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의 삶으로 읽는 시대정신

박태근 알라딘 인문MD

 

 

5년 만에 열리는 대통령 취임식을 보니, 보신각 타종 행사가 예전에도 있었나 싶고, 카 퍼레이드는 생전 처음 보는 기분이다. 어쨌든 이맘때면 대통령에 대한 내 첫 기억이 떠오르곤 한다. 1992년 대선, 초등학교 5학년이던 나는 학교에서 열리는 합동 유세를 보려고 운동장 느티나무에 기대서서 알아먹지도 못하는 유인물을 읽고 있었다. 이내 사람들이 모여들고 후보들의 연설이 시작되었는데, 몇 마디에 한 번씩 ‘와~’하고 박수와 환호성을 보내는 장면이 신기하고 놀라웠다. 생전 처음 그런 장면을 보니 단상에 선 후보들이 모두 훌륭해 보였다. 많은 아이들이 한 번쯤 생각해보는 대통령이란 꿈도 얼핏 떠올렸던 것 같다. 돌아보면 모두 추억이다. 이렇듯 대통령에 대한 개인의 기억이야 추억으로 담아둘 수 있겠지만, 대통령의 삶은 곧 시대정신의 반영이니 새로운 대통령의 시작에 발맞춰 그들의 삶과 생각을 곱씹어볼 필요가 있겠다.

 

다행히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세 명의 전임 대통령과 이번에 임기를 시작한 박근혜 대통령은 모두 자서전을 펴냈다. 『김대중 자서전』과 노무현 자서전 『운명이다』는 두 대통령의 1주기에 맞춰 나왔다. 『김대중 자서전』은 생전에 자서전 출간을 위해 진행한 구술을 바탕으로 정리했고 이희호 여사가 검토를 맡았다. 『운명이다』는 급작스레 세상을 떠난 노무현 대통령 대신 그를 가장 닮은 정치인으로 꼽히는 유시민 전 장관이 고인이 남긴 글과 각종 기록을 모아 엮었다. 앞선 두 대통령의 경우와 달리 이명박, 박근혜, 두 사람의 자서전은 모두 대통령이 되기 한참 전에 쓴 책이다. 이명박 대통령의 『신화는 없다』는 샐러리맨의 신화라 불린 그의 기업 생활을 담아낸 책이고, 박근혜 대통령의 『절망은 나를 단련시키고 희망은 나를 움직인다』는 아버지 박정희 대통령과 청와대 생활을 시작하던 때부터 2006년 한나라당 대표직을 내려놓을 때까지를 그린 책이다.

 

 

4인 4색 자서전, 어떻게 읽을까

 

김대중 자서전노무현 자서전 <운명이다>참여사회 2013년 3월호 (통권 196호)참여사회 2013년 3월호 (통권 196호)

 

현대사 마지막 거인으로 평가받는 김대중, 한국 사회의 권위주의를 뒤흔든 노무현, 기업인 출신으로 CEO 대통령이라 불린 이명박, 20대부터 퍼스트레이디로 활동하며 결국 대통령에 오른 박근혜. 시대적 역할뿐 아니라 각각의 삶도 판이하게 다른 네 사람의 자서전을 어떻게 엮어 읽어야 할까.

 

우선 현대사 전반에 대한 이해의 관점에서 본다면 단연 『김대중 자서전』을 제일 앞에 두어야겠다. 1924년에 태어나 2009년 세상을 떠난 그의 삶은 곧 20세기 한반도의 역사라 해도 부족함이 없다. 일제강점기, 해방, 군정, 전쟁, 분단으로 이어지는 험한 시기를 정면으로 살아냈고, 1954년 민의원 선거에 낙선한 때부터 1997년 대통령에 당선될 때까지 여러 차례 죽을 고비를 넘겼다. 재임 시에는 김정일 위원장을 직접 만나 6.15 남북 공동 선언을 이끌었고, 2010년에는 평생에 걸친 민주화 운동과 남북 평화 기여로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 개인의 기록이라 하기에는 그리고 한 대통령의 기록이라 하기에도 너무나 많은 시대가 담겨 있다. 아마 20세기 한국인 가운데 그와 한 장면도 공유하지 않은 이는 없을 것이다.

 

노무현 자서전과 박근혜 자서전은 겹쳐 읽기에 적합한 책이다. 연배는 노무현 대통령이 조금 위지만 여섯 살 터울이니 비슷한 시대를 살았다고 해도 무리가 없다. 두 자서전 모두 초반부에 5.16에 대한 언급이 나온다. 노무현은 중학생 때 부일장학금을 받았는데, 5.16 이후 장학회를 운영하던 <부산일보> 사장 김지태가 재산을 빼앗기고 부일장학재단도 5.16장학재단으로 넘어갔다. 이게 나중에 정수장학회가 되었으니 이런 걸 역사의 우연이라 해야 할까. 박근혜는 5.16 이후 이사한 청와대를 마당 넓은 집으로 추억한다. 열두 살 소녀는 가족에 대한 애틋한 추억을 꺼내놓지만, 언뜻언뜻 보이는 당대의 이야기를 보면 국정 운영의 심장이라 할 청와대라는 공간이 오늘의 박근혜 대통령을 만들었음을 이해할 수 있다. 가까운 이야기로는 참여정부의 대연정 제안이 있는데, 두 자서전 모두 각자의 기억과 입장을 구체적으로 기록한다. 같은 듯 다른 얘기를 하는 두 책을 보면 (이제는) 웃음도 조금 나온다. 박근혜 대통령은 노무현 대통령 재임 때 야당의 당 대표로 정치 일선에서 마주했기 때문에, 5.16에서 시작한 두 사람의 시대 읽기는 참여정부까지 이어진다 하겠다.

 

마지막으로 막 임기를 마친 이명박 대통령의 자서전을 읽을 차례다. 『신화는 없다』는 제목처럼 이 책에는 정말 신화가 없다. 그가 기업인으로 이뤄낸 엄청난 성과는 그 시대 한국사회의 구조를 여실히 보여준다. 민주화의 맞은편에 산업화가 있었다고 흔히 말하는데, 이 책에서 산업화 입장에서 본 한국 현대사를 확인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이명박, 박근혜, 두 사람이 임기를 마친 후 남길 자서전을 기대해본다. 그때라면 우리는 또 다른 조합으로 네 사람의 자서전을 읽어볼 수 있지 않을까.

 

 

박태근 온라인 책방 알라딘에서 인문, 사회, 역사, 과학 분야를 맡습니다. 편집자란 언제나 다른 가능성을 상상하는 사람이라 믿으며, 언젠가 ‘편집자를 위한 실험실’을 짓고 책과 출판을 연구하는 꿈을 품고 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