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운찬 국무총리가 제2의 한승수가 될 수밖에 없다면…

정운찬 국무총리가 제2의 한승수가 될 수밖에 없다면…

2008년 9월 15일, 리먼브라더스의 파산보호 신청은 전 세계적인 쇼크와 경기침체를 가져왔다. 그로부터 1년이 흘렀다. 강도 높은 부실금융기관 구제, 글로벌 금리 인하 등 전 세계적인 정책 공조 덕분인지 한국 경제는 다시 한 번 부동산과 주가의 도약을 꿈꾸는 듯하다. (최소한 일부 계층에서는 말이다.) 어디서 온지 모를 그 자신감 덕분인지 기획재정부나 KDI, 민간 경제연구소까지도 2010년 한국의 장밋빛 경제 예고까지는 아니어도 제2의 위기는 걱정하고 있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이런 정부의 위기 대응 과정에서 지속적으로 문제제기를 한 경제학자가 있었다. “기업들이 유동성이 증가해도 투자를 미루고 민간소비도 부진하다. 이런 상황에서 경기가 위축되고 일자리가 줄어드는 것은 당연”하다며 밑바닥 경제를 걱정하기도 했고, “지금 시점에서는 정부가 자본 확충이나 부실자산 매입 등의 방식으로 은행들의 어려움을 덜어줘야 하지만 그 외에 단기적인 경기부양책은 소용이 없다”며 현 정부의 유동성 관리에 훈수를 두는 발언을 하기도 했던 분이다.

그렇게 현 정부와 시시각각 날 샌 각을 세웠던 그 분이 그제(28일) 국무총리 인준에 통과해 마침내 현 정부의 경제정책 등 국정을 총괄하는 자리에 앉았다.

그 혼란스러움이라 해봤자, 정운찬 총리의 애제자로 알려진 전성인 홍익대 교수나 김상조 경제개혁연대 소장, 혹은 유종일 KDI 경제학 교수만큼 곤욕스럽고 허탈하기까지 할까만은, 어떤 이유에서인지 그 분의 임명과 청문회 그리고 임명절차를 보면서 가슴이 휑한 건 건 비단 필자뿐이었을까?

필자는 지난 21일부터 23일까지 3일간 계속된 청문회 기간 동안 참여연대 시민경제위원회 간사로 금산분리정책, 감세정책, 4대강 사업 등 주요 경제, 재정정책에 대한 청문회 모니터링을 맡았다. 개인적 사적 감정을 배제해야 하는 시민단체 간사의 기본적인 자세도 망각한 채 평소 ‘서민경제’와 금산분리를 유난히 강조하고, 금융위기로 인한 막대한 재정지출로 인해 재정 건전성이 심각하게 우려되고 있는 상황에서 특정계층에만 유리하게 세금을 깎아주는 감세정책까지도 반대를 명확히 표했던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의 국무총리 내정 소식은 아쉽고 우려스러운 부분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일말의 기대를 가지기에는 충분한 능력의 소유자라 판단했다. 

그런 기대가, 실망으로, 그 실망이 노여움으로 변하는 데는 딱 3일이 필요했다.

 청문회 기간 중에 드러난 그의 도덕성 문제는 일단 뒤로 젖혀 두고라도 정운찬 총리가 말했던 경제비전의 변천사만 봐도 필자의 기대가 노여움으로 변한 이유를 설명하기에는 충분할 듯하다. 그간 정운찬 총리의 이명박 정부에 대한 감세반대 발언은 한두 번에 그치지 않았다. “감세 정책을 통해 부자들이 지갑을 열어 소비를 하게 되면 경제가 회복될 것이란 생각인 것 같은데 옳은 길이 아니라고 본다. (조선일보 칼럼, 2008년 11월 13일) “감세와 재정지출 확대를 동시에 추진하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조선일보 칼럼, 2008년 11월 13일) “감세가 실제 경제 효과 없이 소수 부자들의 재산을 불려주는 이데올로기에 불과하다는 사실은 이미 학계의 정설로 굳어진 지 오래다”(지식과 지평 기고문, 2008년 12월 15일 ) “감세가 소비 증대에 효과가 없다는 사실은 경제원론에 나온다.”(언론사 인터뷰, 2009년 4월) 등 그의 감세 반대 발언은 인터넷 검색창에만 쳐봐도 금방 나올 정도다.

