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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3년 05월
  • 2013.05.10
  • 3328

지식채널e, 

시처럼 다큐처럼 소외를 말하다

김진혁 PD

 

 

박유안 기웃기웃번역가

사진 박영록 사진가 

 

 

EBS <지식채널e>가 4월 30일로 1,000회를 맞았다. 김진혁 PD는 이 프로그램의 2005년 9월 첫 방송 이후 3년을 맡는 동안 수차례 화제의 중심에 섰고, 전례 없이 유명한 교육방송의 PD가 되었다. 반듯하고 야무진 서울 말투, 웃음기 없는 표정, 단정한 외모. 이런 묘사만으로는 우리 사회의 구석진 곳을 향하는 따뜻한 시선의 김진혁 PD를 다 말할 수 없다. 

 

참여사회 2013년 5월호 (통권 198호) <통인>

 

 

8년 간의 1000회

 

1000회 감회가 어떤가.

 

신기하다. 3년쯤 제작하다 2008년에 떠날 때는 제대로 유지될까 걱정도 없지 않았는데, 시청자의 선택이라는 동력 덕분에 장수하고 있다. 지금까지도 교양 프로그램 관련 포털 검색어 중 고정 1위다. 

<지식채널e>는 여느 교양 프로그램들과는 많이 다르다. 어떻게 기획하게 되었나. 

채널을 돌리는 시간대에 시청자를 붙잡자는 데서 시작된 편성 기획이었다. 그리고 수능 채널 이미지를 벗고 교양 위주의 채널 인지도를 높이자는 생각도 있었다. 그래서 일반적인 지식 자체의 전달보다는, 그 지식을 접한 사람들이 영감이나 지적 자극을 얻도록 하고 싶었다.

 

시청자들의 반응이 적극적이었던 것 같다.

 

제작진이 기대했던 것과는 다른 뜻밖의 반응들이 쏟아져 들어왔다. 첫회인 ‘1초’ 편 피드백이 가장 당황스러웠다. “우주의 시간 150억 년을 1년으로 축소할 때 인류가 역사를 만들어간 시간은 1초”라는 게 맨 마지막의 자막이었다. 제작진은 인간의 교만함을 얘기하는 피드백이 많으리라 했는데, 뜻밖에도 “1초는 소중하니 참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반응이 많았다. ‘1초가 소중하다’는 메시지를 직접 담았다면, 그런 피드백이 없었을 거다. 또 뻔한 소리 한다고 했겠지. 뜻밖이긴 하나 고무적인 출발이었다. 

 

초기부터 반응이 좋았나보다. 

 

2005년 9월에 첫 방송을 했는데, 2006년 초에 한국방송프로듀서연합회에서 실험정신상을 탔다. 3개월 만에 상을 받는 건 이례적인 일이다. 그만큼 비교적 수월하게 자리를 잡은 편이었다.

 

특별히 기억에 남는 편이 있나. 

 

조회 수, 댓글 수로는 ‘대한민국에서 초딩으로 산다는 것’ 편이 1위였다. 교육 현실로 인해 아이들이 압박을 받고 자살까지 한다는 내용이었는데, 반응이 폭발적이었다. 안타까워하는 어른들의 반응을 예상했는데, 그보다는 “저도 죽고 싶어요”, “이해돼요”라는 초딩들의 반응이 밀려오니까, 어찌할 바를 모르겠더라. 교육방송에 있으면서 직접적인 교육 아이템을 넘어서는 이야기들을 다루고 싶었는데, 정작 가장 민감한 부분에 대해 그런 반응들이 오니까, 내가 괜한 허세를 떤 건 아닌가, 내가 다루는 내용들을 정확하게 얘기하고 있는 건가, 반성도 했다. 

 

이후 <지식채널e>의 역할에 대해 고민을 많이 했겠다. 

 

대개의 프로그램이 6개월에서 1년이 지나면 시청자들이 그 프로를 인식하는 기준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그 무렵 <지식채널e>는 생각에 자극을 주는 프로그램, 우리 사회의 소외, 소외된 사람. 생각. 기억. 문화, 역사에 대해 계속 화두를 던져보는 프로그램으로 사람들이 인식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자리를 잡았으니, 나아가 새로운 소외의 지점들을 찾아 더 깊고 넓게 파고드는 역할에 충실할 뿐이었다.

