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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판결/결정
  • 2020.10.12
  • 322

목숨걸고 노동하는 '귀족'은 없다. 산재 유족을 특별채용하는 내용을 담은 단체협약이  유효하다는 판결(대법원 2016다248998)에 대한 비평

한국의 산업재해 사망률은 OECD 국가들 가운데 1위입니다. 반복되는 산재사망을 근절하기 위해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등의 제도적 개혁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습니다. 한편 최근 대법원이 1,2심 판결을 뒤집고 산재 유족을 특별채용하는 내용을 담은 단체협약이 유효하다는 취지의 판결이 내려져 화제가 되었습니다. 사용자가 산재에 책임을 지고 단체협약을 이행하는 것은 당연한 일임에도 재판까지 오게 되었고 1,2심이 해당 단체협약이 유효하지 않다는 판결을 내린 이유는 무엇일까요? 또 재판이 생중계가 될 정도로 해당 사건이 사회적 이목을 끌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요? 노동건강연대 집행위원 유성규 노무사가 비평해주셨습니다.

광장에 나온 판결 : 179번째 이야기

산업재해로 사망한 노동자의 유족을 특별채용하는 내용을 담은 단체협약이 유효하다는 대법원 판결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김상환 대법관) 2016다248998

 

노동건강연대 집행위원 유성규 노무사

 유성규 / 노동건강연대 집행위원, 노무사

 

지난 8월에 많은 이들의 관심이 대법원에 집중되었다. 업무상 재해로 사망한 조합원의 자녀 등을 특별채용하도록 한 단체협약 조항(이하 ‘이 사건 특별채용 조항’이라 함)이 유효한가에 대한 대법원판결 선고가 있었기 때문이다. 대법원은 이 사건을 전원합의체에 회부했는데, 이 사실만으로도 이 사건이 지니는 사회적 의미와 중요성을 어느 정도 가늠해볼 수 있다.

 

원고들은 급성 골수성 백혈병으로 사망한 노동자의 배우자와 자녀들이었고 피고들은 망인이 근무했던 기아자동차(주)와 현대자동차(주)였다. 망인의 사망은 산재보험에서 업무상 재해로 인정받았는데, 망인이 속해있던 노동조합과 피고들은 업무상 재해로 사망한 조합원의 자녀 등에 대해 결격사유가 없는 한 요청일로부터 6개월 이내에 특별채용한다는 취지의 단체협약을 체결한 바 있다. 원고들은 피고들을 상대로 망인의 사망에 대한 손해배상과 이 사건 특별채용 조항의 이행을 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산재 유족에 대한 보상과 선량한 풍속은 부딪히는 개념이 아니다

이 사건은 1심 때부터 언론의 많은 관심을 받았다. 수많은 청년들이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고 있는 현실에서 대기업의 특별채용이라는 단체협약 조항이 많은 이들에게 불편하게 느껴졌을 수 있다. 그래서인지 이 사건을 접한 많은 이들이 구직자들의 일자리를 뺏는 불공정한 특혜라고 비판하거나 현대판 음서제라면서 격한 토로를 쏟아내기도 했다. 나아가 귀족 노동조합 운운하면서 노동운동 자체를 비판하는 논거로 삼기도 했다.

 

재판에서의 핵심 쟁점도 이 사건 특별채용 조항이 “선량한 풍속 기타 사회질서에 위반한 사항을 내용으로 하는 법률행위는 무효로 한다”고 정한 민법 제103조에 의하여 무효인지 여부였다. 즉 노동조합과 사용자가 적법하게 체결한 단체협약일지라도 그 내용이 “선량한 풍속 기타 사회질서”에 반한다면 그 효력을 인정할 수 없는 바, 이 사건 특별채용 조항이 선량한 풍속 기타 사회질서에 반하는지 여부가 재판에서의 핵심 쟁점이었다.

