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감시센터 판결/결정 2007-06-27   1821

[16회 판결비평-판결읽기1] “2할 자치”의 사법적 정당화 논리

지방자치법의 해석과정에 헌법의 취지를 전혀 고려하지 않는 다수의견

법원의 판결에 대해 시민사회의 열린토론을 유도하고 더 나은 판결을 이끌어내기 위해 판결비평 사업을 벌이고 있는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소장 : 한상희 교수, 건국대)는 그 열 여섯 번째 판결비평 대상으로, 울산 북구청 공무원 승진임용 취소와 관련한 지난 3월 22일의 대법원 판결을 선정하였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중앙정부의 불허지침에도 불구하고 파업에 참가한 구청 공무원에 대해 해당 구청장이 징계하지 않고 승진시킨 것은, 재량권을 남용한 경우에 해당하여 법령을 위반하였으므로 상급기관인 시장이 취소한 것은 정당하다고 하였다.

이 같은 대법원의 판결에 대해 지방자치단체장의 인사와 징계권한을 지나치게 제한하여 우리 헌법에서 보장하는 지방자치의 원리를 거스르는 판결이라는 비판이 있다.

참여연대는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서로 의견이 일치하지 않을 때 어떻게 하는 것이 바람직한지 함께 토론해 보기 위해 판결비평 대상으로 선정하였다.(편집자 주)

” 2할(割) 자치!!!”

오랫동안 지방자치분야를 연구해 온 학자들에게 대한민국 지방자치의 현실을 문의하면 단박에 돌아오는 한 마디가 있다.

“2할(割) 자치!!!”

지방자치의 본래적 의미에 비추어 보자면, 겨우 20% 정도의 자치가 이루어지고 있을 뿐이라는 뜻이다. 결정권(決定權)도, 세원(稅源)도, 인재(人才)도, 여전히 중앙집권적 ‘국가’의 독차지인 상황이므로, 지방정부로서는 굴욕스럽더라도 분배권한을 움켜 쥔 중앙정부의 비위를 맞출 수밖에 없다는 의미다. 대한민국의 지방자치는 그냥 허울일 뿐이라는 자조 섞인 표현이다.

2007년 3월 22일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선고한 2005추62 ‘승진임용직권취소처분취소청구’ 판결은 ‘2할 자치’의 현실을 법적으로 확인한 것이나 다름없다.

분쟁의 핵심은 이렇다.

전국공무원노동조합의 불법집단행동에 가담한 울산광역시 북구청 소속의 하급 공무원들에 대하여 이 사건의 원고인 북구청장은 피고인 울산광역시장이 거듭 요청한 해당자들에 대한 징계의결요구를 받아들이지 않고, 오히려 이들을 승진시켰다. 그러자 울산광역시장은 관계법령에 의하여 마땅히 징계의결요구가 되어야 할 징계대상자들을 승진시킨 것은 재량권의 범위를 일탈한 것이라면서 지방자치법 제157조 제1항에 근거하여 동 승진임용처분을 직권취소하였다. 이에 대하여 울산광역시 북구청장이 그 승진임용직권취소처분의 취소를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던 것이다.

일단 이 사건에서 울산광역시장은 한나라당 소속이고, 북구청장은 민주노동당 소속이라는 점 등은 괄호 안에 넣어 두기로 하자. 법적 분석에선 이 둘을 바꾸어 놓아도 결론은 마찬가지이며, 정당 문제를 빼놓더라도 국가와 지방자치단체 사이의 견해대립은 피할 수 없는 것인 까닭이다(정당이 개입되면 세계관적 대립이 정치적으로 강화될 가능성이 있을 뿐이다). 그러므로 이 사건에서 기초자치단체장의 승진임용처분을 직권취소한 광역자치단체장은 행정자치부장관과 법무부장관으로 대표되는 중앙정부의 강력한 지원을 받고 있으나, 승진임용처분을 취소당한 기초자치단체장은 자신을 선출해 준 울산 북구의 유권자들과 사법부 외에 어디에도 기댈 곳이 없는 처지라는 점은 반드시 기억해 두기로 하자. 이것이 바로 이 북구청장이 대법원을 찾아온 이유이기 때문이다.

