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은 아시아에 속합니다. 따라서 한국의 이슈는 곧 아시아의 이슈이고 아시아의 이슈는 곧 한국의 이슈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인들에게 아시아는 아직도 멀게 느껴집니다. 매년 수많은 한국 사람들이 아시아를 여행하지만 아시아의 정치·경제·문화적 상황에 대한 이해는 아직도 낯설기만 합니다.

 

아시아를 적극적으로 알고 재인식하는 과정은 우리들의 사고방식의 전환을 필요로 하는 일입니다. 또한 아시아를 넘어서 국제 사회에서 아시아에 속한 한 국가로서 한국은 어떤 역할을 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해나가야 합니다. 이와 같은 문제의식에 기반을 두고 참여연대 국제연대위원회는 2007년부터 <프레시안>과 함께 '아시아 생각' 칼럼을 연재해오고 있습니다. 다양한 분야의 필자들이 아시아 국가들의 정치, 문화, 경제, 사회뿐만 아니라, 국제 사회에서 논의되고 있는 인권, 민주주의, 개발과 관련된 대안적 시각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그들은 왜 아웅산 수치에게 품었던 희망을 버렸나

버마의 민주주의 이행 과정의 문제점


치리 자하우(Cheery Zahau) 친족 활동가

 

 

 

 

14년 만에 방문한 버마, 그들에게 '개혁'의 의미는…

 

14년간 공식적으로 버마(미얀마)를 방문할 수 없었던 나는 2012년 10월, 버마를 방문했다. 흥분되고 긴장이 되는 마음으로 수년간 대변해왔던 버마 민중들에게 과연 '개혁'이라는 것이 무슨 의미로 다가오는지 보고 싶었다.

 

버마의 개혁은 위에서 아래로 이뤄졌다. 몇몇은 정치범 석방, 이전까지 정부가 수십 년간 엄격히 통제해온 언론 검열의 완화, 그리고 버마 민중들이 집회나 시위와 같은 공공 활동을 할 수 있게 된 것 등을 환영했다. 이러한 개혁은 국제 사회를 들뜨게 만들었으며 이러한 개혁을 내 눈으로 보고 싶었다.

 

개혁에 대한 궁금증은 버마에서 가장 가난하고 소외된 지역인, 버마 북서쪽에 위치한 친(Chin) 지역에서 시작되었다. 두 번째로 궁금했던 지역은 정부군이 카친 독립 기구(Kachin Independent Organisation, KIO)와 그들의 군대인 카친 독립군(Kachin Independent Army, KIA)를 심하게 공격했던 카친 주(州)였다.

 

현재 살고 있는 태국 방콕에서 버마의 옛 수도인 랑군으로 들어가는 것으로 여행을 시작했다. 랑군에서는 모든 것이 평소와 다름없이 돌아갔다. "정치 지향적"인 사람들이 그들의 정치적 견해에 대해 토론하고 현 개혁에 대해 의견을 나누는 것을 보았다. 특히 2012년 4월 1일 실시된 보궐선거로 민족민주동맹당(National League for Democracy, NLD)이 43석을 얻은 것에 기뻐하며 현재의 정치 과정에 만족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러나 나는 친족과 카친족들이 보고 경험한 것을 보아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친 주(州)에 위치한 팔람(Falam)으로 여행을 계속했다. 그곳에서 버마 정부의 '개혁'이 그들에게까지 다다르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몇몇 공동체 지도자들을 만났다.

