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14년 04월 2014-04-07   1255

[특집] 세 모녀는 복지로 구제받을 수 있었을까?

세 모녀는 복지로
구제받을 수 있었을까?

 

문진영 서강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현재 한국 사회에서 복지에 관한 가장 큰 이슈는 선거공약과 맞물린 ‘기초연금’과 ‘무상보육’이다. 이 두 사업은 한국 사회에서 거의 최초로 보편적 성격을 지닌 복지급여로, 도덕적으로 정당할 뿐만 아니라 시기적으로도 적절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가난한 노인의 비율이 45%를 상회하고, 세계에서 가장 낮은 출산율을 보이는 현실에서 기초연금과 무상보육의 시행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정책적 과제다. 하지만 이 두 제도가 성립하게 된 이면에는, ‘노인 계층’과 ‘아동 양육 계층’의 정치적 영향력이라는 현실을 외면할 수 없다. 특히 선거에서 보여주는 노인 계층의 단합된 정치적 힘은 가공할만한 것으로, 여야를 막론하고 이들의 목소리를 외면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정치적 목적이야 무엇이든, 일반 국민을 대상으로 기초연금과 무상보육을 시행함으로써 한국 복지국가의 수준이 한 단계 도약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하지만 화려한 복지국가의 발전 이면에는 정치적 영향력도 없고, 어느 누구도 나서서 대변해주지 않는 우리 사회 가난한 사람들의 그늘이 드리워져 있다.

 

얼마 전 가난하지만 주위 사람들에게 폐를 끼치지 않고 성실하게 살아왔던 세 모녀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참담한 일이 벌어졌다. 우리 사회의 민낯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는 세 모녀 자살 사건을 보면서, ‘어쩌다가 우리나라가 이 지경이 되었는가?’를 되새기게 된다.

 

산재도 기초법도 해당 사항 없음

 

2012년 현재 우리나라에서 자살로 생을 마감하는 사람의 수는 일 년에 15,000명을 넘어서서 OECD 회원국 중 자살률 1위이고, 전 세계에서도 1~2위를 다툴 정도로 높다. 그러나 더욱 심각한 문제는 자살률의 증가 경향이다. 선·후진국을 막론하고 최근 들어 자살률이 감소하는 경향을 보이는 반면, 한국만 유독 엄청난 증가율을 보이고 있다.

 

2000년에서 2010년까지 대부분의 OECD 회원국은 자살률이 소폭이나마 줄어드는 경향을 보이고 있지만 우리나라는 두 배 넘게 증가해 ‘자살을 권하는 사회’처럼 되어버렸다. 물론 자살은 사회적·심리적·정신적 요인들이 결합되어 나타나겠지만, 우리나라만 유독 자살률이 이렇게 독보적으로 높고, 게다가 지속적으로 높아지는 것에는 사회·경제적인 이유 이외에는 달리 설명할 방법이 없다.

 

하지만 최근 일련의 자살 사태에 대한 현 정부의 인식은 안일하다 못해, 오히려 희생자 나무라기Blaming the Victim에 가깝다. 정부는 세 모녀가 복지급여를 신청만 했더라면 이런 저런 혜택을 받았을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마치 정부는 저소득층을 위해 복지급여를 다 준비해놓고 있는데, 신청을 하지 않고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한 세 모녀가 야속하다는 식으로 들린다.

 

필자의 과문일지도 모르지만, 아무리 생각해봐도 우리나라에서 세 모녀가 받을 수 있는 복지급여가 떠오르지 않는다. 우선 퇴근길에 넘어져도 산재보험의 휴업급여를 받을 수 없다. 왜냐하면 우리나라 산재보험에서 통근 재해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고용보험의 구직급여를 받을 수도 없다. 구직급여는 구직의 의사와 능력이 있어야 지급되는데, 퇴근길의 상해로 구직 능력이 안 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에 신청하면 되지 않을까? 그래도 수급자로 선정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우선 당장에 소득이 거의 없다하더라도, 세 모녀가 근로 가능 계층에 속하기 때문에 1인당 약 60만 원의 추정소득이 부과될 가능성이 매우 높기 때문이다. 그러면 정말 최후에는 긴급복지지원을 받을 수 없는가? 안타깝게도 긴급복지지원제도는 주 소득자의 사망이나 가출 혹은 화재 등으로 완전히 소득활동 능력을 상실한 가구에게 지급되기 때문에 퇴근길에 다쳐서 일을 쉬고 있는 사람에게는 지급되지 않는다.

