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15년 01월 2015-01-05   606

[경제] ‘지속적 침체’와 세월호

정태인 경제평론가, 칼폴라니 사회경제연구소 창립 준비위원

‘로샤하 잉크반점 검사Rorschah inkbolt test’라는 말을 아시는가? 아마도 대부분 나처럼 “이게 뭐지?” 하겠지만 백과사전에서 찾아보면 “아하! 이거” 하실 테다. 잉크를 붓고 데칼코마니로 찍어낸 무작위의 형상을 제시하고 사람들에게 무엇이 보이는지 묻는 테스트다. 수많은 사람들의 대답을 모아서 응답자의 신상 정보를 연결시켜 보면 뭔가 일정한 유형이 나타날 것이다.

참여사회 2015년 1월호(통권 218호)

‘지속적 침체’란 무엇인가

현재 정상급 경제학자들이라면 한 마디 씩 한 ‘지속적 침체secular stagnation’를 놓고 버클리의 아이켄그린 교수가 상기시킨 용어다. 사람에 따라 잉크반점에서 토끼를 볼 수도 있고, 새를 연상할 수 있듯이, 지속적 침체라는 같은 용어를 두고 각양각색 진단이 서로 다르다는 것이다. 원래 1930년대에 한센이 대공황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하는 현상을 두고 지어낸 말인데, 작년 말 서머스 교수가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아직도 회복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사용하면서 경제학계의 화두가 되었다. 

정책연구센터CEPR의 튤링스와 볼드윈은 최근 주요 논자들에게 자신의 주장을 간명하게 요약하라고 청해서 모은 글들을 출간했다. 각양각색이라 해도 대체로 첫째, 지속적 침체의 쓸만한 정의는 완전고용을 달성하는 투자와 저축의 일치를 위해선 마이너스 실질 이자율이 필요하다, 둘째 낮은 인플레이션과 명목금리의 제로한계(명목 이자율을 0 이하로 낮출 방법은 없다) 상황 때문에 지속적 침체 하에서 완전고용을 달성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셋째, 과거의 거시정책 수단이 지금 상황에 적절한지 여부를 심각하게 따져야 한다는 것이다(관심 있는 분들은 공개된 보고서를 읽어 보시기 바란다).

초이노믹스의 잘못된 해법

논자들은 모델에 따라 다양한 처방과 진단을 제시하지만 모두가 인정하는 사실이 하나 있다. 지속적 침체와 현재의 경제적 불평등이 어떤 방식으로든 관계가 있다는 것이다. 피케티의 주장처럼 경제적 불평등이 점점 심해질 텐데 시장에는 불평등을 교정하는 자동장치가 없다고 생각하든, 그렇지 않든(예컨대 자본이 쌓이면 자본 한 단위 당 값도 떨어져서 결국 불평등 문제도 해결할 거라고 믿는다고 하더라도) 적어도 단기적으로 불평등이 총수요의 부족을 초래하고 나아가서 공급 상의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는 점(잠재성장률의 저하)만은 확실하다. 

무릇 정책은 당장의 고통부터 줄여야 한다. 케인즈 얘기대로, 폭풍이 몰아치는 바다에서 결국 바다는 중력의 법칙에 따라 잠잠해질 거라고 설파하면서 “가만히 있으라”고 명령하는 것이 선장의 역할은 아니지 않은가? 기껏 부채주도 성장(“빚을 내서 집을 사든가, 전세금을 올려주라”)을 밀어붙이다 이젠 ‘구조개혁’을 빌미로 노동시장의 유연화 등 규제완화와 민영화라는 과거의 정책수단에 집착하는 초이노믹스시장에 돈을 풀어 경기를 살리겠다는 최경환 경제부총리의 경기부양책를, 뭐라 비판해도 오불관언吾不關焉, 나는 상관하지 않음 제 갈 길을 가는 박근혜 대통령의 아집을 지켜 볼 수밖에 없는 우리는 더욱 한심하다. 반쯤 물에 잠겨 있다가 수많은 목숨을 앗아가는 세월호 참사를 그저 바라보기만 한 것과 무엇이 그리 다를까. 

더 이상 눈 뻔히 뜬 채 아이들을 잃지 않기 위해서 우리는 2017년의 선거를 마냥 기다리기만 해서는 안 된다. 전쟁으로 이어질 수도 있는 대위기를 맞지 않기 위해서는 우리 모두 목소리를 합쳐 교황의 말씀대로 거리로 나서야 할지도 모른다. 

* 새해 첫 칼럼을 또 한 번 짙은 회색으로 칠한 데 대해 독자들에게 사과하며, 필자가 한 달에 8편이나 쓰는 정기 원고 가운데 가장 이론적인 부분을, 따라서 지극히 따분한 글을 참여사회에 보냈음을 고백한다. 이런 원고를 다른 어디에 보낼 수 있을까? 

정태인

한미FTA 등 통상정책과 동아시아 공동체를 오랫동안 연구해온 경제학자. 요즘은 행동경제학과 진화심리학 등 인간이 협동할 조건과 협동을 촉진하는 정책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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