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감시센터 사법개혁 2008-06-19   2200

[08/06/17 국민참여재판 방청기] “변호사단체가 해야 할 일을 알려준 재판”

이 글은 6월 17일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국민참여재판을 방청한 뒤의 방청기입니다. 참여연대는 ‘참여연대와 국민참여재판 함께 방청하기’ 행사에 참여한 시민 8명과 함께 이 재판을 방청했으며, 함께 방청한 이들의 방청기를 연재합니다.
참여연대는 국민참여재판에 대한 시민들의 관심과 제도운영상의 개선점을 찾기위해  ‘참여연대와 함께 방청하기’ 행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많은 관심을 기대합니다.


박근용(참여연대 사법감시팀장)



LCD모니터 화면을 통해 본 증인의 모습


우리나라에서 1심 재판을 맡고 있는 법원중에 가장 큰 법원이 서울중앙지방법원이다. 이 법원의 첫 국민참여재판이 지난 6월 17일(화) 저녁 8시50분까지 열렸다. 배심원 선정절차가 오전 9시부터였으니, 거의 12시간동안 진행된 셈이다(물론 이 날 공판에 앞서, 공판준비절차가 몇 차례 있었다). 배심원후보자로 온 시민중에서 6명의 배심원을 뽑고, 이들에게 증거자료를 보여주고, 증인들의 증언을 들려주고 배심원들끼리 토론(평의)하고, 법관들이 판결을 선고하는데 12시간이 걸린 것이다.


6월 17일 서울중앙지법 417호 대법정에서 열린 국민참여재판의 모습. 6명의 배심원들이 선서를 하고 있다
이 재판에서 다룬 사건은 김 모 피고인이 평소 잘 알고 지내던 이웃을 망치로 때려 살인미수로 기소된 사건이다.


이 날 재판의 핵심증인이었던 피해자에 대한 증인신문은 ‘비디오중계장치’를 통해 이루어졌다.
증인으로 나와야 할 피해자가 법정에 직접 나와 피고인과 2~3미터 떨어진 거리에서 증언을 하기에 부담스러워했기 때문이다. 피고인의 보복 등이 두려워서라기보다는 피고인과 피해자가 평소 허물없이 지내던 이웃이었기 때문에 피고인에게 불리한 내용을 피고인석과 가까운 증인석에 앉아 말하는 것을 부담스러워하는 것 같았다.
검사와 변호인은 법정 안에, 피해자 증인은 법정 옆의 방에 머물고, 카메라와 대형 LCD 모니터화면을 통해 질문하고 대답하였다. 증인의 증언을 화면을 통해 보는 배심원들의 표정은 호기심이 가득했고 나 또한 신기했다.




검사는 베스트였다. 그렇다면 변호사는?


이 날 재판에서 필자는 검사(2명의 검사중 수사검사가 아닌 공판담당 검사)의 노련함이 인상적이었다. 방청하면서 적은 메모지에는 “여태 본 재판의 검사중에서 Best of best”라고 적을 정도였다.
이 공판담당 검사는 배심원석 앞 1미터 내외의 거리를 적절히 유지하거나 배심원과 증인사이 적절한 거리를 왔다갔다하면서 주장을 펼쳤다. 배심원들과 눈맞추기도 하고, 목소리도  올렸다 내렸다 했다. 말 빠르기도 아주 적당했던 것 같다.
무엇보다도 자료를 손에 들고 읽는 적이 거의 없었다. 자기가 할 말을 외우고 나와서 하니 적절한 손동작과 몸동작이 가능했다. 배심원들의 시선을 한 눈에 사로잡아 버렸을 것 같았다.


이에 비해 미안하지만 변호인은 그러지 못했다. 변호인도 지금까지 봤던 국민참여재판의 다른 변호인들에 비해 뒤떨어진 것은 아니었지만 이번 재판의 공판담당 검사에 비해 부족한 것은 분명했다.
배심원들을 비롯해 법정안에 있는 사람들이 잘 들을 수 있게 하기 위해 변호인의 몸에 부착한 마이크 장치(보통 ‘핀마이크’라 부르는 장치로 물론 검사도 이를 이용한다)가 편치 못했던 것 같다. 마이크의 일부분을 잡고 말해야만 하다보니 몸동작과 손동작이 아무래도 자유로울 수가 없었다. 아쉬운 부분이었다.
배심원들에게 설명한 자료를 급히 만드느라, 사소하지만 빠뜨리지 않아야 했을 사항을 빠뜨려 당황하기도 했다. 솔직하게 배심원들에게 그 점을 말했지만, 배심원들이 어떻게 느꼈을지 걱정되었다.