이랬던 그가 청문회 기간 중엔 “다른 조건들이 일정하고 나라가 급박하다면 (감세) 할 수 있을 것이다”, “(감세혜택이 중산층 등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었다는 점은) 긍정도 부정도 못한다.” 며 감세정책에 대해 한발 물러선 입장을 취하더니, 급기야 민주당 강운태 의원의 특정계층을 위한 감세에 대한 유예 입장을 묻는 질문에는 이미 국회에서 의결될 사항이라며 감세정책 철회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정책의 일관성’을 강조하며 이미 감세한 부분에 대해 유예할 생각이 없음을 공식적으로 밝힌 것이다. 필자는 학자적 양심을 포기한 발언이라고 밖에 생각할 수 없었다. 그가 주창한대로 부자들이 돈을 쓴 효과가 그대로 서민층에게 긍정적인 영향으로 돌아온다는 소위 트리클 다운 효과(Trickle Down Effect:’넘쳐흐르는 물이 바닥을 적신다’는 뜻으로 정부가 투자 증대를 통해 대기업과 부유층의 부(富)를 먼저 늘려주면 중소기업과 소비자에게 혜택이 돌아감은 물론, 이것이 결국 총체적인 국가의 경기를 자극해 경제발전과 국민복지가 향상된다는 이론이다)가 없다는 점은 경제원론에도 나오는 이야기임을 다시 강조하지 않더라도, 감세는 반대하지만 이미 통과된 법안은 되돌릴 수 없다는 이 발언에 실망을 넘어 노여움까지 느끼기엔 충분했다.

금산분리완화 정책들에 대한 그의 대책도 별반 다르지 않다.

금산분리 원칙을 줄기차게 주창했던 기존입장과 달리 원칙적으로 금산분리 완화에는 반대하면서도 향 후 입장에 대해서는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는 의미심장한 발언을 청문회 답변 중 한 바 있다. 이미 폐지된 출자총액제한제도와 관련해서는 기존 경향신문 2007년 11월 인터뷰에서 “대규모 기업집단의 출자총액을 일정 한도로 묶는 것이 국내 기업들에 역차별이 될 수 있다는 주장에도 일리는 있다. 하지만 대규모 기업집단이 외환위기 이전처럼 문어발식으로 사업영역을 확장하는 것을 막고 순환출자를 고리로 연결된 기업집단이 연쇄적으로 부실화되는 것을 방지하자는 당초의 취지는 여전히 유효하다.”라고 발언의 취지와는 정반대로 강운태 의원 청문회 질의 답변에서는 “(출자총액제한제는 원래) 있으나 없으나 소용없었던 정책이다.” 라며 출총제의 법적 유효성까지도 부정했다. 이젠 그의 금산분리완화 반대의 진정성을 믿을 수 없게 되었다. 

당장 국회에는 공정거래법 개정안이 계류 중이며 통과를 앞두고 있다. 이 개정안이 통과되면 그동안 금지되었던 금산 복합 지주회사체제가 허용된다. 금산복합 재벌그룹을 유지 또는 강화될 수 있는 수단이 합법적으로 제공된 셈이다. 경제력 집중화 억제의 목적 또한 훼손된다. 혹시 이법이 통과된다면 정운찬 총리는 뭐라 할까 자못 궁금하다. 아마도 “개인적으로 부정적으로 보고 있지만 이미 법이 통과됐으니 부작용을 최소화 하겠다”는 말을 하진 않을까? 

정운찬 총리께 묻고 싶은 게 있다. 실질적으로 할 수 있는 게 없다면 무엇 하러 국무총리를 하려고 하시는 지 꼭 묻고 싶다. 그리고 내년 국가재정 건전성에 빨간 불이 들어온 상태에서 총리께서 그렇게나 강조하신 교육과 의료 등의 사회적 안전망 확충 예산은 어떻게 확보할 것인지도 묻고 싶다.

만약 그렇게도 한국경제를 진정으로 걱정했던 경제학자 출신 국무총리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꼭두각시 총리라면 단호히 그런 총리는 필요 없다고 말하고 싶다. 만약 한승수와 정운찬의 차이가 제2의 한승수일 수밖에 없다면 당신을 총리로 인정할 수 없다고 말하고 싶다.

리먼브라더스 파산 2주년 때, 그를 바라보는 서민들의 평가는 어떠할까? 그가 그토록 바라던 서민경제는 과연 웃을 수 있을까? 어느 광고문구처럼 ‘생각대로’ 하는, 그래서 ‘서민경제’에 성공한 총리로 남길 바란다.

시민경제위원회 간사 민병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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