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권력교체와 2012년 동북아 질서

 

구갑우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


2011년 12월 19일 북한의 조선중앙방송은 특별방송을 통해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사망을 발표했다. 12월 17일 현지지도를 위해 이동하던 “야전렬차” 안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중증급성심근경색이 발생되고 심한 심장성쇼크가 합병되”어 사망했고, 12월 18일에 진행된 “병리해부검사에서는 질병의 진단이 완전히 확정되었다”는, 이틀의 침묵에 대한 부연도 있었다. “병리해부검사”에 대한 보도는 1994년 7월 김일성 주석이 사망했을 때와 같은 형태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사망으로, 북한도 2012년으로 예정된 동북아 국가들의 권력교체 대열에 합류하게 되었다. 2013년 동북아 질서 지각변동의 진앙 가운데 하나로, 예측하지 못했던, 북한의 국내정치적 변화가 부상하고 있다.  

 

김일성-김정일-김정은, 북한 3대세습 권력승계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사망은, 북한의 “최고령도자”인 김정일이 없는 북한이 혼란 또는 급변사태를 맞이할 것이라는 가설을, 검증대에 오르게 한다. 북한의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조선로동당 중앙군사위원회·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방위원회·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내각” 명의로 12월 17일 발표한 “고함”이라는 글에서는, 김정일의 “후계자”로 “주체혁명위업의 위대한 계승자”이고 “탁월한 령도자”로 김정일의 삼남 김정은을 묘사하고 있다. 김정은의 공식 지위는 조선로동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이지만, “국가장의위원회” 구성에서도 김정은만을 굵은 활자 “김정은동지”로 강조해 첫 머리에 언급하고 다른 장의위원은 이름만을 나열하고 있다. 1994년 김일성 주석이 사망했을 때, “김정일동지”를 내세운 것과 비슷하다. 반면 1994년의 시점에서 김정일은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과 국방위원장의 지위를 가지고 있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사망 발표 이후 일 주일여 만에, 북한매체에서 김정은에 대한 호칭은 빠른 속도로 “수령”의 지위로 격상되고 있다. “당중앙위원회 수반”, “최고령도자”, “혁명위업의 계승자” 등의 표현이 그것이다. 김정은의 권력승계를 기정사실화하면서 권력승계의 ‘안정성’을 보여주기 위한 호칭 변화라고 할 수 있다. 3대 세습에 대한 비판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권력승계는 ‘현실’이 되고 있다.


