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감시센터 판결/결정 2021-03-16   1618

[판결비평] 인권을 앞세우는 새로운 시대의 반영

인권을 앞세우는 새로운 시대의 반영 [광장에 나온 판결] '위안부' 생존자 12명이 일본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소송(2016가합505092) 승소 판결

올해 초 재판부는 일본군‘위안부’ 생존자 등 12명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청구를 전면적으로 받아들인 획기적인 판결을 선고했습니다. 해당 판결은 국내에서 일본군’위안부’ 생존자들이 일본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소송 가운데 첫 번째로 나온 판결입니다. 그러나 일본은 생존자를 배제한 양국 간의 졸속 합의나 국제법 등을 이유로 판결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습니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주권면제’의 측면에서 볼 수 있을까요? 오랜 시간 일본군’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 앞장서온 김창록 경북대 법전원 교수가 전쟁과 평화, 그리고 인권이라는 전지구적 현상 혹은 가치가 주권국가라는 강력한 시스템 앞에 놓이고 있는 최근의 흐름에 주목하며 해당 판결을 비평했습니다.

 광장에 나온 판결 : 190번째 이야기

 ‘위안부’ 생존자 12명이 일본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소송 승소 판결

서울중앙지법 2016가합505092, 김정곤 재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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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대 김창록 교수

김창록 경북대 법전원 교수

 

일본군‘위안부’ 승소 판결의 의의

 

2021년 1월 8일, 서울중앙지방법원 제34민사부(재판장 김정곤)가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등 12명이 일본국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청구를 전면적으로 받아들여 원고 1인당 1억원의 지급을 명하는 획기적인 판결을 선고했다. 

 

이 판결은, 2013년 8월 13일에 민사조정 신청으로 제기되었으나 일본 정부가 일절 응하지 않아 2015년 12월 30일에 정식 소송절차로 이관된 사건에 대한 판결이다. 한국에서 일본국을 상대로 한 일본군‘위안부’ 피해자들의 소송은 2016년 12월 28일에도 추가로 제기되었으며, 이 2차 소송은 현재 진행 중이다.

 

‘국가면제’의 진화

 

이번 판결에서는, 그 소송절차에 일본 정부가 일절 응하지 않았기 때문에, ‘국가면제’ 혹은 ‘주권면제’가 거의 유일한 쟁점이었다. 국가면제는 ‘주권국가를 다른 국가의 법정에서 심판할 수 없다’라는 관습국제법이다. 

 

국가면제는, 주권평등의 이념을 근거로 확립된 것으로서, 19세기에는 국가의 모든 행위에 적용되는 절대적인 법리라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절대면제주의). 하지만 상품 구입이나 공사 발주 등 국가의 사법(私法)행위가 빈번해지면서, 19세기 말 무렵부터 사법행위에 대해서는 국가면제의 적용을 부정하는 판결이 유럽의 국내 법원에서 나타나기 시작했다(제한면제주의). 이후 제한면제주의가 전 세계로 확산되어 국가면제의 확고한 내용으로 자리잡았고, 한국과 일본에서도 각각 1998년 대법원 판결과 2006년 최고재판소 판결에 의해 수용되었다. 

 

나아가 21세기 초 무렵부터, 중대한 인권침해에 대해서도 국가면제의 적용을 부정하는 판결이 역시 유럽의 법원에서 등장했다. 제2차 세계대전 말기에 독일군이 그리스의 민간인 학살한 사건의 피해자와 유족들이 1995년에 독일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청구소송에서, 그리스 대법원은 2000년에 국가면제의 적용을 부정하고 원고들의 주장을 받아들여 독일에 배상을 명하는 판결을 확정했다. 이탈리아에서도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의 포로가 되어 강제노동을 강요당한 페리니(Luigi Ferrini)가 독일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청구소송에서, 이탈리아 대법원은 2004년에 독일의 국가면제는 인정되지 않는다는 판단을 제시했다. 그리고 이후 학살과 강제노동 사건의 다수의 피해자와 유족이 독일에 대해 소송을 제기하여 승소했다.

 

새로운 시대를 열어젖힌 선언

 

서울중앙지방법원 제34민사부의 이번 판결은, 우선 “국가면제 이론은 항구적이고 고정적인 가치가 아니다”라고 선언하여 국가면제의 법리가 진화했고 진화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한 후, “피고가 된 국가가 국제공동체의 보편적인 가치를 파괴하고 반인권적 행위로 인하여 피해자들에게 극심한 피해를 가하였을 경우까지도 이에 대하여 최종적 수단으로 선택된 민사소송에서 재판권이 면제된다고 해석하는 것은・・・불합리하고 부당”하기 때문에, “이러한 경우 국가면제에 관한 국제관습법의 해석에는 예외를 허용해야 함이 상당하다”라고 판시했다. 

 

이번 판결은, 위에서 살펴본 것처럼 19세기에 주권평등의 이념 아래 절대적인 원칙으로 성립되었다가, 20세기에 들어와 국가의 사법행위에 대해서는 적용되지 않는 것으로 진화한 국가면제라는 국제법을, 반인도적 불법행위로 인한 중대한 인권침해에 대해서도 적용되지 않는 것으로 다시 한 번 진화시킨 것이다. 