 

 

이 채널의 소통법

 

많은 사람들이 오랫동안 애호하는 이유가 무엇이라 생각하시나.

 

시청자들의 해석 가능성을 열어두는 포맷도 크게 작용했고, 그 이전까지의 계몽성 교양 프로그램과는 다른, 즉 “이게 옳고 저게 틀렸다”고 못박아버리는 게 아닌, 뭔가 좀 더 세련된 걸 찾는 시청자들의 희망과 잘 맞았던 것 같다. 또  방송을 시작한 때가 IMF 이후 8년이 지나 양극화가 심화된 시점이었다. 불안감, 공포, 두려움 등이 팽배한 상황에서 소외 문제를 건드렸다는 것 또한 주효했다. 그런 게    <지식채널e>의 원동력인데, 거꾸로 얘기하면 지금도 사랑받고 있다는 건 여전히 그런 상황이 유효함을 뜻한다고도 하겠다. 

 

<지식채널e> 특유의 전달 방식도 신선했다.

 

궁금증을 불러일으켜 임팩트를 주는 초반부, 반드시 등장하는 반전, 처음을 보면 끝까지 붙어 있게 만드는 드라마적 구성의 다큐, 흐름을 제시할 뿐 명확하지 않은 결말, 그런 특징이 여느 다큐와는 달랐다. 또 하나를 들자면 감성과 사실을 따로 떼지 않고 섞어서 표현하는데, 그래서 너무 오버하지도 않고 너무 건조하지도 않다. 그것들을 자막으로만 구성되는 형식적 특징과 잘 어울리게 만드는 데 주력했다. 어떻게 보자면, 한 편의 시 같은 느낌이기도 하다. 

 

게다가 길이가 딱 5분이다.

 

원래는 1~2분짜리로 만들려고 했는데, 그렇게 해선 흡인력 있는 기승전결 구조를 만들 수가 없더라. 그래서 그 구조에 맞게 5분으로 늘렸는데, 그랬더니 일반적인 대중 음악 한 곡의 길이와 잘 맞아떨어지는 게 아닌가. 그런 우연적 요소들도 많이 결합한 결과다. 

 

 

논란의 한가운데에

 

광우병을 소재로 한 <17년 후> 편이 논란이 된 이후 프로그램뿐만 아니라 김 PD 개인도 유명해졌다. 그 후로 달라진 점이 있나. 

나 자신은 한 명의 PD로서 변함이 없는데, 주위에서 보는 시선이 달라졌다. 그저 PD가 아니라 정치사회적 인사로 보는 것이다. 좋게 보든 나쁘게 보든 그런 이미지가 굳어지니, 어떤 연출을 해도 사람들이 그런 이미지를 투영해서 본다는 점이 굉장한 부담이다. PD에게 그런 이미지는 장점은 없고 단점이 되기만 한다. 

 

최근 <다큐프라임-나는 독립유공자의 후손입니다(가제)> 제작 중 돌연 수학교육팀으로 발령이 나서 논란이 일고 있다. 

 

(일제강점기 동안 자행된 친일파의 반민족 행위를 처벌하기 위하여 제헌국회에 설치되었던 특별기구인)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의 후손들을 다룬 내용인데, EBS 기획다큐위원회의 심사를 거친 뒤 1년 정도 추진되다가 중단된 상황이다. 올해 들어 갑자기 사측에서 반민특위 아이템이 마음에 안 든다는 둥, 최고의 PD 김진혁이 수학교육팀에 가서 그 팀을 강화해달라는 둥, 말도 안 되는 이유를 들더니, 명확한 이유 없이 발령이 났다. 내가 많이 찍히긴 찍혔나 보다, 내가 SNS를 너무 심하게 했나, 그런 생각을 한다. 또 정권 초기 언론 전반의 충성 경쟁 분위기 속에서 일어난 일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이유를 모르겠다. 

 

그런 이유를 파헤치는 것도 PD저널리즘의 역할 아니었나?

