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감시센터 판결/결정 2014-04-14   3394

[판결비평] 군인에게 헌법이란?

국가보안법상 이적표현물 소지죄는 정확히 뭘까요? 이적표현물만 갖고 있으면 무조건 국가보안법 위반일까요? 최근 북한 서적을 소지했다는 이유로 1, 2심 군사법원에서 모두 유죄판결을 받은 해병대 중위에 대해 대법원이 무죄 취지로 파기 환송했는데, 어떤 내용인지 함께 읽어 보시지요.

[판결비평]은 주로 법률 전문가 층에만 국한되는 판결비평을 시민사회 공론의 장으로 끌어내어 다양한 의견을 나누고 이런 과정을 통해 법원의 판결이 더욱더 발전될 수 있다는 생각으로 마련한 자리입니다.

 

 

군인에게 헌법이란?

 

 

대법원 제3부 2014. 4. 10. 2012도9800 국가보안법 위반

대법관 민일영, 이인복, 박보영, 김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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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광철 / 변호사 

 

 

 

1. 법정 前

 

해병대에 장교로 입대한 김00 중위가 있다. 서울의 모 신학대를 졸업했다. 전형적인 기독교 집안 가정에서 모태신앙을 갖고 태어난 김중위는 한국 교회에 만연한 물신주의, 기복신앙에 강한 문제인식을 느꼈다. 신학대에서 같은 고민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과 이 문제에 관해 공부를 했고, 결국 자본주의가 사람들을 소외로 이끌고 있다는 인식에 도달하게 되었다. 여기서 칼 맑스까지는 외길 수순이다. 김 중위는 자본론 등의 공부에 심취하게 되고, 이윽고 우리 근현대사와 해방신학 등의 공부로까지 인식의 지평을 넓혀 나가게 되었다. 뜻을 같이 하는 사람들과 분단의 문제에 대하여도 깊은 고민을 하게 되었고, 그래서 2006년에 중국을 통하여 백두산 기행도 다녀왔다(이때 심양에서 북한당국이 발간한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의 불멸의 혁명업적’이라는 주체사상 해설서 책자도 한 권 사왔다. 이게 사실은 문제의 도화선이 되었다).

 

 

그런데 군에 입대한 후에 일이 일어났다. 김중위는 강화도에 배치를 받게 되었고, 여기서 인터넷을 통하여 이시우 작가가 주관하는 평화기행에 참가신청을 하였다가 그만 기무사의 안테나망에 걸리게 되었다. 이를 계기로 하여 김중위의 집에는 군기무사의 압수수색이 실시되었고, 여기서 자본론 등 신학대의 동아리 교재들과 함께 백두산 기행때 사온 북한 원전이 압수되었다.

 

 

2. 법정 中

김중위는 기소되었다. 죄목은 국가보안법 제7조 제5항의 이적표현물 소지죄였다. 김중위는 제1심(해병대사령부 보통군사법원 2011. 10. 28. 선고2011고6 사건)에서 이러한 책들은 기독교 목회자로서 소외된 이웃들과 영적으로 소통하기 위한 교재였고, 특히 5)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의 불멸의 혁명업적은 북한 선교시 북한 주민들의 생각을 이해하고자 구입하였을 뿐, 북한을 찬양하거나 동조할 목적은 전혀 없었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재판부는 기소된 13종의 책자 중 1) 마르크스의 사상, 3) 칼 맑스-프리드리히 엥겔스 저작선집, 5)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의 불멸의 혁명업적, 7) 청년을 위한 한국현대사, 10) 공산당 선언이 국가보안법 제7조 5항의 이적표현물이라고 판시하면서 김중위에 대하여 징역 6월에 집행유예 1년의 형을 선고하였다.