아무 일도 않고 있는 대한변호사협회가 안타까워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지금 국민참여재판은 거의 국선전담 변호사가 담당하고 있다. 엄청난 자원과 경험, 재정을 보유하고 있는 검찰의 지원을 든든히 받고 있는 검사와 ‘나홀로 변론 준비’를 하는 국선전담 변호사간에는 엄청난 차이가 존재할 수 밖에 없다(개인사무실을 운영하면서 부수적으로 국선 변호사건을 맡던 과거의 국선변호사에 비해 지금의 ‘국선전담변호사’들의 역할은 아주 많이 나아졌음은 분명하다).


국민참여재판이 원활하게 진행되기 위해서는 재판에 참여하는 법관과 검사, 그리고 변호사가 지금까지 했던 재판방식과는 다른 재판에 적응하기 위한 훈련과 교육이 필수적이다.
실제 법원과 검찰은 법관과 검사들을 많이 교육시키고 훈련시키고 있다. 필요하면 우리의 국민참여재판의 원형인 미국 배심재판을 배우기 위해 해외연수까지 보낼 정도이다.
그런데 변호사들은 체계적인 교육과 훈련을 받지 못하고 있다. 대형로펌이라면 모를까 작은 변호사 사무실에서도 엄두를 내기가 어려울 것이고, 특히 국선전담변호사같이 재정적으로 조직적으로 어떤 지원도 없는 이들은 더욱 어렵다. 그렇다고 국민참여재판을 포기해야 하나? 그건 아니다. 그렇다면 누가 지원해주어야 할까? 바로 대한변호사협회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변호사협회는 아무런 생각도 의지도 없어 보여 안타깝다.



국민참여재판이라 더 중요한데도, 말로만 그친 ‘무죄추정의 원칙’


'참여연대와 함께 국민참여재판 방청하기' 행사에 참여한 시민들이 재판중 쉬는 시간에 방청소감 등을 이야기하고 있다.
이 날 재판을 보면서 다시 눈에 띈 것은 피고인에게 판사가 질문을 할 때 피고인을 일으켜세운다는 점이다. 물론 일반 재판에서도 피고인은 일어서서 재판장의 질문에 대답하고 있는데, 이는 국민참여재판이기에 더 문제있는 방식이다.
법정에서 피고인에게 말을 시키는 기회는 기본적으로 네 번이다.
재판 시작단계에서 피고인에게 진술거부권을 알려주고 신분을 확인하는 ‘인정신문’이 첫 번째다. 다음은 검사와 변호인이 공소사실과 입증계획, 변론계획을 설명한 뒤, 피고인에게 공소사실 인정여부를 묻는 ‘피고인의 모두(冒頭) 진술’이다.
세 번째는 다른 증인들에 대한 검사와 변호인의 질문(신문)이 모두 끝난 뒤에 하는 ‘피고인 신문’이다. 마지막은 검사의 최후 진술과 구형, 변호인의 최후 변론에 이어서 하는 피고인의 ‘최후 의견 진술’이다. 이 최후 의견진술이 끝나면 배심원의 평결과 판결선고만 남는다.


그런데 이 네 번의 기회에 피고인은 세 번째 ‘피고인 신문’ 때만 증인석의 의자에 앉아 답변하고 나머지 세 번은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대답한다. 본인이 스스로 일어나는게 아니다. 법관이 일으켜 세운다.
이 날 재판도 마찬가지였다. 재판장은 “피고인, 일어나 보세요”라고 말한 뒤, 피고인의 인적사항을 질문하거나 검사의 공소사실을 인정하냐고 묻거나 또는 재판끝내기 전에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해보라고 했다. 어느 피고인이 감히 일어나지 않겠는가? 이 날 김 모 피고인도 당연히 엉거주춤하면서 의자에서 몸을 일으켜 세웠다.


앉은 채로 답한다고 해서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것도 아니고 누가 답변하는 것인지 배심원들이 몰라보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피고인을 일으켜 세워 말하게 한다.


배심원들이 피고인에 대해 갖는 인상은 매우 중요하다.
예를 들어 피고인들에게는 구치소에 수감되어 있다는 것을 뜻하는 ‘수의’를 입지 말고 보통의 옷 즉 ‘사복(私服)’을 입을 것을 권하고 있다(어떤 이는 피고인에게 입을 만한 옷이 없다면, 국가가 옷을 빌려주어서라도 ‘수의’가 아닌 평상복을 입혀야 한다고 할 정도이다). 죄수복을 보는 순간, 범죄자나 죄인이라는 인상을 배심원들에게 심어주기 때문이다.


피고인이 자리에 일어서서 질문에 답하는 것은 피고인의 심리를 위축시킨다. 몸이 편한 상태에서 말할 때와 일어서서 부자연스러운 상태에서 말할 때는 목소리뿐만 아니라 말의 내용도 미세하게 차이날 수 있다.


