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군축센터 칼럼(pd) 2012-12-13   2780

[평화에 투표하자⑮] 강제이주 6년을 맞은 대추리 주민들

 

총선과 대선에서는 평화와 외교ㆍ안보 문제도 중요한 쟁점입니다. 선거를 앞두고 외교ㆍ안보 현안이 갑자기 떠오를 때의 표심은 예측하기 어렵지만, 긴장을 고조시켜 표를 얻으려는 시도는 이제 어림도 없다는 사실은 분명해 졌습니다. 그러나 갈등 조장에 대한 유혹을 느끼는 듯한 움직임은 여전히 있습니다.

프레시안과 참여연대는 올해 총선과 대선 국면에서 벌어지는 긴장 고조 행위를 감시하고, 올바른 대외전략의 비전을 제시하고자 ‘평화에 투표하자’ 시리즈를 공동 기획했습니다. 여러 전문가들이 필자로 나서는 이 연재에서는 현안에 대한 대응은 물론 평화를 바라는 이들이 외교ㆍ안보 쟁점에서 가져야 할 기준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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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권’을 힘 없는 국민에게 보장하라

강제이주 6년을 맞은 대추리 주민들

 

김영근 신부, 예수회 사회사도직공동체 원장

 

2004년 한·미 정부의 연합토지관리계획(LPP)에 의해 전국에 산재한 미군기지를 통합 재배치, 평택에 285만평을 확장, 용산기지와 2사단을 평택으로 이전하기로 했다. 이러한 미군기지확장사업으로 인해 강제 이주 6년째 접어들고 있는 평택 팽성읍 대추리 주민 – 노인들을 만나 보았다.

 

주민들의 이야기를 듣는 자리에서 내 귀를 의심했다. 미군기지확장사업으로 인한 대추리 마을의 수용 건에 대해 처음부터 주민들과 한마디 상의도 없었다는 것이다. 정부의 일방적 계획, 통보에 따라 평화롭기만 했던 마을에 날벼락이 떨어진 것이다. 어떻게 자유 민주주의 국가에서 이런 날강도 같은 일이 벌어질 수 있는가? 그것도 국민을 대표하는 정부의 이름으로 말이다. 이는 원천적으로 잘못된 일이다. 강도와 다른 것이 무엇인가?

 

한 아주머니는 눈물을 흘리며 말을 한다. “어떻게 그 땅을 가꾸었는데…강제로 쫓겨난 것이 억울하다.” 이들에게 억만금을 준들 강제로 빼앗기는 ‘생명의 땅’과 바꿀 수 있을까? 아직도 이웃마을과 이주를 찬성했던 사람들로부터 듣는, 이들 주민의 가슴을 도려내는 듯한 말이 있다한다. 보상금 올려 받기위해 그렇게 끝까지 남아 패악을 부렸느냐고. 주민들은 억만금의 보상금을 바라는 것이 아니고 ‘내 몸과도 같은 대추리를 ‘강제로’ 떠나기 싫다’는 것이었으리라.

      ▲ 평택 대추리 주민들. ⓒ참여연대

 

하여 그들은 말을 한다. “대추리”라는 마을 이름을 지금 사는 이곳에서 자유롭게 사용하게 해달라는데 이주한지 6년째를 살고 있지만 묵묵부답이라고. 그 “대추리”라는 마을 이름만 사용하게 된다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다한다. 이 역시 내 귀를 의심한 것인데, 이들에게 “대추리”라는 마을 이름이 과연 무엇인가? 그것은 주민들이 손수 온 몸을 던져 일구어 온 평생의 역사요, 긍지이며, 자신들의 생명의 땅이고 자손에게 물려줄 소중한 유산이며 마지막 자존심일 것이다. 그래서 그렇게도 소중하여 이것만은 빼앗기고 싶지 않은데 이것마저, ‘껍데기’마저 홀딱 벗겨가려하는 것이다. 이 나라가 과연 자유 민주주의 국가가 맞는가?

