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연대위원회 아시아 2006-08-08   1112

버마 8888 민주항쟁 18주년 기념 버마 민주화를 촉구하는 인권주간 선포 기자회견

버마에 민주화를, 아시아에 평화를

2006년 8월 8일 오전 10시, 한남동에 있는 미얀마 대사관 앞에서 버마 8888 민주항쟁 18주년을 맞아 한국 시민사회인권단체는 8월 6일부터 12일까지 ‘버마 인권 주간’으로 선포하는 기자회견을 가졌다.

그동안 한국에서는 버마 활동가들이 중심이 되어 이 날을 기념하는 행사를 했지만, 올해는 국내 인권, 시민 단체와 이주노동자 단체들이 공동으로 자전거 캠페인, 사진전, 해외 버마 활동가 초청 간담회, 버마 난민 지원 후원 행사를 준비했다.

>>인권주간 일정은 여기를 클릭

8888 민중항쟁이란? 1988년 8월 8일 버마에서 군부독재에 항거하여 일어난 시위를 말한다. 1962년 군사쿠데타를 일으켜 집권한 네윈의 ‘버마식 사회주의’로 인해 1986년 버마의 경제는 돌이킬 수 없는 상황으로 나빠졌다. 화폐개혁을 통한 경제개혁의 노력이 있었지만 버마인들의 경제상황을 향상시키는데 아무런 도움도 주지 못했고, 이런 경제상황은 군부독재에 대한 국민의 염증과 맞물려 버마인들의 불만을 최고조에 이르게 했다.

8888시위의 발단은 1988년 4월 수도 양곤의 커피숍에서 대학생들간의 싸움으로 시작되었는데, 이때 문제를 일으킨 한 학생이 집권 BSPP(사회주의자 강령 정당, Burma Socialist Program Party)의 아들이란 이유로 곧 석방되고 이에 대한 항의로 민주화와 정치적 자유를 요구하는 시위가 시작되었다. 군과 경찰은 이 시위를 강경진압했고 그 와중에 41명의 학생이 체포되어 경찰트럭에서 질식사하는 사건이 일어났고 이는 시위를 더욱 부채질했다.

네윈은 7월에 사임을 발표하고 후임으로 경찰총장 세인 르윈을 임명했는데, 그는 ‘양곤의 학살자’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사람이었다. 학생들은 이에 8월 8일 아침 8시를 기해 전국적인 시위를 일으켰고 이 시위는 6주간 계속되었으며 그 가운데서 아웅산 수찌여사는 8월 26일 집회에 50만명의 인파를 불러모으며 버마 만주화의 상징으로 떠올랐다. 시위가 확산되자 곧 군은 진압에 나섰고, 이 진압과정에서 약 1만명의 버마인들이 살해당했다. 이 사건을 계기로 민주화 운동세력은 소수민족들과 손을 잡았으며 버마 민주화 문제가 국제적인 관심사로 떠오르게 되었다.

아래는 기자회견 내용이다.

순서

▷ 사회 : 우삼열(외노협 사무국장)

▷ 개회사 : 최정의팔((사)‘외국인노동자와함께’ 대표)

▷ 8888 소개 : 이창수(새사회연대 대표)

▷ 버마의 현 상황 소개 : 김은영(참여연대 정책팀장)

▷ 버마인들의 발언 : 뚜라(버마행동(한국) 대표)

▷ 민주화촉구 발언 : 문영희(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부이사장), 김병주(민변 국제연대위원회 위원장)

▷ 아시아의 평화를 염원하는 이주노동자들의 발언: 마숨(방글라데시/이주노조 사무국장), 인도네시아 노동자

▷ 인권주간 행사와 일정 안내 : 나현필(국제민주연대 상임활동가)

▷ 기자회견문 낭독 : 석원정(외국인이주노동자인권을위한모임), 최철규(인권실천시민연대)

[기자회견문]

버마 군부는 학살-고문-강제노동-강간으로 점철된 폭압정치를 당장 중지하라!

1988년. 서울올림픽 개최의 감격으로 한국국민들이 올림픽 개최 D-DAY를 세어나가던 그 해 6월, 버마는 민주주의를 열망하는 버마국민들의 시위로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1988년 8월 8일을 정점으로 하여 그해 9월까지 지속된 민중항쟁은 버마의 학생, 승려, 노동자 등 전 민중들이 참여한 대항쟁이었다. 그러나 국민들의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을 버마군부는 탱크와 장갑차를 동원한 무자비한 살육으로 짓밟았고, 최소 2,000명에서 최대 20,000여명의 희생자가 발생하였다. 그러나 그 이후 현재까지 이어진 군부의 폭압정치로 아직까지도 진상규명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고, 정확한 사망자수도 파악되지 않고 있다.

