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은 아시아에 속합니다. 따라서 한국의 이슈는 곧 아시아의 이슈이고 아시아의 이슈는 곧 한국의 이슈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인들에게 아시아는 아직도 멀게 느껴집니다. 매년 수많은 한국 사람들이 아시아를 여행하지만 아시아의 정치·경제·문화적 상황에 대한 이해는 아직도 낯설기만 합니다.

 

아시아를 적극적으로 알고 재인식하는 과정은 우리들의 사고방식의 전환을 필요로 하는 일입니다. 또한 아시아를 넘어서 국제 사회에서 아시아에 속한 한 국가로서 한국은 어떤 역할을 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해나가야 합니다. 이와 같은 문제의식에 기반을 두고 참여연대 국제연대위원회는 2007년부터 <프레시안>과 함께 '아시아 생각' 칼럼을 연재해오고 있습니다. 다양한 분야의 필자들이 아시아 국가들의 정치, 문화, 경제, 사회뿐만 아니라, 국제 사회에서 논의되고 있는 인권, 민주주의, 개발과 관련된 대안적 시각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한국에도 원자폭탄이 떨어진 적이 있나요?"

[아시아 생각] '피폭자=일본인'이라는 위험한 신화

전은옥 합천평화의집 운영위원

 

1945년 8월 6일 히로시마, 그리고 사흘 뒤인 9일 나가사키에 인류 역사상 최초로 실제 사람들이 사는 도시 상공에서 핵무기가 폭발했다. 하나는 우라늄형 원자폭탄 '리틀보이'(꼬마), 또 하나는 플루토늄형 원자폭탄 '팻맨'(뚱보)이었다. 순식간에 도시는 불바다가 되고 사람들의 살과 뼈가 녹아내리고 내장이 튀어나왔다. 폭풍이 불어닥쳐 여기저기서 날아든 유리 파편과 온갖 물질이 흉기가 되어 사람들의 살 속을 파고들었다. 초강력 방사선에 사람들은 노출되었고, 대화재와 폭풍의 재앙이 잦아든 뒤에는 광범위한 지역에 '검은 비'가 내렸다.

 

필자는 6년째 국내 원폭2세 '환우' 인권 운동을 하고 있다. 가끔 내가 원폭 피해자 지원 운동을 한다고 말하면 그것이 와전되어 "이분은 일본인 원폭 피해자들을 지원하는 분이에요"라고 엉뚱하게 소개되기도 한다. 반대로 일본에서 한국인 원폭 피해자 이야기를 하면 젊은 세대 중에서는 종종 "한국에도 원자폭탄이 떨어진 적이 있나요?"라는 질문이 돌아오는 경우도 있다.

 

일본은 세계 유일의 피폭국? 피폭자=일본인?

 

원자폭탄 하면 일본 히로시마에 피어오른 거대한 원폭의 버섯구름과 폐허가 된 도시의 전경, 그리고 머리가 벗겨지고 화상을 입어 아파하는 어린아이의 모습 같은 이미지가 전 세계인의 머릿속에 각인되어 있다. 해마다 원폭투하일인 8월 6일이 되면 사람들은 히로시마로 모여든다. 그리고 말한다. "세계 유일의 피폭국 일본"이라고. 거기서 사람들은 다시는 핵무기의 비극이 반복되지 않기를 염원하고 세계 평화를 기도한다. 두 번 다시 같은 잘못을 반복하지 않겠다며.

 

원자폭탄이 일본 땅 히로시마, 나가사키에 투하되었다는 점에서는 분명히 '일본 땅은 유일한 원폭 피폭지'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인류역사상 유일무이한 핵무기의 실제 사용과 대량 학살 속에서 희생당한 피폭자는 일본인만이 아니었다. 당시 미군의 원자폭탄 투하로 인해 두 도시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있던 수많은 아시아인과 해외 선교사, 포로 등이 희생되었다. 특히, 한반도 출신 동포는 침략전쟁을 벌인 당사자가 아니면서도 식민지 백성으로 일본에 떠밀려갔다가 전체 피폭자 중 10%나 될 만큼 엄청난 희생을 치렀다. 그 숫자는 7만 명 정도로 알려져 있고, 4만 명이 즉사 혹은 그해를 넘기지 못하고 사망했다.

 

피폭지 나가사키에는 폭심지에서 가까운 언덕 위에 평화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이곳은 추모와 기도의 공간이자 전 세계인이 찾아오는 관광지이기도 하다. 이곳에서 1992년 대규모 지하 주차장 건설을 하던 중 형무소와 사형장 터를 발견했다. '평화'공원의 감춰진 얼굴이 세상 밖으로 드러난 순간이었다.

 

원폭투하의 날, 폭심지에서 매우 가까웠던 우라카미 형무지소의 직원, 가족, 수용자 134명 전원이 즉사하고 취사장 굴뚝 하나만이 남은 채 건물도 전소했다. 전쟁 말기, 일본 국내의 노동력 부족을 보충하기 위해 중국에서 강제 연행되어 온 이들 중 당시 최고의 정치적 악법이었던 치안유지법 위반 혐의로 32명의 중국인이 이 형무소에 수감되어 원폭으로 즉사했다는 사실이 함께 드러났다. 일본의 조선반도 지배에 항의한 13명 이상의 한반도 출신자 역시 수감 중 비명에 죽었다. 이뿐만 아니라 이 도시에는 포로수용소도 두 군데나 있었다. 그곳에 있던 외국인들도 피폭사했다.

 

이밖에도 히로시마, 나가사키에는 당시 한국과 마찬가지로 식민지였던 대만에서 온 유학생이나 말레이시아 등 남방특별유학생, 그리고 강제 연행되어 온 중국인 노동자와 포로 등 수많은 아시아인 피폭자들이 원통한 죽음을 맞았다.

