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복지동향 2023 2023-01-01   504

[편집인의 글] 안티 테제로만 존재하는 작은 정부

김형용 동국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하버드 대학 경제학자인 알레시나와 글레이저는 미국과 유럽의 복지국가를 비교하면서 다음과 같이 결론을 내린 바 있다. 

“복지에 있어 정부의 역할이 큰 유럽과 작은 미국의 차이는 소득불평등, 조세효율성, 또는 계층이동성과 같은 경제적 이유에 따라 형성된 것이 아니라, 정치 제도와 인종적 이질성 때문에 다르게 형성되었다. 미국이 작은 정부를 지향하는 것은 백인이 소수 인종에게 재분배를 원하지 않아서 나타난 현상이며 이민자들이 형성한 사회특성상 이동성이 높은 사회에 살고 있다고 믿고 자수성가 개념을 열심히 선전한 결과이다” 

즉 객관적 사실보다 윤리적 태도가 다른 정부구조를 형성시켰다는 것이다. 

윤석열 정부의 재정 긴축, 공공부문 감축, 민영화라는 행보도 ‘근거’보다는 ‘자유’라는 신념에 있다. 하이에크는 ‘노예의 길’에서 정부가 독점적 권한을 가지게 되면 개인의 자유는 위협받는다고 하였고, 이에 통치영역은 국민이 동의하는 매우 작은 부분에 국한해야 한다고 보았다. 그런데 윤석열 정부가 지향하는 자유는 봉건제 신분으로부터 벗어남을 목표로 하였던 시민권적 개인의 자유와 거리가 멀고, 국가통치 영역을 축소하여 개인에 대한 강제를 줄이겠다는 하이에크의 자유와도 거리가 멀다. 작은 정부로 달성하고자 하는 의도가 예산의 자의적 사용을 통해 통치권을 확대하는 경향이 강하게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추진되는 작은 정부는 오로지 전 정부에 대한 안티테제로 몰입되어 있는 듯하다. 안티테제는 상대와 첨예한 대립을 위해 도입되고, 반대라는 이유로 주목을 받는다. 아마도 현재의 작은 정부는 문재인의 대통령 선거 슬로건 ‘나라를 나라답게’ 때문인 것 같다. 문재인 정부는 국정과제로 ‘내 삶을 책임지는 국가’를 제시하고 국가가 나서서 사회경제적 불평등을 해소하고 사회 구성원의 유대를 강화하기 위해 적극적 행위자로서의 역할을 수행한다는 공공성 과제들을 제시하였다. 이에 안티테제로서 윤석열의 작은 정부는 ‘나라가 나라답게 하지 않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법인세·소득세·종부세를 대폭 감면하여 자산·소득불평등을 늘리고, 공공기관 인력을 대규모 감축하여 공공의 역할을 줄이며, 지난 동안 개선된 성평등과 노동권을 되돌리는 식이다. 또한 문재인 정부는 보건복지 통합을 지향했으니, 윤석열 정부는 보건복지 분리를 추진한다. 편을 갈라야, 통치가 편해진다. 

이쯤 되면, 왜 작은 정부인지가 명확하다. 전 정부의 실패로 인해 인기를 얻었고 그래서 안티테제만으로도 안정적 통치 기반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문제는 현실이다. 급격한 경기후퇴 상황에서 정부의 적극적 개입이 사라지면, 전 정부 국정과제의 지향과 반대결과가 나타나지 않겠는가? 불평등과 격차가 커질 것이고 사회구성원의 유대는 해체될 것이다. 나라가 나라답지 못하면 결국 참사가 되풀이 된다.

복지동향 본 호가 다루는 주제는 작은 정부의 복지이다. 이주하 교수는 정부의 규모, 영향력, 역량이라는 세 가지 차원에서 한국은 모두 OECD 최하위에 머물고 있음을 보여주면서 더 작은 정부를 지향하는 현 국정의 실수를 지적하고 있다. 정부의 규모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정부를 신뢰할 수 있는 조건이 성숙해야 정부의 영향력과 역량을 키울 수 있다. 김철 선임연구위원은 자본의 이윤을 위해 공공을 팔아치우는 작은 정부와 시장주의를 비판하고 있다. 시장에 정부가 개입할 필요가 없다는 논리로 현 정부는 사회보장 역할을 포기하고 있음을 지적하였다. 김선희 교수는 보건복지부 조직개편이 여성가족부 폐지로 시작된 것이며, 보건과 복지가 분리될 경우 보건과 복지의 공공성이 모두 약화될 것을 우려하고 있다. 특히 보건은 의료 민영화 및 영리화 추진으로 의료서비스 산업부 역할을 하게 될 가능성도 있다. 마지막으로 김보영 교수는 보건복지 조직개편이 효과성과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서 진행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고질적 병폐인 파편성과 분절성이 더욱 심화되는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음을 비판하였다. 

진보와 보수의 협치까지 바라지 않는다. 철학적·윤리적 판단에 기초한 진보-보수의 논쟁이라도 있어야 한다. 정작 진실도 없고, 윤리도 없는, 기득권 권력의 가짜들만 있다. 정치의 모습을 바꾸는 일이 그래서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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