  이 현실을 예고한 사건이, 2010년 9월 28일에 개최된 조선로동당 대표자회였다. 2008년 김정일 위원장의 와병 이후 북한은 포스트 김정일 체제를 준비했던 것처럼 보이고, 당대표자회는 이를 제도화한 계기였다. 조선로동당 중앙지도기관 선거를 통해 형해화되어 있던 정치국 위원이 새로이 임명되었고, 김정은은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이 되면서 군에 대한 당의 통제를 실현할 수 있는 지위를 가지게 되었다. 즉 고전적 사회주의국가의 형태인 당-국가가 정상화되면서 포스트 김정일 체제의 기초가 마련되었다고 볼 수 있다. 당대표자회를 계기로 재편된, 포스트 김정일 체제를 뒷받침하고 있는 북한의 지배연합은, 이른바 “백두혈동”을 가진 후계자를 정점에 배치하는 수령제를 유지함으로써 자신들의 이익을 실현하는 방식을 선택했다고 볼 수 있고, 수령론과 후계자론을 정당화해 온 북한의 역사를 본다면 그들에게 다른 출구는 없었다고도 할 수 있다. 12월 28일 영결식에서, 김정은이 당·군·정에 지위를 가지고 있는 정치국 위원들―장성택 국방위원회 부위원장 겸 당 행정부장, 김기남·최태복 당 비서, 리영호 중앙군사위 부위원장 겸 군 총참모장, 김영춘 국방위원회 부위원장 겸 인민무력부장, 김정각 군 총정치국 제1부국장, 우동측 국가안전보위부 제1부부장―과 함께 영구차를 호위하는 모습은, 김정일 체제를 뒷받침했던 인사들이 김정은 체제로의 이행을 후견하는 세력이 될 것임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했다. 김정은이 김정일이 가지고 있던 지위인, “조선로동당 총비서”, “국방위원회 위원장”, “최고사령관” 가운데 어느 하나를 승계하는 방식으로 권력을 안정화·공고화하기까지는, 지배연합 내부의 갈등은 가시화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김정은 체제의 안정화·공고화 이전에 발생하는, 권력투쟁으로 비화되는 갈등은, 지배연합의 사회적, 경제적 토대를 붕괴시켜 체제의 혼란과 위기를 야기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북한이 포스트 김정일 체제를 김정은 체제로 정의하면서 대내적 안정을 모색하는 것과 더불어, 주변국들은 일정한 편차는 있지만, 김정은 체제를 사실상 인정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2010년 12월 20일 <로동신문>에는,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중화인민공화국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회·중화인민공화국 국무원·중화인민공화국 중앙군사위원회” 명의의 조전이 실렸다. 중국은 “김정일동지의 령도”를 언급하는 방식으로 김정은 체제를 인정했고, 중국과 북한이 “산과 강이 잇닿아있으며 고락을 같이하고있”다는 표현을 통해 지정학적으로 두 국가가 공동의 이익을 가지고 있음을 밝혔다. 러시아도 같은 날 대통령 명의의 조전에서 “김정은각하”와 “령도자”란 표현과 함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새 지도부”를 언급하면서, 김정은 체제를 사실상 인정했다. 미국의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도 북한의 “새 지도부”를 언급했고 북한이 평화적이고 안정적인 “이행”(transition)을 하기를 바란다고 밝힘으로써,  북한의 안정화를 선호하는 태도를 보였다. 일본도 관방장관이 애도의 뜻을 표했고, 한국도 정부담화문을 통해 ‘북한주민’에게 위로의 뜻을 전했다. 강도와 의도의 차이가 드러나기는 하지만, 주변국들 모두 한반도의 ‘안정’을 선호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는 메시지들이었다. 북한의 급변이 자국의 이익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주변국들의 합의를 보는 듯하다.

 

김정은 우선 과제, ‘경제적 성과’


포스트 김정일 체제로서 김정은 체제의 국내외적 인정이 있고 이 인정을 통해 김정은 체제로의 이행이 순조롭게 진행될 가능성이 있지만, 김정은 체제의 안착을 위해서는 풀어야 할 과제들이 있다. 무엇보다도 2012년을 이른바 ‘강성대국’ 원년으로 설정한 상태에서, 가시적 경제적 성과가 필수적이다. 즉 북한주민의 삶의 질을 개선할 수 있는 리더십을 발휘할 때, 전통과 카리스마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김정은 체제가 새로운 정당성을 획득할 수 있다. 경제성장은, 자본과 노동의 투입을 증대하거나 기술혁신을 통해 가능할 수 있다. ‘150일 전투’와 같은 노동투입형 경제성장이 한계를 노정할 수밖에 없다고 할 때, 북한은 외부로부터의 지원과 기술혁신을 필요로 한다. 북한에서 김정은과 거의 동의어로 사용되고 있는 CNC(컴퓨터 수치제어)는, 기술혁신을 통한 경제성장에 대한 북한의 의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그러나 기술혁신이 경제성장과 연관되기 위해서는 경제체제의 개혁이 필수적이다. 2002년 7·1 경제관리개선조치의 좌초는, 북한의 지배연합 내부에 개혁의 방향과 속도를 둘러싼 대립이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그러나 김정은 체제의 안착을 위해 후견세력이 일정한 역할을 하는 한, 전면적 개혁노선은 불가능할 것이다. 북한에 새롭게 등장한  ‘세계로’라는 구호가 현실화되기 위해서는 지배연합의 세대교체가 불가피하고, 이 세대교체가 권력투쟁으로 비화되지 않고 이루어질 수 있다면, 김정은 체제의 공고화의 한 지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가시적인 경제적 성과를 위한 북한의 중단기적 선택은, 국제관계의 개선을 통한 지원과 자본의 유입일 수밖에 없다. 국제관계 개선은 김정은 체제의 또 다른 성과로 기록될 수 있을 것이다. 즉 김정은 체제의 안착은 북한을 매개로 한 동북아 질서의 재편과 맞물려 있다.