헌법에 담겨있는 지방자치의 취지는 어디로

잘 알려져 있듯이 대한민국의 대법원은 13명의 대법관 중 8명(이용훈(재판장), 고현철, 김용담(주심), 양승태, 김황식, 박일환, 김능환, 안대희)이 가담한 다수의견으로 중앙정부-광역자치단체장으로 이어진 이 사건 피고 측의 승소를 결정했다. 이 결론을 정당화한 논리의 핵심은 다음과 같다. “(前略)…지방자치단체의 자치행정은 국가통치질서 내에서 인정되는 것이므로 지방자치는 국가법질서의 한계 내에서 인정되어야 함은 물론, 지방자치행정의 국가법질서에 대한 위반은 통제되어야 하고, 따라서 위와 같은 통제의 일환으로 피고가 전국적으로 발생한 위와 같은 위법행위를 한 공무원들에 대하여 징계의결을 요구하라고 계속 촉구하였으면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그 관할구역 안의 지방자치단체는 이를 준수할 것인 점…(後略)”(밑줄은 비평자) 이것은 한 마디로 지방자치는 대한민국이라는 국가를 전제로 가능한 것이므로 국가법질서에 의해 통제되는 것이 당연하다는 주장이다. 국가가 법률로 정했다면 2할 자치는 당연한 것이고, 심지어는 1할 자치나 그 이하도 전혀 문제될 것 없다는 논리다.

대단히 흥미로운 것은 다수의견의 간단명료한 논리 속에 대한민국 헌법이 별개의 장(제8장)을 두어 지방자치를 명(命)하고 있다는 점이 전혀 언급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이에 비하여 5명의 대법관(김영란, 박시환, 김지형, 이홍훈, 전수안)이 제시한 반대의견은 헌법해석에서부터 반대논리를 이끌어내고 있는 것이 대단히 이채롭다.

“(前略)…우리 헌법은 국민주권의 기본원리에서 출발하여 주권의 지역적 주체로서의 주민에 의한 자기통치를 실현하기 위하여 지방자치단체에 포괄적인 자치권을 보장하고 있다…(後略)”(밑줄은 비평자) 이런 견지에서 반대의견이 주목하고 있는 것은 국가 또는 상급지방자치단체의 관여 및 통제를 규정한 지방자치법이 ‘위임사무’와 ‘자치사무’를 구별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다시 말해, ‘위임사무’에 관해서는 ‘지방자치단체장의 명령이나 처분이 법령에 위반되거나 현저히 부당하여 공익을 해한다고 인정될 때’에 이를 취소하거나 정지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음에 비하여 ‘자치사무’에 관해서는 오로지 그 명령이나 처분이 ‘법령에 위반할 때’에 한하여 같은 처분을 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는 것이다.

반대의견은 법문의 구조상 이 두 규정은 서로 연계하여 해석하는 것이 마땅하며, 이에 따르면 ‘자치사무’에 관련된 ‘법령위반’의 의미는 엄격하게 제한적으로 해석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것이야말로 지방자치법 제157조 제1항을 지방자치의 본질적 내용을 침해하지 않는 헌법합치적 해석이라는 것이다. 결국 반대의견은 지방자치법 제157조 제1항 후문의 ‘자치사무’에 관한 ‘법령위반’의 의미 속에 ‘재량의 일탈ㆍ남용’은 포함되지 않는 것으로 해석한 뒤, 이 사건에서 울산북구청장의 승진임용처분은 ‘자치사무’에 해당하는 것으로서 엄격한 의미의 ‘법령위반’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다고 말한다. 따라서 동 승진임용처분을 직권취소한 울산광역시장의 처분이 오히려 위법이라는 것이다(1).

요컨대, 이 사건의 반대의견은 지방자치를 명(命)한 헌법의 취지를 지방자치법의 해석과정에 적극적으로 투영시키면서 이를 전혀 고려하지 않는 다수의견의 맹점을 지적한 점에 중요한 공로가 있다. 다만, 그와 같은 헌법해석이 지방자치법을 입법한 대한민국 국회에 의하여 명백하게 선언되고 있는가를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항상 자의적 해석이라는 비판에 직면할 수밖에 없는 사법적(司法的) 해석에 치중한 점은 결정적인 한계라고 할 수밖에 없다. 반대의견의 도전에 직면한 다수의견이 두 개의 보충의견을 통하여 거듭 지적하고 있는 것도 결국 그 부분이다.

우선 첫 번째 보충의견(김용담(주심), 김황식)은 반대의견의 요지를 경청하면서도 현행 헌법 제117조 제1항이 “지방자치단체는 주민의 복리에 관한 사무를 처리하고 재산을 관리하며, 법령의 범위 안에서자치에 관한 규정을 제정할 수 있다”(밑줄은 비평자)고 규정하고 있고, 그 정신이 지방자치법에도 그대로 이어지고 있음을 지적한다. 자치가 중요한 것은 헌법적으로 명백하지만, 다시 그 자치가 법령의 범위 내에서 보장된다는 것도 헌법적으로 명백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법률(지방자치법)이 ‘법령위반’으로 규정한 것을 사법부가 일방적으로 ‘재량권의 일탈ㆍ남용을 제외한 법령위반’이라고 바꾸어 해석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2).

