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연대위원회 아시아 2008-03-23   791

[아시아포럼 좌담] ‘한국의 아시아적 정체성이 친미세계관의 대안’










[아시아, 아시아人]“한국의 아시아적 정체성이 친미세계관의 대안”
입력: 2008년 03월 23일 18:19:03
 
ㆍ경향신문·참여연대 아시아포럼 좌담

경향신문과 참여연대는 28일 아시아포럼 첫 강의를 앞두고 아시아에 관한 한국 사회의 담론을 진단하는 좌담회 ‘한국 사회의 아시아 담론’을 지난 19일 경향신문사 6층 회의실에서 가졌다. 아시아 연대의 현황을 살펴보고, 아시아 연대의 목표와 지향점, 장애 요인을 따져보고 아시아 연대를 위해 한국 사회가 나아갈 방향을 검토해 보았다. 박승우 영남대 사회학과 교수의 사회로 진행된 이 좌담회에는 백영서 연세대 사학과 교수, 이남주 성공회대 중문과 교수, 이재현 연세대 정외과 연구교수, 조희연 성공회대 사회학과 교수, 김기석 강원대 정외과 교수가 참석했다.






아시아포럼 출범에 앞서 지난 19일 전문가들이 좌담회를 하고 있다. 왼쪽부터 시계 방향으로 조희연·김기석·이재현·박승우·이남주·백영서 교수. |남호진기자

# 한국인에게 아시아란 무엇인가

박승우=아시아가 하나의 지역으로 변화하는 현상은 빠르게 진행 중입니다. 특히 외국인 노동자, 유학생들이 많이 들어오고 있습니다. 지난 10년간 정부 차원의 지역 통합 노력도 있었습니다. 환경, 자원 같은 초국가적 문제에도 당면하고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아시아포럼이 아시아에 대해 생각해보는 중요한 계기가 될 듯합니다.

이재현=저는 한국에 외국인 노동자가 많이 들어오는 것을 보고 한국 시민사회가 다른 아시아 시민사회와 같이 할 수 있는 일이 없을까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국가 주도로 이루어지는 동아시아 지역통합 교류에 시민사회가 개입해 할 수 있는 역할은 없을까하는 고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조희연=외국인 노동자가 늘어나는 등 한국 속에 아시아가 내면화되고 있는 점이 배경이 된 듯합니다. 한국 인문사회과학에서 그동안 아시아는 특수학이었습니다. 지금은 아시아가 지식 생산 속에 내부화하지 않으면 안되는 지점에 온 것이지요. 민족주의적, 국가주의적 관점에서 벗어나 지역적, 세계적 시각에서 보도록 만들고 있습니다.

이남주=아시아는 학문적 구조를 통해서가 아니라, 실천적으로 만들어진 개념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주민, 경제문화 교류 등이 증가하면서 다양한 지역적 차원의 실천 공간이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그런 공간을 중심으로 운동을 하는 방식으로 아시아 문제를 접근해야 합니다. 선언적으로 아시아 개념을 하나로 통합시키면 잘못된 결과가 나올 듯합니다.

백영서=처음 이런 얘기를 듣는 사람들은 ‘아시아의 범위가 어디까지냐’는 의문을 당연히 가집니다. ‘누가, 왜, 어디까지를 아시아로 얘기하려는가’에서 여러가지 관심과 의도가 충돌합니다.

김기석=우리 사회에 동아시아란 개념이 등장한 지는 얼마 안됐습니다. 이전엔 아시아·태평양이었지요. 강대국의 필요에 따라 만들어지고 받아들여진 것이지요. 또 한국에서 생각하는 동아시아 개념과 다른 나라의 동아시아 개념이 다릅니다. 우리나라 동아시아 개념은 동북아 중심인 데 비해, 일본의 동아시아 개념은 넓습니다. 미국·캐나다·호주·뉴질랜드와 동남아시아 두 지역을 일본이 매개한다는 것이 일본의 동아시아 개념입니다. 나라마다 아시아 개념이 다르다는 것을 인식할 필요가 있습니다.