 

이번 판결은, 학살과 강제동원 피해에 대한 국가면제 적용 배제를 선언한 그리스와 이탈리아 법원의 판결에 이어, 성노예 피해에 대해서도 국가면제의 적용 배제를 선언한 것으로서, 이제 중대한 인권침해에 대해 국가면제를 적용할 것인지라는 문제에 직면하는 전 세계의 모든 법원들은, ‘낡은 국제법’을 고수하려면, 이들 판결이 설정한 새로운 틀을 넘어서지 않으면 안 되게 되었다. 

 

이렇게 2021년의 한국 법원의 판결은, 인권의 지속적인 확산을 지향해 온 인류사회의 흐름을 반영하여, 인권을 주권국가 시스템이라는 강고한 틀에 앞세우는 새로운 시대를 열어젖힌 것이다. 

 

간절하고도 지난한 역사의 결정체

 

동시에 이번 판결이 지난 30년간 일본군‘위안부’ 피해자들과 그들의 호소에 공감한 시민들이 이끌어온 간절하고도 지난한 역사의 결정체라는 사실도 기억되어야 한다. 

 

1945년 일본의 패전과 함께 몰락한 일본군‘위안부’ 제도에 대해서는, 이후 40년 이상의 긴 세월 동안 침묵이 강요되었다. 한국의 여성단체들이 1980년대 말에 그 침묵을 깼고, 1991년 이후 ‘김학순들’이 정의의 실현을 호소하고 나섰다. 그 호소는 전 세계의 거리에서 강연장에서 의회에서 법정에서 그리고 1992년 이후 30년 가까이 1480차가 넘게 이어지고 있는 수요시위의 현장에서 울려퍼졌다. 

 

유엔의 인권기구들의 각종 선언과 보고서, 2000년 ‘일본군성노예 전범 여성국제법정’의 판결, 각국 의회와 지방자치단체들의 결의 속에서, 그 정의의 요구는 차곡차곡 쌓여, 마침내 ‘일본군성노예를 강요한 반인도적 범죄행위에 대해 일본은 지금 온전한 법적 책임을 지지 않으면 안 된다’라는 국제사회의 상식이 확립되었다. 

 

2020년 9월에 설치된 베를린 ‘평화의 소녀상’을 철거시키기 위해 일본의 정부・의회・자치단체가 총동원되어 독일의 정부・의회・자치단체를 전방위적으로 압박했음에도 결국 성공하지 못한 것은, 그 국제사회의 상식을 거부하며 맞서려 한 허망한 시도의 당연한 귀결이다. 마찬가지로 하버드대학 로스쿨 미쯔비시 교수 J. Mark Ramseyer의 ‘태평양전쟁 기간의 성계약(Contracting for sex in the Pacific War)’이라는 제목의 글이 불러온 논란은 글로벌 학문공동체의 ‘상식’에 의해 채 한 달도 지나지 않아 평정되었다. 

 

하지만 현실 법정의 담은 높았다. 1991년 이후 일본의 법원에 한국인 피해자들이 일본국을 상대로 총 3건의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했지만 모두 패소로 끝났다. 일본 법원은 1965년 「청구권협정」에도 불구하고 원고들의 청구권은 소멸되지 않았지만, 법원이 그 권리를 실현시켜 줄 수는 없다라는 책임회피의 궤변을 동원해 원고들의 청구를 배척했다. 미국 법원도, 2000년에 중국, 대만, 필리핀의 피해자들과 함께 한국의 피해자들이 제기한 손해배상청구소송에 대해, 법원이 관여할 수 없는 ‘정치적 문제’라며 청구를 배척했다. 그래서 한국 피해자들에게는 한국의 법정이 마지막 법정으로 남게 되었다. 이번 판결이 “최종 수단”이라고 인정한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이와 같이 이번 판결은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진 것이 아니다. 그것은 피해자들과 시민들이 켜켜이 쌓아 온 간절하고도 지난한 역사 속에서 솟아난 것이다. 

 

일본 정부의 거부

 

일본 정부는 조정신청에도 정식 소송절차에도 일절 응하지 않은 채, 한국 정부에게 ‘소송이 각하되어야 한다’라는 입장을 통보하기만 했다. 이번 판결이 선고된 2021년 1월 8일 당일에는, 판결의 요지만 공개되고 그 전문은 공개되지도 않은 상태에서, “국제법상의 주권면제의 원칙을 부정하는” 판결을 “결코 받아들일 수 없”다며, 판결은 거부한 채 오히려 한국 정부에게 “국제법 위반을 시정하기 위한 조치를 강구”하라고 요구하고 나섰다.