사법적 (초)국가주의의 시국선언문 !

이에 비하여 두 번째 보충의견(양승태)은 반대의견을 공박한다는 목표는 앞의 보충의견과 동일하지만 사법부의 최종적 권위를 열렬하게 옹호한다는 관점에서는 정반대의 주장을 제기한다. 이에 따르면, 자치가 법령의 범위 내에서 이루어지는지를 감시하고 결정할 수 있는 최종적인 권위는, 헌법이 규정하고 있는 대로, 오로지 대법원에 있다. 하급지방자치단체에 대한 국가 또는 상급지방자치단체의 감독권한 행사에 분쟁이 발생한 경우에, 그 분쟁은 대법원에서 해결되며 그 판단기준은 헌법 제117조 제1항이 규정하고 있는 대로 ‘법령의 범위 안에서’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이 보충의견은 반대의견에 내포된 비(比)사법적 함의를 맹렬하게 공격한다. 반대의견은 법치주의, 곧 대법원의 사법적 통제권마저 무력하게 만들 수 있는 논리를 내포하고 있다는 것이다. 바로 이 부분에서 다음의 문장은 가히 사법적 (초)국가주의의 시국선언문이라고 평가할 만하다.

“나는 이러한 사건에서 국가의 부당한 간섭을 걱정하는 것보다는 오히려 지방자치단체장의 재량권 일탈ㆍ남용을 방치하는 것을 훨씬 더 걱정하여야 할 것으로 본다. 왜냐하면 전자의 경우에는 이를 시정할 방법이 있지만, 후자의 경우에는 국가나 상급지방자치단체의 개입이 없이는 유효ㆍ적절한 시정방법이 없어 결과적으로 정치ㆍ정략에 따른 지방자치단체장의 개인적인 권한이 법의 상위에 위치할 여지를 제공함으로써 법질서가 훼손될 것이고, 이는 종국적으로 법치주의라는 기본적인 헌법질서의 일각이 무너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반대의견의 논거는 이 점에서 우리 헌법과 조화될 수 없는 위험한 견해라고 생각한다.”(밑줄은 비평자)

다수의견에 대한 이 두 번째 보충의견은 결국 헌법 제8장의 ‘지방자치’를 ‘법령의 범위 안에서’라는 한 마디를 제외하고 모두 삭제해 버리자는 것과 같다. 이와 같은 反헌법적 논리에 대하여 결국 소수의견은 그 스스로가 지향하는 정치적 전망을 맞세울 수밖에 없었던 것 같다. 소수의견에 대한 보충의견(이홍훈)은 지방자치단체의 자치권을 국가의 통치권의 일부가 위임된 것으로 보는 다수의 견해를 19세기 법실증주의의 영향으로 일축한 뒤, 보다 본격적으로 속내를 드러내기 시작한다.

이에 따르면 “지방자치단체의 자치권은 주권재민의 원칙에 터 잡아 종래의 중앙집권체제에 저항하는 과정에서 비로소 얻어지게 된 국민들의 천부적 권리로서의 고유적 권리라는 역사성을 부인할 수 없다. 따라서 지방자치단체의 자치권은 국가나 상급 지방자치단체라고 하더라도 함부로 침해하거나 통제할 수는 없는 것이다.”

소수의견에 대한 보충의견에 따르면, 국가, 광역지방자치단체와 기초지방자치단체는 기본적으로 상호 대등한 협력관계에 놓여 있고, 기초지방자치단체의 자치사무, 곧 고유사무에 관해서는 국가나 광역지방자치단체가 기본적으로 간여할 수 없는 것이 헌법적 원칙이다. 그리고 이 헌법적 원칙을 관철시키기 위해서는 부득이 지방자치법 제157조 제1항을 소수의견처럼 제한적으로 해석할 수밖에 없다. 그렇지 않으면 재량권의 일탈ㆍ남용을 문제 삼는 국가 또는 광역지방자치단체장의 개입으로 인하여 기초지방자치단체의 자치사무, 곧 고유사무가 형해화 될 것이기 때문이다(3).

소수의견의 공헌

이 판결은 향후 지방자치단체와 국가 사이의 권한다툼에 있어서 기준이 될만한 다수의 쟁점을 내포하고 있다. 이 논쟁을 전면에 끌어낸 것은 단연 소수의견의 공헌이다. 이를 중심으로 몇 가지 비평을 제기해 보자.

