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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년 04월
  • 2014.04.07
  • 2256

참여사회 2014-04월호

 

유하, 모하, 채색 

송유하 회원

 

배경헌

사진 Nina Ahn

 

 

앗, 송정섭 간사다! 저 송정섭 아닌데요. 응? 맞는데? 사람 잘못 보셨어요. 음… 혹시 몇 년 전에 참여연대 간사로 있지 않으셨어요? 맞긴 맞는데 전 유하라고 해요. 유하? 이름 바꾸셨어요? 네, 여자 이름이 송정섭이 뭐예요 송정섭이ㅋㅋㅋ. (정색) 저 그 이름 별로 안 좋아했어요. 그건 그렇고 왜 이렇게 까매지셨어요? 태닝 하셨어요? 귀농했어요. 뭐하셨다고요? 저 농사짓는 여자예요. 아…… 옆에 같이 나온 남자 분은 이장님이세요? 남편이에요. 헐… 본명은 김성만인데 저희끼리는 ‘채색’이라는 필명으로 부르기도 해요. 처음 만났을 때만 해도 잃어버린 영혼의 반쪽을 찾았다고 생각했는데 흑흑… 그럼 품안에 꼬맹이는요? 아들이에요. 엄청 작네요. 이제 딱 백일 됐거든요. 이름이 뭐예요? 본받을 모摹, 강 하河, 모하. 남편이랑 집에서 낳았답니다.

 

한국 3대 오지에 정착한 사연 

 

유하 회원의 본격적인 귀농 일기를 듣기 전에 우선 그녀가 송정섭 간사이던 시절로 돌아가보자. 2008년 1월부터 참여연대 운영팀 간사로 활동하던 그녀는 2009년 9월 참여연대를 떠난다. 그리고 ‘사회복지학 전공에서 사회학을 써먹었으니 이번에는 복지학을 써먹어보자’는 마음으로 한 입양기관에 둥지를 튼다. 유하라는 이름은 그 곳에서 가졌다.

 

“고조할아버지가 여자도 항렬을 따르라고 하셨나 봐요. 그런데 하필 제 항렬이 ‘섭’이었던 거죠. 별다른 뜻이 있는 것도 아니라서 예전부터 이름을 좋아하지 않았어요. 그러던 차에 ‘한살림’을 만든 사회운동가 장일순 선생이 ‘개문유하開門流下'라고 쓰신 걸 봤죠. 문을 열고 겸손히 아래로 흐르라는 뜻인데 무척 마음에 들어서 이름도 바꿨어요.”

 

이름 따라 아래로 아래로 흐르던 그녀의 삶은 채색이라는 굽이를 만나 완만히 휘돈다. 2011년 공정여행 상품을 기획하는 사회적 기업으로 자리를 옮긴 그녀는 여행 상품을 개발하던 중 환경단체 활동가로 일하던 채색을 만난다. 만나자마자 두 사람은 ‘통한다’는 느낌을 받(아 2차까지 술자리를 갖)는다. 강력한 공통분모는 환경과 생태. 어린 시절 고향 부산의 낙동강 뻘이 하굿둑 때문에 하루아침에 사라지는 모습을 보고 충격을 받았던 채색은 성인이 된 뒤 제3세계를 여행하며 ‘자연과 가깝게 사는 사람들이 훨씬 행복하다’는 결론을 얻는다. 유하에게는 공장식 축산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본 것이 환경 문제에 본격적으로 관심을 갖는 계기였다고 한다.

 

“회식 자리 같은 데 가면 동물들이 도살당하면서 지르던 소리가 자꾸 생각났어요. 점점 고기를 멀리하면서 채식을 하고, 샴푸 대신 비누를 쓰고, 일회용품 대신 면 생리대 같은 것을 쓰면서 조금씩 관심이 커졌던 것 같아요. 그러다 학자금 대출만 갚으면 혼자서라도 귀농할 생각을 갖게 됐고요. 그런 삶이 머리에 있어서인지 어느 직장을 다니든 서울에 있는 게 늘 안 맞았어요. 빨리 도시를 떠나야지 싶던 차에 이 사람을 만난 거죠.”

 

만나자마자 귀농을 결심한 두 사람은 직장을 그만두고 2012년 3월 도보여행에 나선다. “마음에 드는 데가 있으면 짐 풀” 요량으로 시작된 여행은 6개월 간 이어진다. 동대문에서 출발한 여정은 여주와 제천, 영월, 강릉, 영양, 상주와 강진 등 전국을 가로지르지만 두 사람은 정작 마음에 딱 맞는 곳은 찾지 못한다.