 

많은 친 공동체 지도자들은 억압적인 권력 아래 고통받았던 과거의 경험 때문에 여전히 정부를 두려워하고 있었다. 민중들은 여전히 그들의 사회적, 정치적 삶에 있어서 정부의 완벽한 통제 아래 살고 있었다. 친 주(州)에서 '공포 분위기'는 전혀 사라지지 않았다. 그 이유로는 먼저 권력을 남용하고 부패했으며 모든 종류의 인권을 침해했던 정부 관료들 중 누구도 처벌받지 않았다는 것을 들 수 있다. 일반 민중들이 그들의 시민적, 정치적 권리가 무엇인지에 대해 알지 못한다는 것도 또 다른 이유다. 친족 공동체 지도자들은 여전히 그들이 정치적 감수성과 인식을 높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10년 넘게 인도-버마 국경지대에 살면서 자주 (비공식적으로) 친 지역을 방문했다. 그곳에서 공동체 지도자들에게 인권, 민주주의, 젠더, 리더십을 교육했다. 버마 내에서 잊힌 많은 친 공동체들에게 인도적 지원을 제공했고 버마 군부의 폭정을 기록했다. 버마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라면 친족에게 무슨 일이 있는지를 알게 하기 위해 언론의 관심을 이끌었다. 친 주(州)에서 여행하는 동안 친족들의 사회경제적, 그리고 정치적 인식을 증대시키기 위해 여전히 할 일이 많이 남아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친 공동체와 며칠 동안 시간을 보낸 후 카친(Kachin) 지역에 있는 미트키나(Myitkyina)로 여행을 계속했다. 친구들의 소개로 실향민 캠프 세 곳을 방문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무력함과 불확실과 절망과 불신을 목격했다. 그들 마을에서 일어난 분쟁으로 인해 도망쳐온 몇몇 사람들을 만났다.

 

그들 중 대부분은 나에게 버마 군대가 충분한 경고도 없이 자신들의 마을을 공격했다고 말했다. 버마 군대는 전쟁과 관련 없는 민간인을 보호해야만 한다는 국제적인 의무 사항을 잊어버린 게 분명한 것으로 보인다. 전쟁 시 군대가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교육받아야 하고 민간인 피해를 최소화해야 한다는 1949년 제네바협약을 버마가 1992년에 비준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나는 정부군이 카친 독립군(KIA)과 벌이는 무력 분쟁에서 주요 국제 인도법을 준수하지 않는 것을 목격했다.

 

살면서 3번이나 마을이 버마 군부에 의해 파괴되는 것을 보았기 때문에 절대 고향으로 돌아가지 않겠다고 말하는 45세 남성을 만났다. 그는 화가 난 목소리로 말했다. "왜 우리가 돌아가야 하나요? 우리가 집과 공동체를 재건할 때마다 버마군이 와서 파괴합니다. 우리에게는 남은 것이 아무것도 없어요. 우리는 살기 위해 도망치고 또 도망쳐야 합니다. 만약 싸움이 중단되고 우리가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다고 해도 우리는 그들이 언제 다시 돌아와 우리 공동체를 파괴할지 알 수 없어요."

 

그 캠프에 있던 많은 국내 실향민들이 그의 말에 동의했다. 그러나 미트키나와 같은 큰 도시에서 그들의 미래는 불확실하다. 그들은 모두 공통된 걱정거리를 안고 있었다. 한 여성이 말했다. "미트키나나 우리가 안전하게 느끼는 근처 지역에서 우리가 삶을 재건할 수 있도록 정부는 도와주지 않아요. 우리는 농사짓는 법 이외에는 살아갈 방법을 몰라요. 이런 캠프에서 오랫동안 나가지 못하고 지내야 할지도 몰라요."

 

농장에서 집에 돌아가는 길에 지뢰를 밟은 13세 소년을 만나기도 했다. 그들의 마을에서 도망치기 전에 이 소년과 그의 아버지와 아홉 살짜리 남동생은 음식을 구하기 위해 농장에 갔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그 소년은 지뢰를 밟았고 지뢰가 폭발하는 바람에 눈을 다쳐 시력을 잃었다. 그의 아버지도 다쳤으며 지뢰는 소년의 피부도 손상시켰다. 그의 피부에는 초록색 반점이 생겼고 의사들은 원인이 무엇인지 진단하지 못했다. 정글을 며칠 동안 걸어서야 그들은 미트키나 병원에 도착할 수 있었다. 이런 끔찍한 분쟁으로 인해 피해를 본 사람들의 이야기는 셀 수도 없이 많다.