첫째, 이 판결에는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관계에 대한 상반되는 두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하나는 수직적인 관계(다수의견)고 다른 하나는 수평적인 관계(소수의견)다. 하지만, 민주정치를 ‘자치’로 보는 입장에서는, 그리고 그와 같은 자치로서의 민주정치가 헌법이 보장하는 민주정치라고 보는 입장에서는, 전혀 다른 세 번째 주장이 제기될 수 있음을 확인할 필요가 있다. 흔히 ‘보충성의 원칙’으로 지칭되는 이 주장은 국가 또한 자치의 한 단위로 보면서, 자치는 가능하면 작은 범위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민주정치의 전통에 충실하고자 한다. 따라서 기초지방자치단체가 가장 기초적이고 가장 직접적인 자치의 단위가 되어야 하며, 상급지방자치단체나 국가는 기본적으로 자치가 불가능하거나 자치가 적절치 않은 경우에 한하여 ‘보충적으로’ 필요하게 된다고 주장한다.

이 세 번째 주장을 따를 경우, 본 사건은 정반대로 논의될 수 있다. 지방자치법 제157조 제1항의 헌법적 정당성은 그것을 기초로 기초자치단체의 고유사무에 개입하려는 국가가 위의 ‘보충적 필요’를 입증하는 방식으로 정당화하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이다. 개입이 원칙이 아니라 예외가 되므로, 예외를 주장하는 측이 원고가 되어 이를 입증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이 판결의 소수의견이 지향하고 있는 바가 더욱 명확하게 드러날 수 있다. 그것은 사실상 서로 다른 두 개의 수직적 관계이론, 즉 국가주의와 자치주의의 모순적 길항관계를 전제로 양자의 균형점을 찾자는 논의이기 때문이다.

둘째, 현행 헌법은 지방자치단체의 자치권을 ‘법령의 범위 안’에 제한하고 있는 것처럼 해석될 여지가 있다. 무엇보다 헌법 제117조 제1항이 그처럼 언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방자치단체의 자치권이 대통령이나 행정 각 부 장관의 명령에 의해서 제한될 수 있다고 해석될 수 있다면, 이는 중대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따라서 헌법개정 시에는 반드시 ‘법률의 범위안에서’라고 바꾸어 혼란을 방지할 필요가 있다(4).

그러나 이와 같은 해석적 오류의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현행 헌법의 해석에 있어서도 그처럼 지방자치단체의 자치권을 ‘법령의 범위 안’으로 제한하는 것은 합헌적이라고 보기 어렵다. 무엇보다 그 ‘법령’이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지방자치단체의 자치권을 존중하는 방향으로 입법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법령’의 내용적 제한 또는 내용적 한계가 헌법에 의해 선언된 상황이라면, 결국 이 사건은 지방자치법 제157조 제1항 등이 그와 같은 헌법적 제한 및 한계를 충족시키고 있는지의 관점에서 논의되는 것이 마땅했다.

다시 말해, 국회가 자신에게 주어진 입법재량권을 헌법적 제한 및 한계 속에서 행사했는지의 여부가 논의의 초점이 되었어야 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대법원은 이 점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지방자치법 제157조 제1항의 해석에 있어서 ‘법령위반’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다투는 좁은 의미의 해석문제로 시종했다. 이것은 소수의견에도 동일하게 적용될 수 있는 한계이며, 크게 보면 법원의 판결을 헌법소원의 대상에서 제외하는 방식으로 사법과정에서 헌법적 논증의 일반화를 제한하고 있는 현행 법체계의 한계에서 유래하는 것이기도 하다. 기실 이 판결의 소수의견은 지방자치법 제157조 제1항에 관한 위헌법률심판사건에서 제시되는 것이 더욱 바람직했을 내용이 아닌가?

셋째, 이 판결에서 다수의견과 소수의견이 그토록 애써 다투고 있는 ‘재량권의 일탈ㆍ남용의 법리’에 관해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다수의견은 소수의견이 확립된 재량권의 일탈ㆍ남용의 법리를 왜곡시켜 법문상의 ‘법령위반’을 과도하게 축소해석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문제의 지방자치법 제157조 제1항을 살펴보라. 거기 어디에 ‘재량권의 일탈ㆍ남용’이라는 개념이 제시되어 있는가? 주지하듯이 ‘재량권의 일탈ㆍ남용의 법리’는 행정법 일반이론에서 소위 자유재량이론을 극복하기 위하여 개발되었던 논리이다. 따라서 그것은 출발점에서부터 법문에 없는 내용을 덧붙이는 일종의 해석법학 일반조항의 논리였던 것이다.