법정에서 다른 사람들은 일으켜 세우지 않는다. 피고인만 일으켜 세우는 것은 피고인을 다른 사람들과 다르게 다룬다는 것을 은연중에 그러나 가장 확실히 보여주는 것이다.
국민참여재판이 열리는 법정에서 가장 많이 반복해서 들을 수 있는 말은 ‘무죄추정의 원칙’이다. 재판의 결과가 확정되기 전까지는 피고인은 무죄, 즉 범죄자가 아니라는 말이다.
혹시나 검사가 기소를 할 정도의 사람이라면 이미 죄인이라고 단정하고 이 때문에 생기는 편견과 부정적 인상을 배심원들이 갖지 않은 채 백지상태에서 판단해 달라고 법관은 여러 차례 요청한다. 이날 재판의 법관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아직 우리나라 법정에서 ‘무죄추정의 원칙’은 온전하게 실현되고 있지 않다. 일반 시민이 배심원들이 참여하는 재판이기 때문에 ‘무죄추정의 원칙’이 더욱 잘 지켜져야 할 재판에서조차 아직 갈 길이 멀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배심원들의 ‘양형 의견’을 밝히지 않은 재판부


끝으로 이날 재판에서 최종 선고된 내용은 검사가 기소한 내용대로 피고인의 살인미수 혐의는 유죄, 형량은 징역 7년이었다. 함께 방청한 시민들과 예상한 배심원 평의 시간보다 훨씬 짧게 끝난 배심원들의 평결도 살인미수혐의 유죄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재판장은 판결을 선고하면서 배심원들의 유무죄에 대한 결정은 공개했지만, 형량에 대한 의견은 밝히지 않았다. 이 때까지 필자가 직접 끝까지 방청한 다섯 번의 재판에서는 재판장이 배심원들의 양형 의견도 모두 밝혀주었다.
국민참여재판에 관한 법률에서는 배심원들의 유무죄 평결 내용은 판결선고때 함께 밝힐 것을 명시적으로 정해두었다. 하지만 배심원들의 양형의견은 소송서류에 기록하라는 규정만 있을 뿐 법정에서 밝히는 것에 대해서는 별도의 규정이 없다. 즉 법관의 재량에 맡겨진 상태이다. 따라서 이 날 재판부의 양형의견 미발표가 법률규정 위반은 아니다.


이번 재판의 다음 날 필자는 법원에 전화해서 양형의견을 알려달라고 부탁했다. 그리고 재판을 했던 판사중의 한 분이 배심원 1명은 징역 3년, 1명은 징역 9년을 원했고, 나머지 3명은 재판부의 징역7년 형에 근접한 형량을 제시했다고 알려주었다.


최저와 최고의 차이가 적지 않았다. 그런데 이같은 다양한 의견분포는 피고인의 입장에서도 그리고 이 재판에 대해 관심을 갖는 많은 사람들의 입장에서도 매우 귀중한 정보이다.
현재 국민참여재판 제도는 유무죄에 대한 배심원의 결정을 법관이 반드시 따라야 하는 것은 아니고, 또 양형에 대해서는 배심원들이 만장일치이든 다수결로 결정할 필요없이 토론 후 각자의 의견을 내놓으면 되는 방식이다.
하지만 이것이 양형에 대한 배심원의 의견을 가벼이 다루어도 된다는 뜻은 전혀 아니다.  국민참여재판는 유무죄에 대한 판단과 적정한 형량에 대한 국민적 상식과 감정을 반영하자는 의미를 갖고 있다. 또 최저와 최고 형량 사이의 편차가 컸다는 것은 이 재판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증거이다.
비록 재판부가 재량으로 결정할 수 있는 일이지만, 배심원들의 양형에 대한 의견분포를 충실하게 공개하는 것이 국민참여재판제도의 취지에 더욱 부합했다. 재판부가 배심원의 양형 의견을 공개하지 않은 이유가 무엇인지 짐작되기는 하지만 동의하기 어려운 결정이었다고 생각한다.


이 날 재판도 앞서 5월 27일 서울서부지방법원에서 열렸던 강도상해 국민참여재판처럼 일반 시민 여덟 분과 함께 방청을 했다. 참여연대와 함께 국민참여재판 방청하기 행사에 참여해준 분들이었다. 장시간의 재판을 함께 끝까지 방청해준 그 분들께도 정말 고마웠고, 그 분들의 생각도 들어볼 수 있어서 좋은 시간이었다.
그리고 이 날 재판을 어떤 고등학교 학생 십여명도 거의 재판이 끝날 때까지 방청했다. 법에 대해 관심있는 학교써클(동아리) 소속이라고 했다. 선생님께는 공결 허락까지 받아서 방청해러 왔다고 했다. 참 기특한 학생들이라 생각했다. 그들도 몇 년후에는 배심원이 될 자격을 갖추게 된다. 앞으로 훌륭한 배심원이 될 학생들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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