# 친미로 아시아적 정체성 억압돼

박승우=2000년대가 시작되면서 우리가 나아갈 방향을 찾지 못하고 혼돈이 많았습니다. 이런 혼돈이 새로운 비전을 찾으려는 마음과 맞물려 아시아 연대에 관심을 두게 된 듯합니다.

조희연=아시아를 인식한다는 것은 친미적 세계관이 전환되는 성격이 있다고 봅니다. 우리 사회가 지난 50여년간 받아들이지 않았지만 우리는 원래 아시아였습니다. 아시아적 정체성이 억압됐죠. 인식이 이랬다면 아시아를 어떻게 구성할 것이냐에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현실적으로 국가 주도, 자본 주도의 아시아가 있지만 어떤 관점에서 어떤 목표로 아시아적 정체성을 만들어 갈 것이냐에 대해 생각해야 합니다.

이남주=우리가 아시아에 대해 관심을 가진다고 해서 다른 아시아인들에게 큰 영향을 준다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아시아를 통해 새로운 진보적 시각을 우리 사회 안에서 만들어 내는 것이 더 의미있지 않을까요. 경제적으로 보면 미국식 신자유주의 말고 아시아 차원의 새로운 모델을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이런 측면의 관심과 고민이 있어야 합니다. 성급하게 초국가적 아시아 담론을 만드는 것에 대해 저는 조심스러운 입장입니다.

조희연=지구화 충격에서 비롯된 지점이 있는 듯합니다. 초국가적 이슈가 등장했지만 세계적 거버넌스(협치)는 아직 출현하지 않았어요. 그 공백에서 지역 문제에 관심을 갖고 다양한 실험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1989년의 APEC, 1996년 ASEM, 1997년 ASEAN+3 등이 그렇습니다. 저는 이 과정이 근대화 변화 과정과 유사하다고 보고 있습니다. 근대화 과정을 보면 지방을 뛰어넘는 국민적 경제통합이 먼저 진행되고 난 뒤 정치통합 과정을 밟게 됩니다. 제 관심은 경제와 정치에 시민사회적 요구를 어떻게 각인할 것인가입니다.

# 시민차원의 초국가적 프로젝트 가능한가

백영서=지역통합은 정치안보·경제·사회문화 통합 등 세 층위로 이루어져 있지만, 이것이 불균등하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분야 별로 나누어 이야기를 진행해 나가면 어떨까요.

김기석=동아시아 통합논의 진행은 경제에서 빨리가고 정치에서도 진행되다가 실질적 문제로 넘가가면서 늦어지기 시작했습니다. 경제통합은 계속 진행될 것이고, 정치부문 지체는 시민사회 개입을 통해 돌파해 나갈 추동력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요.

이남주=아시아 협력에서 특징적인 것은 사회문화적 협력이 국가적 협력보다 떨어져 있다는 것입니다. 지식인 영역에서 보면 아시아를 자기 문제 해결의 주요 공간으로 보는지 의심스러운 상황입니다.

박승우=초국가적 문제를 지역 거버넌스 차원에서 다루면 정치공동체를 형성하는 데 학습 효과가 있지 않을까요. 최근 일본 정부가 아시아 경제환경 공동체 구상안을 발표했습니다. 동아시아 지역에서 일본이 주도적으로 환경문제를 바꿔보겠다는 의지가 보였습니다. 우리 정부가 그런 제안을 먼저 했으면 좋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백영서=기능적 성과가 쌓이면 동아시아 공동체가 되는 걸까요. 기능별 접근에 의한 성과 축적은 현실적 요구에 따라 당연히 많아질 것입니다. 지역 공동체를 통해 이상사회를 바라는 것인지, 유럽연합(EU) 정도의 공동체를 목표로 하는 것인지에 대한 이야기가 있어야 합니다.