 

구약성경에 이런 내용이 있다. 나봇이라는 사람이 이즈르엘에 포도밭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 포도밭은 사마리아 임금 아합의 궁전 곁에 있었다. 아합은 그 포도밭을 갖고자하여 다른 포도밭을 내주고 바꾸거나 돈으로 구입하려 했으나 나봇은 자기 조상대대부터 내려오던 포도밭을 팔려하지 않았다. 아합이 그 일로 왕궁으로 돌아와 자리에 눕고 식사도 하지 않자, 왕비 이세벨이 그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세벨은 이스라엘의 왕이 뭐 이런 일로 자리에 눕는가하고 책망하고는, 이세벨이 나봇과 함께 사는 장로와 귀족들에게 나봇에게 하느님과 왕을 모독한 죄를 뒤집어 씌워 죽이라 했다. 나봇은 거짓 증인자들로 인해 억울한 죽음을 당하고 말았다. 이세벨이 그 일을 아합에게 고하자 아합은 그 포도원 밭을 차지하러갔다(열왕기 상 21:1-16)는 이야기다.

 

권력남용의 극치인 이 이야기의 말미에 예언자 엘리야가 아합 임금을 찾아 이렇게 이야기한다. “주님이 말한다. 살인을 하고 땅마저 차지하려느냐? 개들이 나봇의 피를 핥던 바로 그 자리에서 개들이 네 피도 핥을 것이다.”(21:19) 이 나라 정부나 다른 누구의 ‘땅’을 보는 시각과 평생을 일구어 온 땅의 주인 농민이 ‘땅’을 보는 시각이 같을 수 있을까? 천박한 돈의 논리로 보는 무뢰배의 땅과 정성을 다해 가꾸어 자손에게 물려줄 소중한 유산과 생명의 논리로 보는 농민의 땅이 같을 수 있을까?

 

주민들은 아직도 “빨갱이”라는 소리를 듣는다고 정말 억울해 한다. 빨갱이란 무엇인가? 역사성을 갖고 있는 이 단어 “빨갱이”는 공산주의자, 폄하의 대상, 도덕적파탄자, 민족반역자, 정권에 반대하고 정권을 위협하는 자로서 인간이하의 취급을 받아도 싼, 죽여야 할 대상인 ‘비인간적 존재’라는 낙인을 찍는 것이다.

 

어째서 그들이 “빨갱이”인가? 어째서 그들이 인간이하의 취급을 받아야하는 존재인가? 반정부 단체인 한총련과 시민단체가 들어와 그들과 손잡고 투쟁했다하여 빨갱이인가? 아니면 미군기지확장을 반대하며 억만금의 보상을 요구했다하여 빨갱이인가? 평화롭게 살던 마을 주민들, 그것도 노인들이 어느 날 갑자기 공산주의자라도 되어 빨갱이인가? 첫 출발부터 날강도 같은 정부에 대항하여 평화, 주거권을 외치며 국책사업을 비판하니 빨갱이인가? 아무리 점잖은 나랏님이라 해도 그러한 원천적인 부당함, 아니 날강도에게 찍소리 못하고 몸짓하나 안하면 그거야말로 아주 괴이한 일이 아닌가? 부당함을 당하는 힘없는 이웃을 강 건너 불 보듯 하고 있다면 그거야말로 인간이하의 모습 아닌가? 이는 맹자가 이야기하는 측은지심으로, 인간의 본성에서 우러나오는, 다른 사람의 불행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으로 너무도 당연한 것이다. 감히 누가 누구에게 빨갱이라 하는가?

