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경제민주화, 그 꺼져 가는 촛불

 

경제민주화, 그 꺼져 가는 촛불

전성인 홍익대 경제학부 교수

 

경제민주화 입법이 난항을 겪고 있다.  대통령 공약과 민주당 공약의 태반이 아직 관련 상임위에서 논의조차 되지 않고 있으며, 일부 상임위를 통과한 법안도 법사위와 본회의 등 첩첩산충을 제대로 넘지 못하고 있다. 

 

전장(戰場)은 기본적으로 정무위다.  하도급법, 가맹사업법, 공정거래법 등 핵심 법안이 여기서 가닥이 잡힌다.  아직 논의조차 꺼내보지 못한 금융지주회사법과 은행법 복원도 여기서 정리되어야 한다.  그런데 선봉장이라고 할 수 있는 정무위의 처리 속도가 느리기 짝이 없다.  그래도 조금 다행스러운 점은 여야 합의로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점이다.  문제는 법사위와 본회의다.  대부분의 브레이크는 여기서 걸리고 있다.  

 

그 실상을 조금 살펴 보자.  지난 4월 몇 차례의 출다리기를 거쳐 정무위는 하도급법, 가맹사업법, 공정거래법 등의 개정안을 만들어서 여야 합의로 통과시켰다.  그러나 정작 본회의를 통과하여 입법화에 최종 성공한 것은 오직 하도급법 뿐이었다.  가맹사업법과 공정거래법은 “숙려기간”이라는 이상한 말을 앞세워 6월 국회로 넘기고 말았다.  지금 우리가 무슨 이혼을 하려고 하는가?  지난 2년 동안 여의도를 달구었으면 그 논의는 이미 익을 대로 익은 상태다.  해괴한 말로 물타기를 하려 해서는 안된다.

 

지금 해야 할 일은 산적해 있다.  우선 대기업 규제 관련해서 신규 순환출자 금지하는 것은 당연하고 기존 순환출자를 강화하는 출자도 금지하고, 이왕이면 의결권도 제한해야 한다.  이것은 현대차의 반대를 뚫고 해야 하기 때문에 진검승부다.  다음으로 계열 금융기관의 비금융계열회사에 대한 의결권 제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작년 9월 새누리당 개혁 성향 모임인 경제민주화 실천모임에서는 현행 의결권 행사한도인 15%를 일률적으로 5%로 인하하는 개정안을 냈다.  이대로 하면 된다.  이것은 삼성과의 진검 승부다.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꼼수가 판을 치고 있다. 현행 한도인 15%를 그대로 두고 그 대신 개별 금융기관 또는 금융기관들만의 합계를 일부 줄이는 안이 슬그머니 등장해서 개혁안인양 행세하고 있다.  이명박 정부가 부당하게 완화해버린 금산분리 규제를 되돌리는 일도 아직 시작조차 안되고 있다.  금융지주회사법상의 비은행 지주회사에 대해 산업자본 자회사를 예외적으로 허용한 특혜를 다시 삭제하고, 은행 및 은행지주회사에 대한 산업자본의 소유한도를 다시 4%로 낮추는 작업들이 그것이다.  

 

총수의 편법적인 부의 승계를 통제하는 작업도 시작부터 벽에 부딪치고 있다.  일감 몰아주기와 부당 내부거래에 대한 통제는 정무위에서 조금 논의하다 말았다.  재벌 총수의 일탈적 행위에 대해 집행유예가 불가능할 정도로 형량을 높이는 관련법령의 개정 역시 시작도 못한 상태다.

 

대기업과 중소기업간의 관계를 정상화하는 것, 소위 “갑(甲)의 횡포”를 다스리는 것은 수많은을(乙)들의 분노에도 불구하고 돈이 걸려 있는 문제라 한걸음 한걸음이 어렵다.  이번에도 가맹사업법은 정무위를 어렵게 통과했지만 본회의의 문턱을 넘지 못하고 중지된 상태다.  이런 와중에 터진 남양유업 사태는 이 문제가 우리 사회에 얼마나 광범위하게 퍼져 있는 “보편적”인 문제인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정치권이 이 갈등을 해결하지 않으면 사태는 극단으로 치달을 지도 모른다.  이명박 정부가 미국산 쇠고기 문제로 촛불사태를 맞은 것이 불과 5년전이다.  남양유업이 그런 단초가 되지 말라는 법이 없다. 

 

경제민주화는 물론 정권의 안위를 위해서 추진해야 하는 정략적 과제는 아니다.  그것은 사회의 통합과 도약을 위한 환경을 만들기 위한 생존과제이기 때문에 추진해야 한다.  대기업이 비효율적이면 우리 경제가 건강할 수 없고, 대기업이 중소기업을 방해하고 하청기업을 착취하면 혁신과 변화라는 새 싹이 자라날 수 없기 때문이다.  너를 배제하는 나만이 존재하는 세상은 자칫 순한 양을 배고픈 늑대로 변모시킬 수 있다.  당장 눈앞의 이익을 위해 순한 양의 먹을 것을 뺏는 것은 장차 배고픈 늑대의 습격을 부르는 초대장이 될 수도 있다.  

 

사회 일각에서는 지금 경제가 어렵다면서 경제민주화에 대한 속도조절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있다.  대기업이 위축되어 투자를 하지 않는다는 늘 듣던 풍월도 들린다.  언제까지 대기업에게 투자를 구걸할 것인가.  대기업이 투자를 하지 않으면 경쟁에서 뒤처지는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 더 좋지 않겠는가.  그러기 위해서는 중소기업이 강해져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경제민주화가 필요한 것이다.

 

박 대통령이 재벌 총수들을 데리고 방미중이다.  양쪽이 마음을 터 놓고 대화할 수 있는 계기가 있을 것이다.  그 결과 대통령이 재벌 총수에게 무릎을 꿇을 수도 있고 재벌 총수가 백기를 들 수도 있다.  아마도 조만간 우리는 그 승패를 목도할 수 있을 것이다.  좋은 결과를 기대하지만 맘이 불안한 것은 데자뷰의 기억이 떠오르는 것을 억누르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 글은 2013-05-08 <창비주간논평>에 실린 글입니다. 원문보기 http://weekly.changbi.com/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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