 

버마 군대는 카친 독립 기구(KIO)와 카친 독립군(KIA)을 2012년 크리스마스 이브 때부터 더 무자비하게 공격했고 이는 2013년 1월 28일 글을 쓰는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는 명백하게 '개혁'이라는 것이 이뤄진 다음에 일어난 일이다. 군부는 여전히 버마 민중들이 어디에 숨어 있는지를 찾아내려 하고 있으며 대포, 헬리콥터, 박격포탄과 같은 중화기를 사용하고 있다.

 

4개의 제네바협약 중 제1차, 제3차, 그리고 제4차 제네바 협약은 버마의 상황과 연관되어 있으며 이에 따르면 두 당사자(이 경우 버마 군부와 카친 독립군)는 해당 협약을 준수할 의무가 있다. 협약은 전쟁 포로 학대를 금지하고 있으며, 국제적십자위원회와 같은 국제기구가 즉각적으로 의료를 지원하는 것이 허가되어야 함과 민간인이 국제법의 원칙에 따라 보호받아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버마 정부는 약삭빠르게도 범죄를 저지르고 나서 처벌받지 않기 위해 1997년의 제네바협약에 대한 추가 및 비국제적 무력 충돌의 희생자 보호에 관한 의정서(제2의정서)는 비준하지 않았다. 버마 내 전쟁에서 국제 인도법 원칙들은 전혀 지켜지지 않았으며 과연 이러한 전쟁이 정당한지 아닌지에 대한 국제적 논의가 계속되고 있다.

 

국제 사회가 테인 셰인 대통령을 과도하게 치켜세우고 국제 사회가 사랑에 빠진 아웅산 수치 여사의 매력을 칭찬해 마지않을 때 군부의 추악한 부분은 여전히 옛날과 같이 남아 있다. 무엇보다도 소수 민족들에게는 더욱 그러하다. 한 예로 지난 20일 대통령은 카친 독립군(KIA)과 휴전하라는 내용의 성명을 발표했으나 여전히 군대는 이를 무시하고 있다. 버마에서는 군대가 법 위에 존재한다. 이렇게 처벌하지 않는 문화는 버마에 만연하며 심지어 대통령이라도 이를 막기는 어려워 보인다.

 

 

아웅산

▲ 아웅산 수치. ⓒ프레시안(최형락)

 

 

버마를 두 번째로 방문한 2013년, 국경에서 일어나고 있는 분쟁에 대해 아웅산 수치 여사가 이상할 정도로 침묵하고 있는 것과 관련해 랑군(양곤) 사람들이 좌절하고 있는 것을 목격했다. 수십 년 동안, 버마 사람들은 수치 여사의 말을 신(神)처럼 모셨으며 그녀의 정치적 입장은 버마를 이끄는 북극성 같은 존재였다. 그러나 카친족과 분쟁이 벌어진 이번만큼은 그렇지 못하다. 한 소수민족 공동체 지도자가 말했다. "우리는 오랫동안 지속되는 평화, 진정한 연방주의와 평등을 가져다 줄 수 있는 민족의 진정한 지도자를 기다려왔다. 이제 우리는 수치 여사에 대한 희망을 잃었다. 우리는 우리가 그렇게나 오래 기다려온 진정한 지도자를 절대 갖지 못하게 될 것 같다."

 

버마를 여행한 경험은 내게 버마 민주주의의 전환 과정에 문제점이 많다는 것을 가르쳐줬다. 사실 상황은 여전히 심각하고 이에 우리는 모두 솔직해질 필요가 있다. 이 글을 읽는 당신이 카친 지역에서 벌어진 전쟁으로 인해 고통받는 민중들과 철저하게 무시당하고 있는 친족 사람들을 기억한다면 표면적으로만 드러나는 '개혁'에 뛸 듯이 기뻐하는 것은 적합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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