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 론스타의 불법 은행지배, 먹튀 행각 이제라도 진상규명 필요하다

어제(8/31) 론스타와 한국정부 간 투자자-국가분쟁(Investor-State Dispute, ISD)사건의 중재판정 결과가 발표되었다. 제소 당시 5조원이 넘는 배상금을 청구한 것도 터무니없는 일이나, 더욱 중요한 점은 론스타는 처음부터 외환은행을 인수할 자격이 없었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론스타는 외환은행을 인수 매각하는 과정에서 배당과 매각차익 등으로 5조원에 달하는 이익을 얻었다. 금융당국은 론스타가 처음부터  자격이 없다는 점을 알고 있었거나, 적어도 뒤늦게 알게 되었음에도 사실상 아무런 조치도 하지 않았다. 그야말로 금융감독의 원칙이 총체적으로 무너진 희대의 사건이다. 비록 중재부가 론스타가 청구했던 금액 5조원 중 일부만을 지급하도록 판정했으나,  근본적으로 국제분쟁을 제기할 자격조차 없는 비적격 인수자였음에도 한국정부가  론스타의 인수 자체가 무효라는 주장을 펼치지 않은 결과 결국 엄청난 금액의 배상 판정을 받게 된 것으로 쉬이 납득하기 어렵다. 지난 20년 동안 론스타 사태가 어떻게 가능했고 과연 누구의 판단과 책임이 있었는지 이제라도 명백히 밝힐 필요가 있다. 이를 통해 산업자본인 론스타가 부당하게 외환은행을 인수·매각하는 과정에 개입한 관련자들의 책임을 철저하게 묻고, 나아가 재발방지를 위해서는 근본적으로 투자협정 상의 투자자-국가 분쟁해결 (ISDS) 조항의 폐기를 추진해야 한다.

분쟁조정 과정의 문서·진술서 모두 공개하고 관련자 청문회 실시해야

이 사태의 발단이 된 20년 전을 되돌아보면 처음부터 산업자본 론스타는 은행법상 은행을 인수할 자격이 없었다. 이는 시민단체들이 지난 십수 년간 반복해 외쳐왔고, 수차례에 걸쳐 증명된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론스타는 2003년부터 2012년까지 불법적으로 외환은행 주식을 보유하면서 수조원에 달하는 천문학적인 이익을 챙겼다. 그러나 론스타가 외환은행을 인수한 후, 조 단위가 넘는 거액의 배당을 수령하고 경영권 프리미엄까지 붙여 다시 수조원의 매각 차익을 얻을 때까지 론스타를 포함해 외환은행 인수를 승인한 금융당국의 그 누구도 제대로 된 책임을 지지 않았다. 그뿐 아니다. 론스타는 외환은행을 매각한 후에도 다시 돌아와 정부의 매각지연으로 손해를 봤다며 2012년 대한민국을 상대로 수조원에 달하는 규모의 ISD를 제기했으나 그 소송 과정은 철저히 비공개에 부쳐졌고, 국민들은 선고를 그저 무기력하게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그동안 최종 패소가 확정된 사건에서도 정부는 외교관계 등에 관한 사항이라는 이유로 자료를 비공개하는 등 밀행주의와 비밀주의를 고집해 왔다. 정부는 지금이라도 이번 판정문을 공개해야 함은 물론이고, 그동안 중재판정부에 제출한 한국정부 측 문서와 진술서도 모두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 이를 통해 한국정부가 어떤 주장을 했고, 중재판정에 나선 증인과 전문가들이 어떤 진술을 했는지 확실히 밝혀야 한다.