 

“지금은 그런 생각을 버렸지만 원래 꿈은 풍경도 좋고 집 앞에 맑은 계곡물도 흐르는 그런 곳에 자리를 잡는 거였거든요. 그런데 막상 가보니 농촌도 현대화가 많이 되었더라고요. 한국이 그렇게 많이 변했다는 걸 너무 몰랐던 거죠. 더 오지로 들어갈 수도 있었겠지만 우리끼리 동떨어져 살기 보다는 사람들이랑 어울려서 살고 싶었어요.”

 

그렇다면 이들이 고심 끝에 고른 곳은 어딜까. 채색은 “한국의 BYC를 아느냐”고 묻는다. BYC? “봉화, 영양, 청송을 두고 한국의 3대 오지라고 한대요. 그만큼 땅값도 싸고요.” 지도를 펼쳐 놓고 원하는 지역을 찾던 이들은 경북 봉화군에 점을 찍는다. 뒤로는 백두대간이 서 있고, 앞으로는 내성천과 낙동강이 흐르는 곳이다. 우여곡절 끝에 안착한 곳은 경북 봉화군 상운면 운계2리. 30여 가구가 있는 마을에서 두 사람은 유일한 30대다. 커피 한 잔 마시려면 안동까지 나와야 한다는 이곳에 두 사람은 어떤 이유로 다다른 것일까. 단순히 도시가 싫어서? 직장 다니는 게 답답해서? 꼭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다.

 

참여사회 2014-04월호

 

이 부부가 스스로 서는 방법

 

2012년 9월 봉화에 내려간 두 사람은 지난해 본격적으로 농사를 시작했다. 880평. 1~2만평은 예사인 관행농가에 비하면 귀여운 수준이다. 이 중 논이 630평 정도를 차지하고 나머지는 밭이다. 올해는 밭농사를 500평 정도 늘릴 예정이다. 여전히 적은 듯하지만 이 정도면 “우리 가족이 먹고 양쪽 집안에도 보낼 수 있는 양”이라는 게 두 사람의 말이다. 귀농에 대한 채색의 설명이 이어진다.

 

“도시에 살면 생활비가 엄청 높잖아요. 그러다보니 계속 돈을 벌고, 그걸 다시 소비할 수밖에 없는 구조가 되는 것 같아요. 그만큼 자연을 파괴시키는 면도 있고요. 저희가 생각할 때는 본의 아니게 죄를 짓게 되는 것 같았어요. 귀농을 결심한 데는 자본주의 사회에 너무 의지하지 않고 자급자족하고 싶다는 마음이 컸어요.”

 

듣고 있던 유하도 말을 보탠다.“우리 사회가 너무 과잉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석유나 전기도 펑펑 쓰고, 농약도 많이 뿌리잖아요. 조금만 줄여도 좋을 것 같은데, 이대로 사는 게 과연 지속가능할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죠. 이대로는 안된다 싶어서 우리 삶 자체를 바꿔보려고 했어요.”

 

그래서 이들은 여러 가지를 포기했다. 아니 그보다 갖지 않기를 선택했다고 하는 게 옳을 것이다. 우선 세탁기와 냉장고를 들이지 않았다. 홈페이지 운영을 위해 컴퓨터는 마련했지만 그래도 한 달 전기료는 수천 원에 그친다. 농사는 화학비료와 농약을 쓰지 않고 유기농법으로 짓는다. 종자는 되도록 토종 종자를 구해서 심는다. 지난해에는 기계도 전혀 쓰지 않았다.

 

“농사로 돈을 벌겠다는 생각보다는 우리가 먹을 건 우리가 농사짓자는 생각이 커요. 다음 해에 다시 농사를 지으려면 모종이나 씨앗을 다시 사야하고 그걸 위해 다시 돈을 벌어야 하는데, 저희는 그런 시스템에서 벗어나고 싶거든요. 몬산토 같은 종묘회사에서 파는 F1종자는 형질이 유전되지 않아요. 종자를 받아서 또 심으면 안 나니까 매년 새로운 종자를 사야 하죠. 거기에 화학 비료를 쓰면 색깔도 좋고 모양도 예쁘니까 도시 소비자들은 그런 종자를 찾아요. 그런데 인도 같은 나라에서는 종묘회사가 처음에는 종자를 싸게 주면서 재래종을 없애고, 나중에 농민들이 종자에 의존하게 되면 가격을 올리거든요. 종자값을 감당하지 못한 농민들은 자살하거나 도시 빈민이 돼요. 우리도 그렇게 농업이 무너질 수 있는데 한국에서는 아직 위기의식이 없는 것 같아요."

 

물론 뜻이 좋다고 모든 일이 좋게만 풀리지는 않는다. 자연재배를 시도한 지난해 논농사는 “처절하게 실패”했다. 플라스틱 모판을 쓰지 않기 위해 직파한 몇몇 밭작물은 자라나지 않았다. 감자는 땅 속에서 썩었고, 어떤 씨앗은 새들이 먹어치웠다. 심지어 김매기를 하다 작물까지 베어버린,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알 수 없는 경험도 있다. 이들은 얼마 전 홈페이지에 “현실의 벽은 높았다”고 적었다. 채색이 말을 잇는다.

