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14년 04월 2014-04-07   1081

[경제]한미 FTA 자기 반성문

한미 FTA 자기 반성문

 

정태인 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 원장

 

 

“2007년 노무현 대통령이 시작해 2011년 이명박 대통령이 매듭지은 한미 FTA는 진보 보수라는 이념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무역을 통해 국익을 증대한다는 취지였다. 2년의 성적표를 보면 성공적이라는 사실이 증명됐다. 반미反美 반反세계화라는 시대착오적 좌파 이념에 사로잡혀 한미 FTA 반대를 외치던 정치인들과 강성 좌파 시민단체 등 촛불세력은 이제 통렬한 자기 반성문을 써야 한다.

 

동아일보의 지난 3월 17일자 사설이다. 나는 정치인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이 신문의 기준으론 한미 FTA 반대를 외치던 ‘강성 좌파 시민단체 등 촛불세력’에 틀림없이 속할 듯하다. 다른 보수 언론의 논조도 별반 다를 바 없었는데 이들이 이렇듯 비판자들을 매도한 근거는 정부가 지난 3월 14일 내 놓은 <한미 FTA 발효 2주년 성과 분석>이라는 자료, 그리고 미국 의회 내에서 미국의 무역적자 증가에 대한 비판이 일었다는 사실이다. 참으로 단순하고 속 편한 사고이다.

 

하지만 내 ‘통렬한 자기 반성문’은 1주년 때 정부 발표와 언론 보도에 관해 쓴 내용과 대동소이하다. 정부와 일부 언론은 그 때와 똑같이 자의적 통계 해석, 그리고 그들의 말투로 하자면 ‘친미, 친세계화라는 시대착오적 우파 이념’에 빠져 있다.

 

참여사회 2014-04월호

 

한미 FTA, 규제완화와 민영화가 핵심이다

 

올해도 정부는 발효 후 2년 동안 대미 수출 증가율이 2012년 4.1%, 2013년 6.0%로 대세계 수출 증가율보다 높은 것이야말로 한미 FTA의 성과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발효 이전의 대미 수출 증가율은 32.3%와 12.8%로 더 높았다. 나아가서 거의 비슷한 강도로 FTA를 맺은 EU에 대한 2년간 수출증가율은 마이너스다. 물론 이런 현상이 벌어진 것은 EU가 재정위기에 빠져 수입을 제대로 할 수 없는 상황에 빠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바로 이 때문에 대미 수출 증가율이 세계의 수치보다 조금 낫게 나온 것이기도 하다.

 

FTA 혜택 품목, 즉 관세가 인하된 품목의 수출이 더 많이 증가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발효 후 2년째는 비혜택 품목의 증가율이 더 높다. 정부는 반도체(원래 관세가 없었으므로 FTA 혜택 품목이 아니다) 수출이 급증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지만 이런 설명은 무역수지의 개선에도 적용할 수 있다. 작년에 한국의 대미 무역흑자가 대폭 증가한 것은 관세혜택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흉년과 한국의 침체로 곡물과 원료의 대미 수입이 급감했기 때문이다.

 

반복하지만 2년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FTA의 효과만 깨끗하게 분리해내는 건 불가능하다. 또한 2006년부터 2013년까지 지겹도록 되풀이한 얘기지만 한미 FTA의 핵심은 무역수지가 아니다. 원래부터 미국의 전략은 상품시장을 열어 주고 대신 지적재산권·서비스·투자시장을 개방하는 것, 즉 미국만큼 규제를 완화하고 민영화하자는 것이었다.

 

한미 FTA 독소조항의 역습이 다가온다

 

한미 FTA에 맞춰 우리는 63개의 법령을 이미 제·개정했고 각종 정책 역시 그 영향을 받고 있다. 환경부의 저탄소차 협력금 제도 좌절, 산업자원부의 IT 네트워크 장비 공공조달 시 중소기업 우대 정책 좌절, 동반성장위원회의 ‘중소기업 적합업종’ 지정 시 미국업체 제외, 우정사업본부의 우체국 보험 가입한도 증액 좌절, 마이크로소프트(MS)의 국방부에 대한 사용료 요구, 금융위원회의 비자·마스터카드 국내 수수료 제한 좌절 등이 그것이다. 물론 해당 부처가 미리 위축되어 아예 입안조차 못한 정책도 있어서 FTA에 따른 법 개정은 앞으로 더욱 더 늘어날 것이다.

 

현재 박근혜 대통령이 직접 챙기고 있는 서비스산업 규제 완화는 한미 FTA의 위력을 본격적으로 보여주게 될 것이다. 최신판 민영화 정책은 공기업의 알짜배기 부분을 분리해서 영리자회사를 설립하는 수순을 밟고 있다. 예컨대 수서발 KTX 자회사, 병원의 영리 자회사에 미국 자본을 끌어들이면 그 자회사는 한미 FTA 투자 챕터의 적용 대상이 된다. 어떤 문제가 발생한다 해도 차기 정부는 이 자회사에 손을 댈 수 없다. 바로 악명 높은 투자자국가제소권 때문이다. 한미 FTA의 진정한 문제는 여기에 있다. 이미 미국식 시장만능주의가 얼마나 위험한지 세계금융위기가 보여 주었는데도 아직도 거기에 집착하는 것이야말로 ‘시대착오’가 아니고 무엇이랴.

 

정태인 한미FTA 등 통상정책과 동아시아 공동체를 오랫동안 연구해온 경제학자. 요즘은 행동경제학과 진화심리학 등 인간이 협동할 조건과 협동을 촉진하는 정책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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