버마와 전세계인들은 이날을 8888 민중항쟁이라고 불러왔다.

수만 명의 희생자를 남기고 미완성으로 끝난 8888 민중항쟁이 올해로 18년이 되었다.

그러나 자유와 인권을 위해 투쟁하는 사람들에게 시효는 없다.

이미 8888민중항쟁은 전세계의 민주주의와 인권을 위해 투쟁하는 사람들에게 쉽사리 잊기 어려운 날이 되었다. 특히 1980년 5월 18일의 대학살의 기억과 1989년 6월 10일 시민대항쟁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 한국의 민주시민사회단체들에게, 이날은 동병상련의 슬픔과 분노를 느끼게 하는 날이 되고 있다.

우리들, 한국의 민주시민사회단체들은,

‘민주주의란 나무는 피를 먹고 자란다’던 1975년의 김상진 열사의 절규가 비단 한국의 민주주의를 위해서만 남겨진 것이 아님을 절감한다.

8888 이후 더욱 가속화한 버마군부의 폭압정치는 끊임없이 국민들의 피를 불러왔고, 8888민중항쟁을, 18년이 지난 오늘까지도 버마와 전세계의 민주주의를 위한 투쟁의 상징으로 되살아나게 하고 있다.

오늘날 버마 내에서는 버마정부에 반대하는 의견을 표현하거나 반대의견이 기재된 자료를 소지하는 것만으로도 중형을 면치 못한다. 민주화를 염원하면서 학생운동에 헌신하는 학생운동지도자들이 의문의 죽음을 당하는 경우도 발생하고 있다. 더구나 2005년 11월, 버마정부가 수도를 이전하면서 수많은 소수민족들을 강제노동에 동원하였고, 그 과정에서 살해, 고문, 강간을 자행하고 있다.

한때 군사독재정부 치하에서 고문과 폭압정치의 끔찍함을 생생하게 체험하였던 한국의 민주시민사회단체들은 버마의 현 상황을 결코 남의 일로 여겨 외면할 수 없다. 폭압정치 아래에서 신음하는 버마인들의 고통은 예전 한국인들의 고통이었다.

그러나 우리들, 한국의 민주시민사회단체들은, 경험으로 알고 있다.

수십 년을 강고하게 버텨온 독재정부의 철권정치도 한 순간에 바람 앞의 등불처럼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갈 수 있다는 것을.

수만, 수십만의 버마인들의 피를 머금은 버마의 민주주의가 이제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으려 하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새벽이 오기 전의 어둠이 가장 짙다는 것을.

우리들, 한국의 민주시민사회단체들은

군사독재정부아래에서 폭압에 신음할 때 자유와 인권은 국경을 넘어, 민족을 넘어 전세계인 모두가 함께 지켜가야 할 지고의 가치임을 알았다.

그리고 오늘, 그 가치를 지켜나가기 위해 자유와 인권을 위해 투쟁하는 버마인들과 함께 할 것을 밝힌다.

그 하나로,

8888 민중항쟁 18주년을 맞이하여, ‘버마 인권주간’을 선포하고, 버마의 민주화투쟁 중에 희생당한 희생자들에 대해 추모하고 현재진행형인 버마의 민주화운동에 함께 하고자 한다. 그리고 한국의 민주시민사회단체들에게 버마의 민주화를 위하여 함께 할 것을 요청한다.

우리의 요구

1. 8888은 끝나지 않았다. 버마정부는 8888과 뒤이은 대학살에 대한 책임을 지고 희생자들에 대한 사죄의 뜻으로 당장 퇴진해야 한다!

1. 버마 군부는 학살-고문-강제노동-강간으로 점철된 폭압정치를 당장 중지하라!

1. 버마 군부는 하루라도 빨리 민주주의를 위한 절차를 밟으라!

2006년 8월 8일

버마의 민주화를 촉구하는 민주시민사회단체 일동

국제민주연대/나와우리/민변국제연대위원회/부천외국인노동자의집/버마행동(한국)/새사회연대/아시아인권문화연대/(사)외국인노동자와함께/외국인이주노동자대책협의회/외국인이주노동자인권을위한모임/인권실천시민연대/참여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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