 

맞다. 그런데 그런 걸 잘 하시는 분들은 해직되어서 <뉴스타파>에 가 있고, 현장의 동력이 거의 바닥난 상태다. 예전 같으면 트위터에 억울함을 호소하고 알려달라고도 했는데, 이젠 이슈가 안 된다. 다들 너무 지쳐 있다. 

 

유능한 인재를 필요로 한다는 수학교육팀에 가보니, 긴급하게 해야 하는 것도 없는 상황이었다고 한다. <나는 독립유공자의 후손입니다(가제)>는 사측은 ‘보류’라 하지만 사실상 중단 상태다. “정 그렇다면 후임이 마무리해서 방송될 수 있게 해달라”는 게 김 PD의 요구이지만 “그럴 가능성은 제로”인 것 또한 현실이다. 

 

참여사회 2013년 5월호 (통권 198호) <통인>

 

 

지식과 소외 사이

 

<지식채널e>는 정보를 간명하고도 깊이 있게 다룬다. 정보를 취합하고 재구성해내는 노하우가 있나.

 

간단하다. ‘노가다’다. 자료 조사를 아주 넓게, 깊게, 집요하게 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 거기에는 어떤 특별한 노하우가 없다. 찜찜한 구석을 무시하지 않고 끝까지 해소해야 한다. 말 한마디를 하려면 엄청난 양의 자료를 찾아야 한다. 다큐에는 담기는 내용과 담기지 못하는 내용이 발생하는데, 담기지 못한 내용과도 상충하지 않도록 미리 조사해서 고려해야 한다. 그러면 좋은 작품이 나올 수밖에 없다. 생각하고 자료 조사하고 기획하고 또 자료 찾고, 그러는 데 가장 많은 시간을 쏟는 것이 <지식채널e>의 큰 장점이다.

 

<지식채널e>를 비롯한 그의 프로그램들이 말하는 많은 것들을 아우르는 키워드는 ‘소외’다. 구청 단속에 맞서 분신자살을 시도했던 ‘떡볶이 아저씨’, 실패한 독립유공자의 후손으로 사람들의 기억에서도 멀어지는 이중 소외를 겪는 반민특위, 모두 소외된 사람이고 소외된 역사다. 

 

소외된 것들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나?

 

어렸을 때부터 소외에 대한 연민이 기질적으로 있었다. 그러다가 2003년 <효도우미 0700> PD를 맡았을 때 충격을 많이 받았다. IMF로 사회안전망이 끊겼을 때였다. 전국을 돌면서 그야말로 삶의 낭떠러지에 있는 사람들을 만나는데, 살아있는 게 신기할 정도인 사람이 많았다. 갈 때는 작가와 이야기도 하고 웃기도 하지만, 돌아올 때면 서울로 오는 차 안에서 서너 시간 내내 말 한 마디 안 하기 일쑤였다. 처참한 광경을 보고 나면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빈 병을 주워 하루에 800원을 벌면 그걸 네 군데로 나눠 쓰겠다고 계획을 세우며 사는 독거노인, 한여름의 컨테이너 박스에서 만난 지체장애 여성, 돌봐야 할 손자가 없었으면 틀림없이 자살했을 것 같은 노인……. 

 

 

“PD에게 가장 행복한 건 프로그램이 뜨는 것”이라며, 그걸 위해 SNS에서 티격태격하는 일마저도 자제하고 있다는 김 PD. SNS의 재미보다는 일 욕심이 우선이라는 말인데, 그는 지금 왜 그의 관심을 간절히 바라는 우리 사회 밑바닥의 주인공들에게 가지 못하고 있나?  

인터뷰를 마치고 나오는데, EBS 현관 입구 위를 가득 메운 대표 프로그램들 모자이크에 눈이 간다. 그런데 맙소사, <지식채널e> 조각은 거기에 없다. 시청자들이 선택한 프로그램인데, EBS 사측은 무엇이 부담스러운 걸까. 

 

 

박유안  ‘바람구두’라는 출판사도 하고 있지만, 요즘은 연애, 여행, 혁명, 참선 등 일 아닌 다른 온갖 것들을 읽고 쓰고 옮기는 일에 더 재미가 좋다. “까칠해도 친절하게”가 삶의 모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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