조희연=한국 정부와 시민단체가 초국경적인 아시아 프로젝트를 제시하지 못하는 것은 제국주의 경험이 없기 때문에 나타나는 긍정적 유산이기도 합니다. 그것이 단점도 되지만요. 흥미로운 것은 이명박 정부 하에서 어떤 모습이 나타날 것인가입니다. 전 우파 국제주의 양상이 생길 수 있다고 봅니다. 일본 우파의 헌법 9조 개정 논의는, 국제 기여를 명분으로 평화헌법을 해체하려는 일본 보수 정권의 모습입니다. 시민사회가 이에 대한 적극적인 비전을 만들어내지 않으면 한국·미국·일본으로 이어지는 한·미·일 우파 국제주의 프로젝트가 확산될 수 있어요.

이남주=시민운동 차원에서 성급하게 초국가적 프로젝트를 하는 게 맞을까요. 대부분의 프로젝트는 정부 주도이고 이것은 당분간 변할 수 없는 현실이라고 봅니다. 거버넌스를 논의할 자본과 인력을 갖춘 곳은 정부밖에 없으니까요. 장기적으로 아시아 문제를 잘 다룰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 1차 과제라고 봅니다. 풀뿌리 단위의 교류가 취약한 상태에서 시민사회단체의 국제 네트워크가 밑의 의견을 얼마나 대변하는지 의심스러울 때가 많습니다.

# 이 대통령, 동남아 대신 4강만 이야기

백영서=아시아에 대한 인식의 쌍방향성을 알아야 합니다. 내가 속한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치느냐와 개별 사회의 변혁이 아시아 전체에 어떤 영향을 미치느냐를 같이 봐야 합니다. 바깥으로 나가기만 하면 국내 사회 변혁엔 관심없이 공항만을 오고가는 활동가가 되기 쉽습니다. 바로 세계 속으로 갈 수 있는데 왜 아시아라는 단위가 필요한가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합니다. 아시아적 정체성이 친미에 대한 대안이 될 수 있다는, 즉 대안적 세계를 만들 수 있는 비전을 갖고 얘기해야 합니다.

이재현=제가 이해하는 시민사회의 아시아 프로젝트는 국가 차원에서 하는 일들에 대해 비판적 감시자가 돼야 한다는 것입니다. 시민사회가 집행자가 되는 것은 바람직하지도 않고, 가능하지도 않다고 봅니다.

조희연=전 민족주의를 넘어서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비실천적 탈민족주의론엔 반대합니다. 지구화 과정은 이질적이고 복합적입니다. 이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지역이란 층위가 이전과는 다르게 삶을 규정할 수밖에 없어요. 시민사회적 관심에선 우리 생활에 영향을 미치는 억압의 실체를 인간화하려고 노력합니다. 자연스럽게 세계화에 대해 응전하지만 자본과 국가가 주도하는 지역통합 질서에 시민사회가 여러 수준의 하나로 개입해야 합니다.

김기석=아시아에 대한 지리적 범위가 최근에 오히려 좁아졌습니다. 이명박 정부에 들어와서 동남아시아에 대한 이야기가 거의 없어졌어요. 4강만 이야기합니다. 강대국 사이에서 우리 역할이란 없는데도요. 우리가 왜 아시아를 봐야 하느냐에 대한 설득력 있는 설명이 필요합니다.

백영서=우리나라에서 동아시아 담론을 보면 1997년 이전에는 인문학자가 주도했습니다. 새로운 문명, 변혁론을 생각하는 것이었습니다. 1970~80년대 민족민중적인 방식이 실험되고 좌절되면서 다른 대안을 찾았고, 그것이 아시아로 관심을 돌리게 했습니다. 대안적 세상에 대한 관심입니다. 아시아 경제위기 이후 사회과학자가 이 논의에 뛰어 들면서 내용은 구체화됐지만 논의의 폭은 줄어들었습니다. 국가와 자본이 주도하는 상황에서 어떤 제도를 만들까에 관심이 있었어요. 노무현 정권 때 온갖 프로젝트가 난무했지요. 시민사회 영역으로 한정한다면 어떤 아시아를 원하는 것인가를 놓고 경쟁할 수밖에 없습니다. ‘왜 아시아냐’는 질문은 이미 넘어갔고 ‘어떤 아시아냐’를 놓고 경쟁이 벌어지는 상황이 아닐까요.

