, 기능, 목표는 입장에 따라 완전히 다를 수 있다는 것이다. 앞서도 예를 들었듯이 핀란드 실험이나 실리콘밸리 일부 기업가들의 기본소득안이 다르고 이상주의적 진보주의자들의 꿈꾸는 기본소득제가 다르다. 따라서 어떤 기본소득이든 좋다는 태도는 어떤 일자리도 좋은 일자리라는 신자유주의자들의 구호처럼 허망하고 위험한 일이 될 것이다.

이 점과 관련하여 기본소득과 관련된 점진주의적 사고가 갖는 위험성을 지적해두고 싶다. 기본소득은 전인구를 포괄하고, 적정한 수준이 될 때 제도 원래의 목적에 부합할 수 있는 속성을 가지고 있다. 이에 필요한 막대한 재정과 정치적 합의는 원천적으로 기본소득 ‘실험’이나 기본소득의 ‘점진적’ 도입을 어렵게 하며, 그러려는 시도들을 호랑이를 그리려다 고양이를 그리게 만드는 난감한 장애물이다. 토빈과 프리드만 등 저명한 경제학자가 참여했고 당시 대통령후보 맥거번과 닉슨이 공약화했던 미국의 기본소득 논의는 결국 기본소득과 전혀 무관한 제도들만 남겼을 뿐이다(금민 2016). 기본소득으로 시작된 핀란드의 무성한 논의도 공공부조개혁 실험으로 귀결되었다. 15조 원을 들여 5,000만 모든 국민에게 연 30만 원씩(월 25,000원) 지역 상품권 형태로 지급하겠다는 이재명 시장의 전국민대상 기본소득 구상은 기본소득이라기 보다는 자영업 살리기 대책으로 보인다.

한국의 일부 기본소득론자들은 낮은 차원에서라도, 그리고 이런 저런 조건을 달고라도 일단 그 도입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그러나 기본소득이 여러 가지 제한을 달고 지나치게 낮은 수준의 변형된 형태로 시작될 때 그것은 기본소득과 아무 상관이 없는 정책이 될 수 있다. 지금 한국에서 현실적으로 도입이 논의되는 이른바 기본소득들이 과연 카트야 키핑(Katja Kipping) 독일 좌파당 당수가 얘기하는 1) 지급 액수가 충분히 높아 사회정치적, 문화적 참여가 가능한 정도여야 하며, 2)높은 최저임금과 결합되어야 하며, 3) 생태적인 전환과 4) 젠더 평등에 도움이 되어야 한다는 기본소득으로 발전해 갈 수 있을까? 오히려 기본소득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키우고 정말 기본소득이 필요할 때 그것의 도입을 어렵게 하는 부작용을 키우지 않을까?

모든 인구가 아니라 인구 일부로부터 시작하는 기본소득도 기본소득이며, 부분에서 출발해 전체로 확대할 수 있다는 점진론에 입각해 사회수당과 기본소득을 구분하지 않는 것도 문제이다. 이렇게 주장하는 사람들은 사회보험이 점차 전 인구집단에 확대하는 방식으로 제도가 완성돼왔듯, 기본소득 역시 일부 집단에서 시작해 순차적으로 확대해나가면 된다고 한다. 그러나 사회보험의 확대가 같은 원칙을 단순히 점점 더 많은 인구에 적용해 나가는 문제인 반면, 기본소득과 사회수당은 정책의 원칙과 근거가 다른 별개의 제도이다. 특정인구 집단에게만 지급되는 아동수당이나 청년수당, 기초연금은 그 인구집단의 필요를 고려한 사회수당으로서, 필요를 따지지 않고 모두에게 지급되어야 한다는 기본소득과는 다른 할당의 논리에 기반한 것이다. 이렇게 다른 논리에 기반하는 두 정책이 자연스럽게 연결될 수 있다는 논리 또한 전혀 검증되지 않은 것이다. 기초연금이나 아동수당, 그리고 심지어 청년수당에 찬성하는 사람들 중 많은 사람들이 모든 시민에게 지급되는 보편적 기본소득은 찬성하지 않을 수 있다. 사회보험 확대와 제한적 인구범위의 기본소득에서 보편적 기본소득으로의 이행은 완전히 다른 문제인 것이다.

언젠가는 기본소득이 정당성이나 효율성에서 소득-복지문제를 해결할 가장 유력한 대안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도입은 우리가 당면한 노동시장의 상황과 사회적 위험을 직시하면서, 그리고 기존 복지제도와의 관계를 고려하면서 신중히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노동의 종말이 가까워오고 있으니 지금부터 기본소득을 준비해야 한다는 단순논리 대신, 작금의 기술변화에 버금가는 다양한 정책적 상상 속에 여러 대안들을 함께 검토하고 검증해 보아야 할 것이다. 또한 기술변화가 가져올 변화가 그토록 엄청난 것이라면 기본소득만으로 그것을 수습하기도 어려울 것이며 산업구조, 교육, 조세, 노동시장제도 등의 발본적 혁신 또한 필요할 것이다. 기본소득론이든 다른 어떤 소득보장정책이든 이를 그것을 촉발한 기술변화-노동시장변화에 대응할 다른 정합성 있는 제도들과 더불어 제시될 때 훨씬 설득력을 가질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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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e:///C:/Users/user/Downloads/WEF_Future_of_Jobs.pdf. 접근일: 2017.0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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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Economist. 2017. “Adidas’s high-tech factory brings production back to Germany”(2017.01.14.) (http:// www.economist.com/news/business/21714394-making-trainers-robots-and-3d-printers-adidass-high-tech-factory-brings-production-back. 접근일: 2017.0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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