 

1심은 이 사건 특별채용 조항이 사실상 일자리를 물려주는 결과를 초래하고 나아가 사실상 귀족 노동자 계급의 출현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어 우리 사회의 정의 관념에 반한다는 점 등을 지적하면서 이 사건 특별채용 조항은 선량한 풍속 기타 사회질서에 반하여 무효라고 판시했다. 심지어 1심은 이 사건 특별채용 조항은 단체협약의 대상이 될 수 없는 것을 약정한 것이므로 무효라고 판시하기도 했다. 2심은 1심과 달리 이 사건 특별채용 조항이 단체협약의 대상이 될 수 있음은 인정했으나 1심과 같은 취지에서 이 사건 특별채용 조항은 선량한 풍속 기타 사회질서에 반해 무효라고 판시했다.

 

이에 대해, 대법원은 노동조합과 사용자가 노동자 채용에 관해 임의로 단체교섭을 진행하여 단체협약을 체결할 수 있고 그 내용이 강행법규나 선량한 풍속 기타 사회질서에 위배되지 아니하는 이상 그 효력이 인정된다고 보았다. 또 그 위배 여부에 관한 판단에 있어 법원의 후견적 개입에 보다 신중할 필요가 있다는 점도 밝혔다. 결과적으로, 대법원은 이 사건 특별채용 조항이 피고들의 채용의 자유를 과도하게 제한하는 정도에 이르거나 채용 기회의 공정성을 현저히 해하는 결과를 초래하였다고 보기 어려우므로 선량한 풍속 기타 사회질서에 위반되지 않아 그 효력이 인정된다고 판시했다.

 

결국, 1심에서 대법원에 이르는 재판 과정은 이 사건 특별채용 조항에 대한 우리 사회의 허용 범위 내지 합의 수준을 확인하는 과정이었다고 볼 수 있다. 또 대법원 판결 내용은 이 사건을 둘러싸고 제기되었던 다양한 비판들에 대한 우리 법원의 대답이었다고 볼 수 있다. 이하에서는 그 비판들이 과연 타당한 것이었는가를 대법원이 판결문에서 밝히고 있는 내용들을 참고 내지 인용해 검토해보도록 한다.

책임질 의무도, 능력도 있는 기업이 아니라 목숨 걸고 일한 노동자가 귀족인가?

첫째, 이 사건 특별채용 조항으로 인해 실제로 많은 구직자들이 일자리를 빼앗겼을까? 대법원 판결문에 따르면, 2019년 말 기준 피고 기아자동차(주)의 매출액은 약 33조 원, 노동자 수는 약 35,600명 이상이고 피고 현대자동차(주)의 매출액은 약 49조 원, 노동자 수는 약 70,000명 이상에 달한다. 또 2013년부터 2019년까지 피고 기아자동차(주)가 신규 채용한 노동자의 수는 5,281명이고 그 중에서 이 사건 특별채용 조항에 따른 채용 인원은 5명으로 그 비율은 약 0.094%이다. 같은 기간 피고 현대자동차(주)가 신규 채용한 노동자의 수는 약 18,000명이고 그 중에서 이 사건 특별채용 조항에 따른 채용 인원은 11명으로 그 비율은 약 0.061%이다. 판결문에 언급되지는 않았지만, 현대차그룹이 신사옥을 짓기 위해 2014년에 옛 한전 부지를 10조 5,500억원에 사들인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그렇다면, 자세한 분석도 필요 없을 듯하다. 이 같은 규모와 재력을 지닌 두 회사에서 이 사건 특별채용 조항으로 인해 구직자들이 일자리를 빼앗겼다고 보는 것은 합리적이지 않다.