# 식민, 독재, 세계화 희생자 경험을 공유해야

조희연=아시아의 미래상을 그려본다면 경제통합은 상당히 진전될 듯합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어떤 아시아를 구성할 것인가가 중요합니다. 탈식민주의적, 반서구적, 자주적 지향을 급진적으로 점유하지 않으면 우파가 이런 이슈를 선점해 많은 좌파를 전향하게 할 것입니다. 일본의 대동아공영권이 많은 좌파를 전향시켰던 것은 그것이 갖는 탈식민주의적, 진보적 지향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환경·인권 등 주제별 연대를 뛰어 넘는 시민사회적 아시아 담론이 필요합니다. 예를 들어 낮은 수준의 아시아 시민권을 상상해보면 어떨까요. 단일 국적성을 넘어선다는 측면에서 이중, 삼중 국적을 제도화할 가능성을 생각해 보자는 겁니다.

이남주=서양에서 찾을 수 없는 우월함이 아시아에 있다는 논리는 일반인에게는 매력적으로 먹히는 담론입니다. 저는 이것이 위험하다고 생각합니다. 아시아가 선험적으로 우월하다고 여기는 접근에서 벗어나, 그렇지 않더라도 왜 아시아여야 하나에 대한 풍부한 내용이 있어야 정책적 문제에 대해 설득력을 가질 수 있습니다. ‘시민권을 왜 아시아권에서만 해야 하나, 캐나다와도 할 수 있는데’하는 지점에 대한 문제 의식을 분명히 해줘야 합니다. 저는 아시아 국가들이 서구식 근대화 과정을 밟으며 유사한 문제들에 직면하고 있다고 봅니다. 이것이 공동 출발의 계기가 될 수 있습니다. 서구에서 생각지 못했던, 우리가 더 긴박하고 실질적으로 생각지 않으면 나아갈 수 없는 지점들에 대해 공감대를 만들어 나갈 때 구체적이고 정치적인 문제까지 도달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박승우=90년대 초부터 서구와 다른 대안체제를 모색하는 담론들이 이어져왔는데 아쉬운 것은 구체적인 모습이 담겨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 점에서 2000년대 이후 참여한 사회과학자들이 역할을 했어야 했는데 그것도 미흡했습니다.

조희연=희망사항이기도 한데 서구에서 끌어낼 수 없는 아시아의 역사적, 문화적 자원을 끌어내야 할 듯합니다. 피억압의 역사 속에서의 식민주의 경험, 냉전 포로, 권위주의적 개발독재에 의한 희생, 다시 약탈적 세계화의 희생자가 되는 경험 등을 공유한 속에서 새로운 아시아 에토스를 어떻게 끌어낼 것인가를 고민해야 합니다.

백영서=역사 속에서 작동했던 것을 맥락에서 떼어내 적용시키는 것은 위험합니다. 제국주의 식민 경험, 미국에 이은 중국 패권 문제 등 근대 경험에서 공통점을 끌어내는 것이 시급합니다.

박승우=아시아에서 일어나는 엄청난 규모의 인적교류는 세계사적으로도 중요한 변화입니다. 제국주의 경험이 없다는 것도 중요하고요. 지금의 경제 위기는 경기 변동 차원이 아닌, 자본주의 체제의 취약성을 보여주는 것이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듭니다. 환경·에너지·자원 문제 등 큰 위기와 변화가 있을 것입니다. 기존 체제를 유지해왔던 것이 근대 자본주의라는 틀이었는데 이런 골격을 서구가 아닌 아시아에서 다시 생각해야만 하는 역사적 국면에 와있지 않느냐는 생각입니다.

〈 정리 | 임영주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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