2010년 동북아 질서는 한미동맹 대 북중동맹의 세력균형의 정치가 대립하는 구도였다. 2010년을 거치며 한미동맹은 다원적 전략동맹으로 승격되었고, 북중의 전략적 소통과 경제협력이 가속화되었다. 북한은 중국경제에 종속되어 “절름발이 경제”가 될 것을 우려하면서도, 중국과의 협력을 매개로 한 경제특구형 개방을 추진하고 있다. 북한의 지배연합 내부에서 이 정책을 둘러싼 논쟁도 불가피할 것이다. 김정은 체제의 향방을 결정할 또 다른 변수라고 할 수 있다. 북미관계, 북일관계, 남북관계의 개선은 중국 의존적 경제에 대한 내부 비판 및 중국에 대한 과도의존이 초래할 수 있는 위험을 제어할 수 있는 수단이자, 김정은 체제의 안정화·공고화의 토대가 될 수도 있다.


  북한은 2011년 7월과 10월 북미대화를 재개했고,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사망하기 직전 우라늄농축 중단의 대가로 식량지원을 받는 타협안이 만들어졌다고 한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사망에도 불구하고, 북미는 뉴욕채널을 통해 대화를 지속하기도 했다. 1994년 7월 김일성 주석이 사망했을 때와 비슷한 형국이다. 1994년 10월 북한과 미국은 제네바합의를 도출했지만, 북중관계와 남북관계는 냉각상태였다. 한중수교 시점인 1992년부터 1999년까지 북중 사이 고위급 방문은 중단되었다. 그 시기 북한은 “고난의 행군”이라는 최악의 경제위기를 겪었다. 김일성 주석 사망 이후 남한 내부에서 벌어진 조문을 둘러싼 극심한 남남갈등은 남북관계를 악화시킨 요인이었다.

 

2012년, 6자회담국 모두 권력교체 시기


그러나 1994년과 2012년의 국제정세는 근본적 차이가 있다. 첫째, 미국이 동북아 지역에서 중국과 경쟁하면서 아시아·태평양으로의 복귀를 선언하고 있다. 클린턴 미국 국무장관은, 2010년 10월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의 미국의 적극적 관여”를 밝힌 이후, 2011년 11월에는 “미국의 태평양 시대”를 선언하며 “정치의 미래는 아프가니스탄이나 이라크가 아니라 아시아에서 결정될 전망이며, 미국은 그 중심에 서게 될 것이” 라고 말한 바 있다. 클린턴은 두 문건에서 미국과 중국이 서로 적으로 바라본다면 서로 이득이 될 것이 없다는, 또는 서로의 발전을 서로에 대한 위협으로 보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는 의견들을 반박하며, 차이가 있음에도 미국과 중국의 협력이 필요함을 강조하고 있다. 미국과 중국의 경제적 상호의존을 생각한다면 당연한 발언이지만, 미국의 아시아·태평양으로의 복귀는 미중협력뿐만 아니라 갈등의 요인을 배태하고 있다. 미국의 동아시아 정상회담 참여와 ‘환태평양 전략적 경제동반자 협정’(TPP) 구상도 중국에게는 압박으로 읽힐 수 있다. 1962년 이후 미국 국무장관이 군사독재국가인 미얀마를 방문한 사건은, 중국의 영향력을 차단하는 포위로 해석될 수도 있다. 미국이 주도하고 베트남 등이 참여하고 있는 메콩강 개발계획도 마찬가지다. 미국은 북한이 동북아에서 미중관계의 갈등요인이자 쟁점임을 부인하지 않는다.