 

정부는 헌법에 따라 평범한 국민의 평화권, 즉 평화롭게 살 권리를 언제 어디서든 보장해야한다. 그 모든 헌법의 기본이자 핵심은 국민 저 자신에게서 나오며, 그 누구로부터도 제약 없이 국민 스스로 평화롭게 살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국민을 대표하는 정부는 그러한 권한을 남용할 어떠한 명분도 갖고 있지 않다. 무엇이 그리 급하고 무엇이 그리 구리고 켕기는 것이 많아 모든 절차를 무시하여 평화로이 살고 있는 마을 주민을 내쫓고 날로 땅을 빼앗아 먹어버렸는가? 그러한 권한을 어떤 불한당이 주었단 말인가? 어디 대추리만의 문제이겠는가? 용산참사가 그렇고, 제주 강정마을이 그렇지 아니한가?

 

김포 애기봉의 등탑 설치는 등탑 주변 마을 주민을 매우 불안에 떨게 한다. 지난 1971년 세워진 애기봉 등탑은 2004년 6월 군사분계선 인근에서 상호 선전 활동을 중지하고 선전 수단을 제거하기로 한 남북 장성급 군사회담 합의 이후 철거됐다가 지난 2010년 천안함, 연평도 사건을 계기로 6, 7년 만에 다시 설치되기 시작했다. 마을 주민들은 강변하고 있다. “성탄시기에 등탑은 진정 평화의 탑이 아니라 악의 등탑, 전쟁의 등탑이다. 등탑으로 인하여 남북의 군사적 긴장은 고조되고 있다.”

 

등탑이 설치될 때면 밑의 마을 사람들은 대피소로 대피하는 소동을 벌인다고 한다. 이 얼마나 불안한 생활인가? 이 땅 그 어디에서 이렇게 대피하며 불안한 생활을 하고 있는가? 북에서 위협을 하고 있듯이 연평도처럼 포격을 가해오면 그것은 결국 누가 얻어맞는가? 점등행사를 한 당사자들인가 아니면 이 모든 것에 눈 감고 있는 정부의 고위 관리인가? 그것은 아무 죄 없는 마을 주민들인 것이다.

 

국가는 그러한 극도의 불안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하기위해 조치를 취해야하거늘 조치를 취하기는커녕 불안을 계속 고조시키고 있는 모양새인 것이다. 그곳의 마을 주민들 역시 농부들이다. 그저 평화로이 농사짓기를 원하고 있다. 누가 이들의 ‘평화권’을 빼앗고 있는 것인가? 마을이 불안하니 그 누구도 관광하겠다고 오는 사람이 없으며 투자자도 없다고 한다. 마을에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있는 것이다.

 

현 정부의 대북 정책은 원천적으로 잘못되었다. “명박산성”이 잘 말해주듯 불통의 대북정책일 따름이다. 뿐만 아니라 국민을 대표하는 정부는 그 권한을 남용하는 도를 넘어서도 한참 넘어섰다. 이제 새 국회가 개원되었고 새 정부가 꾸려질 것이다. 진정으로 국민을 위한 정부, 국민을 두려워하는 정부, 국민을 아끼는 정부가 되어야한다. 과거의 정부가 저질러놓아 아직도 피눈물을 흘리고 땅을 치며 원통해하는 국민을 애써 살펴 그 피눈물을 닦아주어야 한다. 또한 약속한 것이 있다면 어떤 작은 약속이라도 말 바꾸기 하지 않고 성실히 이행해야한다.

 

그 어떤 논리와 명분에 앞서 국민이, 그것도 힘없고 가진 것 없는 국민이 평화롭게 살 권리를 보장해야하는 것이다. 그 어떤 상황에서라도 이념논쟁, 나아가 색깔론으로 몰고 가서는 아니 될 것이다. 이보다 무지몽매하며 불통의 정부, 불통의 사회는 없을 것이다.

 

 *이 글은 참여연대 제주 강정마을, 평택 대추리, 김포 애기봉 주민들과 진행한 ‘움직이는 평화마당 공감토크 : 우리는 단지 평화롭게 살고 싶다’와 관련해 쓰였습니다.(☞관련 자료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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