 

김중위는 항소하였다. 항소심 법정에는 자본론의 번역자인 김수행 교수(성공회대), 평화학자인 이재봉 교수(원광대)가 증인으로 출석하였고, 이들이 증언하는 법정은 맑스 경제학과 남북관계의 진지한 강의실이 되었다. 또한 김중위의 신학대 선배는 증언을 통하여 김중위가 얼마나 사람에 대한 사랑이 넘치는 목회자인지를 절절하게 증언하였다. 그런데 항소심 재판부는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의 불멸의 혁명업적”을 제외한 나머지 책자들에 관하여 무죄를 선고하면서도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의 불멸의 혁명업적”은 국가보안법 제7조 제5항 소정의 이른바 ‘이적’표현물이고, 그 소지에 이적의 목적도 인정된다면서 유죄를 인정하고, 양형도 1심의 징역 6월에 집행유예 1년의 형을 유지하였다.

 

이 항소심 판결은 도무지 납득하기 어렵다. 이유는 이렇다. 국가보안법상의 이적표현물 소지죄가 되려면 두 가지 조건을 충족하여야 한다. 첫째가 그 표현물이 객관적으로 이적성이 있어야 한다. 이적성이란 쉽게 말하면 반국가단체인 북한(북한을 반국가단체로 보는 것의 부당함은 여기서 논외!)을 이롭게 하는 것을 말한다. 둘째는 주관적으로 이적목적이 있어야 한다. 북한의 대남적화통일의도에 동조하는 목적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 사안의 경우에 객관적인 점에서 위 책자가 이적표현물이 아니라고 보기는 어렵다. 그러나 과연 김중위에게 이적목적이 있을까? 독실한 기독교 집안의 예비목회자가 북한 선교목적으로 사온 북한 책을 이적목적으로 사왔다고? 상고심에 제출한 서면에서 변호인은 이 점을 강력하게 반박 혹은 호소하였다. 대법원은 바로 이 점을 받아들여 2심을 깨고 무죄취지로 판결해 주었다.

 

 

3. 법정 後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잘못된 결정이 바로잡히기가 이토록 어려운 일이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런데 김중위에게 난관은 남아 있다. 의무복무 장교인 그가 군 수사당국에 의해 기소되면서, 휴직상태가 되어버린 것이다. 그의 동기들은 지난 2012. 5. 경 모두 전역하였고, 기소휴직상태로 김중위는 아직도 군인의 신분이 되어 취업도 못하고, 해외신혼여행을 다녀올 꿈도 꾸지 못하고 있다. 모두 군인사법의 기소휴직제도 탓이다. 

하지만 군인사법의 이 규정은 “누구든지 병역의무의 이행으로 인하여 불이익한 처우를 받지 아니한다”는 헌법 39조 2항과 무죄추정원칙을 규정한 헌법 제27조 제4항을 위배할 소지가 다분하다. 기소휴직에 따른 의무복무 기간 불산정의 불이익을 피하자면 1,2심에서 유죄가 선고되더라도 항소나 상고를 하지 않는 수밖에 없고, 이는 무죄추정원칙에 어긋나는 동시에 병역의무로 인하여 실질적인 불이익을 보게 하는 것이라 할 수 밖에 없다.

김중위는 이제 파기환송심인 국방부의 고등군사법원에서 다시 재판을 받아야 한다. 그에게 무죄가 선고될 것이다. 형사재판에서 무죄선고가 때로는 상처뿐인 영광으로 남는 경우가 많다. 무죄를 받기까지 시간과 에너지의 낭비는 당해보지 않은 사람은 도저히 알 수 없다. 더구나 그는 제대 예정일로부터 2년이나 지나도록 군인 신분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4. 에필로그

 

우리가 정치적, 군사적으로 대치하고 있는 북한보다 우월한 것이 무엇일까? 군사력? 경제력?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보다 정답에 가까운 것은 민주주의다. 자유롭게 생각하고 표현할 수 있는 권리가 보장되어 있는 우리 헌법질서 말이다. 북한에 맞선다고 군인의 머릿속과 입을 구속하려 드는 것이 정녕 민주주의인가? 툭하면 북한을 운운하는 사람들이 가만 보면 대한민국의 민주주의의 적들인 경우가 많다. 그런 속에서 무죄의 몸이 된 김중위에게 축하의 말을 전한다. 대법원 판결이 선고되던 날의 김중위의 환한 음성처럼 이 땅의 민주주의도 활짝 만개할 날이 오기를 고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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