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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년 08월
  • 2014.08.04
  • 1245

 

일장기를 대하는
우리의 자세

 

 

김정인 춘천교육대학교 사회과교육과 교수

 

일장기, 일본 국기 그 이상의 의미

8월이다. 8월 15일은 광복절이다. 심훈이 읊조렸듯이, ‘삼각산이 일어나 더덩실 춤이라도 추고 한강물이 뒤집혀 용솟음칠 그날’, 1945년 8월 15일 정오에 울려 퍼진 일본 쇼와 천황의 항복 방송에 사람들은 거리로 쏟아져 나와 환호했다. 하지만, 조선총독부 건물 높이 휘날리던 일장기는 남한에 미군이 진주한 직후인 9월 10일에야 게양대에서 사라졌다. 

 

한국인에게 일장기는 여느 나라의 국기와는 다른 의미를 갖는다. 거기엔 늘 일본 식민 지배의 쓰라린 기억이 투사된다. 그 불편한 기억의 한편엔 ‘일장기말소사건이’ 자리잡고 있다. 1936년 8월 나치 치하의 독일에서 치러진 베를린올림픽 마라톤 경기에서 손기정 선수는 1등, 남승룡 선수는 3등을 차지했다. 이 소식을 전한 동아일보 1936년 8월 25일 자에는 ‘조선의 피를 끓게 한’ 손기정 선수의 사진이 실렸다. 가슴팍에 달린 일장기가 지워진 채로 말이다. 이 일장기말소사건으로 동아일보는 무기한 정간 처분을 받았고 사회부장 현진건을 비롯해 사원 8명이 구속되었다. 조선총독부는 무엇보다 ‘조선이 일본에 승리하여 마치 조선 독립의 기초가 이루어진 듯이 생각하는 경향이 생겨나고’ 있음을 경계했다. 이 통쾌한 기억은 곧 ‘일장기=일본의 식민 지배=악’이라는 등식을 통념화하는데 적지 않는 영향을 끼쳤다.  

 

참여사회 2014년 8월호 (통권 213호)

 

월드컵 예선, 일장기 때문에 안 된다?

1960년 11월 6일 효창공원 안 국제축구경기장에서 한일 축구 국가대표팀 간에 월드컵 예선전이 벌어졌다. 1962년 칠레에서 열릴 제7회 월드컵의 아시아 지역 예선전이었다. 애초 정부는 해방 이후 15년 만에 서울에서 열리는 최초의 한일 축구전을 불허했다. 당시 한일 정부가 재일동포 북송 문제로 갈등을 겪기도 했지만, 식전행사의 일장기 게양과 일본 국가 연주가 민심을 자극할 것을 우려해서였다. 결국 정부는 경기를 불과 1주일 앞두고 국무회의를 거쳐 친선경기가 아니라 국제대회의 예선전이란 이유로 개최를 허가했다. 경기장 질서 유지를 위해 지정좌석제를 운영하라는 조건이 붙은 까닭에 대한축구협회는 급히 좌석 공사에 착수해야 했다. 문제는 심판이었다. 국제축구협회가 요청한 필리핀 심판 3명이 한국의 초청이 너무 늦었다며 불참을 통고했다. 이 소동은 일본 축구팀이 3명 모두 한국 심판을 써도 좋다고 양해하면서 일단락되었다.  

 

어렵사리 열린 한일전에 사람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었다. 전례 없이 비싼 입장료에도 1만 3천 여 좌석은 만원사례였다. 경기장 밖 언덕 위에도 빽빽하게 1만 명이 몰려들었다. 붉은색 선수복을 입은 한국팀과 푸른색 선수복을 입은 일본팀이 입장하자, 대한축구협회장이 한국어와 일본어로 개회를 선언했다. 마침내 일본 국가가 울려 퍼지는 가운데 일장기가 게양되었다. 식민 지배를 기억하는 수만 명의 사람들 앞에서 해방 이후 처음으로 한국 땅에서 일장기가 게양되던 1분이란 짧은 시간의 정적과 긴장감, 이는 상상하기 어렵지 않다. 경기는 한국의 2 대 1 승리로 끝났다. 한국이 일본을 이긴 것이다. 남다른 감회와 기쁨에 나라가 들썩였다. 

 

당시 정부가 일장기 게양에 과민반응을 보일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있었다. 두 달 전인 1960년 9월 6일에는 해방 후 처음으로 코사카 외무상을 비롯한 일본의 공식 사절단이 한국을 방문했다. 공식 사절단이긴 하나, 여론을 이유로 정부는 김포공항에 일장기를 내걸지 않았고, 의전행사도 생략했다. 사건은 코사카 일행이 숙소인 반도호텔에 도착했을 때 일어났다. 20대 청년 30여 명이 트럭을 타고 나타나 “36년간의 침략행위를 사과하라”, “교포 북송을 중지하라”고 쓴 플래카드를 들고 시위하다가 코사카 외상이 탄 승용차의 일장기를 훼손한 것이다.  

 

아직도 계속되는 일장기 소각 

한일회담 반대투쟁이 한창이던 1964년과 이듬해에 시위대가 일장기를 소각하는 일이 자주 일어났다. 일본정부에게 일장기 소각사건은 직접 조사에 나설 만큼 예민한 문제였다. 한일 간에 국교가 재개된 이후로도 공식적인 일장기 게양에는 여론을 살펴야 하는 수고로움이 뒤따랐다. 1945년 9월 10일로부터 딱 37년 4개월이 지난 1983년 1월 11일, 예전의 조선총독부 건물에 들어선 중앙청에 태극기와 함께 처음으로 일장기가 게양되었다. 나카소네 일본 수상의 공식 방한을 맞아 내건 것이었다. 이 소식을 전한 신문기자의 소회는 이렇다. “한국을 강제 지배하면서 그 상징으로 세운 중앙청에 또다시 그들의 국기가 나부끼는 것을 바라보는 한국인의 가슴은 착잡하기만 하다.”

 

지금도 반일시위에서 종종 일장기를 불태운다. 중국의 격렬한 반일시위에서도 일장기를 불태우고 있다. 일본의 한류韓流 열풍 못지않게 한국에서 일류日流가 유행하고 있지만, 일장기는 아직도 일본 국기라는 본연의 이미지를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과거사 문제를 외면하는 일본과 여전히 친일-반일 프레임이 강하게 작동되고 있는 한국, 과연 누구 때문일까? 

 

김정인 춘천교육대학교 사회과교육과 교수

참여연대 창립 멤버, 현 참여연대 운영위원회 부위원장. 한국근현대사를 전공하였다. 한국 민주주의와 시민사회의 궤적을 좇는 작업과 함께 동아시아사 연구와 교육 활동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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