 

참여사회 2014-04월호

 

가난한 사람도 살만한 사회는 아직 멀었다 

 

선거철에 온갖 수식어로 치장된 화려한 복지국가를 약속했던 정치인과 정당, 그리고 정부는 무슨 면목으로 국민들을 대할 것인가? 보험 가입을 권유할 때는 온갖 혜택을 다 줄 것처럼 약속하다가 막상 사고를 당하면 깨알처럼 적힌 약관을 들어서 보상을 거부하는 영리 보험회사처럼, 현 정부도 국민들이 막상 도움을 필요로 할 때는 온갖 복잡한 규정을 들어서 도움을 거부하지는 않았는지 반성해야 한다. 특히 ‘비정상의 정상화’를 위한 첫 번째 추진 과제로 ‘복지급여 등 지원금 부정수급의 근절’을 설정하면서 복지급여를 신청한 국민들을 잠재적 부정수급자로 보아 주눅 들게 하지는 않았는지, 일반 국민 사이에 어차피 신청해봤자 모욕만 받고 정부로부터 지원은 받지 못할 것이라는 부정적인 인식이 팽배해 있지는 않은지 냉철하게 살펴보아야 한다.

 

‘비정상의 정상화’를 위한 첫 번째 추진과제는 현 사회보장제도의 사각지대 해소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우리나라의 사회보험제도는 이 제도가 절실하게 필요한 계층이 아니라, 보험료의 납부능력이 있는 계층 위주로 적용되어 상당히 역진적인 성격을 가지고 출발했다. 이러한 제도의 역진적인 원형prototype이 현재까지 이어져 대표적인 사회보험제도인 국민연금만 하더라도 600만 명 가까운 납부 유예자가 있으며, 건강보험제도도 6개월 이상 체납가구의 수가 150만 가구를 훌쩍 넘어서고 있다. 더욱이 구직급여가 절실하게 필요한 비정규직의 고용보험 가입률은 25% 내외에 머무르고 있다.

 

이렇듯 사회보험제도에 광범위한 사각지대가 잔존해있는 상황이라면, 저소득층을 위한 공공부조제도라도 제 기능을 다해야 하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 현재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는 가혹한 부양의무자 기준과 불합리한 재산의 소득환산제도, 부당한 소득 추정방식 등으로 인해 250만 명 이상의 빈곤층이 정부로부터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따라서 ‘부정수급자 색출과 근절’이 아니라 우리나라 사회보장제도의 사각지대를 메울 수 있는 특단의 대책이 정부의 최우선적 과제가 되어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제도적인 차원을 넘어 정부는 삶의 벼랑 끝에서 자살이라는 극단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세 모녀가 정부에 도움의 손길을 요청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진지하게 성찰해야 한다. 국민의 생명과 재산 그리고 인권을 보호해야 할 최후의 보루로서 대한민국 정부는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가? 숨이 턱턱 막힐 정도로 생활이 어렵고 미래에 어떠한 희망도 보이지 않을 때, 정부는 우리의 삶을 의탁해서 몸과 마음의 안식을 얻고, 미래에 새로운 희망을 가질 수 있게 도와주는 존재인가? 아니면 항상 화나고 무서운 얼굴로 법질서를 강조하고, 국민들의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희생해서라도 경제성장에 매진하여야 한다고 채찍질을 하는 존재인가? 이제는 정부가 답해야할 차례다.

 

문진영 서강대학교 생명문화연구소 소장과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 실행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주 전공은 유럽연합의 사회정책이며, 최근에는 행복학에 대해서 공부하고 있다. 

 

2014. 4월호 특집 – 빈곤과 자살

09 특집 ‘자살’이라 쓰고 ‘사회적 타살’이라 읽다 이선희

12 특집 한국에는 빈곤이 없다고? 신명호

15 특집 한국 사회의 빈곤은 어떻게 만들어졌나 이수연

18 특집 세 모녀는 복지로 구제받을 수 있었을까? 문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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