 

“처음에 목표로 했던 ‘자급자족’은 모든 걸 스스로 생산하고 해결한다는 뜻이잖아요. 그런데 살아보니 그게 불가능하더라고요. 개인이 그렇게 많은 능력을 다 가질 수 있는 게 아니었어요. 혼자서 집도 짓고 옷도 만들고 농사도 할 수 없거든요. 그래서 생각을 바꾸게 됐죠. 개인은 자립을 하고, 마을은 자급자족을 하는 곳을 만드는 것으로요. 혼자서는 할 수 없지만 여러 사람이 모이면 자급자족할 수 있으니까요.”

 

참여사회 2014-04월호

 

이렇게도 살 수 있다

 

두 사람은 지금까지의 귀농 생활을 두고 “꿈을 꾸던 시기”라고 설명한다. 한편으로는 『월든』 같은 고고한 삶을 꿈꾸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마을을 바꿔보겠다는 안일한 생각"을 품었다는 것이다. 채색의 말이다.

 

“운동하는 사람들이 그렇잖아요. 저희도 ‘내가 가서 농촌을 바꾸겠다’, ‘유기농을 보급하겠다’ 이런 마음으로 갔거든요. 그런데 막상 가서 보니 우리가 배우면 배웠지 뭘 바꾼다는 건 말이 안되는 일이었어요. 아직 농사도 모르는 게 많고요. 인간 관계나 공동체는 우리 생각보다 훨씬 잘 살아 있었어요. 기계로 짓는 관행농 역시 소비 구조가 계속 가격을 낮추다 보니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된 거고요. 어르신들에 비하면 저희는 아직도 어린 아이나 다름없어요.”

 

그래서 두 사람은 더욱 더 농촌 공동체에 뿌리내리기 위해 노력 중이다. 도시에서 왔다고 유난 떨지 않고, 물처럼 자연스럽게 그릇 안에 담기려 한다. 장기적으로는 고령의 이웃을 대신해 마을에서 나는 농산물을 합리적인 가격에 도시 소비자들과 직거래하려는 계획도 가지고 있다. 두 사람은 “최고의 목표는 우리가 잘 사는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여러 사람이 함께 잘 사는 것”에 대한 꿈을 놓지 않는다.

 

“저희는 활동가잖아요. 자본주의나 환경 파괴에 대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는데 그런 것들을 지양하자고 말하기에는 도시가 적합하지 않았던 거예요. 저희는 사람들한테 ‘어떻게 하라’고 말하기 보다는 ‘우리가 이렇게 살아 보니까 재밌더라’라고 알려주고 싶어요. 물론 저희도 여전히 컴퓨터를 쓰고, 소비에 의지하는 면도 있어요. 저희도 하지 못하는 걸 사람들에게 강요하고 싶지는 않아요. 생태운동한다고 일회용품 쓰는 사람을 강하게 비판하시는 분들을 보면 저희도 불편하거든요. 개인을 공격해서 될 일이 아니라 구조적인 문제를 바꿔야 하는 일이잖아요. 저희는 저희가 전체를 바꾸는 과정에 있는 작은 움직임 같은 거라고 생각해요. 저희 삶에 우여곡절도 있고 실패도 있지만 ‘이렇게도 살 수 있다’는 걸 보여주려고 해요.”

 

이들이 ‘이렇게도 살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 중 하나가 모하다. 두 사람은 언젠가 여행 중 들었던 “임신은 질병이 아니다”라는 말에 자극 받아 병원에 가지 않고 집에서 모하를 낳았다. 열여섯 시간에 걸쳐, 엄마가 낳고 아빠가 받았다. 탯줄도 물론 직접 잘랐다. 두 사람은 “산모가 건강하다면 병원에 갈 필요는 없지만 첫째는 조산사의 도움을 받는 게 좋을 것 같다”면서도 둘째 역시 집에서 낳을 생각이라고 덧붙인다. 지금 세 사람은 누구보다 건강하다. 그러니 이렇게도 살 수 있다. 불필요한 것들을 사지 않고, 쓰지 않고, 가볍게, 자연으로 돌아갈 수 있다. 개문유하. 유하는 여전히 아래로 흐른다. 아래로 아래로 아래로 흘러 모하라는 다음 세대의 강물에 닿는다.

 

*유하 채색의 홈페이지 : www.dapdap.net 

 

배경헌 전직 기자, 현직 영화학도. 회원들에 대한 애정 어린 글을 써주시던 호모아줌마데스께서 어머님 병 간호를 맡으신 사이 잠시 지면을 빌렸다. 어머님 어서 쾌차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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