 

 

 

피폭

 

▲ 히로시마 원폭 장면. ⓒ프레시안(자료)

 

아시아의 피폭자들, 치료도 위로도 받지 못한 채 버려진 삶

 

운 좋게 살아남아 조국으로 돌아온 생존 피폭자들도 저마다 각자의 나라의 정치·경제·사회적 상황과 개인적 형편에 따라 각기 다른 전후(戰後)를 보냈겠지만, 그 대부분은 질병과 건강 불안, 자녀에 대한 걱정, 생활고와 차별 등 너무나 큰 고통 속에서 국가 정책과 책임자의 사죄 없이 버려져 있었다. 식민지에서 해방된 조선인 피폭자들도 해방의 기쁨을 온전히 누리며 살지 못했다. 목숨을 걸고 돌아온 조국에서 그들을 맞이한 건 환영과 위로가 아닌, 차별과 멸시였다. 화상이 남긴 상처와 부상, 그리고 각종 질환에 시달리는 병든 몸과 마음에 누구 하나 눈길을 주지 않았다. 치료와 구호는커녕 멸시받는 천덕꾸러기가 되어 버렸고, 궁핍과 아픔 속에서 많은 피폭자들이 죽어갔다.

 

더 큰 비극은 그 피해가 당대에 머무르지 않고 피폭2세와 3세대로 대물림되면서, 각종 질병과 건강상의 문제뿐 아니라 가난과 차별, 가정 파괴, 정신적 후유증(트라우마, 피해 의식 등) 등 각종 사회적·경제적인 피해마저 대물림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가해자는 어디에 있는가. 책임자는 어디에 있는가. 누가 사죄를 하였고, 누가 책임을 졌는가. 피해자는 있는데, 피해를 돌보고 생명을 구하고 사죄하고 배상해야 할 사람은 어디로 갔는가.

 

원폭투하 범죄국 미국과 침략·강제 동원 가해국 일본

 

우리는 학교에서 원자폭탄 '덕분에' 일본이 패망하고 조국이 해방되었다고 배웠다. 하지만 일본은 원자폭탄이 아니었어도 이미 패전이 확실시되던 상황이었다. 미국이 비밀리에 핵무기 개발을 하며 엄청난 돈을 쏟아 부은 데 대한 국내 비난 여론을 타개하고, 소련을 견제하여 제2차 세계대전의 가장 큰 공로자로서 전후 세계 패권 장악에 유리한 입장에 서기 위하여 원자폭탄을 투하했으며, 개발한 두 종류의 핵무기의 위력을 실제 사람들이 사는 도시에 시험해보고자 하는 의도가 있었다는 것은 이미 국제학계에서도 널리 알려진 내용이다.

 

하지만 미국은 원폭 투하의 범죄성을 인정하고 피해자에게 사죄하거나 배상한 적이 없다. 패전국 일본과 전후 처리를 위한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을 맺는 과정에서 일본은 일체의 해외 자산과 손해배상청구권을 포기하였지만, 당시의 최대 피해자였던 중국과 한국은 협상 과정에 참여조차 하지 못함으로써 원천적으로 손해배상 청구의 권리를 봉쇄당했다. 미국 정부는 일본은 물론이요 아시아의 피폭자들에게도 사죄하지 않았다. 오히려 지금도 원폭 투하의 정당성을 주장한다.

 

일본은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 체결 후, 일본 국내에서 원폭의료법과 특별조치법, 피폭자원호법 등을 제정하여 국내 피폭자를 위한 원호 정책을 실시해 왔다. 지속적인 실태 조사와 건강 영향 조사는 물론이고 국가적 차원의 기념 사업도 시행하고 있다. 그러나 침략전쟁과 식민 지배, 강제 동원 등의 책임을 인정하고 외국인 피폭자에 대해서도 실태 조사 및 구호와 치료, 복지 사업을 시행했어야 할 일본 정부는 아시아의 피폭자들을 오랫동안 차별하고 배제했다. 그리고 지금도 '세계 유일의 피폭국'이라는 '피해자', '희생양'의 얼굴을 하고 원폭 피해의 참상을 고발하며 평화를 위한 전도사 역할을 자처하고 있다.

 

원폭 투하 최대 피해자 동아시아, 핵개발과 핵발전으로 더욱 위험해져

 

원폭 투하의 최대 피해자였던 동북아시아 각국에서는 아이러니하게도, 그 사이 핵개발과 핵무기 보유국이 늘었고, 한국, 일본, 중국, 대만, 인도 등에 경쟁하듯 핵발전소가 집중적으로 들어섰다. 원폭 피해자들과 후세대로 대물림되는 피해에 대해서는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채, 오히려 발전소 사고 및 일상적인 핵발전소 노동 과정에서 또 다른 피폭자들이 양산되고 있다.

 

더 이상 피폭자의 아픔을 재생산해서는 안 된다. 더 이상 피폭자의 아픔을 방치해서도 안 된다. 아시아가 그리고 세계가 함께 핵무기도, 핵발전도 없는 세상을 실현하고, 피폭자와 그 후손의 고귀한 생명과 인간답게 살아갈 존엄한 권리를 회복하기 위하여 모든 노력과 지혜를 모아야 한다. 핵은 죽음이다. 핵은 생명에 반한다. 세상에 평화롭고 안전한 핵이란 없다. 새로운 재앙이 닥쳐오기 전에 히로시마, 나가사키 그리고 체르노빌과 후쿠시마의 교훈을 기억하자.

 

*필자는 '원폭 피해자 및 자녀를 위한 특별법 추진 연대회의'의 사무국장을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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