그러므로 만약 그와 같은 해석법학적 일반조항의 논리가 필요 없는 상황이라면 당연히 그것은 배척되는 것이 옳다. 다시 말해, ‘재량권의 일탈ㆍ남용의 법리’가 일반화되고, 그리하여 입법자가 이를 충분히 고려할 수 있는 상황이라면,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사법부가 그와 같은 해석법학적 일반조항을 기초로 판결하는 것은 자제되어야 마땅하다는 것이다. 법문이 ‘법령위반’이라고 하고 있는데, 굳이 “그 내용은 ‘재량권의 일탈ㆍ남용’을 제외하는 것이다”라고 해석할 필요가 어디에 있는가? 오히려 그 내용에 ‘재량권의 일탈ㆍ남용’도 포함된다’고 주장하는 쪽에서 이 정당성을 입증할 필요가 있다. 이 점에서는 소수의견 역시 해석법학 중심주의의 틀 속에서는 전혀 자유롭지 못하다는 비판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결국 이 판결에서 시민들이 목도하게 되는 것은 ‘2할 자치’의 사법적 정당화 논리일 뿐이다. 대법원은 여전히 국가를 원칙으로 자치를 예외로 이해하면서, 법령을 위반할 경우 그마저도 언제든지 회수할 수 있다고 선언하고 있다. 단지, 그 엄혹한 초집권주의의 논리에 자치의 헌장인 헌법의 이름으로 이의를 제기하는 소수의견이 해석법학적 일반조항의 논리 속에서나마 희망을 주고 있다고나 할까? 그 점에서 이 판결의 최대의 성과는 나름대로 애국심을 담고 있는 사법적 초국가주의의 시국선언문(양승태)을 시대착오적으로 읽을 수 있는 여유를 확보해 준 것 정도가 아닐까?□

미주

(1)나아가 반대의견은 설사 지방자치법 제157조 제1항 후문의 ‘자치사무’에 관한 ‘법령위반’에 재량권의 일탈ㆍ남용이 포함된다는 다수의견의 해석에 따르더라도 이 사건에서 실제로 울산북구청장이 재량권을 일탈ㆍ남용했다고 볼 수 없다는 점을 세세히 논증하고 있으나, 본 비평에서는 논점의 명확화를 위하여 이에 관한 논의를 생략하기로 한다.

(2)이 보충의견은 그동안 행정법학에서 발전시켜 온 재량권의 일탈ㆍ남용의 법리가 단순한 공익위반이 아니라 일반조리, 평등의 원칙, 비례의 원칙, 신뢰보호의 원칙 등 법원칙의 위배여부까지 고려하는 것임을 명백히 하면서, 지방자치법 제157조 제1항 후문의 ‘자치사무’에 관한 ‘법령위반’에 있어서도 동일한 법리가 적용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달리 표현하면, 법문에 별다른 지시가 없는데도 불구하고, 사법부가 해석에 의하여 재량권의 일탈ㆍ남용의 법리를 일방적으로 제외하는 것은 무리한 해석이라는 논리다.

(3)재량권의 일탈ㆍ남용의 법리를 종래의 통설적인 이해와 다르게 적용하는 것은 소수의견의 치명적인 약점이다. 이 점을 지적하는 위 다수의견에 대한 첫 번째 보충의견에 대응하여 소수의견에 대한 보충의견은 지방자치법 제157조가 행정청과 국민의 관계에 대한 것이 아니라 국가와 지방자치단체 또는 상급 및 하급 지방자치단체의 관계에 대한 것이므로 지방자치단체의 자치권을 보장하려는 헌법적 원칙에 비추어 소수의견과 같은 ‘특수한 해석’이 용인될 수 있다는 점을 내세우고 있다.

(4)현행 헌법 제117조 제1항도 꼼꼼히 살펴보면 얘기가 달라질 수 있다. 동 규정은 ‘지방자치단체는 주민의 복리에 관한 사무를 처리하고 재산을 관리하며, 법령의 범위 안에서 자치에 관한 규정을 제정할 수 있다’고 하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법령의 범위 안에 제약된 것은 지방자치단체의 자치권 전체가 아니라 자치입법권일 뿐이라는 해석도 불가능하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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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결읽기2]지방자치의 주인은 지역주민인가, 중앙정부인가?(권필상 울산시민연대 사무국장)

이국운 교수(한동대 법학, 사법감시센터실행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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