 

둘째, 이 사건 특별채용 조항은 현대판 음서제라고 불릴 만큼 불공정한 특혜인가? 대법원이 밝히고 있듯이, 가족의 생계를 담당하던 노동자가 사망하는 경우에 유족들이 생계에 어려움을 겪게 되는 것은 통상적으로 예상할 수 있는 일이다. 이를 고려하여 사용자가 부담할 재해보상 책임을 보충하거나 확장하는 내용의 특별채용 조항은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여 실질적 공정을 달성하는 데 기여한다고 평가할 수 있다. 또 헌법 제32조 제6항은 “국가유공자ㆍ상이군경 및 전몰군경의 유가족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우선적으로 근로의 기회를 부여받는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 같이 특정한 범위의 사람에게 보상과 보호의 목적으로 채용의 기회를 제공하는 것은 우리 법질서가 예정하고 있는 수단에 해당한다. 따라서 이 사건 특별채용 조항은 헌법 제32조 제6항의 취지와 정신을 기업 단위에서 자치적으로 구현한 것으로 볼 수 있으며, 이를 불공정한 특혜라고 보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

 

셋째, 노동조합이 이 사건 특별채용 조항을 체결한 것이 귀족 노동조합이라고 비난받을 만한 일인가? 노동조합의 기본적 역할 중 하나는 근로조건의 유지‧개선이다. 노동조합은 이를 위해 사용자와 대립하기도 하고 협력하기도 한다. 대법원이 판시하고 있듯이, 업무상 재해에 대해 어떤 보상을 할 것인지는 그 자체로 중요한 근로조건에 해당한다. 이 사건 노동조합은 근로조건을 유지․개선하고 노동자의 경제적․사회적 지위를 향상시키기 위한 목적으로 이 사건 특별채용 조항이 포함된 단체협약의 체결을 요구한 것이다. 피고들은 그 요구를 받아들임으로써 조합원들의 업무에 대한 충실을 유도하고 노동조합과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는 이익을 얻었다고 볼 수 있다. 피고들의 규모와 재력을 고려할 때, 이로 인해 다른 구직자들의 채용 기회가 침해되었다거나 경영상 어려움이 초래되었을 가능성도 없어 보인다. 그렇다면, 노동조합이 기본적 역할을 한 것을 두고 귀족 노동조합 운운하는 것은 옳지 않다. 어떤 귀족 집단이 자신들의 생명이 다하도록 노동을 한단 말인가.

자연재해가 아닌 사회적 참사인 산업재해

우리 사회 일각에는 업무상 재해를 자연재해처럼 인식하는 경향이 있는 듯하다. 그러나 업무상 재해와 자연재해는 두 가지 점에서 명확히 구별된다. 업무상 재해의 가해자는 이를 사전에 예방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인간 내지 조직이라는 점이다. 또 업무상 재해의 가해자는 피해자와 잠재적 피해자들의 생명과 건강을 담보로 이윤을 쌓고 있다는 점이다. 아직까지도 이 판결을 비판하고 있는 이들에게 묻고 싶다. 회사를 위해 생명을 희생하고 사랑하는 가족 곁을 떠난 노동자의 유족에게 이를 막지 못한 회사가 특별채용의 기회를 부여하는 것이 그렇게 불공정한 일인가? 더욱이, 그 회사에 이를 감당하고도 남을 충분한 능력이 있는데도 말이다. 필자는 아무리 생각해도 왜 여기에 불공정이란 단어가 등장하는지 이해되지 않는다. 아마도 많은 이들의 삶이 너무 고단한 탓이리라. 모두가 무거운 삶의 짐을 내려놓고 인간 본연의 따스한 시선으로 바라본다면, 오히려 우리 사회가 업무상 재해로 가족을 잃은 유족들 모두에게 이 같은 혜택을 주지 못함을 안타까워할 것이라 믿는다.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는 최근 판결 중 사회 변화의 흐름을 반영하지 못하거나 국민의 법 감정과 괴리된 판결, 기본권과 인권보호에 기여하지 못한 판결, 또는 그와 반대로 인권수호기관으로서 위상을 정립하는데 기여한 판결을 소재로[판결비평-광장에 나온 판결]사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주로 법률가 층에만 국한되는 판결비평을 시민사회 공론의 장으로 끌어내어 다양한 의견을 나눔으로써 법원의 판결이 더욱더 발전될 수 있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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