 

하지만, 이번 판결은 국가면제의 원칙을 부정한 것이 아니다. 소송이 중대한 인권침해에 대한 최종 수단인 경우에는 국가면제를 적용할 수 없다는 국가면제에 대한 해석을 제시한 것일 뿐이다. 일본 정부는 이 사실을 덮어 가리며 논점일탈을 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이번 판결이 국제법을 위반한 것이 아니니 한국 정부가 취해야 할 조치는 애당초 존재하지도 않는 것이다. 

무엇보다 한국 법원의 소송절차에는 일절 응하지 않은 채 한국 정부에게 각하시키라고 요구하고, 판결에는 따르지 않은 채 한국 정부에게 조치를 강구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대한민국의 사법권과 삼권분립 원칙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참으로 오만한 태도가 아닐 수 없다. 

 

게다가 일본 정부의 오만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18년 10월 30일에 한국 대법원이 일본 기업에 대해 강제동원 피해자들에게 배상하라는 판결을 선고했을 때도, 일본 정부는 ‘국제법 위반이다, 한국 정부가 조치를 강구해야 한다’라고 주장했었다. 위의 판결은 일본 정부에 대한 것도 아니고 일본 기업에 대한 것이었다. 그 일본 기업들은 한국의 법정에서 10년 이상의 오래 기간동안 한국 최고의 로펌을 앞세워 고령의 피해자들과 적극적으로 다투었었다. 그런데 판결이 선고되자 일본 정부가 나서서 판결에 따르지 말라고 일본 기업들을 ‘지도’하고, 한국 정부에 대해 조치를 강구하라고 으르댔다. 이후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최악의 한일관계’는 바로 그 일본 정부의 오만에서 출발한 것에 다름 아니다. 

 

일본 정부의 이번 판결에 대한 거부는 일본과 미국에서의 소송에 대한 태도와도 선명하게 대비된다. 일본 정부는 일본에서 한국인 피해자들이 소송을 제기했을 때는, 적극적으로 소송절차에 참가했고 그 판결에도 따랐다. 미국 소송에서는, 미국 정부의 지원까지 동원했고, 그 판결에 따랐다. 그런데 한국에서의 소송절차에는 일절 참가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그 판결도 거부하고 있다. 이것은 명백한 이중잣대가 아닐 수 없다. 

 

다시 새로운 시작을 위해

 

국내법이 그렇듯이 국제법도 “항구적이고 고정적인” 것이 아니다. 대한민국의 법원이 일본군‘위안부’ 피해자들과 시민들의 정의의 요구를 받아들여, 국가 중심에서 인권 중심으로 국제법을 획기적으로 진화시켰다. 

일본군‘위안부’ 문제의 해결을 위한 지난 30년간의 노력의 성과인 이번 판결을, 피해자들의 간절한 호소에 더 많이 응답하기 위한 앞으로의 노력의 출발점으로 삼아야 한다. 

 

‘다시는 우리와 같은 피해자가 없게 해달라!’라는 피해자들의 호소에 응답하기 위해, 전 세계 시민들이 손잡고 국가면제 법리의 진화를 가속화시킴으로써 국가에 의한 중대한 인권침해를 철저히 단죄할 수 있도록 하는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 전쟁 없는 세상을 만들어 달라!’라는 피해자들의 호소에 응답하기 위해, 주권국가들이 천문학적인 군사비를 쏟아부어 전쟁을 ‘상수’로 만들면서 인권을 침해하고 있는 현실의 흐름을 군비 축소와 전쟁 억제 쪽으로 돌리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 필요하다. 

 

이번 판결을 실현함으로써 일본군‘위안부’ 문제 해결의 진전을 이룰 수 있도록 일본과 한국의 정부가 나서줄 것을 요청한다. 일본 정부는 판결에 따라 배상해야 하고, 한국 정부는 일본 정부로 하여금 배상하게 해야 한다. 특히 한국 정부는 한국의 피해자와 시민들이 앞장서 이루어낸 이 역사의 성과를 적극적으로 살려야 할 책임이 있고, 살릴 수 있는 자격이 있다. 

 

< 참고자료 >

2021. 1. 8. 서울중앙지법 2016가합505092 판결문 

[자료집] 1차 토론회 일본국 상대 손해배상청구소송 1심 판결의 의미 <일본군‘위안부’ 승소 판결의 법적 의미를 생각한다!> 

[자료집] 2차 토론회 <일본국 상대 일본군‘위안부’ 손해배상청구 승소판결, 그 의미와 향후 대응 방향> 자료집

* 위의 자료들은, ‘일본군성노예제문제 해결을 위한 정의기억연대’ 홈페이지(https://womenandwar.net)의 ‘일본국 상대 소송’ 에서 볼 수 있음.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는 최근 판결 중 사회 변화의 흐름을 반영하지 못하거나 국민의 법 감정과 괴리된 판결, 기본권과 인권보호에 기여하지 못한 판결, 또는 그와 반대로 인권수호기관으로서 위상을 정립하는데 기여한 판결을 소재로 [판결비평-광장에 나온 판결]사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주로 법률가 층에만 국한되는 판결비평을 시민사회 공론의 장으로 끌어내어 다양한 의견을 나눔으로써 법원의 판결이 더욱더 발전될 수 있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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