무능·무책임, 먹튀 과정 사실상 방조한 모피아 근본적으로 청산해야

자격 없는 론스타가 외환은행을 인수하도록 허용한 자들에게 그 책임을 확실히 물어 다시는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이 사안은 당시 신자유주의 국정기조 흐름 속에서 외국 자본의 투자를 유치하는 것이 마치 글로벌스탠다드를 추구하는 것인 양 포장해 인수할 자격이 되지 않는데도 론스타와 같은 투기자본이 헐값으로 공공기관의 성격을 가지는 은행을 인수하도록 방치했다는 점에서 정부의 무능과 무책임이 문제가 되는 심각한 사안이다. 그럼에도 역대 어느 정권도 론스타 사태 관련자에게 제대로 된 책임을 묻지 못했고, 수차례 잘못을 바로잡을 기회가 있었음에도 이를 번번히 놓쳐왔다. 특히 국내법과 제도가 론스타에 의해 철저히 유린되는 과정에서 소위 모피아(MOFIA)라 불리는 경제관료들이 보여준 행태는 단순한 정책 실패를 넘어 사실상 불법에 대한 방조라 칭할만하다. 지금이라도 국회 청문회와 검찰 수사를 통해 지난 20여 년 동안 모피아들이 론스타의 불법 은행 지배와 먹튀 행각을 위해 복무한 진상을 규명하고 엄정한 법의 심판을 구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는 이유다.

대한민국 경제 법질서를 유린하고 농락한 일개 사모펀드의 사기행각과, 이를 묵인하고 사실상 조력해온 금융감독 당국의 책임을 분명히 물어야 한다. 국회는 이제라도 한덕수 국무총리, 추경호 경제부총리 등 론스타 사태에 책임이 있는 인사들에 대한 청문회를 열고, 론스타가 움직였던 고비마다 이들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 소상히 밝혀 국민들이 이 사태의 진상을 정확히 파악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투자자에만 유리, 공공정책·사법주권 위협하는 ISDS 폐기해야

론스타 사태 재발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보다 근본적으로는 투자자-국가 분쟁해결 (ISDS) 조항의 폐기를 추진해야 한다. ISDS는 외국인 투자자가 자신의 투자에 대해 손해를 입었다고 생각할 경우, 외국 민간 중재인으로 구성되는 중재판정부에 투자 당사국을 상대로 국제중재를 신청하는 제도이다. ISDS는 기업을 보호하는 투자협정의 성격을 가져 ISD 중재는 기본적으로 제소한 기업에 유리하며 국가 주권을 제한한다. 국가가 법에 따라 정당한 행위를 했는지가 아니라 투자협정을 위반했는지를 따지기 때문에 정부의 정책이 합법적인 행위라도 협정 위반으로 해석되어 막대한 배상으로 귀결되는 경우가 많다. 실제 ISD로 인해 공공정책이 위협받는 사례는 심심찮게 찾을 수 있다. 이러한 ISD의 공공정책 및 사법 주권 훼손과 인권 침해 가능성을 들어 그동안 시민사회는 독소조항 ISDS 폐기를 주장해왔다. 이러한 우려에 공감해 전세계적으로도 ISDS를 없애는 국제투자조약이 늘고 있으며, 유엔 국제상거래법위원회(UNCITRAL)는 2017년부터 ISDS 개혁논의를 하고 있는 중이다. 이처럼 ISDS 위협이 현실화 되었지만 정부는 여전히 ISDS를 채택하고 있다. 이에 대한 근본적인 개선이 필요하다.

국민경제 피해에도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다면 누구도 납득 못해

한번 무너진 둑을 다시 세우고 원칙을 바로잡는 일은 쉽지 않다. 론스타 사태 이후 정부는 또 다시 불법적 특혜를 통해 케이뱅크에 은행업 인가를 내주는 등 그동안 우리 사회의 주요 금융 원칙으로 작동하던 은산분리를 지속적으로 훼손해왔다. 또한 한국 정부가 한미FTA 체결 당시 피소 가능성은 0%라고 주장한 것과 달리 2012년 론스타의 ISDS 제소 이후 엘리엇, 메이슨, 쉰들러, 버자야 등 외국 기업과 해외 동포들의 제소가  이어지고 있다. 청구액만 수 조원에 달하며, 중재인 비용, 변호사 비용까지 합하면 막대한 금액이 국민 세금으로 빠져나가는 ISDS의 고리를 완전히 끊어내려면 독소조항인 ISDS를 폐기하는 수밖에 없다. 론스타 배상액이 당초 청구액 5조 원 보다 훨씬 적으니 문제가 안 된다는 식으로 접근해서는 안 된다. 또한 정부의 이번 판정 취소신청 검토가 정보공개나 진실 확인을 막는 핑계나 꼼수가 되어서도 안 될 것이다. 유사한 문제의 재발을 막기 위해 흐려져버린 은산분리 원칙을 바로 세우고 독소조항을 과감히 잘라내는 결단이 필요하다. 론스타 사태로부터 얻은 교훈을 흐지부지 넘겨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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