  둘째, 1990년대 중반과 달리 동북아에는 한반도 핵문제뿐만 아니라 한반도와 동북아의 평화체제를 논의하는 다자적 틀인 6자회담이 존재한다. 북미대화도 결국은 6자회담에서 최종 마무리가 될 수밖에 없다. 중국은 6자회담의 의장 국가이고, 한국은 6자회담의 개최 및 의제설정에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위치에 있다. 셋째, 2012년에는 6자회담 참여국 모두 권력교체를 경험하게 된다. 중국만이 권력승계의 안정성을 보일 뿐 나머지 국가들에서 결정될 정권의 성격은 불확실하다. 따라서 6자회담 참여국의 국내 정치가 동북아 질서를 주조하는 시점이 2012년이다. 따라서 2012년에는 국제적 의제를 실천할 수 있는 국내적 동력이 결여될 수밖에 없다. 2012년 이전에 6자회담을 매개로 한반도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체제가 실현되는 경로가 만들어질 수 있었다면, 동북아 국가들의 국내정치 지형도 변화했을 것이지만, 그 경로는 실현되지 않았다. 동북아 질서의 지각변동은 2013년부터 시작될 것이고, 그 향방은 2012년의 선거들에서 결정될 것이다.


  김정은 체제의 안정화·공고화를 도모하는 북한의 지배연합은 미중관계의 변화 속에서 북한의 지정학적 가치를 활용하는 대외정책을 입안하고자 할 것이다. 그러나 정권의 지속 또는 교체가 불확실한 조건에서 비가역적 합의를 도출하는 것이 불가능하고, 만약 합의가 만들어진다고 해도 다른 국가에서 정권교체가 발생하면 그 합의가 무효화되고 상황은 더욱 악화될 수 있음을 경험했기 때문에, 6자회담 참여국 모두 파국을 제어하는 방어적 전략을 구사할 가능성이 높다. 남북관계에서도 부분적 개선은 있을 수 있지만 전면적 개선은 2012년에는 불가능할 것이다. 2012년의 조정기 동안 북한은 김정은 체제의 조기 안착에 주력하면서, 2013년을 준비하는 행보를 보일 것이다.


  6자회담 참여국 가운데 중국이 상수이고 일본과 러시아가 보조 변수라고 한다면, 미국과 남북한의 국내정치가 2012년 이후의 동북아 질서를 구조화하는 독립변수의 역할을 할 것이다. 북한에서 발생한 세습방식의 권력교체가 역설적이지만 대내적 대외적 안정화 정책을 추구하게끔 할 것이라 예측할 수 있다면, 결국 미국과 한국의 국내정치가 독립변수의 역할을 할 것이다. 미국의 오바마 행정부는 역사상 유례가 없을 정도로 전 세계적 지지를 받고 탄생한 정권이지만, 당선으로 그 역사적 소임을 다 한 것처럼 보인다. 미국의 경제위기는 오바마 행정부의 재선조차 불투명하게 만들고 있다. 한반도 문제가 미국 선거에 미치는 영향은 거의 없을 것이지만, 한반도의 ‘불안정’은 오바마 행정부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것이다. 2012년 미국과 중국이 한반도 문제와 관련하여 합의할 수 있는 최대치는 ‘현상유지’ 또는 ‘안정’일 것이다.

 

동북아 질서 재편과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무엇보다도 주목되는 동북아 질서 지각변동의 진앙은 2012년 한국이 될 것이다. 미국의 경제위기와 중국의 부상으로 재구조화된 미중관계에서 한국의 자율성은 제고되었고, 따라서 한국의 선택이 동북아 질서 재편과정에서 결정적이지는 않지만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어떤’ 시민국가·복지국가·평화국가인가, 라는 질문이 제기될 수밖에 없는 2012년 한국에서, 북한의 권력교체 방식에 대한 비판과 더불어 현실로 등장한 김정은 체제를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가 쟁점이 될 것이다. 이 과정에서, 평화국가의 핵심 구성요소인 ‘한반도 평화체제’를 진보와 보수가 동의할 수 있는, 그럼에도 그 내용에는 차이가 있겠지만, 국내정치적 의제로 만드는 작업이 필요하다. 한반도 평화체제를 의제화하고, 그 내용과 형태를 둘러싼 다양한 쟁점들―적과 위협의 재정의, 비핵화의 의미와 비핵화와 평화체제의 관계, 평화협정의 형태, 한반도 평화관리기구의 구성, 평화체제와 동맹, 군축과 군비통제 등등―을 논의할 수 있어야 한다. 평화와 복지와 경제가 선순환하는 구조에 대한 합의가 한국에서 만들어진다면, 한반도와 동북아에서 정의와 함께 가는 평화를 위한 질서를 상상할 수 있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